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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Jul 14. 2020

타성과 좌절을 부수는 리더십

《턴어라운드》 서평

데이비드 마르케 《턴어라운드》
한 줄 서평 - 조직 혁신에 좌절을 느끼는 리더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탈영이 발생했다. 선임 참모로부터 슬레드독의 탈영 소식을 들은 마르케 함장은 귀를 의심했다. 해도 작성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큰 공을 세우고 마르케의 인정을 받았던 슬레드독이었다. 그런 그가 탈영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찰 조타수 슬레드독의 탈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의견은 크게 둘로 갈렸다. 슬레드독의 바로 위 상관인 반장들은 엄벌로 군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슬레드독은 군 경력이 길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그럼에도 탈영을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장교들의 의견은 동정적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슬래드독은 우현 정찰 근무를 하느라 여덟 시간 근무하고 네 시간 휴식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여기에 교육이나 전체 훈련 일정까지 더하면 슬래드독의 수면 시간은 하루에 네 시간이 채 되지 못했다. 슬래드독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그의 처지를 신경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래 정찰 근무는 좌, 우현 2개조가 아닌 3개 조로 운영되는게 정상이었다. 마르케 함장은 어째서 정찰근무가 2개 조로 편성 되었는지 원인을 파고들기로 했다. 실무자들이 밝힌 원인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부족해서였다. 3개 조가 되려면 정찰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3명이어야 하는데 핵잠수함 산타페에는 2명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슬레드독 소대의 반장도 정찰 자격을 취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해 관리자 자격 취득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자신을 제외시키고 있었다. 항해 관리자 자격은 산타페에는 필요 없는 역할이었다. 그는 순전히 사익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부하에게 떠넘기며 혹사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케 함장은 슬레드독을 찾았다. 놀랍게도 슬레드독은 산타페가 정박한 샌디에고 포인트로마 근처의 군 막사에 숙소를 등록하고 쉬고 있었다. 탈영한 사람이 할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슬레드독은 지쳐있었다. 마르케 함장의 손에는 슬레드독의 탈영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다. 보고서에 의하면 슬레드독은 1개월 급여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고, 1계급 강등이 될 수도 있었다. 마르케 함장은 슬레드독이 쉬지도 못하고 일한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다독이고 공감했다. 그 후에는 손에 든 보고서를 슬레드독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다. 슬레드독에게 사면을 선언한 것이다.


슬레드독을 만난 마르케 함장은 산타페로 돌아가 반장들을 소집했다. 어두운 잠수함안에서 마르케 함장은 반장들을 향해 손전등을 겨누어가며 분노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지난 1월 모임에서 자네들이 부하와 이 잠수함의 운영에 대한 책임을 수락할 때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있지 않았나? 자네들이 무슨 특권층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할 게 아니라 승조원들과 함께 호흡하고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야!”


이 책의 제목인 턴어라운드는 바닥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미 핵잠수함 산타페는 1999년 1월에 마르케가 함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미 해군의 조롱거리였다. 평가는 언제나 최하위였고 장병들의 복무 유지율은 0% 였다. 그러던 산타페는 2001년 평가에서 전 분야 최고점을 기록한다. 이는 역대 어느 핵잠수함도 기록하지 못한 점수였다. 더해서 장병들의 복무 유지율은 100%를 기록했다.


산타페를 밑바닥에서 최고점으로 끌어올린 마르케 함장의 비결은 위임(Empowerment)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위임의 과정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대목은 앞서 소개한 슬레드독의 탈영 에피소드다. 슬레드독은 산타페 함의 데이터 시각화에 앞장선 인재였다. 산타페 함은 과거 중구난방의 색상으로 칠해진 등심선 때문에 신속하게 해도를 읽고 운항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장 실무자로서 이 문제를 솔직히 밝혀낸 게 슬레드독이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도법을 해도에 적용하는 해결책으로 실무에서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과거 산타페에서는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해결책을 내는 일이 없었다. 승조원들은 상급자의 지시 없이는 행동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상급자가 실수를 하는 것으로 보여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따랐다. 일하는 방법은 아무리 불편해도 바뀌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르케는 산타페에 만연한 잘못된 타성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타페의 오래된 타성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타성이 사람을 좌절시키는 경우는 일반 직장인들도 흔하게 겪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거? 나도 해봤는데 어차피 안돼”, “이제까지 문제없었는데 그걸 왜 바꿔?”, “대표님 원래 저래, 몇 번 저러다가 돌아갈 거야", “이유? 알아서 뭐하게?”,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타성에 젖은 조직의 좌절은 다양하다. 먼저는 누군가 나타나 해결해 주리라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좌절이 있다. 그들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내일을 기다리다 지쳐 좌절한 사람들은 기득권으로 눈을 돌린다. 변하지 않는 조직은 기득권도 변하지 않으니까.


다음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좌절이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변화에 대한 권한이 없음에 좌절한다. 그다음에는 겉으로는 변화에 찬성한다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기득권 때문에 변화를 거부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당신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문화가 고착화된 조직을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마르케 함장은 타성에 젖은 조직을 혁신하기 위해 먼저 하급자들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가장 핵심은 말단 관리자들에 해당되는 반장들이었다. 반장들이 일일이 허락받지 않고 부하들의 상벌이나 업무를 결정할 수 있게 되자, 일이 잘못되었을 때 핑계 댈 거리들이 사라졌다. 반장들은 예전보다 책임감 있게 일하게 되었다. 함장의 허가 없이도 현장에서 즉시 판단하여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신속성도 갖추게 되었다. 위임을 정착시키기 위해 마르케 함장 본인이 노력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성급히 나서지 않고 부하들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마르케 함장의 부하들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산타페 함은 수많은 미 해군 함장을 배출한 리더의 산실이 될 수 있었다.


마르케 함장은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근간도 바꾸었다. 전통적인 핵잠수함의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함장이 지시하면 복창하며 지시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함장이 잠항이라고 외치면 승조원들이 잠항이라고 외치며 잠항을 실시한다. 마르케 함장은 이것을 실무자들이 지시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언하며 자발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바꾸었다. 이는 맹목적으로 지시에만 따르는 문화를 뿌리부터 바꾸기 위한 조치였다. 예를 들면 각 승조원들은 함장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잠항을 시작합니다!” “현재 수심은 120미터입니다!” “전원 이상 무, 잠항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정찰대 임무 승인했습니다!”


문제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감시했던 체계는 스스로 신고하는 체계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소음 신고가 있었다. 잠수함에서 소음은 적에게 발각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서 음파실에서 항상 함 내의 소음을 감시하고 주의를 줬었다. 이러던 것을 소음을 발생시킨 쪽에서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오히려 신고가 많이 접수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음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차단할 수 있었다.



마르케 함장의 노력이 항상 보람된 것은 아니었다. 슬레드독의 탈영 같은 사례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나의 강력한 타성이 여러 사람에게 좌절을 안기는 상황이 현실에서 잦았던 것이다. 반장 한 사람의 타성은 변화에 적극적이던 승조원에게 좌절을 안겼다. 슬레드독은 모두가 침묵하는 불공정속에서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다른 모든 반장들은 한 사람의 타성 때문에 자율성을 잃을 뻔했다. 반장들로부터 권한을 다시 빼앗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마르케 함장 역시 크게 좌절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 자율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위임에 적극적인 리더가 있다면 마르케 함장의 좌절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만큼 위임과 책임과 자발성에 대한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그 진심을 개인의 사익에 이용하는 상황이 쉽게 발생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마르케 함장은 좌절하지 않고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슬레드독의 탈영 같은 사례는 당연히 일어난다고 각오해야 한다. 사람이니까 타성에 젖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 타성이 발견될 때마다 좌절로 번져가지 못하도록 끈기 있게 메시지를 반복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이 결국은 모두를 위한 것임을 끝없이 일깨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케 함장이 지치지 않고 턴어라운드를 일으킨 비결이었다.


턴어라운드는 미 해군 핵잠수함 내에서 벌어진 조직 혁신의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군대와 회사는 물론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은 전통적인 기능단위 조직의 회사들이 겪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짚고 있다. 애드호크라시나 애자일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권한을 위임하고, 업무의 형태를 상향식으로 수정하고,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본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228페이지에 나온 단절된 기능들을 연결된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것은 애드호크라시나 애자일 조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조직 혁신을 준비하는 리더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마르케 함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충고들은 리더들에게 영감은 물론이거니와 커다란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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