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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Jul 23. 2023

알아서 잘 지내지는 곳


  나에겐 할아버지가 있다. 살아계셨다면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라고 불렀을 조부모님은 아빠가 결혼을 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평생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뿐이었다. 할아버지 뿐이었으니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외할아버지도 아니고 수택동 할아버지도 아닌, 수식어 하나 없는 나의 그냥 할아버지 주변에는 그에 걸맞는 무심한 평온이 흐른다. 용건만 간단히. 권유도 거절도 한번만.

  점심 먹어야지. 저는 배가 안고파서 조금 이따 먹을게요. 그래, 알아서 먹어.

  

  할아버지는 내게 “알아서 해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안 덥니? 방에 선풍기 놔줄까. 음… 괜찮을 것 같아요. 오늘은 그냥 자 볼게요. 그래 알아서 해라.

  엄마는 엄마의 생일이 되면 할아버지의 건조하고 짧은 전화 한통에 서운함을 표하곤 했다. 내 건방진 추측으로는 서운함은 일부에 불과하고, 오히려 한결 같음에 표하는 경의에 가까웠다. “진짜 아버지 다워.” “우리 아버진 이런 사람이야.” 어머니에게도 이런데, 길어진 가지만큼 나에게는 곱절로 더 무심하시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현재의 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어쩌면 전혀 궁금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의 나에 대해선 무얼 알고 계실까? 엄마 아빠가 종종 여기에 맡기고 여행을 갔었는데. 언젠가 엄마에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보다 손녀를 원해서 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아무튼 나는 그런 것은 기억나지 않고, 지금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심하시다는 것만 안다.


  할아버지댁에서 자고 가는 날, 하루를 모두 여기에서 보내고 가는 날이면 내가 할아버지댁에서 컸다면 어떤 아이로 자랐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자기 저녁 메뉴를 알아서 고르는 아이, 평온하고 독립적인 아이. 평온하고 독립적인. 할아버지가 그렇다.

  몇년 전에는 취미로 아침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할아버지는 이제 앉았다 일어날 때면 두어번의 반동을 주거나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다. 어쩌다 내가 부축을 해드릴 때면 발걸음을 한 발 떼자마자 “놔.” 이렇게 짧고 굵게 말씀하신다. 나를 거부하거나 퉁명스러운 “놔”는 아니고 “이제 됐어, 놓아도 돼” 라는 의미로 팔을 놓아야할 때를 명확하게 알려주실 뿐이다.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할아버지가 좋다. 할아버지 곁에선 이렇게 해야할까? 이 정도 해야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로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여름날 할아버지와 왕숙천을 걷고 와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할아버지도 물 한잔 드릴까요?” “난 됐어.” “할아버지 물을 너무 안 드시는 것 같아요.” “그래, 병원에서도 물을 더 마셔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렇죠?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별로 목이 마르질 않아.” “제가 반잔만 따라둘게요. 이만큼은 드셔야해요.” 콸콸콸. 우유부단한 나도 할아버지 곁에선 조금은 단호하고 명쾌해진다.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할아버지는 좋은 습관들을 많이 갖고 계신다. 9시 뉴스 보기, 10시 반에 취침. 새벽 3시에 일어나 2시 30분쯤에 도착한 조간신문 읽기. 조간신문은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배개 높이보다 높아졌을 때쯤 분리수거하기. 전날 꺼내 해동해둔 떡과 직접 사흘을 걸려 만든 나또 두 숟가락과 아몬드 한 줌 먹기. 왕숙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까지 왕복 6km 산책. 돌아와 씻고 직접 만든 요플레에 냉동 블루베리 넣어 먹기. 할아버지가 몇 년동안 거르지 않고 수행해온 루틴들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다. 새벽 3시요? 그래. 넌 몇시에 일어나니? 나는 차마 10시라고 말하지 못하고 한 시간 줄여 9시라고 답한다. 아주 그냥 잘 자는구나. (이 말이 어쩐지 웃겨 혼자 속으로 피식 웃었다. 물론 어떤 의견이나 어조도 담겨있지 않았고 그래서 더 웃음이 났다.) 그래, 잘만 큼 자. 네.


  나는 일본어와 중국어 교재가 벽면을 가득 채운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이 글을 쓴다. 일본어 책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함이고 중국어 책들은 할아버지께서 배우기 위함이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 댁에 머무는 날이면 일본어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는데, 매번 히라가나 가타카나만 몇 번 따라쓰는 것에서 멈췄다. 그 다음을 배울 수 있을 만큼길게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종 할아버지가 친구들과 일본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 나도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게 주문을 하고 농담을 주고 받는 멋진 할아버지를 상상했다. 멋졌을 것이다.

  대신 조금 전에 우리는 내복 차림으로 부엌에 쭈그려 앉아 쓰레기통 안에 드글대는 날파리를 잡았다. 잡았다기 보단 전기로 태워죽였다. 할아버지 댁이 날파리에게 점령당한 것을 보고 집에서 전기 파리채를 가져왔다. 내가 파리채를 쓰레기통 입구에 바짝 붙여 덮고, 할아버지는 과도로 쓰레기통 안을 푹푹 찔렀다. 타닥타닥 소리가 오십번도 넘게 났다. “아주 무자비하구나.” 할아버지는 쓰레기통을 더 깊게 쑤시게 파리채를 옆으로 좀 치워보라고 했고, 나는 한 마리도 놓쳐선 안된다고 했다. 타닥타닥. 탁. 타닥. 이제 나머지는 살게 둬.네? 안돼요~ (부엌 바로 옆이 내가 자는 방인데…) 쟤네도 좀 살아야지. 내일 또 잡으면 돼. 네, 그래도 오늘은 두발 뻗고 자겠네요.

  사실 나는 날파리가 머리 위를 휘젓고 다녀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도 할아버지댁에서 두발 뻗고 잘 잔다. 나도 그런 것쯤에는 무심해진다. 기상시간도, 정해진 저녁 메뉴도 없는 이 곳에서는 알아서 잘 지낼 수 있는 씩씩함과 무심한 평온이 자란다. 할아버지께 전수받은 것들을 돌돌 잘 말아 몇겹의 오래된 이불과 함께 서재 방바닥에 깔고 누웠다. 이제 잠을 청해야겠다.





매거진 42 vol.2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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