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주무세요
누구네 아이는 여름 해 떠 있는 시간에도 자준다는데 우리 애는 왜 이럴까. 함부로 거실 불을 끄는 것도, 엄마가 잠시 등을 누이는 것도 허락지 않는다. 원망스러움이 스믈스믈 올라올 즈음, 합리화모드에 들어간다. “대신 그 애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겠지.”, “내가 우리 아이랑 너무 재밌게 놀아주나보다!”
밤 11시. 드디어 육퇴. 모로 누워 아이의 힘없이 벌어진 주먹을 조물딱 거리면 나도 따라 금세 잠든다. 나중에 따로 자더라도 이 통통한 손은 베개 맡에 가져다 놓고 싶네. 잘자 아가야.
열 살 무렵 가장 무서웠던 걸 꼽으라면 ‘그것이 알고싶다’의 시그널 음악이다. 그 멜로디만 들으면 온갖 살인마들이 우리집 베란다를 넘어 쳐들어올 것만 같았다. 자려고 애쓰다 도무지 안 되겠을 땐 인형을 들고 안방에 갔다. 자던 엄마가 날 보고 매번 화들짝 놀래서 미안하긴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 곁이 아니면 잠들 수 없었다.
얼마 전 아이를 재워놓고 나서 샤워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데 문을 열자마자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아이가 눈도 못 뜨고 나를 찾으러 나오고 있었다. 아이를 다시 눕혀 천천히 토닥이며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진짜 놀랬겠구나.
새벽 1시, 새벽 3시 또는 새벽 5시. 마침내 내 아이를 깨워 울리고 마는 몹쓸 그것은 무엇일까. 악몽? 이앓이? 아직 미성숙한 수면리듬? 성장통? 등을 열나게 두드리고 괜찮다 해주어도 소용없을 땐 그냥 그렇게 울도록 내버려 둔다. 울음도 진정의 한 수단이며 곧 그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편이다. 새벽에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정말 미치겠나 보다. 마음 아픈 것도 이해하겠고, 이웃에 피해 주기 싫은 것도 알겠지만 방도가 없는 걸 어쩌라고. 정말 오십 번은 넘게 설명했고 싸우고 속상해 울기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늘 오밤중 오열파티가 시작되면 팬티 바람으로 서서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한다.
“그냥 만화 보여 주면 안 돼?”
아무리 대화해도 상황에 닥치면 항상 원점에 돌아가 있는 남편이 이제는 재밌기까지 하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지혜를 한 토막 얻는다. 상대를 위해 노력하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인정해 주자.
나의 잠버릇은 바지 속에 손을 넣어 내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는 거였다. 하지만 제왕절개 후에는 그 버릇이 사라졌다. 흉터를 보기 싫어서인지 거울 앞에 벗은 몸을 훑어보는 일도 하지 않게 됐다. 출산 후에 살만 찐 게 아니라 몸에 대한 애정도 사라진 듯 하다.
아들은 요즘 내 몸에 관심이 많다. 목 뒤에 난 큰 점을 잡아떼려고도 하고, 배꼽에 검지를 넣어 쑤셔보기도 하고, 엄마 찌찌가 신기한지 옷을 당겨 속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눈썰미도 좋아 어딘가에 상처가 나거나 뾰루지가 생기면 로션을 손에 묻혀와 약 바르라며 걱정도 해준다. (아빠가 샤워할 때나 소변볼 때도 아빠 몸과 ‘그곳’이 궁금한지 문을 확확 열곤 한다.)
아들은 내 얼굴과 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곧 ‘예쁘다’는 말도 하게 될 텐데 그 소리 한 번쯤은 들을 수 있으려나?
키보드 치느라 차진 손으로 내 배를 만져보니 참 말랑하고 따뜻하다. 언젠가 아이에게 이 영광의 흉터를 소개하는 날이 왔을 때 뱃살이 조금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운동복을 어디에 뒀더라...
임산부 때 해야 할 일 중엔 ‘많이 자두기’가 늘 있었다. ‘아니, 죽으면 평생 잘 잠을 왜 자래?’ 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엄마가 된다는 게 늦잠과 작별을 고하는 일일 줄이야.
내 인생에서 잠 욕심이 제일 많았던 때는 고등학생 시절이다. 0교시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맨 앞줄에서 엎드려 잤고, 나중엔 선생님들도 깨우길 포기했었다. 자취생이자 직장인이던 시절엔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아도 잠결에 끄고 다시 잤다. 그렇게 5분만 자려다 10분, 20분을 더 잤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출근길 택시비로 쓴 돈을 모으면 아이 전집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늦잠 없는 삶에 몸도 적응해 가는 건지,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7시에도 벌떡 일어날 수 있고, 일단 깨면 다시 자려고 해도 잘 되질 않는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사실 아침이 빨라지는 건 아쉽지 않다. 밤을 더 누리지 못하는 게 훨씬 서글프다. 구글포토에서 찾아준 7년 전 사진 속 나는 강남 밤거리에 서 있다. 강남, 홍대, 성수, 건대, 이태원 밤거리의 여성 동지들아. 부디 이 아줌마 몫까지 날이 밝도록 누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