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휘낭시에와 필터 커피, 성신여대 카페 모블러 mobler
하루커피한잔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카페 방문 일기>에 가깝다. 우리는 일을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친구나 연인과 함께 할 때도 커피를 마신다. 일상적인 상징으로 자리한 ‘커피’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모든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대학 시절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 시절이라고 해봤자 불과 1년 전 이야기다. 학교와 가까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으면 좋겠지만, 너무 떠들썩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두고 자취방을 알아보던 중 동선동이라는 동네에 이르게 되었다. 성신여대가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대학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가 있으면서 동시에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동네 골목길의 가로수는 모두 벚나무라는 중개사의 말을 들으며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다가올 봄을 기대하며 동선동 한 원룸에 자리를 틀었다.
어느 곳에 가던 카페를 찾아다닌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카페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의 지리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제서 그 동네의 숨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동선동에 일 년 남짓 머무르며 좋았던 것은 근방에 산책하기 좋은 성북천이 있다는 점이다. 주말 점심으로 돈암 시장에 들러 순댓국 한 그릇을 하고, 성북천을 따라 걷는 코스를 제일 좋아했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썩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많은 카페가 있었지만, 웬일인지 마음을 둘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중 취업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이사를 준비할 때쯤 자취방 앞 건물에 범상치 않은 외관의 공간을 생긴 걸 발견했다. 이런 곳이 있었었나, 언제 이런 게 생겼을까, 이런 구석 골목길에, 어떤 곳일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더운 7월 여름의 쨍한 햇빛 덕분이었을까, 동네 단골 카페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솟아나는 두근거림을 안고 가오픈 중인 카페를 찾았다.
이 곳의 이름은 모블러 mobler, 공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다. 카페가 생기기 전엔 어떤 곳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생각나지 않았다. 첫인사를 건네며 살짝 여쭤보니, 원래는 냉동고 수리소로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길을 걸을 때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특히 이곳은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었음에도 한 번을 본 기억이 없다. 눈에 띄지 않던 공간을 다듬고 매만져 새롭게 탈바꿈시킨 이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단출한 구성의 메뉴가 눈에 띄었다. 필터 커피와 아메리카노, 라떼와 티 베리에이션 음료, 그리고 휘낭시에가 전부다.
매장 안은 기분 좋은 버터 향기가 가득했다. 이제 막 구워져 나온 빵이 모락모락 김을 냈다. 이 곳의 대표 메뉴인 휘낭시에와 아이스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좋은 품질의 버터와 계란을 사용해 직접 구워내는 빵은 기본에 충실하되 묵직한 맛이 느껴질 수 있도록, 커피는 보다 가볍게 곁들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그간 구움 과자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터라, 별 기대 없이 베어 문 휘낭시에의 맛은 근사했다. 장식 없는 담백한 빵이었지만, 잊고 지내다가도 간간히 기억이 나는 특별함이 깃든 맛이다.
밝은 톤의 커피 또한 훌륭했다. 직접 로스팅을 하지 않고, 휘낭시에와 조화가 좋은 원두를 게스트 빈으로 선정해 선보이고 있었다. 추가로 주문한 티 베르가못 Tea Bergamot이라는 티 베리에이션 메뉴도 인상적이었다. 블루베리 루이보스 티와 직접 만든 베리 시럽을 접목시킨 음료로 깨끗한 단맛이 매력적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은은하게 만들어주는 청량함이었다.
사장님은 '집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휘낭시에와 필터 커피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집중하며 발전시키고 싶은 메뉴라고 한다. 많은 것에 힘을 분산하지 않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천천히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모블러의 사장님은 오랜 시간 커피를 다뤘다. 홍대 부근에서 카페 겸 복합 문화공간인 고래상점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다양한 업무를 접했다. 커피를 볶는 로스터로, 문화 활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브랜드 디렉터로 일했다. 사람들이 마실 커피를 만들고, 사람들이 즐길 이벤트를 기획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공간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시내 중심가보다는, 아직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골목의 공간을 찾아 나섰다. 평소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는 사장님이 지금의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이 동네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유와 비슷했다. 시끌벅적한 대학가에서 한 블록만 들어오면 펼쳐지는 조용한 주택가의 모습과, 미아리 고개길 '미인도'에 조성되고 있는 젊은 예술가 마을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각자의 의미를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느낌이 들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고 했다.
1년 전 가오픈 방문 이후 다시 이 곳을 찾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에 걸려 있는 공간이다. 진지한 눈빛으로 반죽을 빚고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남아 있다. 지금의 모블러는 어떻게 변했을지, 날씨가 지금보다 더워지면 다시 한번 찾아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