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배우기 시작했다면 끝을 내야지! 제과기능사 도전!

나의 세 번째 국가기능사 합격을 자축하며...

"술을 잘 드시나 봐요? 조주기능사 자격증이면 술에 관한 거죠? 왜 자격증 따신 거예요?"

"사업가, 정치인, 법조인, 외교관 이런 분들 서로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관찰한 게 있었어요. 서로 어느 지역의 와이너리, 어느 브랜드의 위스키, 도정률 몇 퍼센트 사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지식과 소양을 빗대어보기도 하고. 술에는 문화와 역사, 경제, 정치 같은 게 다 녹아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갈 때 편하게 아이스브레이킹도 할 수 있고, 깊은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국 사람들은 밥 한 끼, 술 한 잔 같이 한 사람들과 더 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그것이 정치든, 비즈니스든, 외교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술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어요. 이것 때문에 사람들과 재미있는 대화거리도 되고.

그리고 전 무엇이든 한 번 관심 가지게 되면 그냥 취미로 끝내는 게 아니라 꼭 학위든 자격증이든 도전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코로나 시절, 소수 가까운 사람들 초대해 홈파티로 집에서 술 마실 기회가 많아졌을 때였다. 느닷없이 조주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 것은. 당장 취업할 것도 아닌데, 뭐에 쓸모가 있으려나 했는데. 이번 입사 실무면접 때 마지막 질문 내용이 이 자격증이었다. 사실 "자격증" 란에 쓸 거라곤 이거 하나뿐이라, 쓸까 말까 망설이다 썼는데. 어, 의외로 덕분에 실무면접 마무리를 편하게 웃으면서 마쳤다.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뜬금없이 시도했던 조주기능사와 마찬가지로, 제빵기능사도 제과기능사도 같은 맥락이다.

차가운 겨울 백수시절 초반 나에게 따뜻한 온기와 몰랑몰랑한 반죽처럼 부드럽게 위로를 준 제빵 수업이 좋았다. 처음엔 홈베이킹할 정도 배우면 되겠다 싶었는데, 좋아하게 된 것을 끝까지 알고 싶은 마음, 시작한 것은 제대로 끝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제빵기능사로 제과기능사로 이어졌다.

덕분에,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대화도 되고, 떡과 빵, 케이크와 관련한 요리법이나 영양학, 위생학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기도 하고.



제빵기능사도 제과기능사도 필기는 한 번에 패스했지만, 실기는 두 번만에 합격했다. 필기, 실기 모두 60점만 넘으면 통과. 그러니 백점을 맞기 위해 오버해서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60점도 만만치는 않다. 실기시험 경우 세부적인 평가항목과 나름의 기준이 있긴 하지만, 또한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평균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되는 건데, 그 평균 위에 전공생들, 그리고 이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될 일.


실기시험 경우 필기시험을 합격해야 시험을 신청할 수 있다. 실기 시험 한 차수는 2주. 아무리 시험을 제일 먼저 보더라도, 그 차수 마지막 시험이 다 끝나야 시험 최종성적을 공식적으로 Q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번에 합격하면 좋겠지만 불합격이라면, 최종성적 확인 이후 즉, 총 3주 정도 시간이 나서야 다시 재시험을 신청할 수 있다

즉, 한꺼번에 제빵제과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꽤 걸린다.

직업 차원에서 이 자격증이 필요하다면, 몇 달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학원 다니고 연습한 아니었지만,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필기시험, 실기시험 덕분에 나의 백수생활 중 7개월 심심치 않게 보냈다.



제빵과 제과의 차이점은 바로 발효.

제빵은 밀가루에 계란, 버터 같은 유지류, 이스트를 넣고, 반죽한 다음 발효기에 넣고 1.5-2배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덕분에 애기 엉덩이처럼 뽀송뽀송 부드러운 반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과는 이런 과정이 없다.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같이 넣어 거품을 낸 다음 밀가루 등을 투입하는 공립법,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거품을 낸 다음 밀가루 등을 투입하는 별립법, 유지에 설탕을 넣어 크림화한 다음 달걀을 서서히 투입하는 크림법 등등. 방법들도 가지가지다. 슈처럼, 아예 버터와 물, 소금을 한껏 끓인 다음 밀가루와 계란을 투입하는 방법도 있다. (즉, 외워야 할 레시피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


제과 첫 번째 실기시험 과목은 흑임자 롤케이크.

아뿔싸, 커다랗게 네모난 롤케이크 시트를 말기 위해 물에 적신 천 위에 박력 있게 한 번에 탁 올려야 하는데. 시트가 잘못 구워졌는지, 틀에서 시트 분리를 잘못했는지  케이크 시트에 쭉 긴 금이 생기고 부서졌다. 생크림 바르고 아무리 눌러봤자, 롤케이키가 잘 말리지 않았으니 이건 뭐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탈락!


두 번째 실기시험 과목은 공립법 버터스펀지 케이크.

이번엔 일부러 실기시험을 이번 차수 마지막 즈음 날짜로 잡았는데, 이번 차수 2주 기간 동안, 20개 레시피 중에 난이도 높은 롤케이크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합격률이 낮았던 이유 때문일까, 어려운 품목을 제외시킨 건?

버터스펀지 케이크는 예상문제 중 하나여던터라, 이전보다는 무난하게 만들었다. 65점 정도 나오겠거니 했는데, 예상대로 65점 딱 나왔다.

이것이 이 시험의 장점. 꼭 백점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 중간에 실수 한 두 개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최종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제빵제과 시험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 이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모든 조건을 내 뜻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수많은 과정 중에 한 두 개 실수가 있더라도, 끝까지 가다 보면 또 의외로 결과가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마음을 평온하고 침착하게, 하나 하나 정성을 들이다 보면, 이전의 실수도 다 메꿀 기회는 또 있다는 것.


나를 구원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그 무슨 대단한 이념이나 투쟁이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것,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들이라는 것.

우리를 매혹시키는 건, 그런 온기와 달콤함이라는 것.  

 

임원면접과 연봉협상을 마치고, 새로운 직장 입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 돌아보면, 참 많은 낯선 것들을 시도했지만 제빵제과 기능사는 기록으로 남아 다시 돌아볼 무언가가 되겠지. 따뜻한 위로였다.

이전 18화 인생 6막쯤, 다시 회사 지원서 제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