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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 Aug 14. 2018

내겐 너무 벅찬 글쓰기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을까



글을 쓰자며 호기롭게 카페에 앉는다. 그리곤 좌절한다.


작가들은 첫 문장이 글 쓰기의 가장 큰 고역이라 말한다. 그 이유는 첫 문장이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을 지녔고, 글의 전체적인 흐름까지도 좌우하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들의 고역이, 나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는 '첫 문장' 또한 하나의 문장이었다. 문장 하나는 자신있었다. 문, 장 '하나'는.


작년 부터인가, 아이폰 메모장에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문장들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매번 다른 주제의 짧은 문단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다시 곱씹어봐도 꽤 달콤한 문장들이었다. 이를 정리해서 한 편의 글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호기롭게도 브런치에 발을 들였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주제 없이, 구성 없이 떠오른 문장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글에 집어넣기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듯한 어려움이었다. 얼마큼의 용량이 필요한지도 고려하지 않고 코끼리부터 데려온 꼴이다. 낑낑대며 끼워넣어도 코가 삐죽 튀어나와 문이 닫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억지로 밀어 넣고 테이프로 문을 막아버린 냉장고만이 꾸역꾸역 브런치에 진열될 수 있었다. 아직도 닫히지 못한 냉장고들이 서랍 속에 있다. 심지어 메모장에는 완성되어지지 못한 채, 다음 문단을 기다리는 문장들이 즐비하다. 저 문장을 어쩌지 싶다가도, 냉장고에 코끼리를 우겨넣을 생각을 하니 그냥 두고 나만 봐야겠다 싶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


벅찼다. 좋은 문장은 있었지만, 좋은 글은 머릿 속에 없었다.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 글을 만드는 것이 나에겐 고역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창작의 고통인가 싶었다. 아무리 머리카락을 움켜쥐어도 떠오르질 않는다. 머리카락과 영감은 비례하지 않았다. 첫 문장은 내뱉으면 되지만, 글은 뱉으면 되지 않았다. 글은 숲을 보며 다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써야지 싶다가도 나를 스쳐간 문장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글 속으로 데려오면, 뒷 감당을 할 수 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며 두 손을 든다. 그제서야 글과 친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글과 친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네 문단 쯤을 읽다가 잡음이 섞여 무슨 내용인지 의아했던 적이 잦았다. 읽었던 글을 다시 읽고 또 되돌아가다, '아! 정신차리자' 하고 읽어 내려간다. 결국 진이 빠져 책을 덮는다. 꽤 자주 그러다보니 읽어지지 못한 베스트 셀러들이 책장엔 늘어났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책을 구매했고, 최근엔 대여 서비스도 신청했다. 여전히 책이 자연스럽진 않지만, 이전처럼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굳이 표현하면 데면데면한 사이랄까. 글쓰기에 당장 도움을 줄 만큼 친하진 못하는 그런 사이.


호기롭게 시작 했지만, 의도와는 달리 글이 삐죽빼죽 튀어나갔다. 이런 방향으로 써야지 싶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요상한 방향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미 되돌리긴 무리여서 급하게 방향을 수정했다. 원래 이런 글인 것 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지게 하느라 진을 뺐다. 그렇게 완성된 글이 '알고보면 따뜻한 약, 알보칠'​이다. 이 글을 쓰며 글쓰기 세계의 혹독함을 직면했다. 단어와 표현의 깊이가 얕았다. 단어를 쓰고, 문장을 만들어가며 괴로워했다. 절망해가며 어떻게든 완성시키려 글의 방향을 난도질했다. 머리가 아닌 손으로 글을 썼다. 그래도 참 고맙게도 채널에 글이 소개되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또 부끄러웠지만, 속 없게도 좋았다.


벅차지만 꾸준히 쓰려 한다. 하는 일이 없는 휴일에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나온다. 어디가? 하고 물으면 카페 간다고 답한다. 뭐하게? 하고 다시 물으면 글 써보려고 라며 멋쩍게 웃는다. 오늘도 카페에 앉았다. 허공을 응시하다보니 좋아 보이는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헤엄치며 떠다닌다. 가만히 두면 어디론가 흘려내려가 못 찾을것 같아서 쓰던 글을 멈추고 메모장을 펼친다.


이번 휴가동안 억지로 닫은 냉장고 하나와, 닫지 못한 냉장고 두 채를 마련했다. 코끼리도 세 마리나 분양받았다. 큰 일 났다며 혀를 끌끌 차도, 어쩔 수 없다. 글쓰기는 생산성이 높은 작업이 아니었다. 나는 글로는 먹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없다. 그래도 써보려 하는 것은, 좋은 문장에 대한 호기심이오 없어진 줄 알았던 도전 정신이랴. 그런 내가 기특해서 오늘도 벅차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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