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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Aug 02. 2022

아시아 챔피언, 역사의 현장에 서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 모습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내 취재 인생 최고의 순간


내가 취재하러 다니면서 절대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2006년 전북현대모터스가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을 때였다. 그리고 내게는 어쩌면 영원히 박제될 지 모를 순간이 있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줄여서 ACL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아시아 최고의 프로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다. 유럽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성격의 대회라 하겠다. 그리고 전북현대모터스는 2006년에 대한민국 팀 중에서 최초로 우승했다. (물론 전신 대회까지 포함하면 첫 우승은 아니다)


전북현대모터스는 2006년 11월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결승 1차전에서 시리아의 알 카라마에 2-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결승 2차전은 일주일 뒤인 2006년 11월 8일에 열렸다. 전북현대모터스는 1점 차로 패하기만 해도 우승하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2차전을 2일 앞두고 경기가 열리는 시리아 홈스에 도착했다. 경기 하루 전에는 양팀 감독의 기자회견에 열렸다. 기자회견은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는 나와 선수단이 묵는 호텔에서 진행됐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생각을 못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경기장 시설이 낙후되고 기자회견 공간도 좁아 불가피하게 호텔에서 하는 것으로 진행된 듯하다. 경기 전날 상대팀이 묵는 숙소에 알 카라마의 감독이 찾아온 셈이 됐다. 기자회견 후에는 한국 기자들만 따로 (요즘 골때녀 감독이신) 최진철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기가 열렸던 칼레드 빈 왈리드 스타디움은 호텔과 가까운 거리였다. 차로 10분 정도? 우리는 경기가 열리기 2시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경기장 주위는 시리아인들로 인산인해였다. 경기장을 줄로 감은 듯이 입장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당연히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경기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이 경기는 4만명이 들어온 것으로 기록에 남았다. 그리고 2시간 전에 이미 대부분의 좌석이 들어차 있었다. 즉 경기장 밖의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이들이 모두 군인이다


또한 경기장 본부석을 중심으로 곳곳에 소총을 소지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시리아의 최고권력자인 바샤르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이 관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시리아의 정권을 쥔 독재자다. 그의 아버지가 30년간 독재했고 알 아사드 대통령이 세습했다. (그래서 시리아는 북한을 형님처럼 모신다고 하더라) 알 아사드 대통령은 시상식 때 필드로 내려왔다. 그래서 지근거리에서 알 아사드 대통령을 보기도 했다.


주장 김현수의 왼편에 있는 키 큰 남자가 알 아사드 대통령


경기는 전북현대모터스가 1-2로 패했다. 하지만 1차전에 2-0으로 승리했기에 1, 2차전 합계 3-2로 최종 승리를 했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0-2로 지고 있던 후반 43분 제칼로의 골이 나오자 


...


경기장은 적막이 흐른 듯 한순간 조용해졌다. 전북현대모터스 선수단, 취재진 그리고 시리아 교민과 4명의 전북현대모터스 서포터스 등 소수만 환호했다. 만약 제칼로가 그 골을 넣지 못했다면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을 것이고, 승부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자화자찬 같지만 정말 포착을 잘했다는 생각


그리고 이때 내 취재 인생 최고의 베스트컷을 얻었다. 난 경기 사진이 필요해서 포토 조끼를 입고 필드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기 기사는 어차피 한국에서 TV 중계를 보는 동료가 내 이름으로 대신 써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다 제칼로의 골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제칼로는 내 앞에서 골 세리머니를 했다. 제칼로는 덩실덩실 춤을 췄고 난 그 모습을 찍었다. 그 장면이 그대로 중계화면에 잡혔다.


전북현대모터스 vs 알 카라마 경기 하이라이트


유튜브 영상 2분 38초부터 보면 나온다. 오렌지색 포토 조끼를 입고 캐논 200mm 렌즈를 낀 DSLR을 들고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자 1년 차에 엄청나게 큰 대회의 취재를 맡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시아 전역에 전달됐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귀국 후 최강희 감독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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