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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네이수 Feb 02. 2024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리★

Locals Specialty Coffee

인간을 사랑하는 도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는 그동안 나 자신을 얽매어온 굴레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특별한 마법이 있다.


오래전 물에 잠겨 있던 이 도시는 사람을 통해서 여러 개의 섬으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사람들로 인해 유럽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탈바꿈하여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사람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은 암스테르담은 그 보답으로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과 의견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서로 다른 개인의 특별함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관용의 정신으로 두 팔 벌려 다정하게 그들을 안아준다. 세월을 초월하여 다양한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이 선사하는 자유와 관용의 공기아래 숨을 쉬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평화로운 생태계를 이루었다. 90여 개의 크고 작은 독립적인 섬들을 240여 개의 다리들로 이어 붙여진 이 도시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불편함 없이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Locals Specialty은 내가 있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De pijp에 있었다. Local s specialty는 암스테르담에 3개 정도 있는데 하나는 브런치 콘셉트의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는 이렇게 식당과 카페가 함께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많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다 보니 식사와 커피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일부러 커피만 전문으로 하는 De pijp의 'Locals specialty' 지점을 방문했는데 이곳은 테이블이 없이 테이크아웃만 허용되는 곳이다.


이 작은 카페를 찾느라 조금 헤맸는데 놀랍게도 항상 내가 지나가는 길에 있었다. 이때까지 내 눈이 띄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바로 옆집에 큰 한식 레스토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지겹도록 한식을 먹으면서 외국에 나가면 나의 한식레이더는 어김없이 한식당을 찾아낸다. 이 식당은 한국인보다는 항상 더치들이 바글바글하고 식당밖에 긴 줄이 있었다. 항상 사람이 가득 차 있는 한식 레스토랑에 눈길을 뺏기다 보니 그 옆에 조그마한 이 카페를 놓치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Locals Specialty는 항상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눈뜬장님처럼 모르고 살았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소유하지 않는 삶에 대해 사람들을 열광했다. 무소유의 삶. 필요한 것을 제외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는 삶. 그렇게 하여 좀 더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미니멀리즘은 코로나 이후로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로 부상하였다.


이곳 De Pijp의 Locals Specialty는 바로 이 미니멀리즘의 정신을 구현한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와 바리스타. 어느 것도 낭비되고 있지 않는 공간이다. 조그마한 공간에서 스포트라이트는 바리스타를 향해 비추고 있고 바리스타는 이 무대의 주연배우 같았다.

 

캐리비안 출신으로 보이는 바리스타가 환한 웃음으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당연히 에스프레소를 주문했고 이번에는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받은 바리스타의 눈빛에서 살짝 긴장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은 긴장이 아닌 자신감이었다는 것을 그가 에스프레소를 뽑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Locals Specialty에서 판매하는 필터커피는 한 종류였다. 콜롬비아 싱글오리진. 놀랍게도 농부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의 이름은 Chiquita. 왠지 농부의 이름을 보아하니 여성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커피체리의 종류는 게이샤로 내추럴공법으로 만들어졌다. 내추럴 공법은 커피나무에서 잘 익은 커피체리를 골라 그대로 말린 후 건조된 체리를 벗겨내어 생두로 가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커피체리를 건조하게 되면 커피과육이 생두로 충분히 스며드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커피생두의 본연의 맛에서 좀 더 단맛과 바디감을 더할 수 있다. 이 생두를 생산한 커피농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시간과 돈이 드는 워시드보다 내추럴을 택했다는 것으로 보아 커피농가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어느 농부의 피, 땀, 노력이 들어있는 커피.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스타 중의 ★는 역시 바리스타


점점 몰려드는 손님에도 바리스타는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커피를 만들어낸다. 여유롭게 사람들과 대화하며 동시에 리듬을 타듯 커피를 만들고 우유를 스티밍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아이돌가수가 공연하듯이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능숙한 솜씨로 자신만의 스테이지에서 최선을 다해 커피를 만든다. 에스프레소를 전해주는 그의 미소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는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음미하니 처음보다는 점점 산미가 올라오지만 레몬의 신맛처럼 강렬한 신맛이 아닌 딸기와 베리의 산미가 느껴진다. 카페라테도 식기 전에 얼른 먹어보았다. 과연 우유의 고소한 단맛이 제대로 올라왔다. 커피가 전혀 뜨겁지도 않았고 적절히 스티밍 되어 있어 비린내는 없다. 만약 이 상태에서 단맛이 더 올라왔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아로마는 약하지만 고소한 너티의 향은 충분히 있었다. 정말 괜찮은 커피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세상이 도래한 마당에
바리스타는 꼭 필요한 존재일까?


한국에는 이미 로봇이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커피를 굳이 바리스타가 만들지 않아도 된다. 편리와 효율률 측면에서 바리스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그리고 바리스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커피맛은 똑같으니까 결국 돈이 드는 바리스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바리스타의 가치는 커피를 잘 만드는 것에 있는 걸까?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Locals specialty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면 즐겁게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서 여유와 즐거움이 배어 나온다. 로봇이 이렇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바리스타의 실력에 대한 거라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쉽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바리스타들이 출전하는 커피 월드컵이라고 보면 된다. 영상을 보면 이들은 열정적으로 심판들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커피를 소개한다. 어떤 이는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친절하게 그리고 어떤 바리스타는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커피를 소개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바리스타들에게는 흉내 내지 못할 고유의 스타일이 지문처럼 있는데 이러한 프레젠테이션은 로봇이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리스타는 자신이 어떠한 커피를 만들었으며 어떻게 상대에게 전달해야 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력이 본질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의 실력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실력을 기준 삼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줄을 서야 하고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된다.








마지막 에스프레소 한 방울을 털어 넣은 후, 따뜻한 라테는 손에 들고 카페를 나갈 준비를 했다. 원래라면 아무 말 없이 나설 나였지만 그때 왠지 따뜻한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문을 나서며 뒤돌아서 바리스타에게 한마디 던졌다. "최고의 커피였어요"라고.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당연하죠."라고.

내심 "고마워요"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그의 답변에 당황하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빵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자신감 있는 답변으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최고의 커피를 받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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