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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지도자과정 집중수련: 석굴암에서 명상을 (3)

2박 3일 일정 마지막 날.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지는 새벽, 꼬불꼬불 길을 따라 석굴암에 다다랐다.

아마 중학교, 고등학교 였나. 불국사, 설국암으로 수학여행 온 기억이 있는데, 마치 처음 오는 길처럼 낯설다. 하기야 몇 십 년 전 일이니,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석굴암 부처님이 이렇게 작은 암자 속에 있었던가. 이런 작은 곳에, 이런 세계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니! 이것이 나의 첫인상.

불자인 분들은 부처님상 앞에서 절을 세 번 하고, 나도 눈치껏 따라 한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정자세로 앉아 명상의 시간을 함께 한다.


신라시대 774년에 완공되었다니, 그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하고 갔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겼길래, 이런 깊은 산속에 이토록 장엄한 부처상을 만들어두었을까.

아, 한없이 나의 존재가 작게만 느껴진다. 이 불상은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나, 그 앞에 있는 나의 남은 생은 찰나에 가까울 정도로 짧겠구나.


마치 커다란 죽음 앞에 놓인 기분이다.

아니, 영원의 존재 앞에 있는 기분이다. 죽음이야 말로, 영원인 걸까. 

이렇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미미하지만, 특별한 사건.


명상 스승님들께서는

"이 뭣꼬,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것은 뭣꼬."

성철스님이 대중들에게 자주 던졌다는 화두를 종종 내어주셨다.

전부 깨달았다고 하면 오만하고 거짓이겠지만, 나의 본질에 대해서는 끝까지 질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것,

삶의 유한함과 한계를 알고, 이번 삶조차 사실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것,

어떤 마음도, 어떤 생각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타인도, 어떤 물건도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것,

어떤 노력도, 어떤 성과도,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큰 일을 해낸다고 해도 그것의 무상함도 알고 있는 이것,

경계가 없어진 이것, 무언가 내면이 공허할 정도로 비어버린 이것.

이 몸뚱이로, 이번 생을 선택한 이것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으로 채우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아,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직업을 가지고, 돈도 벌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운동도 하고 취미활동과 자원봉사도 하고. 이렇게 명상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이렇게 비어있는 마음으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다.

"나" 혹은 "이것"은 정말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무엇으로 이 마음이 채워질까.

이게 나의 화두인 걸까.


차라리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아니면 아예 초월한 수행자의 삶이든. 무엇인가 강렬하게 바라고 절실하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좋으련만.

허무도 아닌, 좌절이나 공허도 아닌 이 텅 빈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은 막막하기만 하다.


명상 스승님들은, 자신이 깨닫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깨달은 이후, 다른 이들과 나누고 돕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하셨다.

하지만 그러기엔, 사람들에 대한 기대나 애정도 많이 식어버리고, 내 마음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친절과 배려를 베풀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런 나는, 다른 이들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가야 할까.

더 이상 내게 상처 준 이들, 힘들 때 냉정했던 이들에게는 너무나 실망해 말조차 걸고 싶지 않아 졌는데. 내가 친절과 도움을 베풀었던 무작위의 타인조차, 결국 너무나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인간들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식어버렸는데.

그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까. 선행을 베풀 때조차, 다음 생을 위한 덕업을 쌓는 거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위안하면 되는 걸까.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고, 감정에 감정이 더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호흡에 집중하며 생각과 감정을 비우고 채우길 반복.

30분의 명상시간은 금세 지나가버렸다.


천천히 부처님상을 올려다본다. 고통 속에 매말라 뼈만 앙상한 십자가 예수님과는 다르게, 작은 암자 속 부처님은 전혀 마르지도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고요하고 침착하다.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 너그러운 듯하나 냉엄해 보인다.

어제 오후 명상수업 때 들은 자애명상 문구가 떠오른다.


나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안전하고 자유롭길. 그리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길.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 감사하고 존경하는 이들. 그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안전하고 자유롭길.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길.

무한의 살아있는 존재들도 마찬가지.


소중한 이들의 이름과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동시에, 나를 아프고 슬프게 했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도 마치 한 세트처럼 떠오른다.


나의 화두에 대해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자애문구처럼 살기만을 바래야겠다. 텅 빈 마음속에, 이것을 징표 삼아 새겨 두어야겠다.



명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방명록 같은 큰 노트를 내민다.


"이름, 주소 쓰시고, 바라시는 소원을 쓰시면  스님들이 대신 매일 기도해 드립니다."


이런, 현금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삼성페이까지 결제된다. 머리가 어질 할 정도로 집중하며 숙연했는데, 명상을 마치고 일어서자마자 곧바로 세속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공짜인 기도는 없고, 사람들의 소원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무엇을 기도해 달라 할까, 고민하다 건강과 행복, 지혜와 결단력을 썼다. 결제를 마치고 나오려는 데 아쉬워, 한 글자 더 썼다. 사랑.

바라는 것 없이 빈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참 바라는 것들도 많다. 나의 명상은, 나의 화두는 이토록 얄팍한 헛된 것이었나,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이 시간은 참 귀하다.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 날 것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 멍텅구리 어리석은 나를 보게 되더라도, 어설프고 허술한 빈 틈을 보더라도.  

미소 지으며 온화하게 나 자신을 대할 수 있을 때까지, 명상의 시간은 내게 너무나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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