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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Oct 04. 2023

튤립과 잡초를 어울리게 하라④엄마는 냉혈동물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연재④

4. 엄마는 냉혈동물


  내가 딸에게 가지는 집착은 보통 엄마와는 다르다. 나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중단돼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제 욕구에 충실한 언니와 남동생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아 포기를 당한 것이다. 나의 외동딸에게는 그런 유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딸은 유학을 목표로 중학교부터는 기숙 생활을 하는 국제학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조기유학 하는 거, 그거 한국서 괜찮은 대학교에 갈 능력이 없어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며 반대했다. 평범한 월급쟁이 부부에게는 벅찬 일이다. 나는 한 채 있는 집이라도 팔아서라도 유학비용을 대 주겠다고 우겨 결국 딸의 원대로 해줬다. 


  딸에게만큼은 경제적 후원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었다. 그것뿐, 나는 딸에게 정서적 지원을 해주는 법을 몰랐다. 일찍 철든 사람은 제 감정을 일찍 억압해, 타인과 감정 교류를 못 한다는 것을 심리학 이론서에서 읽었다. 엄마가 자식에게 가지는 감정, 그것도 엄마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딸을 출산하자마자 나는 기쁨보다는 이 핏덩이를 어떻게 키워 세상에 내보내지, 하고 걱정부터 했다. 내가 힘들게 컸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갓난아기를 덥석 끌어안고 몸을 비비지 못했다. 산후 우울증이었다. 


  P가 말했다. “엄마가 그녀의 아기에게 집중하는 것은 본능이야. 육아 본능에 어설픈 이유는 네가 네 본능을 소외시켜서 그래.” 이 말이 내 머리를 한 대 쳤다. 나는 부모님 등골을 빨아 먹던 연년생 언니와 사춘기를 심하게 한 남동생을 대신해서 일찍 철들어야 했다. 그들은 얼마나 본능에 충실한 성장기를 보냈는지! 나는 그러지 못했다. 철이 일찍 들은 듯 만성화된 내 우울은, 가랑비에 도포 젖는다고 수없이 억압된 나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만든 것이다. 


  나는 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과몰입한다. 이유는 딸이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이 우울한 여자였다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딸이 원하고 능력만 되면, 집을 팔아서라도 엄청난 학비를 자랑하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이라도 보낼 것이다. 이것이면 엄마 역할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딸이 주간을 학교 기숙사에서 보내고 집에 오는 주말이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보다는 맛집을 찾아가는 엄마이다. 모성은 곧 음식인데, 나는 그 점에 무능하다. 딸이 엄마 밥을 원하지 않는 것은 엄마와 감정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딸의 고민을 어루만져 주기보다는 냉철한 이성적 해법을 제시하는 엄마이다. 사춘기 딸이 그런 엄마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튼 나는 ‘여성, 여성’ ‘엄마, 엄마’하는 것들에 질색한다. 딸이 말했다. “엄마는 영락없는 여자기숙사 사감이야.” 


  딸이 국제학교에 입학한 첫해였다. 딸의 첫 번째 성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받지 못한 충격 자체였다. 나는 딸이 받은 충격은 안 보이고 딸의 성적만 보였다. 이럴 때 단단히 다스리지 않으면 딸이 느슨해질 것이다. 내 깐에는 엄마로서 할 말을 했다. 말이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언어폭력 수준이 됐다. 이건 과잉 감정이다. 통제가 안 됐다. 딸이 양 눈에 독기를 품고 외쳤다. “엄마는 냉혈동물이야. 알아, 체온이 섭씨 0도. 화성에나 사는 동물.” 남편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딸이 대신해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딸은 이날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감정이 격했을까? P가 한 말이다. 

  “딸의 희망이 아니라 너의 희망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서. 아낌없이 투자했고, 투자는 증액됐고, 더 많은 투자가 예상되고, 아낌없이 보상받으려던 너의 희망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거지.” 

  나는 그 말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지?” 


  나는 다급한데 P는 징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기는, 몰라서 물어? 너의 희망은 네 안에서 찾아. 딸도 자기 희망을 자기 안에서 찾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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