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맹이여행자 May 15. 2019

화려했던 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 사라지는 게 아니야. 그저 지나가는 거지.

마지막으로 싸는 배낭.


“영은, 준비 다 됐어? 이제 출발해야지.”


나는 마지막으로 배낭을 싸고 있다. 놓고 온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왠지 모르게 미적거리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짧게 머물렀던 케이의 집을 떠나고 나면 길었던 내 여행은 정말 끝이 나는 걸까.


고맙게도 케이는 공항까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평소와는 달리 재잘거리지 않는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 갑자기 그가 차를 공터에 멈춰 세웠다.


깜깜해서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던 곳.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더 선명하게 케이의 목소리와 함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곳.



“여기가 어디야?”

“저기를 봐.”


그가 가리킨 곳은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을 하는 드넓은 공간이었다. 몇 개는 착륙을 위해 날아오고 있는 듯했고, 나머지는 이제 막 이륙을 하는 중이었다. 뒤로는 화려한 스트립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케이, 내가 왜 긴 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라스베이거스를 택한 줄 알아?”

“글쎄?”

“닮았다고 생각했어, 나랑. 겉으로 보기에는 값비싼 호텔들이 줄지어 서있고 화려한 조명들로 눈부신 곳이잖아. 그런데 실상은 마약이나 도박 등으로 얼룩져있지. 뭐랄까…… 나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면서 화려해 보이는 삶을 살았거든. 속은 곪아 터지고 있었지만.”


그는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갈 텐데 어떤 기분이야?”

“잘 모르겠어. 실감이 안 나. 긴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랄까.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 다시는 오지 않을…….”


정말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어온다.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는 이제 끝이 난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내려와야겠지. 



“영은, 나는 라스베이거스가 정말 좋아.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매력이 있지.

어느 것이 더 초라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걸.

너의 삶에서도 낮은 오고 밤은 오겠지.
화려했던 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그저 지나가는 거지.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날 거잖아?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인 것 같아. Just, 정말 그냥.”


안녕, 라스베이거스. 안녕, 길었던 나의 여행.


그는 이 말을 마치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공항을 향해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비행기가 어디론가 향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듯이 내 인생에서도 이 여행보다 더 행복할 날이 다시 오게 될까. 

공항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그와 가벼운 포옹을 한 뒤 짧은 인사를 전했다.


“나 다시 돌아올게. 잘 있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응수했다.

이전 12화 카르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