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와 붓터치, 논리와 감성이 만나는 곳

by 색감여행자

코드를 짜던 습관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업무와 진행 방식이 닮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의 목적을 두고 서사를 캔버스에 풀어내는 방식 자체가 마치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사용하는 폭포수 모델처럼 흘러갔다.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분석한 후 설계를 거쳐 개발하는 것처럼, 전시에서도 먼저 기획 의도를 정리하고 어떤 작품을 제작할지를 정의했다. 이후 드로잉을 통해 초안을 구성하고 구도를 고민하며 하나의 결과물로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유화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자연스럽게 단계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려 하지 않고 가장 어두운 색부터 얇게 깔고, 점진적으로 밝은 색을 덧입혀가는 방식이 더 익숙했다.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한 코드를 짜기보다는 기본 구조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유화를 그릴 때, 붓터치 하나 잘못했다고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덧칠하며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개발에서 버그를 수정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실수조차 창조의 일부가 되듯이 말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처음에는 모든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려 했지만, 어느 순간 최소한의 붓터치로도 더 강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개발에서도 '간결한 코드가 더 좋은 코드'라는 원칙이 있듯이, 그림에서도 꼭 필요한 붓질만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 개발과 그림 모두 같은 본질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그림을 몇 개월에 걸쳐 반복해서 그릴 때마다 색감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붓터치가 조금씩 정교해지는 걸 느낀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하는 과정이 오히려 재미있었다. 개발을 하면서 코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코드 속에서도 그림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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