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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 Jul 29. 2018

속되게는 개판

엉망진창인 내 복잡함에 대하여


"이걸 끝내고 저걸 시작해야지. 그래야 시간이 얼추 맞을거야.

그런데 밥은 뭘 먹지, 냉장고에 묵혀 둔 만두를 해동할까.

그보다 오늘 미세먼지는 괜찮으려나, 뛰어야 하는데"



요근래 내 생각회로는 꼬일대로 꼬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 생각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자신한 적은 없지만,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데 순탄하기는 했으니 회로가 살아는 있는구나 짐작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1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는데에도 그 과정이 망가진 테옆마냥 Tik- Tik 소리를 내며 멈춘다. 심지어 약간씩 뒤로 가기도 한다. 뒤로, 다시 앞으로 가며 했던 생각을 또하고, 해결한 줄 알았던 고민을 또 꺼낸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하려했는지 잊어버린다. 이거 참 큰일이다.


뒤죽박죽 꼬여있다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지금 이 글을 쓰기 까지도 굉장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그 와중에 분명한 건 단 하나였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카페는 EDIYA로 간다' 그 외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시작해서 점심은 어떤 곳에서 해결 할지에 대해 40분 가량 작은 전쟁을 치뤘다. 결국은 카페 근처에 위치한 짬뽕집으로 갔고, 덥다는 이유만으로 생각 없이 시킨 냉짬뽕에 당하고 나서야 콜드브루 화이트 비엔나 커피(내가 꽤 좋아하는 메뉴다)를 집어 들 수 있었다. 커피는 달달하게 내 긴장을 녹였지만 엉켜있는 머릿 속 회로까진 풀지 못 했다. 생각이 풀리지 않으니 손 또한 굳어버렸고, 화면엔 타이핑 커서 만이 꿈뻑댈 뿐이 었다.


어떻게든 굳은 손을 풀어주고 싶어 머리를 굴리다, 이 복잡함을 그림으로 표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들이닥친 생각이었지만 꽤 강렬하게 인상을 남겼다. 때마침 떠오른 영어 단어, mess의 뜻도 지금에 딱 들어 맞았다. [엉망, 뒤죽박죽, 속되게는 개판]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그렸고, 채웠다. 한 가닥의 선을 그리고, 다음 선을 어디에 그릴지 고민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점차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재활치료를 하듯, 생각하는 법을 다시 정립해나가고 있었다. 생각회로가 간만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었을까. 무엇으로 부터 시작되었을까 고민했다. 해결되지 못한 고민들의 찌꺼기가 회로 저 밑에 남아있었나. 완성하지 못한 짧은 문장의 글자들에 대한 아쉬움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나. 텅 빈 느낌이 싫어 습관적으로 틀 던 가요의 멜로디가 감각을 옥죄고 있었나. 안개가 걷히자 앞이 보였다. 노래를 정지하고 에어팟을 뺐다. 고요해진 방 안에는 선풍기만이 돌아갔다. 적당한 모터음과 함께 선을 그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렇게 내 복잡함을 그림으로 옮겼다.


MESS / 이 삼 / ipadPro



다 완성하고 그림을 보니, 왜 그렸나 싶었다. 고친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고장난게 확실하다.






  .덧.
인스타그램도 합니다. @2ee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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