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부모가 돼봐야 부모 속을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부모가 되고나니 부모를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한 번은 설거지를 하다 어린 시절이 떠올라 울었다. 서러움은 양파와 닮았는지 배를 가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 자식이 너무 예쁘기만 한데 우리 엄마아빤 나한테 왜 그리도 인색했을까.’
기억은 곧잘 미화된다는데 ‘잘 하고 있다’ 혹은 ‘괜찮다’고 등을 토닥이던 눈빛같은 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중학교 첫 시험인 반배치고사에서 전교 11등을 했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엄마아빠는 너무나 비장했다. 차 뒷좌석에서 바라본 둘의 모습은 전시의 장수들 같았다. 군사지도처럼 성적표를 바라보며 작전회의를 이어갈 뿐이었다. 이제는 성적이 유지되거나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사실에 아찔했다.
엄마는 종종 당신과 나를 하나의 자아처럼 여겼다. 당신의 삶에서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들을 내가 모두 거둬들여 과거를 보상받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 열매들의 목록은 이랬다.
항상 날씬할 것
부지런하고 깔끔할 것
교사 내지는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 것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서울에 집 한 채 정도는 사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
남자와 교제할 때는 혼전순결을 지킬 것
애석하게도 나는 단 하나의 열매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한 번은 엄마가 서울의 내 자취방에 올라와 거의 반쯤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남자친구의 메모지를 미처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그저 반찬을 잘 먹으라는 거였는데 엄마는 네 방에 남자가 드나드는 거냐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아빠는 스카이캐슬 ‘파국’의 서민 버전이다. 공부만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이며, 과정이 어쨌든 결과가 좋다면 훗날 아빠에게 무척 고마워할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가장 싫었던 건 일용직 노동자들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다. (예상하는 그 문장이 맞다.) 아빠 역시 딸이 교사가 되길 원했지만 나는 교사가 되지 못했다. 더는 임용고사를 보기 싫어 도망치듯 서울에 올라와 취업을 했고 짐을 옮겨 주러 올라온 아빠는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저 멀리 사라졌다.
“지금 어리석은 결정을 한 거야, 넌 나중에 아빠 말 안 들은 걸 후회할 거야.”
그날은 ‘혼자’라는 감각을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설거지 청승 며칠 후, 엄마를 만났다. 반쯤은 투정을 섞어 물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말만 해주고 싶은데 엄만 그때 그 어린 것에게 왜 그리도 인색했냐고.
“미안해. 그때 정말 왜 그랬을까. 아휴. 진짜 너네들한테 미안하다.”
질문할 것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답이 툭 튀어 나왔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그랬겠지. 나까지 고생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겠지. 때론 표현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겠지. 엄마도 못 받아봤으니까.’
부모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나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모의 집에 내려가 일주일 정도씩 ‘개기다’ 온다. '프로개기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자고 싶을 때 잔다. 문을 굳게 닫고 잔다. (평소 우리 집에선 안방 문을 활짝 열고 아이가 울면 바로 달려 나갈 태세를 갖추고 자야 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는다. 엄마한테 물어보면 아이는 이미 밥도 먹고 응가 기저귀도 교체한 후다.
아침과 점심 사이,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나는 그 사이 밀린 일을 하거나 엄마와 커피를 마신다.
정오가 지나면 엄마가 아이 낮잠을 재워준다.
아이가 깨면 함께 교외에 나가 아이와 한바탕 놀아주고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다.
아빠가 아이의 목욕을 시켜준다.
엄마가 아이를 재워준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님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일흔에 가까워가는 엄마아빠를 보며 그들이 없는 삶을 점점 더 자주 상상하곤 한다. 그 상상 속의 나는 슬픔을 넘어 스산함마저 느낀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이해’라는 태양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영원히 빙빙 돌지만
'사랑'이라는 공전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
내 자식을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아껴주는 내 부모를 보며 부모가 바라는 것들을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엄마아빠도 나를 더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덜어가는 중이길. 그리고 가능한 오래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