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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Oct 02. 2023

튤립과 잡초를 어울리게 하라③나도 남자의 가슴이 그리워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연재③

3. 나도 남자의 따뜻한 가슴을 그리워하는 여자인걸요


  어린이는 TV 만화 영화를 보고 혼자도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엄마에게 막 떼를 쓴다. 그리고 엄마가 잘 다독거리기만 해도 떼는 멈춘다. 4형제 중 막내로 자란 남편이 그랬다. 남편은 어떤 모임에 가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사람과 지속적 관계는 맺지 못한다. 결혼식 사진에 남편 뒤에 서 있는 친구들은 거의 직장 동료이다.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답답하고 외롭다. 친정어머니는 이 남자가 순수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린이는 순수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른다. 오히려 상대에게 모성을 요구한다. 남편이 그랬다.


  나는 어떤가? 일찍 철들어 내가 나를 돌보며 살아왔다. 내 무의식은 남편이 자상한 아버지가 돼주었으면 했다. 홀로서기 전문가인 나는 일찍 남편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남편은 나에게 엄마로서 역할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남편은 나에게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어린이가 됐고, 또 어떤 때는 엄마에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어린이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잘 다독이기만 해도 보통 평범한 부부는 됐을 것이다. 다독이는 거, 나는 그 짓을 못 한다. 남편에게는 다독이기를 좋아하는 연상의 여인이 필요했다.      


  남편과 정서적 거리두기, 나는 그것이 편했다. 남편은 그런 내가 냉혈동물이라 했다. 냉혈동물이 얼마나 외로운지 남편은 모른다. 점점 남편과 잠자리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성관계 없는 부부는 정서적 관계도 없다.” 제 욕구만 채우고 돌아눕는 남편에게 부부관계는 무엇일까. 어린이가 달콤한 알사탕 한 알 받아먹고 돌아서는 것과 같다. 이 남자, 날 욕구 충족 대상으로만 보나. 남편과 부부관계하고 나면, 나는 꼭 매춘부가 된 기분이다.


  부부가 같은 것이 너무 많아 누릴 것이 많으면, 부부는 퇴행하여 성장하지 않는다. 반면 달라도 너무 다르면 함께 걸어야 할 고통의 터널이 너무 길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의 양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동물이다. 절친 P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부부는 싸운 만큼 각자 성장하는 거야.” 집안 배경과 외모 좀 갖추었다고 그렇게 교만한 내 친구는, 정 반대 성격의 남자를 만나 진절머리가 나게 싸우다가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배웠다. 몇 번이나 이혼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녀는 몰라보게 겸손해졌다. 그러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외롭고 우울한 날을 보냈는지! 본인 외에는 모른다. 


  너무 다른 배우자와 사는 일, 외롭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결혼과 이혼의 경계, 우울증과 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여자이다. 남편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척척 해결해 주는 나를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여자로 본다. 그러나 내 외로움을 이해해 주는 가슴 넓은 남자의 품에 털썩 안겨서 울고 싶을 때도 많다. “저도 따뜻한 가슴을 그리워하는 여자입니다.”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은 아내는 자식에게 집착한다.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은 남편은 밖으로 돈다. 나는 딸에게 집착한다. 가족 외에는 인간관계가 거의 없는 남편은 칼퇴근한다. 차라리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주말에 다른 약속을 해서 집에 좀 없었으면 좋겠다. 휴일에 남편은 거실에서 무표정하거나 화난 표정으로 TV 시청, 나는 서재에서 독서 등 내 할 일을 주로 한다. 놀아주지 않는다고 잔뜩 삐쳐 무언의 항변을 하는 남편, 내가 왜 그런 항변을 받아야 하나. 나 역시 침묵의 항변. 이 오래된 불균형, 우리는 휴전 협정한 ‘적과의 동거’ 같은 부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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