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바깥은 여름』를 읽고
이 책은 박물관에서 언어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부터 노량진 고시생활에서 이어진 연인 관계까지 흔히 볼 수 있는 갈등과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충동들을 그려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이가 병들고 아픈 반려견을 위해 안락사를 시키려고 애쓴 모습이다. 경험이 없는 아이는 그만큼 채워지지 않은 여백을 순수함으로 채운다. 순수한 영혼에게 죽음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아픔이 아니라 상대가 느낀 고통을 줄여서 꾸역꾸역 버티는 생의 의지를 끊어내주어 아름답게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어 그 의도가 맑아 보였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인 안락사가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일하는 중학생처럼 미친놈 취급하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의 생을 마감한 권리가 아무리 순수한 의도가 있더라도 타인이 결정할 수 있을까? 아니지 말 못 하는 개더라도 어쩌면 살아가기보다 주삿바늘을 맞는 걸 더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찝찝함을 느낀 와중에 아이가 유혹에 손쉽게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 욕망이 있으니 인간이 참 간사하기도 하고 영민한 거 같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를 위할 때 변하는 에너지가 생기는구나 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굳건했던 그의 의지가 ‘다음’과 ‘좀 더 노력’이라며 합리화하면서 점점 타인의 생을 끊는 의지는 밀려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간다.
왜 원하는지 모른 채 그렇게 원하던 물건을 사고 만지작거리지만 이내 연락할 사람이 없고 흥미를 잃었다. 사람이란 그런가 보다. 보이지 않는 걸 추구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덜컥 잡아버린다. 순수한 만큼 땀으로 일궈진 돈으로 욕망을 손쉽게 꽃을 피운 아이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에 취한다. 눈앞의 죽어가는 강아지보다 작고 네모난 창을 바라보는 아이는 남들과 연결된 사회에 소속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아이는 울었을까? 허탈함에 유튜브를 켰을까? 다시 한번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합리화를 할까? 후회를 할까? 그가 선택을 미룬 대가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작가가 표현 안 한 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가 채울 빈자리인 거겠지. 간절했고 노력했던 아이를 비난하지 못한다. 자살이란 죽음과 억눌린 욕망이란 생의 의지가 투명한 아이에게 투영된 에피소드를 보고 아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욕심이 커서 잊힌 중요한 걸 놓치지 않을까 반성하게 한다.
내가 아이라면 후회했을거다. 잃고 나서야 소중한 게 비로소 느껴지는 경험주의자니깐. 어떻게 모든 걸 예측하면서 살수 있을까라고 합리화한다. 그래야지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깐. 살아갈 의지를 갖는다. 다만, 순수한 아이가 스스로가 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쌓인 감정을 느낀 만큼 자라날 거 믿는다. 어린 시절에 내가 애착했던걸 멀리 보내본 일이 없었기에..
한줄평 : 덮고 나니 잔잔한 무언가가 밀려온다. 이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