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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선생 Dec 30. 2019

100원짜리 글

  

    100원이 입금됐다. 이제 글을 쓰라면서… 

  

 나는 딱 100원만큼만 글을 쓴다고 했다. 100원짜리의 글이란 대체 어떤 글인가. 따위를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100원만큼의 글이라니… 

그렇다면 100원의 가치는 얼마만큼일까. 

어린 시절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가끔 200원이면 세상을 두 번 가진 기분이었고, 500원은.. 사실 별로 받아본 기억도 없으나, 아마도 우주를 가진 기분이었을거다.

   

   1.  시멘트 벽돌 한 장을 살 수 있다! (그렇다 딱 한 장이다) 


    2. 카라멜 1개를 (구입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구입할 수 있다!

    3. 붕어빵의 꼬리를(한 번 시도해보시라) 구입할 수 있다!

 4.  가끔 택시를 탈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오지라고 불리는 곳에 살고 있다면 말이다.(100원택시,따복택시 등등)

 5. 놀랍지만 당신이 듣는 노래 한곡은 스트리밍 기준으로 하면 정확히 말하긴 어려워도 (당신이 노래를 얼마나 듣는가에 따라 다르니..) 7원이다! (더쌀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붕어빵 꼬리보다 시멘트벽돌 한 장보다 카라멜 1개보다 싸다!! 대략 14곡에 100원!



이쯤되면 가늠하기 어렵다. 하여간 5를 보면 문화상품에 대한 가치가 박하게 매겨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무명의 백면서생에게 100원짜리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다시 말해 14곡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니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청탁이었던 셈이다.   


    소설을 소개하라. 

  

소설을 소개하는 100원짜리 글은 이쯤되면, 노래처럼 들리는 글이어야 하겠다. 그러니까 요즘 내 아침 출근길의 무거움을 덜어주는 14곡의 플레이리스트 만큼의 글이라면 대략, 

1. 아이유의 Love Poem

2. 시와의 올해 처음바다

3. 설의 여기에 있자

4. 알레프의 No One Told Me Why

5. BLVN의 Good Night

6. 위아더나잇의 별,불,밤

7. 신해경의 모두 주세요

8. 조규찬의 해지는 바닷가에서 스털링과 나는

9. 로큰롤라디오의 이대로

10.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

11. 나인(디어클라우드)의 내가 잠에들면 깨우지마세요

12. Sia의 snowman

13. 헤이즈의 떨어지는 낙엽까지도

14. 브로콜리 너마저의 혼자 살아요


정도인데...대체 내가 쓰는 글이 이런 노래들의 가치와 같을 수가 있을리가!!! 라고 생각했다가 붕어빵 꼬리가 대체 저 14곡의 가치보다 더 맛있는 것인지에 대해 해찰하게 되었다. (성찰의 오타 아님.. 해찰….해탈의 오타도 아님…) 

  적당히 독서에 방해되지 않으며, 복잡한 지하철의 사람들의 부대낌도 무심하게 넘어가게 만들어준 오늘 아침의 저 노래들보다 붕어빵 꼬리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 자본주의의 삶이란 게 어차피 내 정신적 가치보다는 어떤 물성(물성)에 더 기대어 움직이는 유물의 사회이니만큼, 그러려니 해야지 뭐 어쩌겠나 싶다. 시멘트 벽돌 한 장? 부대끼는 지하철 안에서 낙락장송처럼 우뚝 서서 내 등을 줄곧 밀어대던, 그…. 낙락장송을 한 대 때릴… 아니다. 어쨌든 100원은 흉기를 구입할 수도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또 모골이 송연하다. 노래 대신 시멘트 벽돌 한 장을 가방에 넣고 지하철에 타는 삶이란 좀체 상상이 어려운 거다. 

나는 노래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100원짜리 글과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해찰.. 하는 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수선한 생각으로 100원짜리의 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내손에 들린 책은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다. 심지어 두꺼운 외투나 겨울 점퍼의 주머니에 들어갈만한 사이즈의 작은 에세이. 유명한 에세이스트인 ‘닉 혼비’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필명인 김혼비의 <아무튼,술>이다. 

  사실 이 책은 낄낄낄 가벼운 마음으로 후루룩 술한잔 마시듯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연말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에 기어이 책을 읽겠다는(설마?) 미친 마음이 든다면 집어 들어도 좋다.(알딸딸한 기분과 어지러운 뇌를 머릿속에서 꺼내 칫솔로 문지르고 싶거나, 메스꺼운 속을 꺼내 물로 한 번 헹구고 싶은 기분에 과연? 책을? 진짜?) 그런데, 사실 내가 이 미친 짓의 주인공이다. 심지어 저녁 불콰한 기분으로 알딸딸하게 술잔을 놓고 이 책을 집어 든 적도 있었다는 쓸데없는(더군다나 이런 건 내가 책을 얼마나 읽는지에 대한 비릿한 자부심도 들어있다.. 하긴 누가 알아주기나?) 이야기도 덧붙인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 p131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실 때마다 와인에 완전히 혀를 붙들리는 바람에 말을 잃어갔고, 붙들린 혀에서는 둔한 감각을 찢고 들어온 핏빛 액체에 놀란 1만개의 미뢰가 번쩍번쩍 깨어나기 시작했다.../ 캬...이런 문장을 읽었는데 술이 안땡긴다고? 응?)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분이라면 스마트 폰 대신 이 책을 꺼내도 괜찮다. 응? 이 책 제목이 <아무튼, 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주변 사람들이 책제목을 보는 순간 당신을 흘끔 쳐다보는 근사한 경험을 누릴 수도 있다. 그냥 당신을 봤다는 사실만 중하게 생각하자.(왜 쳐다봤는가가 뭐가 중요한가...난 독서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ㅜㅜ) 

  책은 저자가 경험한 술냄새 풀풀 나는 주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글쎄 저자 자신이 아무리 주사가 어디서부터라고 정의해놨다고 해서 주사가 주사가 아닌 것은 아니지 말이다. 처음 마신 술이야기는 읽는 순간 정신없이 빠져드는 매력을 선사한다. 누구든 처음은 있기 마련이고, 누구나의 처음은 온통 허세로 가득찬 어리숙함으로 차있기 마련이다. 허세와 어리숙함의 간극이 불러 오는 실수는 후일담이 제 맛이다. 그 간극을 모르고 허세와 어리숙함을 혼동하면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지’ 꼰대가 되는 거다. 나이 상관없이.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자신의 간극을 더 과장하고 희화화하며 우리가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위트와 해학을 되살려 온다. 위트와 해학은 때때로 여성 직장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토악질 나는 ‘씨발스러운’(죄송, 난 점잖아서 욕 같은 거 못하는데 책에 나오는 표현이다.. 씨~~이~~위~~발) 기억을 술기운을 빌려 토로하기도 하고, 술취한 척 젊은 날의 치기와 우울을 냅다 싸지르기도 한다. 아니면 술친구가 남자친구가 되는 자연스러운 술의 기적을 로맨틱하게, 골드스타 냉장고와 함께 떠올리기도 하고,(정확히는 골드스타 냉장고 안에 담긴 소주의 기억이겠지) 필름이 끊겨 택시 조수석에서 기어이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펼치는 저자의 모습을 남얘기하듯 낄낄 희화화한다.  

  술꾼으로서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음.. 이건 다 뻥일 거다. 그 많은 술을 먹고 그 많은 상황을 이렇게나 천연덕스럽게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술드시는 분들은 다 아실거다. (아니라고?아니라고? 나만 그런다고? 아니 좀 솔직해지자구요…) 그래서 술이 깨고 숙취와 함께 몰려오는 어떤 부끄러움들은, 끝내 모른척 하거나 포장하거나, 숙취와 함께 지우기 위해 애를 쓰는 법이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는 동안 사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다 술꾼의 뻥일거야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왜 술자리에서 우리를 기가막히게 재밌게 해주는 친구들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의 말빨에 넋을 놓고 술잔에 술이 차는 것인지 내 속에 술이 차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경험.. 그걸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을 거다. 


  신나게 이 책을 읽다가 술에 관한 단편 소설이 한 권 떠올랐다. 최인호의 <술꾼>.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절 한 소년이 술집에 찾아 온다. 이 소년은 아버지를 찾아 술집 이곳저곳을 다닌다. 집에 있는 어머니는 아파 누워있고, 자신은 그런 어머니를 돌보다가 아버지를 찾는다는 이야기. 술집에서 소년은 묵묵히 술을 마시던 사내들의 술을 홀짝홀짝 받아 마신다. 소년의 이야기는 무르익어가지만, 독자들은 이 소년이 술에 취해 술꾼 특유의 뻥을 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은 거렁뱅이에게 돈을 훔쳐 소주를 사먹고 자신의 거주지로 휘청휘청 걸어간다. 

  ‘술’에 취한 전후 사회의 모습은 희망없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껑충 뛰어 오른다. 술에 취한 소년과 소년의 거짓말과 소년의 상황은 모두 미래에 대한 작가의 전망이다. 단편 소설의 매력이 가장 뛰어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소설은 마지막 반전을 통해 예리한 통증을 선사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거다. 이 소설을 지금, 여기에서 읽어야 한다면 왜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술로 비틀대고 있는 것일까? 술에 잠긴 사회가 혹시 우리 미래를 주정뱅이로 만든 건 아닐까? 우리 사회를 어른들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 하나 더, 권여선의 <안녕,주정뱅이>

  책 제목에서 벌써 술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단편집은 수록된 모든 작품에서 술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는다. 특히, 나는 이 소설집의 처음에 실려 있는 <봄밤>을 각별하게 좋아한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이크 질렌할 처럼 보이던 시절 출연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술과 사랑, 술과 상처가 찐득하게 엉겨 붙어 있다. 소설 속 영경과 수환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술'은 바쿠스적 의미에서의 향략과 축제, 사랑의 달콤함에서 오는 중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술'은 두 사람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파탄을 거부하지 않는다. 권여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뻔히 보이는 파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삶의 법칙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술'은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교묘하게 섞는 역할을 한다. '술'의 본질은 어쩌면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김혼비의 에세이는 신난다. 향극한 싱글몰트와 하이볼, 때때로 쓴 소주를 번갈아 마시는 짜릿함이 있다. 750ml 달콤쌉쌀한 와인 한 병으로 혀를 마비시키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그 끝에 밀려오는 숙취감은 술에 취한 작가 김혼비 때문이 아니라, 결국 이놈의 ‘술 권하는 사회’때문인 것 같다. 

  이 글은 100원짜리의 역할을 했을까? 100원짜리 글 한 편이 쉽지 않은 일이구나.. 붕어빵의 꼬리만큼 달콤하지도, 노래 14곡은 언감생심, 시멘트 벽돌 한 장의 무게감을 갖추지도 못한 그런 글들…… 

  그러게 10원짜리 글을 쓴다고 우길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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