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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ul 27. 2022

경기 전날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았던 시리아인들

그들에게 시리아의 작은 지역을 찾은 이방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홈스 시내의 한 시장

프로팀, 대표팀 가릴 것 없이 해외 원정경기를 가면 홈 텃세를 겪기 마련이다. 시설이 낙후된 훈련장을 제공하는 등 편의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경기 준비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이다. 그런 홈 텃세를 시리아에서 제대로 느끼고 돌아오기도 했다.


전북현대모터스 선수단과 함께 시리아 홈스에 온 뒤 홈 텃세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다. 사람의 진을 빼고 깜짝 놀라게 하는 모습에서 “은근히 기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도착 다음 날은 경기가 열리기 2일 전이었다. 오전에 잠시 비는 시간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홈스 시내 구경을 나갔다. 이국적인 풍경에 눈을 계속 움직이며 신기하게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 사는 분위기를 느끼려고 시내의 한 시장도 들렸다. 바글바글한 시장 안에 낯선 동아시아인 여러 명이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들은 웃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 한 아이가 우리를 향해 큰 소리를 내질렀다. “전북?”이라고. (더 정확히는 존북에 가까운 발음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손짓을 하며 “전북!”이라고 했다. 저 사람들에게는 한국보다 전북이 더 한국을 나타내는 단어였을 것이다. 만약 경기가 없었다면 이들이 한국과 전북을 평소 생각이나 했을까? 그것이 스포츠가 가진 영향력이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우리를 섬뜩하게 했다. 한 아이가 나를 비롯한 일행들을 바라보면서


자기 목을 손으로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 제스처가 무슨 의미인지 아마 다들 알 것이다. 그 아이의 도발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온 이방인과 축구팀을 이기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그런 제스처를 볼 일이 없는 나나 다른 사람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가 하자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전북”을 외치더니 똑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들의 도발을 웃으며 바라보고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뭔 일이라도 터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홈스 사람들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슬슬 자야 할 밤 10시경부터 호텔 주위에 자동차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시간에 정체가 있나? 호텔 앞에 사고라도 났나?”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경적이 계속되자 창밖을 봤다. 그러자 수십 대의 차량이 호텔 주위를 뱅뱅 돌며 경적을 울렸다. 선수들의 숙면, 휴식을 방해하겠다는 그들의 행위였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홈스 경찰에게 요청했다. 얼마 지난 뒤 경적이 사라졌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다들 포기했고, 경적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경적은 새벽 2시 정도까지 계속 울렸다.


호텔 로비에는 알 카라마를 알리는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경기 전날이었다. 이번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도발했다. 오후가 되자 호텔 로비에 방송 장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지켜봤다. 그것은 전북현대모터스의 상대인 알 카라마를 응원하기 위한 특집 프로그램의 무대 설치였다.


저녁 식사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시리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알아듣지는 못하니 화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낮에 봤던 무대가 TV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얼른 로비로 내려가니 생방송이 한창이었다. 스태프로 보이는 한 남자는 내가 가까이 다가서면서 지켜보려고 하자 인상을 쓰며 다가오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한참이 지난 뒤 방송은 끝났다. 이를 같이 지켜본 전북현대모터스 이철근 단장님은 “이 지역에서 이 호텔이 가장 크고 방송하기 적당하니 이렇게 하나 보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원정팀 숙소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생방송 한다는 것은 도발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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