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며 깨달은 '돈의 맛'
“이모님, 저 이제는 제가 집안일을 직접 해보려고요. 사정이 그렇게 됐어요.“
내 딴에는 몇 주를 망설이다 타이밍을 봐가며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이모님은 예상했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그러냐고 하신다. '그동안 이런 일을 숱하게 겪으셨던 거구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갑작스럽게 일거리가 늘어난 탓에 쩔쩔매다 선택한 묘안이었다. 그런데 세 달 정도 하다 보니 머리와 몸이 적응을 했다. 이모님 드리는 돈도 1년이면 300만 원에 가까운 큰돈이니 이제부터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배려를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2주 미리 말씀드렸고, 작은 선물로 뭐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나오시라고 말씀드린 바로 다음 날 이모님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일이생겨서다음주부터 못갈거같아요~ 그도안고마웠어요~”
그 문자를 받자 안도감이 먼저 들었고, 곧바로 막막함이 밀려왔다. 다행스러움은 2회치 일당을 아꼈다’는 생각이었고, 암담함은 ‘이제 앞으로 깨끗하게 살기는 힘들겠다’는 뒤늦은 아쉬움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나의 안위와 이익만 생각한다.
이모님이 오시고, 안 그래도 싫었던 집안일에 대해 더 높은 마음의 벽을 쌓게 됐다. 내가 그동안 했던 청소는 청소가 아니었다. “집도 가꿔야 해요.” 이모님이 오신 첫날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얼핏 보면 깔끔하다 싶은 우리 집도 살림꾼 눈에는 꼬질함 그 자체였던 거다.
청소를 한 번 각 잡고 제대로 하면, 일주일 정도는 그냥 살아도 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모님이 다녀가신 금요일은 외출했다 돌아오면 집 안에 낯선 반짝임이 감돌았다. 내 기분도 가족들의 얼굴도 금요일 밤이면 유난히 예뻤다.
그동안은 “왜 나도 남편처럼 돈을 버는데, 육아도 가사도 모두 내가 전담하는 꼴이 되어 버린 거지.”라는 생각이 자주 솟구쳐 남편에게 꼬락서니도 많이 부렸다. 이모님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퇴근하실 때면 내 억울함과 분노도 현관문 밖으로 함께 들려 나갔다.
6만 원으로 내가 만들 수 없는 청결함이 생기고, 내 시간이 생기고,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우리 집 아이는 내년이면 유치원에 입학해야 한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영어유치원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영상을 보다 1,000개가 넘는 댓글들도 하나하나 보게 되었고, 그중 몇 줄을 보고 마음 한 구석이 뻐근해졌다.
“네. 영어유치원 돈 없어서 못 보내는 분들의 궤변 잘 들어보았습니다.”,
“솔직히 같은 값이면 다 영어유치원 보낼 거면서.”
월 150을 웃도는 큰돈을 매 달 지출하지 않을 이유를 찾다가 전혀 엉뚱한 데서 뼈를 맞은 것이다.
서울시는 올 가을부터 외국인 여성들에게 정식 가사도우미 취업비자를 준다고 한다. 비용은 월 2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수준. 기사를 보는 순간,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 버렸다.
나는 단아하고 차분해 보이는 20대 중반의 필리핀 내니를 채용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방 한 칸을 내주었고. 그녀는 청소부터 빨래까지 모든 가사 일을 모두 도맡아 해주고 있다. 아이 식사와 목욕, 등하원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돕는다.
아이는 내니를 ’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그녀 덕분에 아이가 어설픈 영어 발음이나마 두 단어를 붙여 말하는 것도 종종 듣는다.
오늘 밤에는 내니에게 아이 곁을 지켜달라고 하고, 얼마 전 개봉한 범죄도시 3편을 심야영화로 보고 올 예정이다.
돈이 이렇게 황홀한 것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다른 세상에 들어오니, ‘명징하게’ 깨닫는 중이다. 내가 모르는 좋은 세상이 또 어디엔가 얼마나 많을지. 아직은 알고 싶지 않다.
“2020년 유아용품 시장 규모는 4조 원을 넘어섰다. 2015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초저출산’ 시대라는 점을 비춰볼 때 이례적인 수치다.”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이 약 26조 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에 비해 10.8%이 증가한 수치다. “
“2022년 맞벌이 가구는 584만 6000 가구로 1년 전보다 2만 가구 증가했다. 맞벌이 가구 관련 통계가 현 기준으로 개편된 2015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런 기사 한 줄은 잔혹한 아동 관련 사고 뉴스보다 더 잊힐 줄을 모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요즘 부모들은 대부분 '그 좋은 돈'을 자녀에게 아끼지 않고 쏟아 붓고 있다는 거다. 모자란 예산을 채우기 위해 엄마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경제활동에 뛰어든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이런 물결에 잘 편승해 나아가고 있는가. 목표로 잡아야 할 현실적인 지점은 어디쯤일까.
돈이 너무 좋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차마 돈을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