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연재⑤
나는 딸에게 집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방법이 달랐다. 차라리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했더라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와 다른 것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생각의 대립을 감정으로 풀면, 그 즉시 생각 차이는 두 배가 된다. 우아한 척, 합리적인 척, 나는 항상 옳은 척, 딸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것, 그것은 엄마의 집착보다는 더 센 무서운 통제였다. 딸은 엄마의 무서운 통제를 벗어나려 집은 떠나 기숙학교에 간 것이다.
나는 딸에게 좋은 것을 줬다고 좋은 엄마라 자부했다. 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딸에게 집어넣었다. 그것이 딸의 인생에 유익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온혈동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는 것이 인생 법칙이다. 잃은 그것을 되찾아야 할 날은 반드시 온다. P는 딸과 사이가 가장 안 좋을 때가, 그때라고 했다. 사이가 안 좋으면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지, 엄마의 잃은 것을 찾으라고? 내 인생관과는 달라 무시해 버린 P의 말,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이야말로 내가 살고 딸이 사는 길이다. 내가 서러운 이유는 딸 때문이 아니라, 딸에 대한 나의 신념을 버리기 아까워서다. 마음도 변화하는 과도기에는 꼭 우울을 단골손님으로 모신다.
P가 말했다. “우울 심리의 근저에는 오랜 세월 억압된 타협할 수 없는 양가감정이 있다. 네 딸이 너에게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너도 부모에게 그랬다.”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 나는 종교 생활에 철두철미하시고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극도로 절제하시는 부모님을 존경한다. 지금도 존경한다. 그 존경심 때문에 나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외면하면서 일찍 철이 들었다. P의 말은 불쾌했으나 자꾸 귓전을 울린다. 나는 정말 부모를 존경만 할까?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질 때마다 나에게 다독였다.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야. 그래야 복도 받아.”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내 딸은? 딸은 나에게 의지하거나 분노한다. 양가감정 맞다. 딸은 그것을 표현한다. 언니와 남동생도 카멜레온처럼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나는 그것을 야비한 행동이라고 격멸했다.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만일 내가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나의 효심은 다 거짓이 된다. 그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내 인생도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꼴이 된다. 만일 모래에 집을 지었다면 빨리 허물고 다시 지으면 된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던 걸까?
거울 앞에 서서 나의 표정을 봤다.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 표정이 너무 어둡다. 철이 일찍 든 사람의 얼굴은 다 이렇게 어두운 걸까. 나에게 별일 없냐고 묻던 분들은 내 표정을 보고 물은 것이다. 거울 앞에 비친 내 표정은 항상 별일 있어 보인다. 뭘까? 나는 엄마, 그리고 아버지를 불렀다. 내 안에 또 다른 나는, 본능을 억압해 일찍 철들게 한 부모를 미워하고 있었다. 내가 부모를 미워하면 나의 자랑거리인 ‘일찍 철든 딸’도 함께 무너진다. 한편 열심히 사셨으나 너무 정직하여 부를 축적할 수 없었던, 삶의 고에 지친 부모를 나는 동정했다. 부모를 동정하는 자식의 무의식에는 의지의 대상이 돼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분노도 있다.
나는 나를, 부모님도 몰랐다. 그러고도 마치 모든 인간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보는 것처럼 행동한 나. 특히 가족에게는 더 그랬다. 헛웃음이 나왔다. 양가감정은 알아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그리고 타자 안에 양가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기와 타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통제만 하는 것, 자식이 부모를 원망만 하는 것, 둘 다 양가감정을 부정해서다. P가 말했다. “그게 인류의 공동작업이다.” 양가감정 뭐길래 인류까지? 실없는 말은 하지 않는 P였으나, 나는 실없이 웃었다.
남편은 집에만 들어오면 불만이 많은 어린이가 되어 버린다. “저 남자는 왜 저럴까.” 이 남자는 그 원인이 다 나에게 있다는 투였다. 남편은 나의 힘든 과제물이다. 나는 그 과제물과 씨름하며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남편 역시 여성의 부드러움이나 친절은 일도 찾아볼 수 없다던 나와 씨름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여자는 왜 저럴까.”
그래도 우리는 공통 관심인 자녀가 있어서 최소한의 소통은 하고 살았다. 딸이 기숙사 학교로 간 이후, 그 교집합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자식으로 화제를 돌리지 않고, 본격적으로 각자의 문제에 직면해야 할 시점에 있다. P가 말했다. “남편이 좀 어린이답다고 사회생활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너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네가 남편을 미워하는 이유는 바로 너 자신의 미해결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