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 : 선의는 돌고 돈다
“어떻게 하면 낯선 이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거야?”
그동안 목구멍 끝까지 치솟았던 물음이 마침내 빠져나왔다.
플라야 델 카르멘 호스트 데이비드는 지금까지 만나온 호스트들처럼 아주 친절했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말로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주한 이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데이비드는 출근하기 전에 직접 만든 과일주스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또한 내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세노테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운전해서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그의 친절이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선뜻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이.
그는 어깨를 한 번 치켜세우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카르마를 믿어.
내가 누군가를 도왔을 때
지금 당장 나에게 물질적인 보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 거야.
하지만 이 친절은 돌고 돌다가
내가 정말 필요로 할 때 돌아오게 될 거야.”
문득 플라야 델 카르멘에 오기 이전에 칸쿤에서 함께 지냈던 호스트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여행을 갔었어. 그때가 10년 전쯤이었지. 호스트 직업은 의사였어. 그녀가 여행을 잘 하라며 카드 한 장을 주더라고.”
“아하, 교통카드?”
“아니, 신용카드. 그때 다짐했어. 앞으로 우리 도시에 여행을 오는 여행자들을 만난다면 나도 똑같이 베풀어야겠다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그들이 말한 카르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는 못 했다. 하지만 내가 길 위에서 받은 사랑을 조금씩 베푸려고 노력 중이다. 외국인 여행자가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길 안내를 해주거나 지하철 티켓을 사는 것을 도와주는 사소한 것들부터. 자그마한 기념품을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이들이 보이면 엽서라도 두어 장 사주어야 마음이 놓인달까.
프랑스 파리 호스트 세드릭과 크로아티아 풀라 호스트 마르코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업무로 인해 평창 올림픽을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둘을 초대하여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었다.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작은 정성이지만 한국에 와서 현지인의 집에 초대된 기억은 그들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베풀고 살아갈 이유가 될 테니까.
선의는 돌고 돈다. 내가 베푼 친절은 손 끝을 타고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유랑하다 내게 돌아오는 기간이 까마득히 멀지라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있겠지.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나의 작은 손짓이 세상을 좀 더 따스하게 만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