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가 가장 어렵다

추억을 버리는 일

by 하늘빛

이 정도면 집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는 옷장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며 꾸역꾸역 사 모은다. 그러면 안 입거나 못 입는 옷은 처분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작아서 입고 나갈 수 없는데 내보내려고 하다 다시 품었다. 처분하려고 회색 지대에 내놓은 옷들을 다시 슬며시 들고 와 수선하면 멋스럽지 않을까 싶어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들어본다. 꺼내놨던 옷을 다시 옷장에 걸면서 옷장이 빽빽한 건 옷걸이가 자리를 차지해서 그렇다며 얇은 옷걸이로 바꿔 건다.


어느 날은 남편 옷장에 정리할 게 없을까 들춰보다가 발견한 초록색 풀오버 니트. 한 번도 입은 모습을 본 적 없는 옷이라 물었다. "이거 안 입는 옷이면 내보낼까?" 내 손에 들린 초록색 니트에 시선을 옮기던 남편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엄마가 손으로 짜 준 옷이라..." 그때였다. 옷장 정리가 어려운 이유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와닿은 건. 옷 하나하나에 내 과거의 기억이 담겨 있어서 그 시절의 냄새가 나고 추억의 촉감이 느껴졌다. 임신하고 배부를 때 입던 옷을 몇 년 후에야 처분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작아서 입지 못하는 니트인데,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 남친이었던 남편이 생일 선물로 보내줬던 따스한 기억 때문에 옷장에 그대로 남겨놨던 것도. 물론 살이 빠지면 다시 입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도 조금은 있다. 옷장 정리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옷이 너무 멀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옷이 멀쩡하다는 것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잘 입었던 옷은 낡아서 더 입을 수 없기에 오히려 버리기가 쉬운데, 잘 입지 않았던 옷은 오히려 멀쩡해서 옷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상태로 계속 자리만 차지하다 보니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는 것이다.


추억이 담긴 옷도, 멀쩡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 옷도 처분할 유인이 필요하던 참에 중고 옷을 위탁 판매해 주는 '차란'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발견했다. 현대백화점이나 롯데백화점에서도 중고 옷을 매입하고 포인트로 보상해 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옷장을 비워서 값비싼 공간을 확보하고, 소액이지만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니 솔깃했다. 그제야 옷장을 둘러보며 손이 잘 가지 않는 옷을 꺼냈다. 정리 전문가들이나 정리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은 2년인가 3년 정도 입지 않는 옷은 과감히 처분한다고 했다. 일단 손이 잘 가지 않는 옷을 옷장에서 꺼냈다. 옷을 일단 빼고 나니 옷장이 여유로워져 옷을 넣고 빼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처분하든 말든 짐에 치여 살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시간과 돈의 여유 말고도 공간의 여유를 느껴보니 생각보다 훨씬 달콤했다. 그렇게 꺼낸 옷을 거울 앞에 산처럼 쌓아두고 하나씩 입어봤다. 그때는 나에게 맞거나 어울렸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거울 앞에서 추억을 정리했다. 업체에서 보내온 커다란 비닐에 차곡차곡 옷을 담았다. 추억은 푸근한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기고, 짐은 비닐에 담아 멀리 보냈다.


그렇게 보내고 나도 사실 옷장이 빼곡했다. 한 번에 정리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옷걸이를 가느다란 것으로 바꿨다. 세탁소 옷걸이는 가느다랗기는 하지만 어깨에 뿔을 만드니 조금만 남기고 처분했다. 대신 어깨가 곡선으로 떨어지고 미끄럼 방지 소재로 된 옷걸이를 준비했다. 옷장이 한결 더 여유로워졌다. 옷장이 여유로워지고 나니 수납의 원칙에 따라 정리하기가 수월했다. 수납의 원칙에 따라 정리하면서 옷장에 들어가지 않는 옷은 또 과감히 처분하기로 했다. 옷장 수납이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렇지만 또 마음먹으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이고 하고 나면 매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편부터는 옷장 수납 방법을 조금씩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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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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