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출몰했다 기척 없이 사라지는 게 인터넷 용어의 속성이라지만, 가끔은 붙잡고 출현의 이유를 따져봐야 할 것 같은 단어들을 만난다. 최근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단어는 바로 '티어'다. 게임에서 캐릭터나 아이템 등을 약하고 강한 정도에 따라 구분하는 단어로 쓰이는 '티어'는 요즘 게임 분야 밖에서도 사람이나 자동차, 음식 등의 서열을 나누는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1 티어 여신"이라는 큰 제목이 첫 마주침이었고, 이후에도 "외모 티어", "자동차 티어" 등으로 접했다. 이상하게도 어울리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의 조합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작년에 인터넷에 떠도는 트렌드 능력 고사라는 테스트를 재미로 풀어보다가 문항 중에 ‘네카라쿠배당토’가 보기로 나온 걸 보고 흠칫 놀랐던 기억이 있다. 소위 ‘알아주는’ 직장으로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 라인 등의 회사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알잘딱깔센'이나 '홀리몰리과카몰리'와 같은 단어들과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나 어린 학생들까지, 얼마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연말에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처음 '네카라쿠배당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던 때였다. SKY로 시작하는 대학 서열도 모자라 직장에도 이런 '리그'가 생겼구나 생각하며 많이 씁쓸해했었다.
국어사전에서 '서열'의 뜻을 검색하니 "일정한 기준에 따라 순서대로 늘어섬. 또는 그 순서."라고 한다. 뭔가를 순서대로 늘어놓는다는 것은 흩어져 있던 것들의 앞뒤 순서를 따지고 일렬로 정리한다는 뜻이다. 다니는 학교나 직장, 사는 동네나 아파트, 차량부터 외모까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사회로 나가는 순간 어떤 열에 속해있다. 내가 있는 곳이 열의 앞일지 뒤일지 신경을 쓰는 동안 우리는 삶을 직선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너와 나를 구분 짓는 게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유행어들을 마주하는 것은 서로를 구분 짓는 수많은 선들이 구체화되고 보편화된 모습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삶을 직선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유연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열의 앞이 어디고 뒤가 어딘지 모두가 알고 전제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 밖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어렵다. 선 안에서 지내는 것은 때론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자의로든 타의로든 선 밖으로 나오면 누구든 이탈자가 된다. 이탈자로 사는 것은 쉬이 가능하거나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다.
한편으론 편리한 부분도 있다. 열을 따라 걷는 데에는 판단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줄인지, 내가 원하는 자리인지도 모른채 열 안에 있다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게 된다.
무엇보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까먹는다. 예전에 지하철 노선도를 실제 거리와 방향을 적용해 입체로 구현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모든 선이 수평으로 늘어져있는 평면도만 보다가 공간에 구현된 노선도를 보니 그제야 내가 지나는 역들이 그저 작은 점이 아니라 거대한 공간 안에 얽혀있는 위치들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다각도에서 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시야는 금세 납작해지는 듯했다.
'유연성'은 몇 년 전부터 나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로서 뿐만 아니라 생각의 유연성, 삶의 방향에 대한 유연성이다. 타인에 대한 자세도 해당되지만, 나에게 있어서 유연성을 기른다는 건 나 자신에게 더 많은 걸 포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비교군과의 관계를 필수적으로 하는 '티어'나 '서열' 안에서의 나에게는 너그럽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뻗으며 나의 크기를 점이 아닌 공간으로 넓힌다. 삶이 나의 맘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포용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은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1 티어에 속하지 않아도, 열의 우두머리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랑한 생각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