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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잔 Oct 28. 2022

출산 전 날씬함, 그거 꼭 되찾아야 하나요?

나 예전에 정말 예뻤는데...

코로나 거리두기로 모이지 못했던 친가 사촌들이 경기도 한 펜션에 모였다. 짐을 풀고 둘러앉아 초밥을 나눠 먹는데 사촌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옥잔이, 안 본 새 몸이 많이 웅장해졌네?”     

이 사람들은 임신 전 모습을 기억할 테니 놀랄 만도 하다.


내 결혼 전 몸무게는 65kg 전후를 왔다 갔다 했다. 여자치고 적은 편은 아니지만 키가 170cm를 조금 넘는 데다, 상체는 마른 편이라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았다. 마음먹고 살 빼면 60kg 초반까지 내려갔었는데 그러면 이목구비가 확 드러나고 얼굴도 갸름해서 예쁘다 할 만하기도 했다. 결혼식과 신혼여행 때 사진을 보면 그렇다.
 

임신과 출산은 외모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 아기가 두 돌이 넘었지만 아직 70kg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으며, 안 그래도 통통했던 허벅지들끼리 더 친해져서 77도 겨우 맞는 수준이다. 자부심이었던 목선은 두꺼워지며 턱과 하나가 되었고, 쏙 들어갔던 허리엔 전혀 러블리하지 않은 러브핸들이 자리 잡았다.     

  

친척 언니의 한 마디는 너털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그건 몸 풀기에 불과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본 게임 시작됐다. 다이어트 업계에서 일하는 새언니가 첫 사격을 시작했다.

“아가씨 골반이 많이 틀어지셨네요. 오른쪽 엉덩이 쪽에 통증 있지 않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친정엄마가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얘 예뻤는데 애기 낳고 다 망가졌어. 젊은 애가 이게 뭐니. 정말 너무 속상해.”

대화 주제가 내 몸인데 정작 그 몸의 주인이 크게 동요하지 않자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60대 엄마와 40대 언니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나는 당장 맥주잔을 내려놓고 나가 동네 한 바퀴라도 뛰어야 할 판이었다.      


며칠 후 새 언니 업장에 방문하게 됐다. 체형교정 옷을 입고 지내면 저절로 날씬해질 테니 한 번 체험이나 해보라는 거였다. 몸을 지지하고 조여 주는 슈트를 입으니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입고만 있어도 바른 자세를 만들어 준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거북목과 디스크에 도움 될까 싶어서였다. 덜덜거리는 기계 위에 누워 있는 내게 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씨 결혼 전 예뻤던 그 모습을 제가 기억하기 때문에 정말 도와드리고 싶어요. 신랑(사촌오빠)도 저더러 책임지고 되돌려 놓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계속 반복되니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이 그렇게 못 봐줄 정도냐’며 진담 99% 섞인 농담이 나왔다.  

    

다음날 나는 새언니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 옷은 렌탈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 돈으로 필라테스를 몇 회 더 끊는 편이 장기적으로 좋을 것 같았다. 언니도 너무 부담을 준 것 같다며 멋쩍게 물러났다. 그러나 통화 끝에 생각지 못한 한 마디에 코 끝이 조금 시큰해졌다.     


“괜히 이런저런 얘기들로 마음 심란하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가씨 엄청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예전보다 훨씬 더요.”


자주 잊고 지내는 사실은 내가 지금 행복의 정점에 올라앉아 있다는 거다. 구름도 먼발치인 꼭대기에서 비 맞을 걱정을 할리 없다. 날 닮은 건강하고 귀여운 아이와 함께 눈 뜨고, 마음껏 껴안고, 바보처럼 춤추고, 잠든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매 순간 마음이 꽉 찬다. 주변의 '얼평'과 '몸평' 맹공격에도 마음이 흠집 나지 않는 이유다.


어젯밤엔 로켓배송으로 디톡스에 좋다는 레몬을 주문했다. 반 자른 레몬에 포크를 넣어 과육을 짜니 따뜻한 물속으로 레몬즙이 후두둑 떨어진다. 몸에 수분이 부족해 노폐물이 쌓였다고 하니 이제 레몬 물을 수시로 마셔봐야겠다. 그동안 물을 너무 안 마시긴 했다. 이렇게 쉬운 일부터 하나하나 꾸준히 하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제껏 그래 왔듯,

유효기간 얼마 안 남은 3년 효도 이용권을 알차게 누리는 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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