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힙스터(Hipster)’란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이 단어는 1940년대 미국에서 재즈 마니아를 가리키는 속어인데, 요즘에는 주로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고유한 패션 및 음악 문화를 좇는 이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힙스터’는 주로 인디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언급되더군요. ‘힙스터’들의 독특한 문화적 코드는 ‘힙하다’란 정체불명의 수식어를 낳았죠. 이 수식어의 의미는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개성적이면서도 세련됐다’ 정도로 풀이하면 크게 어긋나진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힙스터’들이 꼭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성수동,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른바 ‘성지’에만 출몰하진 않습니다. 겨울과 봄의 건널목에서 봄을 미리 ‘힙’하게 느끼고 싶은 이들은 ‘성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피어나는 꽃을 찾아 떠나는 일보다 더 ‘힙’하게 봄을 느끼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복수초는 봄을 미리 느끼고 싶은 ‘힙스터’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잇템(누구나 꼭 갖고 싶어 하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생초로 이르면 설 무렵부터 남쪽에서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해 서서히 북상합니다. 복수초가 봄의 ‘힙스터’들에게 주목 받는 이유는 종종 눈을 뚫고 피어나는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입니다. 술잔을 닮은 노란 꽃이 흰 눈 위에서 색의 대비를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복수초가 ‘얼음새꽃(얼음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이란 의미)’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이유를 이해할만합니다.
복수초가 미리 펼쳐내는 봄은 생존전략의 결과물입니다. 복수초는 지난 계절 뿌리에 저장해 둔 녹말을 분해해 스스로 열을 발산합니다. 그 열은 주변에 쌓인 눈을 녹이고 언 땅을 풀어주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복수초의 꽃잎 주변은 영상 8도가량을 유지합니다. 또한 복수초는 한낮에만 꽃잎을 열어 최대한 볕을 모아 자신의 몸을 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꽃잎을 닫아 온기를 보전합니다. 이 같은 독특한 생태와 생명력 때문에 복수초는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福壽)’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가지게 됐죠.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복수초를 이름만 믿고 함부로 꺾거나 먹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니까요. 복수초의 뿌리와 줄기에는 한방에서 강심제, 이뇨제 등으로 쓰이는 ‘아도니톡신(Adonitoxin)’이란 성분이 들어있어서 과용하면 오심, 구토 등 중독 증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복수초의 꽃말은 동양에선 '영원한 행복'이고, 서양에선 '슬픈 추억' 이라고 합니다. 복수초의 꽃말이 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군요. 이 때문인지 봄의 ‘힙스터’들은 카메라 렌즈에 꽃을 담는 수준 이상의 경계선을 넘지 않습니다.
봄의 ‘힙스터’가 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겨울이 지나가기도 전에 꽃이 피어나는 일은 흔치 않다보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만 검색해도 복수초 개화 소식과 개화 장소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복수초가 개화할 정도로 따뜻한 곳이라면 주변에서 납매, 풍년화, 매화 등 다른 꽃들도 덤으로 마주칠 확률도 높습니다. ‘힙스터’ 노릇은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복수초를 만나는 방법 : 겨울에 복수초를 야생에서 만나는 일은 매우 운이 좋아야 가능합니다. 복수초를 보겠다고 무턱대고 산이나 숲을 찾았다간 겨우내 누렇게 말라붙은 낙엽만 실컷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허탕을 치지 않고 확실하게 복수초를 만나려면, 뉴스를 통해 복수초가 피어난 수목원을 파악해 찾아가면 됩니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 멀지 않은 홍릉수목원은 가장 이른 시기에 복수초를 만날 수 있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