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잔 Sep 30. 2022

나의 생일 기프티콘 해방일지

잠깐만 친구 없이 살아볼게요

열흘 후면 남편 생일이다. 생일날 뭘 할지에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너스레를 떠는 남편.

“OO이 형이 또 케이크 보내주겠네.”


남편은 생일날 기프티콘을 참 많이 받는다. 카톡 알림이 뜰 때마다 “아이 뭘 또 이런 걸 보내 이 형은. 미안하게.”라며 실황을 중계해 주는데 매년 보는 그 모습이 이젠 귀엽다. 당신이라도 친구가 많아 다행이야.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올해 생일에는 처음으로 아무에게도 카톡이 오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친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하는 생일이라니. 냉장고에서 막 꺼낸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은 느낌이었다. 예상해도 막을 수 없었던 그 철렁함이란. (뒤늦게 몇몇에게 연락이 오긴 했다고 구질구질하게 적어본다.)     


내게도 서로의 생일날마다 잊지 않고 선물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스타벅스, 파리바게트 기프티콘 대신 물건을 골랐다. 그리고 생일 2~3일 전에 미리 보냈다. 그러면 생일에 맞춰 선물을 받아볼 수 있고,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친구가 나중에 선물을 잘 쓰고 있다는 인스타그램 인증 글까지 올려주면 완벽했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상대 생일을 한두 번 건너뛰면 그 의식은 중단됐다. 때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카카오톡이 이렇게 친절하게 내 생일을 광고해 주는데 모를 리 없잖아?’ 그러다 작년에 한 가지 기능을 알게 됐다. 프로필 설정에서 내 생일 소식을 숨기는 것은 물론, 친구들 생일 소식도 안 볼 수 있단다. 망설임 없이 ‘생일 알림’ 버튼을 비활성화했다. 이게 내 삶에서 생일 기프티콘이 사라진 연유다. (이 기능과 함께 내 프로필을 특정인에게만 노출할 수 있는 '멀티프로필' 기능도 좋아한다.)      


그래도 회사생활할 때는 동료들이 케이크를 사 와 노래도 불러주고 초도 꺼줬다. 그런데 퇴사하며 그마저도 사라졌다. 사회생활 30년을 마치고, 드디어 내 인생에도 자발적 외톨이 시대가 온 건가. 내향인인 나는 이런 변화가 서운하지만은 않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메뉴를 피해 점심을 고를 필요도 없고, 침묵 속에 먼저 나서 싱거움을 떨지 않아도 되고, 잘 꾸민 사람들 앞에서 공연히 초라함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 인간관계에 쓰던 더듬이를 접어둔 채 살다 보니 에너지가 축적된다. 그 힘으로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소설가 김영하의 말처럼 사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에서 인간관계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쓴 때를 떠올려보면 그건 청첩장을 돌릴 때였다. 여럿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주로 한두 명과 가까이 지내서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는 거의 매일 저녁 만남을 가졌다. 예비신부라 많이 먹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빈속에 술을 삼키는 날도 있었다. 길에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결혼식은 하필 장마철이었고, 가장 이른 아침 11시 예식이었다. 비 예보를 접한 후에는 하객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신부 입장 시간은 다가오는데 눈썹이 맹구처럼 그려져 있는 꿈, 이상한 흰색 레깅스를 입고 입장하는 꿈.. 희한한 악몽도 많이 꿨다.      


일기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야속한 폭우를 뚫고 친구, 동료들이 하나 둘 와주었다. 지방에 사는 한 친구는 늦을까 봐 전날 미리 와서 호텔에 묵었다고 했고, 운전이 미숙했던 친구는 혼자 어린 아들을 태우고 용감하게 달려와 줬다. 연락을 못했는데 서프라이즈로 와준 친구도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축하 연락으로 대신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이 내겐 열 명, 백 명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결혼식 사진을 보니 신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남편 측 하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눈대중으로도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사진기사가 남편의 친구들을 신부 쪽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 사진이 됐을 거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남편의 반의반도 안 되는 하객이라고?

남편은 성공한 인생이고 난 실패한 인생인 걸까?          




남편이 친구가 많은 이유는 살다 보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일단 그에겐 ‘베스트 프렌드’가 없다. 학급, 학과, 아르바이트, 군대... 속한 곳이 어디든 전체의 분위기를 띄우고,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었다. 바로 생각나면 거는 전화 한 통이었다. 주로 이런 식이다.


길을 가다가 그 친구 이름이 간판에 붙어 있으면 전화를 건다.

“어~ 진수! 여기 길 가는데 진수분식이 있어서 전화해봤어. 잘 지내고 있지? 그래 고생한다. 끊어.”

얼마 전, 남편에게 에버랜드에 가자고 하니 또 휴대폰을 든다.

“어이~ 종식! 너 얼마 전에 에버랜드 다녀온 것 같더라? 거기 어떻게 가야 싸게 갈 수 있어?”


나라면? 길에서 현희분식을 봐도 SNS에서 현희를 한 번 찾아볼 뿐 연락하진 않는다. 며칠 전 시은이가 에버랜드에 다녀왔다고 해도 블로그나 맘카페에서 정보를 찾지 시은이에게 연락하진 않는다. 갑자기 연락하면 당황할 거고,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못하면 미안해할 거고, 끝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 지도 고민되고 등등......         




나는 더 이상 그녀들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먼저 연락해야 한다는, 주기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았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종종 차를 마시지만 그녀들과도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를 유지한다. “아 오늘 육아 진짜 헬이었다. OO치킨으로 나와.”하면 두꺼운 500cc 생맥주 잔을 함께 들어주고, 필 받으면 코인노래방까지 가주는 절친을 꿈꾸지만 현실엔 없어도 괜찮다.


서로가 전부였던 그 시절, 그녀들이 보내주었던 따스한 눈빛을, 작고 동그란 어깨를, 신난 발걸음과 허튼 농담들을 내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