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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Apr 29. 2021

의문의 방문자

삼성동 무역센터, 한국 경제의 상징인 아셈타워 그랜드볼룸에는 미국의 인텔사가 코드명 콘로에로 더 잘 알려졌던 차세대 듀얼코어 프로세서인 코어2 듀오 메롬의 한국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멀티코어 프로세서의 초기 단계인 듀얼 코어는 기존 CPU 집적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세서의 핵심 연산장치인 코어를 다중으로 탑재해 명령어를 동시에 실행시킬 수 있게 한다. 또한 기존 반도체가 90나노미터 공정에 6백만개 정도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다면 인텔의 듀얼 코어는 65나노미터 공정을 구현해 집적도를 대폭 향상시켜 반도체 양산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라 자부하고 있다.


발표회장의 단상에는 IT 강국 한국의 위상을 인정하기라도 하듯 인텔 CEO 폴 오텔리나가 직접 나와서 자기 회사의 제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500여평의 발표회장은 수 많은 국내 컴퓨터 제조업체 임원과 개발자들 그리고 전문 기자들로 물샐 틈이 없었다. 인텔이 미국 국내 발표 후 전 세계 순회 발표로는 한국이 처음이라 일본과 중국의 관련 업종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세개의 커다란 스크린에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모 순간에는 가끔 카메라 플래시만 터질 뿐 오페라 대작을 보는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사실상 지금까지 전세계 IT산업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와 인텔의 CPU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들 속칭 '윈텔'이 지적재산권을 움켜쥐고 고급인력과 대량 생산 설비를 배경삼아 지속적으로 정보통신 산업을 끌고 나갈것이라는 의견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발표회가 끝나갈 무렵 그랜드볼룸의 출구로 한 중년의 남자가 폴의 성능 테스트 결과를 자랑하는 흥분된 목소리를 뒤로하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문을 나서고 있다.


관악산 지하 벙커, 70년대 박정희 정권 말기 완공되어 지금은 수도방위사령부가 들어선 관악산 기지의 지하 2백미터 위치에 몇년 전 비밀 연구소가 들어 섰다. 그곳의 한 실험실에 한 떼의 연구원들이 모여 뭔가 야릇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들의 뒷켠에는 인텔 발표회장을 나섰던 그 중년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서 실험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정전기 방지 처리가 된 탁자 위에는 각 설탕 크기에 정8각형으로 가공 된 반투명 유리 조각을 중심으로 각 종 전자 기기들이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 많은 선과 조직들이 어지러우면서도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단순히 보면 하나의 반투명한 공기돌 같은 유리조각에 불과했다. 광케이블의 한쪽 끝의 전자 장치에는 키보드와 마우스, 다른 기구에는 광디스크가 연결되어 있고 반대쪽의 기구에는 LCD모니터가 연결되어 있다.


살짝 푸른색이 들어간 보안경을 쓴 여성연구원이 이제 막 디스크를 삽입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우스로 데이터 로딩 버튼을 눌렀다. 모래시계 모양의 아이콘이 나타나고 얼마 후 데이터의 로딩이 완료되었는지 프로그램 실행 버튼이 나타된다. 아까의 그 연구원이 뒷켠의 중년 남성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어 마우스 버튼을 누를 것을 눈짓으로 요청한다. 중년 남성은 손을 좌우로 젓다 손바닥을 펴 내보이며 그 연구원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양보 한다. 다시 모든 사람들의 눈은 LCD 모니터로 쏠린다. 마우스 버튼을 누르는 연구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드디어 버튼을 눌러 프로그램이 실행되자마자 8각형의 유리 조각 주위에 일순 오로라와 같은 희뿌연 빛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LCD 화면이 바뀌며 건축물의 뼈대가 주르륵 올라간다. 곧바로 100여층 정도의 건축물이 외벽까지 완성되어 빙글 빙글 돌아가며 입체적으로 전체면을 고루 보여준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는 듯한 장면이다. 지켜보고 있던 수 명의 연구원들이 동시에 괴성을 질러대며 펄쩍펄쩍 뛰며 서로 얼굴을 붙잡고 돌아가며 끌어안다가 그 중년 남성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실장님 보셨죠?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모두 수고 많았습네다."


실장이라 불린 북한 억양을 쓰는 예의 그 중년 남성은 연구원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아까와 같은 희미한 미소로 덤덤히 회답할 뿐이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현직 문성극 대통령이 물끄러미 모니터를 보며 현 정세에 골몰하고 있다. 요즘 들어 대내외적으로 도무지 골치 아픈 일만 터지고 있었다.


사흘 연속 전국적으로 쏟아져 내린 폭우가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다. 예년과 같은 풍년을 기원하는 늘상적 장마비가 아니다. 한 시간에 400미리미터를 초과하는 장대비가 한꺼번에 내리면서 토사를 쓸고 내려와 도로를 덥치고 민가를 삼켰다. 대부분이 산악 지역인 강원도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도로뿐만 아니라 전기와 통신 설비가 파괴되고 지하에 매설된 수도 배관마저 끊겨 나갔다. 곧곧의 고립된 지역에서는 전기가 불통되어 냉장고의 음식은 부패되고 텃밭의 야채들도 그 형체를 잃었다. 지천이 물인데 빗물을 받아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연명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렇게라도 살아 남았다면 다행이다. 벌써 100여명의 국민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몇일 째 재난대책본부에서 상황을 지휘하던 문 대통령은 급기야 '국가위기경보'를 발령하고 집무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국가위기는 폭우에 의한 자연재해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두번째로 발사 한 북한의 미사일이 국외에서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키다 태풍이 되어 국내로 상륙했다. 일본이 중심이 된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이 러시아와 중국의 소극적 대응속에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일본의 기를 살려 놓았다. 대포동 2호로도 불리는 북한의 백두산급 중거리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5천킬로미터의 사정거리를 예상하고 있을 뿐 그 기술과 성능은 베일에 쌓여 있다. 항간에는 마하 7의 속도로 수직상승해 대기권 이탈 후 목표지역의 상공에 머물다가 마하 20으로 수직 낙하하는 구 소련이 개발하다 실패했던 부분 궤도 폭격시스템(FOBS)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상 사정거리의 제한이 없어져 전 세계 모든 지역을 그 사정권에 둘 수 있으며 어떠한 탄도미사일 방어체계(MD)로도 요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우방격인 러시아와 중국도 유엔에서의 대북 제재에 은근슬쩍 찬성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신빙성을 얻고 있을 정도다. 북한을 적국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태도는 단호했다. 특히 일본은 FOBS가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 하더라도 열도 전역이 그 사정권에 든다. 때를 맞춰 일본 극우파들의 선제공격설과 같은 강경 대응이 나오는 이유는 이미 2차 대전때 핵폭탄의 공포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기화로 미국과의 MD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다시 한번 재무장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의 일부 보수 편향의 신문들은 여기에 맥을 같이하는 우익세력들과 함께 연일 대통령의 대응 방법을 문제삼아 청와대와 정부를 공격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조하며 공조를 하는 반면에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임을 질타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실장이 사석에서 한 발언이 빌미가 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보유 그 자체만으로 전쟁 억지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지극히 개인적 견해가 새어 나가면서 그렇찮아도 들끓던 보수우익들에게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된 것이다. 그들에겐 일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정책실장이 이런 정도의 사고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가 않았다. 이때다 싶어 보수 신문들은 자체 사설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의 칼럼을 경쟁적으로 실어가며 청와대를 공격했고 일부 과격 우익단체는 신문광고를 통해 대놓고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심지어 한 월간지의 대표는 '이적 행위자 문성극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10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국민을 선동하고 있었다. 일부 정계의 야당 인사들도 은근 슬쩍 이들을 부추키며 정권 교체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이미 탄핵을 경험한 대통령의 정치 지도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적막을 깨며 이병완 비서실장이 들어섰다. 노크를 했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 선 것이다. 대통령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비서실장이 들어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대통령님."


"어! 언제 들어왔어요?"


대통령은 그제야 눈을 꿈벅이며 책상 앞에 서 있는 비서실장을 올려 본다.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걱정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잘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들이지요"


"NSC와 각 부속실에서 곧 전략보고서가 올라올 겁니다. 그나 저나 갑자기 면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나요?"


"아닙니다."


"..."


"전혀 듣도 보도 못하던 조직의 위원장이라고 합니다."


"민간 단체인가보군요?"


"아닙니다. 정부 산하 비밀조직이랍니다."


"대통령이 모르는 정부 조직도 있었답니까?"


"...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 국정원장을 통해서 요청이 들어 왔습니다."


"국정원장은 어떤 조직인지 알겠네요."


"물어봤습니다만, 국정원장도 자세히는 모르는 조직이랍니다."


"그래요? 국정원장도 모르는 비밀 조직이라... 거 흥미롭군요. 일단 한번 만나봅시다."


"내일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부속실에서 올라 온 전략보고서를 읽다 만 대통령이 뒷짐을 지고 서서 촛점없이 정원을 응시하고 있다. 이제는 장마비가 제법 가늘어져 이슬비가 되어 잔디를 적시고 있었다. 올 여름은 정말 지긋지긋하고 지리한 장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책상위의 인터폰이 울린다.


'어제 말씀드린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들여 보내세요."


문이 열리며 50대 전후반의 깡마른 사내가 비서실장의 안내로 들어 선다. 오늘은 웬일인지 경호실장까지 사내의 한 발짝 뒤에 바짝 따라 들어 온다. 비서실장이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 와 대통령의 옆에 서며 왼손을 들어 사내를 소개한다.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 박철웅위원장입니다."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라는 의외의 말에 대통령의 눈이 놀라는 표정이다. 박철웅위원장이라 소개된 사내가 대통령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 머리를 숙여 인사한다.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박철웅입니다."


"아 예 어서오십시요."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건성으로 악수를 하고 소파를 권하며 먼저 자리에 앉는다. 사내와 비서실장이 따라 배석을 하고, 부속실의 비서관이 녹차를 놓고 나가자 마자 위원장이 말을 꺼내려는데 대통령의 질문이 앞선다.


"고구려연방위원회라고 했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온갖 브리핑은 다 받아봤지만, 대한민국에 그런곳이 있었나요?"


"예, 인사가 늦어 송구스럽습니다."


"아니 뭐 송구스러울거야 없지만 도대체 뭐하는 곳 입니까?"


담백함인지 급한건지 대통령의 직설적인 성격답게 바로 치고 들어간다.


"말씀드리자면 길지만... 우선, 독대를 요청드립니다."


"독대요? 제가 대통령이 된 후 청와대에 독대란 없습니다."


"예 이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안의 성격상..."


판단력이 빠른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눈치를 주며 퇴실을 주문한다. 비서실장이 엉거주춤한 사이 대통령 뒤에 서 있던 경호실장이 대통령 옆으로 돌아 나오며 급하게 한 마디 한다.


"대통령님! 안됩니다."


비서실장을 바라 보던 대통령이 머리를 옆으로 돌려 경호실장을 바라 본다.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데,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권위와 경호 관행을 파괴한 대통령이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괜찮습니다 경호실장, 국정원장이 보증하겠지요."


"그래도 안됩니다."


경호실장 본연의 직무상 곧바로 물러 설 자세가 아니다. 경호실장의 강경한 대응에 집무실 분위기가 묘해진다. 엉거주춤하던 비서실장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한 마디 거든다.


"대통령님! 손님에겐 실례입니다만, 국정원장의 소개로 면담을 하시지만, 경호실에서 확인해 본 바로는 주민등록상에도 기재가 안 된 국적불명 신원미상의 인물입니다."


대통령을 향 해 꾸부정히 서 있던 경호실장이 거 보라는 듯 등짝을 꼿꼿이 세운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주시하며 반 농담조로 말을 건넨다.


"혹시 북에서 오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의외의 대답이다. 아니 실로 충격이다.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라는 의문의 단체명에서부터 시작해 더군다나 앞에 있는 위원장이 북쪽 출신이라니, 아무도 입을 못 열고 어안벙벙이가 된다.


"대통령님! 제 신원은 전임 대통령님께서 보장하실겝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잠시 생각을 하던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돌아보며.


"도서관에 전화 좀 넣어봐요."


"전임 대통령님께 말입니까?"


"그래요. 요즘 통 기별도 못 드렸군요."


"아 아 예 예 알겠습니다."


황당하다 못해 믿기지가 않은지 좀체로 흥분을 안하는 비서실장이 말을 다 더듬는다. 곧 이어 전화가 연결되었다는 비서관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타고 흘러 나온다. 비서실장이 앞에 있는 전화를 들어 대통령에게 건네 준다.


"대통령님, 저 문성극입니다."


'대통령이라니요? 이제는 그냥 예전처럼 선생이라 불러 주세요.'


인사를 끝내자 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던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간간이 '예' 소리만 내며 상대방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대통령이 소파로 몸을 기대며 생각에 빠진다. 접견실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대통령이 적막을 깨듯 윗 몸을 일으키며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번갈아 바라본다.


"믿을만 한 분이니 나가 들 보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예, 그럼."


끝까지 양보 안할 것 같던 두 사람이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거의 동시에 더듬대답을 하며 슬며시 접견실을 물러 난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시 대통령의 단도직입적 질문이 시작된다. 앞에 앉은 위원장이 숨을 한번 들이키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간의 일을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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