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찾기
층간소음의 가해자로 한참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정원이는 일부러 발을 더 심하게 구르면서 엄마에게 무언의 반항을 했다.
동생과 다툰 것으로 시작된 훈육은 정원이의 태도로 인해 더욱 길어진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면 정원이의 행동이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정원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정원이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화를 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던 7살의 어린아이가 딸 정원이와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알게 된 내면아이의 존재.
이후로 약 3년 동안 우리 부부의 내면아이 찾기는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이 때별 각자에게 미친 상처를 찾는 것이었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 과거 속에서 나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내면아이란
쉽게 해석하면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현재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이나 상황을 과장하여 해석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때로는 집착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내 안에 상처 받은 어린아이, 치유받지 못한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원이와 대립했던 것은 사실 내 안에 속에 존재하는 상처 받은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내면아이는 왜 형성될까?
갓 태어난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의 존재 속에서 느끼는 포근함이 아이의 생존본능과 직결되면서 가족은 아이에게 가장 큰 존재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이에게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역할도 요구된다.
물론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아이에게 웃고 떠들고 놀고 울고 하는 등의 재롱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부 중 누군가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의 부재 속에서 홀로 독박 육아를 하며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면,
그 스트레스는 온전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의 부재를 대신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그러한 공허함이 위기감으로 다가와 정서적 불안정을 가져다주고 내적 갈등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불안정한 욕구를 채워달라고 더욱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이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구성원의 욕구를 채우는 것에 더욱 집중할 것인지...
나의 경우에는 나의 정서적 안정보다는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적 욕구가 더욱 컸던 것 같다.
결국 ‘나'라는 존재가 요구하는 욕구는 점차 묻어두고, 타인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타인 위주의 삶은 인생전반의 지침서가 되어 작장 상사를 위한 삶을 살게 되는 시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부부의 내면아이 찾기는
30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명의 남녀가 각자의 성장환경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를 되짚어보고,
우리의 부모는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의 양육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의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파트너와 공유한다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면아이 찾기를 위한 여정의 파트너가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니까...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부부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고 신뢰를 쌓아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했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이대별 각자에게 미친 상처를 찾는 것이었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 과거 속에서 나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우리 부부가 서로의 내면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대화의 일부이다.
남편
그건 우리 어머니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아니 어머니가 전부인 거 같네요.
어렸을 때부터 모든 활동을 어머니와 함께 했죠. 공부, 식사, 놀이, 여행...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선생님이기까지 했으니 말 그대로 24시간 함께했던 거 같아요. 가끔은 편안한 엄마였기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호랑이 엄마" "호랑이 아내" 였기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어머니께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내 마음을 진심 어리게 공감받아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성장과정에서 나의 어머니는 내 속에서 "애증" 관계가 되었나 봐요.
"애"는 늘 자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과 교사 집단에서도 인정받고 성공하는 모습, 늘 내 곁에 있어주시던 모습에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죠. 그래서 늘 어머니가 강조하는 돈, 권력이 전부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니까. 자아에 대한 고민 없이 어머니의 가치와 내 가치를 정확히 일치시켜버렸어요. 남이 요구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내 아내에게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강요하고 나도 자식에게 그런 부모가 되려고 나를 이끌어가고. 독립한 이후에도 어머니 같은 분을 찾기 시작한 거 같아요. 스꼴라 같은 사람,, 혹은 군 선배,, 누군가 이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왜냐하면 어머니를 증오했으니까.
"증"은 남편에게 함부로 대하며 우리 가정을 불안하게 만든 어머니가 너무 싫었어요. 잘못한 누나와 나를 무섭게 때리고 훈육하고 공감하지 않은 모습들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겠죠. 늘 남편을 무시하고 누나와 나에게 아버지 흉을 보는 모습에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생겼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내에게 완벽한 남편이 되고 싶었나 봐요. "착한 남편 콤플렉스".. 그리고 내가 증오하는 어머니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어요. 남편을 존경하고 존중해주는 사람.
그래서 내 아내를 끊임없이 내 지배하에 두려고 했어요. 여보의 실수를 찾아서 나의 우월성을 드러내어 존경받고 싶었나 봐요. 여보가 참 똑똑하고 지혜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언을 구하지 않을 만큼.. 조언을 구했다가 지배당할까 봐. 그래서 계속 여보를 공격하고 협박했네요.
차분히 앉아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니 또 하나의 빗장이 풀리네요. 내가 왜 그토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지난 6년간 여보를 괴롭혔는지.
미안해요 여보. 이 내면아이가 언제 온전히 떠나갈진 모르지만 적어도 요 녀석이 누군지는 알았으니 조금씩 희석되겠죠. 이제는 여보랑 찾아볼래요. 여보에게 조언을 구하고 함께 걸어갈래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내가 관계하는 많은 타인들 중에서 나와 하나가 되어서 먼길을 함께 가야 할 단 한 사람은 여보니까요. 오롯이 여보를 인정하고 나를 이해하고. 그렇게 걸어 나갈게요.^^
아내
어제의 대화를 나누며...
성급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감사함을 잊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려 했던 것도 나였고, 나 자신의 페이스를 갖지 못하고, 여보를 쫓아가기에 급급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 그것을 비난하며 그런 감정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어제 대화를 통해 그러한 것을 자각하면서 무척이나 불편한 감정이 들었어요.
내면아이다...
나의 부족함을 포장하고, 남에게 비난을 돌리는 비뚤어진 아이. 어찌 보면, 여보가 말한 부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는 게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는 내가 비뚤어져서 말을 올바로 전달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현재의 심리는 건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내 내면아이가 나를 곱게 포장하고 있었다는 느낌. 그리고 내가 맘이 불편할 때,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비뚤어진 말로 그게 표출되었다는 거...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는
수많은 내면아이와 직면했고,
그 불편함을 이겨내고 서로를 다독였으며,
서로 간의 신뢰를 더욱더 쌓아 나갔다.
이후 달라진 점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면아이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치 한 아이를 찾고 나면
내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내가 찾은 내면아이는 진급에 대한 욕심이라는 내면아이가
결국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는 부모님의 강한 기대가 있었다.
이런 기대는 진급뿐만 아니라 돈, 즉 허영심으로돌 이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우위를 보여줌으로써 안정을 찾는 이런 마음.
그렇다면 내면아이를 찾았다면 이런 나의 행동은 사라져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쩌면 나의 내면아이는 나의 이런 성향을 이해하는 수준이고
이를 통해 정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정도이지 않을까?
결국 내 내면아이 자체는 이겨낼 수 없이 그 성향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면아이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내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내면아이를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그런 나의 아이를 찾아냈다면 이젠 그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점차 내면아이가 커가면서 완전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