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는 사람인 동시에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 글은 한 편지로부터 시작된 생각이기도 하고, 대화에 대한 글이기도 하니 편지의 형식을 빌리겠습니다. 최근에 저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는 단체 전시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참 많은 질문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작가들 간에, 그리고 작가와 관람자 간에 질문과 대답이 활발히 오갔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다가 제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질문을 하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지요. 성의껏 답변하는 작가들을 보니, 또 제 차례가 되어 한참 답변을 하고 나니 “작가는 순 대답만 하는 사람이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창작을 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답을 하는 것이 유일한 역할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나요? 왜 이 재료를 사용했나요? 여기는 왜 이렇게 표현했나요? 작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놓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질문하는 자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관람자일 때에도 다르지 않았거든요.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하는지, 이런 주제엔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전 작업 시리즈와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것의 뒷면을 알고 싶은 욕심에 영업비밀에 가까운 질문들을 기회만 되면 여쭤보았지요.
어떻게 보면, 아주 안일하게 본다면 작가는 아무거나 내키는대로 창작을 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아무 이미지를 주워오고, 아무 재료를 택해서 아무 방식으로 풀어놓아도 그 일을 꾸준히 하는 한 사람들은 당신을 작가라고 부를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의 결과를 공개하는 순간 사람들은 분명 당신에게 질문을 할 것이고, 아무렇게나 한 작업은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작업이 되고 맙니다. 마치 면접 같은 것이죠. 내 안에 좋은 것이 없다면 좋은 대답이 나올리 없으니까요.
반면, 다큐멘터리 감독은 질문자의 역할에 가깝다고 합니다. 감독은 이야기를 줍는 사람, 이야기가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하며 질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김일란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마마상*(2005)>을 촬영하며 만난 미스 리 언니께 보내는 편지를 보면, 그도 “질문은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몫이라 생각”했다고 실토합니다. 이 생각을 깬 건 “그래서 다큐는 왜 찍는데?”라는 미스 리의 질문이었다고 해요. 왜 찍느냐... 양해를 구하고, 행동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으면 될 줄 알았던 인물이 역으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온 것이죠. “여기 여자들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라.” 감독님은 이 충고에, 그리고 인물들을 영화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 계속해서 물어보는 출연자의 질문에 심장이 쿵쿵거렸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문득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사이에 권력이 있음을, 그리고 그 권력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건 “카메라 뒤에 있는 자의 오만과 카메라 앞에 있는 자에 대한 편견”이라는 멋진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곤 질문 종사자로서 나의 질문이 대답하는 자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역으로 그들이 질문하는 자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 지 끊임없이 되묻기로 결심합니다.
감독님의 말처럼 질문자와 답변하는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권력관계가 생깁니다. 질문하는 역할에 익숙한 사람은 이를 간과하기 쉽지만요. 한국인들은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어쩌면 권력관계의 약자인 답변자의 입장을 잘 알기에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한쪽 구석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제 생각에 질문은 너무 두려워해서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도 안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문현답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질문자의 역할과 질문의 이유를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이는 평소 궁금한 게 많아 별 생각 않고 쉽게 질문을 던지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잘 한다는 게 어떤 거냐고요? 아, 이 사람은 질문을 참 ‘잘' 한다 라고 느낀 적이 있는데, 바로 CBS 라디오 피디인 정혜윤 작가님의 책을 읽고나서였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으면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질문으로 가득한 수첩을 들고 다니다 적재적소에 빛을 발하는 한 페이지를 꺼내드는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졌지요. 쓰여진 텍스트는 간결하지만 강렬하고, 여백이 많은 페이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일례로 작가님은 삶의 지혜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지명들을 살펴보고는 미지의 도시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짜고짜 수협에 찾아가 가장 인상이 순해보이는 한 경매사분께 말을 겁니다. 그리곤 경매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고 다소 의아한 질문 하나를 합니다. “좋아하는 어부도 있어요?” 작가가 찾던 삶의 지혜를 알려줄 수 있는, 경매사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이었죠. 이 질문은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도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심장한 소개말과 함께 작가를 한 어부에게 데려다줍니다. 작가는 어부를 만나 다시 물었습니다. “저, 선생님,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었어요?”
어부는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듯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어부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작가를 남도로 이끌었고 경매사에게 한 질문은 그를 어부에게로 이끌었습니다. 어부는 어떤 답변을 들려주었냐고요? 어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같은 말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만난 이가 “그 뒤로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라고 회상한 어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정혜윤 작가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의 여정들에서 좋은 질문은 그를 좋은 답변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들의 답변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더불어 타인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됩니다.
저도 최근에 뿌듯한 질문을 하나 꺼낸 적이 있습니다. 아기에게요. 아기와의 대화는 주로 97% 의 질문과 3%의 대답으로 이뤄지니, 아기들과 대화(아닌 대화)를 하다보면 질문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나봅니다. 어느 주말에 아기가 있는 가족들과 소풍을 간 날이었습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정말로 뭘 물으려는 것도 아닌데 평소에 자꾸 질문 형식으로 아기에게 말을 거는 습관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소풍 내내 말도 못 하는 아기들에게 질문을 쏟았습니다. "배고팠어~?" "그쪽으로 가고 싶었어~?" 의문문으로 밖에 말을 못 거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소풍의 여파인지 소풍에서 돌아온 날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다 신우**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자마자 저는 속으로 물었습니다.
"신우야! 너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아마 제가 신우를 실제로 만난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물을 게 확실합니다. 그건 신우에게 너는 사랑스러운 어린이야! 라고 말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사랑스러움의 출처에 대한 신우의 대답이 듣고 싶어서 입니다. 신우처럼 사랑스럽고 엉뚱한 답변을 기대하면서요.
나영언니도 이준이***에게 종종 묻습니다.
"이준이는 세상에 왜 왔어?"
추측해보건대 그건 이준이가 엄마에게 와줘서 기쁘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시에 이준이의 귀여운 대답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일 겁니다. 이준이는 나영언니와 똑 닮은 얼굴로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을 하고는 그때그때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보고 싶어서. 엄마를 키우려고. 추워서 이 집에 왔어.
이준이에겐 나름 존재의 이유에 맞먹는 답변이겠지만 그 모습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문자가 뿌듯해지는 답변이지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귀엽고 엉뚱한 대답이 듣고 싶다면 귀엽고 엉뚱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짝반짝하고 말간 대답을 듣고 싶다면 말이죠. 이것이 어른들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보다는 훨씬 더 귀여운 질문을 생각해내야하는 이유입니다. 잘 기억나진 않으시겠지만, 여러분도 대답하는 사람이었을 시절에 반갑지 않은 질문엔 아무 대답이나 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좋은 대답, 귀여운 대답에는 좋은 질문, 귀여운 질문이라는 대가가 따릅니다. 역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의 질문 수첩에는 어떤 질문들이 적혀있는지 묻고 싶어 또 입이 근질거립니다.
*”미군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에서 허드렛일뿐만 아니라 이주여성과 미군 남성 사이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나이 든 여성을 ‘마마상’이라고 부른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정세랑, 김인영, 손수현, 이랑, 이소영, 이반지하, 하미나, 김소영, 니키 리, 김정연 외 10명 지음, 창비, 2021.
**방송인 김나영의 첫째 아들. 생판 모르는 남의 아기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아기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사랑스러운 아기가 아닌 사랑스러운 어린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나영의 둘째 아들. 생판 모르는 남의 아기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아기다.
매거진 42 vol.2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