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보다 랜선이모?
당신은 오프라인 모임 기반이 없는 순수한 온라인 카페 커뮤니티에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임산부가 되며 본격 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 출석하고, 댓글은 물론, 게시글도 심심치 않게 올렸다. 육아라는 태백산맥이 너머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때는 임신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참 신비롭고 어려웠다.
*그 카페의 이름은 '맘스홀릭 베이비'다. 가입자 수가 316만 명인데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인구가 1,142만 명이니 최소 셋에 하나는 회원인 셈이다. 작금의 출산율을 고려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다.
‘임신 0~7주차 수다방’, ‘임신 8~11주차 수다방’...‘임신 40주차~ 수다방’까지.
그 맘카페에는 임산부를 위한 메인 게시판이 열 개나 있다. 임신 주 수가 지남에 따라 다른 게시판으로 옮기게 되어 있어서 레벨업 하는 기분마저 든다. 남편도, 친정엄마도 “어머! 오늘부로 임신 16차에 들어섰네! 축하해!”라 해주지 않는데 이 맘카페 안에서는 인정욕구가 말끔히 해소됐다.
거의 비슷한 임신주수의 사람들이기에 유대감이 높아 평범한 글에도 조회 수가 꽤 나온다. 무플도 거의 없다. 검색기능 덕분에 미래의 임신 30주 차 임산부가 과거의 임신 30주 임산부에게 도움을 받아 가기도 한다. 코로나19로 대면 만남이 어려웠던 시기에 이 카페가 없었다면 그 답답함과 막막함을 다 어찌했을지.
인스타그램에서 임신 관련 태그들을 따라가면 이런 사진들이 쏟아진다.
배를 살포시 받치고 찍은 일명 ‘주수사진’, 꼬물거리는 아기가 담긴 초음파사진, 태교용으로 만든 귀여운 신발, 아기 이름이 새겨진 베냇저고리, 엄마 배에 대고 태담하는 다정한 예비 아빠의 모습, 친구들과 함께한 베이비샤워 사진, 태교여행 사진…
반면, 맘카페의 주요 주제들은 사진으로 담기 뭣하다.
하혈, 분비물, 입덧, 토, 당뇨, 기형아, 불면증, 우울증, 섹스, 튼살, 요실금, 치질, 젖몸살, 왁싱, 남편욕, 시댁 욕, 친구 욕, 직장상사 욕….
‘수다방’이라는 정다운 간판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다소 어둡고 매우 은밀한 텍스트들이 거래되고 있는 거다. 맘스타그램이 임출육의 기쁨, 설렘, 행복이라면 맘카페는 걱정과 불안, 슬픔을 품어준다.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투명 플라스틱함이 새로 생겼다. 집에서부터 미처 분리하지 못해 뒤섞인 플라스틱들을 가지고 나가는 남편에게 분리수거장에서 구분해 버리라고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남편의 대답은 자신이 없다. 그냥 분리수거도 내가 할까 싶다가 이내 참는다.
나는 쓰레기만큼이나 감정 분리 능력도 탁월한가 보다. 남편이 내가 만든 콩나물국을 한 숟갈 맛보더니, 실수 반 자의 반으로 개수대에 버린 만행이 벌어진 그날! 직감했다. 이 폭발하는 분노를 데리고 맘카페로 가야 한다는 걸. 그 글에는 한 시간이 안돼 댓글이 스무 개 넘게 달렸다. 대부분이 ‘앞으로 남편한테 밥해주지 마세요’였는데 장원감은 따로 있었다.
‘와... 이런놈도 결혼을 했네...’
이렇게 통쾌할 수가.
며칠 후 인스타 친구가 스토리에 독박육아 중에 남편 흉을 스토리에 올렸다. 평상시에 올리는 글에는 좋아요를 잘 누르는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아이 아빠의 얼굴과 목소리, 이름까지 알고 있기에 어쩐지 찜찜했다. 맘카페에 올렸다면 맛깔나게 욕해줬을 텐데.
나는 지난 3년간 랜선 육아동지(구 임신동지)들에게 많이 의지했다. 맘카페의 그녀들에게선 터치 몇 번이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육아에 대해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문득 깨달았다. 남편에게는 육아에 대한 그 어떤 조언도 얻으려 하지 않았다는 걸.
내가 사진 중독자라는 건 가족들은 잘 알고 있다. 한 번은 친정엄마가 애 영혼이 빠져나가겠다며 사진을 그만 찍으라고 했을 정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예쁜 모습들을 부지런히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실은 내 삶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도 자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한 청년이 아기 때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부모를 상대로 3억 원짜리 소송했다는데, 이런 뉴스를 볼 때도 양심에 찔린다.
오늘 산책로에서 유모차를 열심히 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말을 건네 왔다.
“아이고~ 집에서는 추웠는데 나와서 걸으니 왜 이렇게 덥대요?”
운동복 차림의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미소가 온화했고, 발걸음이 가뿐했다. 나는 당황한 미소로 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대꾸할걸.
“그러니까요. 그런데 오후 3시쯤엔 또다시 비가 온다네요? 요즘 날씨 참 요상하죠?”
이 정도가 좋았겠다.
맘카페와 인스타를 들여다보느라 놓친 인연들도 떠오른다. 산부인과 정기검진 갈 때마다 대기실에 앉아 서로의 배를 흘끔흘끔 보던 산모들, 산후조리원 수유실에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젖을 물리던 조리원 동기들... 그때 그녀들과 나눌 수 있었던 기쁨과 슬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등원길에 자주 만나는 같은 동 엄마가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라 오피스룩과 힐이 참 잘 어울리고, 아이들은 늘 제멋대로인데 큰 소리 한 번을 안 내며 꼿꼿이 걷는다. 언젠가 그녀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