설렘 100%, 걱정 100%
계약 날짜가 정해지니 출발선에 선 게 실감났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경주가 시작된다.
매물을 보러 다닐 때는 마냥 설레기만 했는데 계약을 앞두니 불안이 엄습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지금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려는 건 아닐까.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럴 땐 괜히 부정적 신호만 눈에 들어왔다.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특이한 길을 택하는 건 아닌가요. 인스타그램 광고에 나온 한 강사의 말을 보고 뜨끔했다.
인생의 갈림길인 30대,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외치고 싶어서 객기를 부리는 건 아닐지 돌아봤다.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이었기에 곧바로 NO라고 답하지 못했다.
직장인이 되고 주위와 나를 비교하는 일이 잦아졌다. 퇴사하고 해외로 가서 꿈을 펼치는 친구, 사업에 도전하여 성공한 동창과 같은 아웃라이어의 소식을 들으며 움츠러들었다.
그들처럼 주목받으려면 나도 얼른 잘 닦인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조바심에 출판전야를 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의 장소를 만든다는 사람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출판전야를 만들 자격이 없었다.
나를 수렁에서 끄집어내 준 건 그동안 출판전야를 준비하며 쌓아온 기록이었다. 지난날의 흔적을 돌아보며 출판전야가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다면 2년 넘게 고민하지 못했겠지. 나의 진심을 충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한 차례 파도가 지나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이때는 설레서 핀터레스트에서 인테리어 사진을 둘러보며 출판전야의 모습을 그렸다.
걱정 반, 설렘 반이라는 말과 달리 걱정과 설렘은 공존하지 않았다. 동전의 양면처럼 걱정될 때는 걱정만이, 설렐 때는 설렘만이 가득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분이 달라졌다.
얼마 가지 않아 동전은 다시 뒤집혔다. 이번에는 돈 문제 때문이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5,000만 원을 쓰게 될 거라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내 자산 중 5,000만 원이 사라진다. 미래의 나에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터스텔라처럼 미래의 내가 다른 차원에서 나를 절실히 말리고 있는 듯했다. STAY라고.
얄궂게도 비트코인이 한창 오를 때였다. 어딘가에선 2억까지 갈 거라는 말도 나왔다. 만약 5,000만 원을 비트코인에 넣으면 부자가 되지 않을까. 출판전야의 기회비용이 커 보였다.
갈림길에 서서 각각의 길을 선택했을 때의 미래 모습을 그렸다. 출판전야를 하지 않으면 넉넉하게 살면서도 돈을 착실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는 미래. 어쩌면 마음 맞는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집을 장만할 수도 있겠지. 어딘가에서 많이 본 그림이라 잘 그려졌다. 딱 한 부분만 빼고.
그 이상적인 배경 안에서 내가 어떤 표정일지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나는 행복할까. 그림 안에서 내 얼굴만 뻥하고 뚫려 있었다.
반대로 출판전야를 선택하면 지금보다 쪼달릴 수밖에 없다. 매달 나갈 돈을 걱정하며 매 끼니 가격을 신경쓰며 먹게 될 것이다.
불분명한 미래지만 그 안의 내 모습은 잘 그려졌다. 새로운 세상을 밝혀가며 즐거워하는 표정. 지금의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가 만족할지도 모르는 배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책 <집을 쫓는 모험>에 나온 말이 맞다고 믿으며.
'미래를 위해'라는 전제 자체가 틀린 것이었다.
오늘이 망가지면 도미노처럼 내일도 망가진다는 걸 몰랐다.
오늘을 망치는 것, 망치는 오늘이 쌓이는 것.
그것은 미래를 잃는 것이기도 했다.
또 내 나이에 차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5,000만 원 쓰는 게 그렇게 비정상적인 일인가. 그냥 외제차 한 대 뽑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차를 사면 삶의 반경이 넓어진다는데 출판전야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 줄 거라 믿었다. 온라인의 세계에 살던 내가 오프라인의 세계까지 지평을 넓히는 거니까.
그렇게 동전은 다시 뒤집혔고 설렘이 100%인 상태로 계약하는 날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