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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Apr 29. 2021

하늘이 내린 선물


박철웅 위원장이 일어서자 모두 들 따라 일어선다. 이제 남북 합작에 의해 탄생한 광 반도체 시제품을 보러 갈 차례다. 박철웅 위원장이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돌아보며 다소 미안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비서실장과 경호실장께서는 이곳에서 사령관님과 대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번 프로젝트가 비밀 아닌게 없지만, 실험실 내부 만큼은 그 설비나 기술뿐만 아니라 개발 연구원들 신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는 곳입니다. 실례합니다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다. 박철웅 위원장이 앞장서고 대통령과 남궁 고문이 뒤따른다. 집무실의 절반을 막아 벽을 친 칸막이 중앙에 커다란 레버를 돌리는 철문이 가로 막고 있다. 문의 오른쪽 벽에 안면과 홍채를 동시에 식별하는 바이오 생체인식기가 있다. 출입 허가 버튼을 누른 박철웅위원장이 얼굴을 밀착시킨다. 출입 허용을 뜻하는 '삐익'하는 신호음이 들린 후 레버를 돌려 가볍게 문을 연다.


"대통령님 들어가시지요."


벽에 걸려있는 멸균복을 입고 에어커튼을 통과해 이 물질을 제거한 후 연구실로 들어선다. 연구실이라지만 반도체 공장을 연상시킨다. 각 종 기계들로 가득차 있다. 정면에 한 사내가 대통령 일행을 맞이한다. 


"대통령님 반갑습네다. 김영철입네다."


박철웅 위원장과는 달리 북한 억양이 강하게 배어 나오는 말투의 김영철교수가 대통령 일행을 맞이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아 그 김책공대 김영철 교수시군요. 고생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평소 존경하는 대통령님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네다."


"여기 박위원장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큰일을 하셨습니다."


김교수의 어깨 너머로 멸균복을 입은 십여명의 연구원들이 도열해 있다. 김교수가 대통령을 안내 해 연구원들 앞으로 다가 선다.


"저희 팀원들입니다. 북쪽에서 온 친구들이 반이고 절반은 남쪽 기술자들입네다."


전체 연구원들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대통령도 일일이 맞절을 하듯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한다. 연구원들과의 인사를 끝낸 대통령을 박철웅 위원장이 안내해 간이 회의실로 향한다. 회의실 정면에 하얀 전동스크린이 내려와 있고 노트북에 연결된 빔 프로젝트가 벌써 빛을 발하고 있다. 


대통령이 먼저 자리에 앉고 그 뒤에 몇 몇 연구원들이 자리를 찾아 앉는다. 박철웅 위원장이 스크린 옆에 섰다.


"오늘 함께 자리해 주신 남궁 고문님의 전폭적인 외부 지원하에 우리 연구원들의 합심과 열정으로 드디어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슴을 대통령님께 보고 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우선 남한의 대통령님만을 모시고 간소하게나마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전 연구원들과 저 개인 또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을 모시고 오면서 그간의 정황에 대해서는 저와 남궁 고문님께서 대략적인 설명을 드렸으므로 실제 기술과 제품에 대한 설명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계신 김영철 교수님께 부탁드립니다."


박철웅 위원장이 서두를 끝내며 김영철 교수를 연단으로 불러 세웠다.


"대통령님 그리고 남궁 석 고문님 반갑습니다."


김영철 교수도 말로만 들었지 외부에서 모든 연구 기자재를 물심양면 후원해 준 남궁 석 고문은 초면이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탄화수소실리콘'의 소개 화면이 펼쳐진다.


"우선 탄화수소실리콘을 개발해 내신 포항공대 양동근 교수님을 먼저 소개 올리겠습네다."


탄화수소실리콘이란 신물질 개발자로 소개된 양동근 교수가 엉거주춤 일어나 좌중에 인사를 하고 대통령과 남궁 고문이 고개를 돌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듯 잔잔한 미소로 눈을 맞춘다.


"탄화수소실리콘은 이번에 개발한 광프로세서의 모체가 되는 신물질로서 소개드린 양동근 교수팀이 각고의 노력끝에 개발에 성공했습네다. 일반 반도체는 실리콘이나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네다. 광 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빛과 전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탄화수소실리콘과 같은 신소재의 광 반도체가 필요했습네다. 광 반도체의 주 성분은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차돌맹이와 같은 돌을 정제한 순도 99.9퍼센트의 규소와 독도 해저에서 채취한 메탄하이드레이드의 합성 물질입니다. 메탄하이드레이드와 규소를 3천도 이상의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압축시키면 여기 보시는바와 같이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같은 전혀 새로운 성질의 물질이 만들어집네다."


김영철교수가 미리 준비한 반투명한 유리 덩어리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 나간다.


"규소와 메탄을 융착시키면 'CH4SiO2'라는 복잡한 화학식을 가지는 안정된 신소재로 변형되어 내부적으로 정 8면체의 입자를 구성하며 가공하기에 따라 반도체의 성질과 빛을 증폭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합네다. 축구공만한 분말 합성원료를 고압 농축시키면 보시는 바와 같이 탁구공만한 원석이 만들어집네다. 이 원석을 적당한 크기의 정 8각형으로 절단한 후 아르곤레이저와 헬륨레이저가 주축이 된 초 정밀 레이저건으로 미세하게 내부 가공을 하게 됩니다. 일반 반도체 가공 장비를 개조한 레이저 가공기를 NC프로그램을 이용해 1나노미터 이하의 정밀도로 탄화수소실리콘 내부에 각각의 소자와 광선로를 만들어 주는 것입네다. 일반 반도체가 석영 유리봉을 얇은 웨이퍼로 만든 다음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친 후 칩이 만들어지는데 비하여, 광 반도체는 레이저 빔으로 탄화수소실리콘 내부를 녹이거나 태우게 되면 서로 다른 성질과 특성을 갖는 소자들이 공간속에 만들어집니다. 이들간의 접속 패턴도 탄화수소실리콘 내부에 레이저 가공법에 의해 입체적으로 조각되므로 공정이 간단해 대규모 생산설비가 필요없고 지금의 여기 연구실과 같은 클린룸도 필요없게 됩네다. 그 만큼 낮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됩네다. 레이저로 가공된 광전계 조각은, 광전계라함은 옵티컬 프로세서(Optical Processor)로서 광속으로 동작되는 CPU를 말합니다. 앞으로는 광전계와 같이 되도록이면 전문용어들을 우리말로 지을 생각입니다. 광전계가 상용화되어 세계로 전파되면 관련 용어들도 자연 우리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겝네다."


자신에 찬 김영철교수의 설명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8각형의 광전계 조각은 기능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네다. 맨 아랫단에는 외부기기 연동과 통신을 위한 광 접속부가 있습네다. 이것은 기존의 컴퓨터 전자부품들과 연동시킬 수 있도록 합네다. 그 위에 같은 모양의 연산용 조각이 올려지고 이것은 최대 8개까지 접층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연산용 조각이 기존 64비트 CPU와 엇 비슷한 성능을 발휘합네다. 이것이 8개까지 집적되면 계산적으로는 512비트 컴퓨터가 되지만 실제적으로는 일반 64비트 CPU 8개를 병렬 연결한 수퍼컴퓨터보다 4천배 이상의 성능을 보입네다. 단적으로 설명드리면 로렌스 리버모어 미국 국립연구소에 설치된 IBM의 블루진 수퍼컴퓨터가 280.6테라플롭스로, 그러니까 1테라플롭스가 1초에 1조회의 부동소숫점 연산을 처리하는 단위로 현재까지 만들어진 수퍼컴퓨터중에 세계 최고였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 계산하면 우리의 광전계가 블루진의 성능을 상회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주변기기가 얼마나 잘 설계되어 연동되느냐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이제 더 이상 프로세서의 연산속도는 무의미해지게 됩네다." 


실로 엄청난 성능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함께 배석한 남궁 고문도 국내의 알아주는 정보통신 전문가라 하지만 오늘 듣는 내용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깅영철 교수의 차분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광 프로세서 개발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3년 이스라엘의 랜슬릿(Lenslet)이라는 기업이 갈륨아세나이드(GaAs)로 광변조기를 만들어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상용화에는 실패했습네다. 유럽연합에서도 옥스퍼드대를 중심으로 양자를 이용한 광전자 프로세서 개발이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하에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또한 일본도 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네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 컴퓨터의 기초 기술인 1디지트는 0과 1이라는 비트 개념을 광 프로세서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고 특히나 수 기가헬츠대의 클럭을 통해 CPU를 동작시켜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광전계 성능을 절대 따라 올 수 없습네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광전계는 클럭이 없습니다. 자료가 빛의 형태로 들어오면 빛의 속도로 처리되는 실시간 비동기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저장장치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영철 교수가 적외선 리모콘으로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 메모리와 광 디스크가 점 점 더 고집적 대용량화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앞으로는 보조기억장치니 백업디스크니 하는 개념이 사라집네다. 광전계의 최상위층에 자리잡은 광 저장장치가 이 기능을 대신하게 됩네다. 레이저로 가공되는 한 조각의 광 저장장치에는 최대 12페타바이트(1페타=1024테라바이트)의 용량을 저장하게 됩네다만 전략적으로 용량을 낮춰 12테라바이트 단위로 생산할 예정입네다. 탄화수소실리콘만으로 이런 대 용량 저장장치가 가능한 것은 기억소자 하나하나가 분자로 구성되기 때문입네다. 기본적으로 메탄은 탄소 하나에 수소 4개가 붙어 정 4면체를 구성하고 있습네다. 여기에 실리콘이 융착되게 되면 정 8면체의 완벽한 입자가 만들어집니다. 이 입자 하나가 최소 단위의 메모리가 됩네다. 더군다나 입자 하나마다 3비트 단위의 8가지 서로 다른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비휘발성입네다."


이 말의 의미는, 미국의 HP 중앙연구소가 250만달러를 투자해 추진하고 있는 나노프로젝트에서 선언한 10년내 분자메모리를 구현하겠다는 장기 과제를 벌써 달성했다는 말이 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의 정건영 박사가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실로 어마어마한 기술 진전이 아닐 수 없다. 김영철 교수가 잠시 숨을 고르며 좌중을 둘러 본다. 이쯤에서 질문을 받을 까 했는데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 듯 싶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음을 이어 나간다.


"미국 NASA에서도 광학 방식의 양자 메모리를 개발하겠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이 또한 큐비트(QuBit)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0과 1의 한계에 머물러 있고 빛의 특성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쉬운 일이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다음은 운영체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네다. 운영체계는 근 몇년을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해 온 안재홍 팀장이 직접 설명드리는게 좋을 듯 싶습네다."


김영철 교수가 하드웨어 부분의 기초 설명을 마무리하고 안재홍 팀장을 지목한 후 잠시 대기하다 걸어 나오는 안재홍 팀장에게 리모콘을 건네주고 제 자리로 돌아간다. 흐믓한 미소를 띠우며 자리에 앉아 경청하던 박철웅 위원장이 일어서서 먼저 걸어 나간 안재홍 팀장과 나란히 선다. 안재홍 팀장은 팀장이라 불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듯 싶은 어린 소년이다. 


"우선 안재홍 팀장에 대한 소개를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안재홍 팀장 앞에 선 박철웅 위원장이 그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나 애플 맥 OS를 광전계 CPU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뿐더러 광전계의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없게됩니다. 어른에게 귀저기를 채우는 꼴이랄까요? 또한 오픈 소스 리눅스도 설치하기는 쉽지만 광전계의 특성을 모두 지원하기엔 적당치가 않습니다. 광전계 시스템에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재가 필요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이를 개발할 만한 인물을 조사한 결과 최종적으로 안재홍군이 발탁되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안재홍군은 이제 갓 만 만 18살의 앳된 소년입니다. 그러나 안군의 이력을 보시면 아마 인정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박철웅 위원장이 이렇게 설명을 시작하는 이유는 컴퓨터에 있어서 중앙처리장치인 CPU 다음으로 중요한 운영체제를 개발함에 있어서 그 개발자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포석이다. 박철웅 위원장이 다음 말을 이어가려할 때 갑자기 양동근 교수가 손을 들며 일어선다.


"위원장님! 안군에 대한 소개는 제가 대신하면 어떨까요?"


사실 안군은 양동근 교수가 발굴했고 이번 일에 적극 추천했다. 지금은 안군의 후견인 역활을 하고 있으니 양교수보다 안군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박철웅 위원장의 양해를 구한 양동근 교수가 안군에 대한 일화로 그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


"안군에 대한 일화가 많습니다만 그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안군이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윈도우의 더딘 속도와 자주 다운되는 현상 때문에 흥미를 잃고 독학으로 다른 OS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소스가 공개되어 접하기 쉬운 리눅스를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체계적이며 GUI가 화려한 맥 OS에 매료되었다고 하더군요. 한편 그 나이에 동호회사이트에서 대학생 해커들과 어울리며 개인적으로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가상회사를 만들어 웹 호스팅 서비스를 하기도 했구요. 한번은 다른 호스팅 서비스 사이트를 시험삼아 해킹해서 최상위 운영자 계정을 획득한 안군이 그 사이트 첫 화면에 보안성 경고 문구를 삽입했는데도 별 다른 조치가 없자 서버를 살짝 마비시킨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로그분석에 의한 역추적이 이루어졌고 범인이 초등학생이란게 밝혀지자 창피해서인지 고발을 포기하고 유야무야 사건을 종결시켰답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근처 대학교의 전산학과에 청강을 했답니다. 정확히는 도강이지요. 초기엔 대학생들이나 교수 모두가 흥미로운 마음에 정식 학생은 아니지만 리포트도 받아주고 하다가 숨은 실력을 보고 깜짝 놀란거죠. 일년만에 전공 교수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했던 MIT공대의 은사에게 소개장을 보냈답니다. 겨우 일년만에 MIT공대에 특례 입학을 한거지요. MIT공대 2년차에 맥 OS 차기버전 베타 테스터로 활동하다가 애플사 사장에게 메일을 보내 '전세계적으로 인텔 CPU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맥 OS X를 인텔 x86시리즈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개작하는게 어떠냐'는 건의를 했답니다. 엔지니어이면서도 마케팅과 제품 전략에도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애플사가 컴퓨터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지만 굳이 특정 CPU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더욱이 모든 면에서 윈도우보다는 맥 OS가 확실히 기술적 우위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스티브 잡스 회장이 전격적으로 안군을 발탁해 맥 OS의 x86버젼 개발을 맡기는 모험을 했습니다. 개발 6개월만에 정식명 'MAC OS X on Intel'이라는 OS가 개발되어 공개됐고 이를 사용해 본 얼리어댑터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안군은 애플사나 MIT공대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영웅이 됐습니다. 이 후 애플이 인텔사와 손잡았고 인텔의 듀얼코어 CPU를 맥 시리즈에 적용해 성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애플이나 인텔이나 모두 안군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양동근 교수가 안군에 대해 극찬을 하며 그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다시 박철웅 위원장이 바톤을 이어 받는다.


"아! 제가 모르던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군요.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아 백프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대단합니다. 자 이제 우리 안재홍 팀장이 개발한 코드명 '탱그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박철웅 위원장이 손을 활짝 펴 공연무대에서 배우를 소개하 듯 과장스런 제스처로 안재홍 팀장을 지목하며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귀가 발그스름해진 안재홍  팀장이 반 발짝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한다.


"존경하는 대통령 아저씨 그리고 남궁석 고문님 반갑습니다. 제가 조국에 돌아와 이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양동근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실 고문님은 어릴 때 아빠와 함께 한 번 뵌일이 있습니다. 고문님이 쓰신 '원더랜드'라는 책도 아빠가 보내 주셔서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안재홍 팀장이 아는체를 하자 남궁 고문이 한편 반갑기도 하지만 궁금스런 표정이다. 안재홍 팀장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어릴 때 외국에 나가서 공부만 하느라 조국에 대한 실정이나 뭐 애국이랄까요... 아니면 우리 민족이랄까요 이런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사실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르지 제가 재미있어하고 흥미로운 부분들만 파고 들었습니다. 애플사에 있을 때 양동근 교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서로 깊이있게 얘기하면서 반신반의했지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는 애플사에서 일하는게 더 보람되고 좋았습니다. 망설이면서 한국에 계신 아빠와 몇일을 메일과 채팅을 주고 받으며 상의를 했습니다. 비록 키보드였지만 이때처럼 아빠와 많이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전에 아빠가 보내주신 신라가 통일하는 과정을 그렸던 삼한지와 같은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잠깐 훝어보고 시스템 매뉴얼이나 데이터북들에 빠져 살았었으니까요. 아빠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하면서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미국보다 더 힘쎈 나라가 될 수도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느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더 중요한것은 조국이 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 봅니다."


대통령은 저 어린 소년이 조국이 뭔지, 아니 그 보다도 미국보다 힘쎈 나라가 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대목에서는 가슴 저 한켠이 저려 왔다.


"그럼 이제부터 '탱그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탱그램이란 우리나라에서 칠교라고도 불리는 전통 조각 놀이판입니다. 일곱개의 서로 다른 모양의 조각들을 조합해 여러가지 수 많은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실은 미국갈 때 가져간 건데 심심하거나 엄마가 보고싶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입니다. 외국에서는 이것을 탱그램(Tangram)이라 부릅니다. 이 탱그램의 무궁무진한 조합 원리가 광전계의 기본 원리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개발할 OS 코도명을 탱그램이라고 붙였습니다. 또 하나를 말씀드리면 바이칼 원정대를 다룬 다큐멘타리를 보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전설중에 어릴 때 배운 단군신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주인공을 탱그리라 부른다고 합니다. 탱그리란 곧 단군을 의미하니 결국은 탱그리와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합성한 듯 한 탱그램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전계용 OS 탱그램은 기존의 모든 통념을 배격한 상태에서 개발된 제품입니다. 광전계 자체가 기존의 서양적 컴퓨터의 기본 원리를 넘어서다 보니 운영체제 또한 새로운 개념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아니 여태까지 터득했던 지식을 모두 비워야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컴퓨터는 전기 신호로 전송되는 비트의 0과 1 즉, 한번에 2가지 신호가 기본이 됩니다. 그러나 광전계는 전기가 아닌 빛의 3요소인 RGB를 기본으로 한번에 8가지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컴퓨터 시스템들은 크리스털 발진자에 의한 클럭을 기반으로 시계와 같은 타이머에 의해 움직이지만 광전계는 그런 클럭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본이 달라지니 차원이 완전히 다른 운영체계가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고심을 하던 어느 날, 박철웅 위원장님이 비디오를 하나 보여 주셨습니다. 아마 들으셨겠지만 평양 김책공대에서 촬영한 '단군의 빛'의 실험 장면이었습니다. 이 비디오를 몇번이고 보다가 위원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에 새겨진 음양 태극과는 다른 삼태극과 팔궤의 그림을 언젠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어서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재홍 팀장이 슬라이드에 삽입된 '단군의 빛' 동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마우스로 누르며 설명을 이어갔다.


"위원장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은 한 마디로 쇼크였습니다. 팔괘를 형성하는 패턴들은 컴퓨터의 기본 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게 수천년전, 수천년전이라면 석기시대나 다름없는데 그 때 그런 발명이 있었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당시에 고도의 문명이 있었다'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었지요. 위원장님이 단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면서 천부인과 천부경에 대한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천부경 81자의 한자 해석을 들으면서 뭔가 퍼뜩 스치는게 있었습니다. 천부경에 새겨진 그림 글자들이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단군의 빛에 대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단군의 빛 동영상과 천부경을 비교해 보면서 몇 일 밤을 샜습니다. 어느 한 순간 머리가 환해졌습니다. 천부경의 풀이가 지금 개발한 광전계의 이치와 딱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다. 그렇다면 단군의 빛이 천부인이며 최치원이 발견한 묘향산의 암석에 새겨진 천부경은 단군의 빛의 해설서란 말인가? 또한 천부인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대로 하늘에서 내려 준 비기란 말인가? 안재홍 팀장이 자신이 터득한 단군의 빛과 천부경의 이치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단군의 빛을 보며 풀이한 천부경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문장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끝 문장 일종무시(一終無終一)는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의 개념이고 4괘에서 8괘로 또 64괘에서 4096괘로 끝없이 퍼져나간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일석삼극무진본(一析三極無盡本)은 '하나를 나누면 삼극이 되고 아무것도 없는게 근본이다'라는 말로 삼태극의 태동을 의미합니다. 다음 천일일, 지일일, 인일일(天一一 地一二 人一三)과 같이 나누어 각각마다 의미를 부여해 따로 또 다시 공존함을 의미합니다. 셋 중에 하나라도 빠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로 예를 들어, 이 세상에 내가 없다면 하늘도 땅도 없다는 철학같은 이야기와 같습니다. 네번째로 일적십거무괘화삼(一積十鉅 無?化三)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씩 쌓아 열이 되고 셋을 기본으로 끝없이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이 원리를 이용하여 광전계 조각들을 하나 씩 쌓아올리는 식으로 디자인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다섯번째로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태극 각각이 하나에서 둘로 셋으로 자릿수가 많아지며 서로 셈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그 다음에 오는 대삼합육생칠팔구(大三合六生 七八九)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큰 셋을 더해 육이되고 다음에 7, 8, 9와 같이 한없이 숫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운삼사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의 그림글을 풀이하면 돌아가는 셋 즉, 삼태극이 사각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다섯 여섯개의 고리로 이어진다입니다만, 이 마지막이야말로 정말 감탄할 부분으로 탄화수소실리콘으로 개발한 입자결정들의 정사면체가 다시 정팔면체가 되면서 내부적으로 다섯개의 통로를 통해 무의미한 0을 제외한 1에서 7까지의 3비트에서 파생되는 일곱가지 신호를 송수신하는 것과 똑 같은 원리가 됩니다. 나머지들은 제 개인적으로 볼 때, 감히 천부인이라 단언하는 '단군의 빛'에 대한 오묘한 원리를 찬탄하는 한문시(詩)가 됩니다."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과 종교 단체에서 천부경을 분석하고 나름대로는 종교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천부경을 풀이하고 해설서를 내어 놓았지만 이렇듯 명확하게 들어 맞는 풀이가 있을 수 없었다. 책 한권이 나올 만큼의 구구한 각종 풀이들을 역설적으로 단순 무식하게 대입시켜 버린것이다. 잠시 숨을 돌린 안재훈 팀장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삼태극과 팔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심오한 과학입니다. 제가 신봉하던 서양의 과학은 0과 1과 같이 지극히 단순합니다. 있으면 있는거고 없으면 없는것과 같이 확실하다 못해 아주 냉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일들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면 배척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새로 공부한 우리 동양의 아니 우리 민족의 과학은 너무나 오묘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입니다. 서로 돌아가며 상호 보완적으로 화합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니다. 곳곳에 진리와 철학이 담겨 있고 따뜻한 인간미가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서양에서 배운 학문을 모두 버려야만 했습니다."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한창 공을 차거나 게임기에 매달려 있을 법한 앳된 소년의 얼굴에서 한 순간 고고한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은 영롱한 눈빛이 새어 나왔다.


안재홍 팀장이 검은색 노트북을 향해 적외선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자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무지개 색의 빛들이 정신없이 옮겨다니는 광전계 내부를 묘사한 듯 한 시뮬레이션 모습이 나타난다. 잠시 뜸을 들인 안재홍 팀장이 스크린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며 두 손을 들고 설명을 이어 나간다. 


"광전계의 운영체제로 탑재 할 탱그램에 우리 고유의 사상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인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추도록 노력했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그림 퍼즐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나타난다.


"이제는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더 이상 코딩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미 그 각각의 기능이 정의되어 있는 그림 조각들을 자신이 계획한 입력부-처리부-출력부의 순서에 따라 꿰어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의 일곱조각 칠교판을 이용해 수백가지의 그림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고유의 기능이 정해진 블럭들을 조합한 프로시져를 하나의 아이콘에 등록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집니다."


완전한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저희 팀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와 애플사의 맥 OS용으로 개발된 기존의 수 많은 소프트웨어들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먼저 알아두실 것은 맥 OS는 유닉스를 기반으로 멀티 태스킹을 추구한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맥용으로 개발된 응용프로그램들을 탱그램에서 운영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반면 윈도우 기반의 응용프로그램들은 윈도우 자체가 멀티 쓰레딩 조차 제대로 지원 못하는 허접한 운영체제였기에 탱그램의 성능을 현격히 저하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탱그램 위에 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OS를 올려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규격을 정의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경쟁을 시키자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탱그램에 표준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명실 상부 세계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이를 따라오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저 작은 소년의 입에서 이렇게 통 큰 계획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몇 차원을 뛰어넘는 광전계와 탱그램의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운영체제와 개발자 환경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단 기간에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수 많은 소프트웨어들을 공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기존의 OS와 어플리케이션들을 당분간은 함께 끌고 갈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의 수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은 윈-텔로 통칭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업그레이드 전략에 놀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단위로 약간 수정된 OS가 발표되면 조금 더 빨라진 CPU가 박자를 맞춥니다. 사용자들은 여기에 맞춰 주머니 돈을 털어 기계를 바꾸고 OS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OS의 모양을 일부 갖춘 윈도우 3.0에서 지금의 XP버젼까지 수도 없이 업그레이드를 하고 메모리를 증설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탱그램은 광전계 내부에 포팅되어 함께 공급됩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CPU와 운영체제가 합쳐진 것이다. 아니 합쳐서 공급한다는 선언은 더 이상 업그레이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는 OS를 하드디스크에 설치하고 컴퓨터를 켤 때마다 메모리로 로딩해 부팅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변화를 보면, 컴퓨터 스위치를 켜고 몇 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사라진 것이지만 그 외에도 스크린이 올려놓은 응용 프로그램들까지 스위치를 끄는 순간 대기 모드로 들어가 언제든지 다시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비휘발성 분자메모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이상 주변기기로서의 보조 메모리나 하드디스크의 개념이 사라지고 고속 대용량 분자메모리가 이들을 온전히 대체한 것이다.


"광전계에 접속되는 주변기기들마저 광전계 스타일로 완전히 대체되면 더 이상 컴퓨터를 끌 필요도 없게 됩니다. 최신판 인텔 듀얼코어 CPU의 전력 소모량이 100이라면 광전계의 전력소모량은 1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다음 설명은 실제 데모를 보시면서 진행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발표자들의 목소리외에 잠잠하기만 하던 회의실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나온다. 대통령의 힘찬 박수로 시작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하나 둘씩 일어나 광전계와 탱그램의 성공에 화답하는 환성의 박수를 합창한다. 웅크렸던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무섭게 일어나는 징조를 알리는 박수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좌중을 정리한 일행이 박철웅위원장의 안내로 회의실을 나와 실험실로 이동했다. 실험실의 탁자에는 두 세트의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쪽 마더 보드에는 인텔이 베타 테스터용으로 한정 출시한 코어2듀오 CPU가 꽃혀 있고 하드 디스크와 CD롬 드라이버등 일반 데스크탑용 컴퓨터 부품들이 분해된 상태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동일한 마더 보드의 CPU 소켓에 검은색 카드릿지가 꽃혀 있고 그 한가운데 8각형의 유리 조각이 보인다. 인텔 CPU가 있는 컴퓨터 셋트와는 달리 메모리 모듈이나 하드 디스크가 전혀 없다. 인텔 CPU쪽에는 이미 한 연구원이 앉아 있고 다른 한쪽 비어 있는 자리에 안재홍 팀장이 앉으며 데모를 시작한다. 


"보시는 데모 시스템의 한쪽에는 다음 주 출시할 인텔 콘로에 CPU를 장착했고 제가 서 있는 앞쪽의 시스템에는 광전계 CPU를 카드릿지를 이용해 장착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양쪽의 컴퓨터 스위치를 동시에 켜겠습니다. 스위치를 올려 주시겠습니까?"


실험 탁자 건너편에 서 있던 또 다른 연구원이 양쪽으로 손을 뻗쳐 파워 서플라이의 전원 스위치를 올린다. 


"양쪽의 모니터 화면을 주목해 주십시요."


광전계가 가벼운 빛을 발하는가 했더니 모니터 화면에 순식간에 고급 차량의 운전석을 연상하는 대쉬 보드가 나타난다. 그러는 사이 다른 쪽 화면에는 부팅을 알리는 텍스트 화면이 넘어가고 윈도우 로고가 표시된 한참 후에야 부팅이 종료 됐음을 알리는 바탕 화면이 나타난다. 안재홍 팀장이 두 장의 디스크를 들어 하나를 옆 자리에 건네며 프로그램 데모를 시작한다.


"이 두장의 디스크에는 동일한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들어 있습니다. 디스크에는 얼마 전 개봉된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동작을 구현하기 위한 모형을 3D로 스캐닝한 기초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편집 프로그램이 들어 있습니다."


양쪽의 드라이버에 디스크를 삽입하고 마우스를 이용해 폴더를 열어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프로그램 위의 파일 열기 아이콘을 눌러 디스크의 데이터를 불러 온다. 


"이 소프트웨어는 3D 기초 데이터를 이용해 괴물을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효과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정의된 동작을 수행시키는 플레이 버튼을 눌러 보겠습니다. 하나 둘 셋, 클릭!"


양쪽에서 동시에 마우스 버튼을 누른다. 광전계를 아름다운 빛이 감싸는가 했더니 LCD 화면에서 괴물이 꼬리를 흔들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 다닌다. 반면 다른 쪽 화면에서는 이제 막 괴물의 머리 모양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 몸통을 모두 만든 다음 뛰어나가기까지 기다리려면 반나절은 더 걸릴 듯 싶다.


"영화 제작용으로 사용되는 이 소프트웨어는 워크스테이션급에서 운용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만 BMT 시연용으로 약간 손을 봐 설치했습니다. 프로세서 속도의 명확한 차이를 한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안재홍 팀장이 탁자 옆에 있던 작은 액정 계기판이 달린 레이저건을 들고 일어 선다. 레이저를 이용한 간접 측정 방식의 정밀 온도계다.


"이번에는 CPU의 온도를 측정해 보겠습니다."


방아쇠를 당겨 붉은 레이저 빔를 인텔 CPU에 고정시킨다. 계기판의 온도가 계속 상승해 59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한다. 스톱 스위치를 눌러 계기판을 고정시켜 뒷편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스위치를 올린지 얼마 안됐는데도 평균 59도에 육박합니다. 조금 더 있으면 라면을 끓일 수도 있겠죠? 불이나지 않게 하려면 방열판이 달린 쿨러가 필요합니다."


다시 등을 돌려 이번에는 광전계 한 복판에 레이저 빔을 고정시키고 스톱 버튼을 누른다. 계기판 수치가 22도를 가르키고 있다.


"현재 방안 온도가 20도인데 여러분들의 열기 때문에 2도 상승한 것 같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발열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재홍 팀장이 레이저건의 빔으로 광전계 아래의 카드릿지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나간다.


"광전계를 일반 마더 보드에 장착하기 위해 여기 보시는 바와 같이 특별한 카드릿지가 고안되었습니다. 기존 시중에서 사용하고 있는 마더 보드와의 하위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이런 방식으로는 광전계의 성능을 100%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광전계와 직접 접속하기 위한 인터페이스 표준들이 발표되면 많은 업체들이 새로운 마더 보드를 개발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레이저건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뒤를 돌아 보며 설명을 덧 붙인다.


"지금 보시는 광전계는 일반 민수용으로서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카드릿지와 함께 셋트로 출시될 예정이지만 저희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에서는 이보다 훨씬 작은 1/10 크기의 군수용 제품을 따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당분간은 광전계와 직접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은 비밀에 붙이고 카드릿지의 데이터북만 공개할 예정입니다."


벌써 군수산업의 무기체계에 적용할 구상까지 하고 있었다. 아직도 미국 위주의 EAR(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 규정에 의해 고급 컴퓨터 기종과 암호 알고리즘과 같은 첨단기술은 적성국가에 공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따로 통제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은 데이터 통신 속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카드릿지 한 면에 마련된 광 접속 포트에 노란색의 광 케이블을 접속한다. 광 케이블의 다른 끝에는 셋톱박스 모양의 PVR에 LCD 모니터가 연결되어 있다.


"현재 상용화 된 광 전송 기술은 최대 12기가비트급이지만 저희가 개발한 3파장 전송 기술은 단순하게 계산해 그 일곱배인 84기가비트급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이제 영화 한편을 전송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영화 한편은 대략 700메가 정도의 용량입니다. 아 물론 저기 보시는 PVR에도 광전계 CPU가 들어 있습니다."


리모콘을 들어 PVR에 연결된 모니터에서 실험용 광전계 시스템의 폴더를 열어 영화를 고르고 있다. 양쪽의 분자메모리가 네트워크로 연동되어 있다. 여기서도 어떻게 입수했는지 최근에 개봉된 영화 '한반도'를 선택해 복사 버튼을 누른 후 PVR의 폴더에 붙여넣기를 한다.


"몇번의 동작으로 전면의 광전계 메모리에서 PVR의 광전계 메모리로 영화 한편이 전송되었습니다. 확인을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눌러 비디오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제작사의 타이틀을 시작으로 영화 '한반도'가 방영되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영화 한편 분량의 디지털 데이터가 전송된 것이다.


"광 케이블을 이용한 장거리 전송 기술에 광전계의 기초가 되는 빛을 분해한 3원색을 적용하면 한번의 펄스에 3비트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게 됩니다. 3비트로 최대 8가지를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중 빛이 없는 0을 제외하면 7가지의 신호를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12기가비트급 광 전송망이 그 일곱배인 84기가비트급으로 빨라지게 됩니다. 광 신호 변환용 컨버터만 교체하면 전국적으로 깔려 있는 광 케이블망을 그대로 이용하면서도 인터넷의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연산 프로세서외에 전송 방식에 있어서도 신기원을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술들이 제품으로 다듬어져 세상에 나오는 순간의 폭발적인 기술 혁명이 예고되는 장면이다.


"대단해요! 정말 훌륭합니다."


대통령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박수를 보낸다.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조국의 희망 찬 미래가 예견되는가 보다. 한 동안 대통령을 따라 같이 박수를 치던 박철웅 위원장이 대통령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건넨다.


"자 이제 집무실로 나가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이 배웅을 위해 일어 선 연구원들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일일이 악수를 하며 등을 토닥이고 덕담을 건넨다. 일행이 손을 흔들며 연구실을 빠져나오고 문이 닫힐 때 까지 연구원들이 마주 손을 흔들며 전송하고 있다.


다시 집무실의 소파에 착석한 일행에게 박철웅 위원장이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한다.


"현재 개발된 시스템들은 보시는 바와 같이 시제품들입니다. 조금 더 다듬어 상품화를 한 후 대량 생산을 개시 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북조선 개성공단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며, 그 전에 북남 합작 국영기업을 설립해야 합니다. 일련의 이런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님의 재가가 필요하고 남조선 국민들의 성원을 끌어내야 합니다."


"아무렴요. 청와대에서도 국회를 설득해 전폭적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국영기업 설립과 운영은 여기 남궁 고문님께서 담당하실거고 앞으로 대통령님과의 채널도 고문님이 맡으실겁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고문님께서 지금껏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정오 무렵부터 숨 쉴 틈도 없이 진행된 일정이 끝나 간다. 벽에 걸린 시계가 벌써 저녁 7시를 가르키고 있다. 관악산 일대에 땅거미가 내려 앉을 무렵이지만 지하 벙커는 아직도 한낮이다. 다소간의 대화가 더 오고간 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 서기 직전이다. 박철웅 위원장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대통령께 부탁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대통령님 마지막으로 부탁 말씀 하나 드리겠습니다."


"예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북조선이 남조선처럼 이번 장마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은 아마 잘 아시고 계실겁니다. 3천여명의 북쪽 동포들이 죽거나 실종 됐고 수십만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농토가 유실된 건 두말 할 나위 없고 당장 식량 창고가 침수돼 굶고 있는 인민이 태반입니다."


"아니 그렇게나 심각했어요? 다른 여러일에 매달리다보니... 그런정도라니... 위원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알아서 잘 살피겠습니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그 꿋꿋하던 박철웅 위원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대통령이 일어서 박철웅 위원장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를 위로한다. 대북 지원과 관련한 최근의 정책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이세창 사령관이 앞장 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한층 아래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대통령 일행이 전동 객차에 오르고 박철웅 위원장과 남궁 고문 및 사령관이 정중히 배웅을 한다.


"안녕히들 계십시요. 앞으로의 일들을 빈틈없이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원장 일행을 남겨두고 전동 객차가 청와대를 향해 지하 통로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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