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상처주는 세상을 지지하는 자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 실천적 지혜>를 읽고
어렸을 적 수십, 수백 번을 돌려본 아끼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영화가 개봉했다면 나를 포함한 여럿에게 아마 꽤나 불쾌하게 다가왔을 테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아름다운 부분도 많은 영화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걸.
최근에 벨 훅스의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 실천적 지혜>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미래에 교육자가 될 일이 있을까 싶지만, 벨 훅스의 교육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벨 훅스가 쓴 다른 책인 <올 어바웃 러브>를 읽고 난 다음에 읽은 책인데, 두 책으로 내가 경험한 벨 훅스는 신기한 사람이다. 흑인 여성으로서 세상에 질문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기가 본능처럼 내재된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랑에 관한 여러 책을 낼 만큼 사랑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을 많이 품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만 해도 <증오의 과거를 가르치기>와 <다시 사랑하기>라는 두 개의 장 제목이 나란히 있는 페이지를 보면 그를 더 잘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동시에 포용하기를 잊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머리가 크고 가치관이 확립되면서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이 무엇인지가 점점 뚜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것에 기여하는 사람보다는 망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내 삶에 전혀 들이지 않아야 할까? 아니, 들이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해온 나로서는 벨의 포용력을 이해하거나 적용하기란 어려웠다.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벨은 특히 예술작품이나 작가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나도 때론 내가 꿈꾸는 세상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작업 전체를, 재능 전체를, 존재 자체를 전면 부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좋아하는 일부를 이미 발견해버린 후에는 죄책감 같은 게 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상상력을 엿본 게 죄가 되진 않겠지만.
책 속의 다음 대목은 사랑과 배움을 주는 어떤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실망스러움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대변한다.
“어떤 작가와 사상의 작품을 사랑하고 거기에서 배울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형태로든 그 작품이 지배자의 사고방식과 결합되어 있으면 우리는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실망스러움은 항상 감사와 기쁨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당신이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착취당하고 또는 억압받는 그룹의 일원일 때, 지배자의 문화를 지지하는 어떤 사상가나 작가가 무지의 순수함에서 그러했을지라도, 그들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을 지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충돌에 벨 훅스 역시 질문하고, 자신의 일화를 들려준다. 예를 들면 여성 폄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닌 작가의 오래된 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구절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 때 그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비판받아 마땅한 과거나 사건의 꼬리표를 지닌 작가와 작품들을 모조리 배제했을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은 무엇일지 벨은 고민한다. 그의 지인 문학 연구자들조차도 이런 작가들의 작품일지라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한다고 한다. 대화를 시작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강한 편견과 증오심을 표현할 때 독자들은 비판적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그들의 가치관에 동조하거나 눈감아 주자는 말이 아님을 뚜렷이 하지만, “내 마음에 말을 걸어오는” 작품의 일부까지도 부정하거나, 그 안에서 내 정체성을 찾을 기회조차 까지 쳐낼 필요는 없다는 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감정이 작가나 작품의 것이 아닌 오로지 내 감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의 장면이나 구절에 대한 사랑은 나의 감정인데, 작가나 작품이 가진 결점이 밝혀졌다고 해서 독자나 관람자가 느낀 감정까지도 지워야 한다면 그것은 감상자에게 억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태도에 정해진 답도 없을 테고, 어려운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다만 벨 훅스의 책을 읽은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