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내리는 새하얀 눈꽃들로/우리 걷던 이 거리가/어느새 변한 것도 모르는 채/환한 빛으로 물들어 가요”(박효신 ‘눈의 꽃’ 중)
꽃이라고 불리지만 꽃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웃음꽃, 불꽃, 열꽃 등등……. 겨울엔 눈꽃이 있죠. 겨울에 밤새 빈 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보다 아름다운 풍경은 흔치 않습니다. 박효신의 대표곡 '눈의 꽃'이 유행가로 그치지 않고 겨울이면 곳곳에서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식물 입장에선 겨울에 눈꽃을 보는 일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겨울에 눈은 겨울 가뭄을 덜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눈은 결정 사이에 많은 공기를 품고 있어 단열효과가 높아 마치 이불처럼 땅을 덮어 급격한 온도 저하를 막아준다고 합니다. 에스키모들이 눈으로 이글루를 짓는 이유를 알 듯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눈은 물보다 질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비료 역할까지 해준다는군요.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란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눈꽃을 꽃이라고 표현하는 게 과장된 표현으로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눈의 결정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꽃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의 결정 모양은 대표적인 모양인 육각형 모양를 비롯해 바늘 모양, 기둥 모양, 둥근 모양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합니다. 미국의 농부 출신 사진가 윌슨 벤틀리(1865~1931)는 개개의 눈의 결정이 얼마나 다채로운 모양을 가졌는지 최초로 사진으로 입증해 보여준 인물입니다.
벤틀리는 15세 때 생일 선물로 받은 현미경으로 눈의 결정을 관찰하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지난 1885년, 그는 현미경에 카메라를 달아 세계 최초로 눈의 결정 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죠. 이후 그는 평생에 걸쳐 눈의 결정 사진 6000여 점을 남겼습니다. 손에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마는 눈송이에 담긴 눈의 결정이 실은 사람처럼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였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일에 치이고 바쁜 직장인들에게 눈은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입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눈이 싫어진 마음이라고 하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한데,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마음의 여유를 찾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봄꽃은 아름답지 않던가요. 봄에 풍성하게 꽃이 피어나려면 먼저 겨울에 눈꽃이 풍성하게 피어나야 합니다. 날씨의 변화는 하늘의 일이지만, 그 날씨를 바라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느냐는 사람의 일입니다. 평범한 농부였던 벤틀리가 평생에 걸친 눈송이 촬영으로 역사에 특별한 존재로 남았듯이 말입니다.
눈꽃을 만나는 법 :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눈송이가 클수록 눈꽃을 보기가 쉽습니다. 커다란 눈송이일수록 맨눈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결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 중에 습기가 많을 때 내리는 함박눈일수록 결정 모양이 복잡하고 화려해집니다. 눈꽃을 관찰하고 싶다면 함박눈이 내린 낮이 가장 좋습니다. 춥고 건조한 날에 내리는 싸라기눈 또한 결정을 갖고 있지만, 너무 작아 맨눈으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