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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Apr 29. 2021

민족의 웅지를 꿈꾸며

하늘의 백성 천자의 나라였던 우리 대한민국이다. 백산에서 천제를 올리며 천자의 이름으로 여러 제후국들을 통치하던 기상은 사라지고 겨우 강화도의 마니산에 올라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감히 천자국을 사칭했던 지나 한족이 지금도 드넓은 중원을 차지하고 있고 민족의 발상지였던 바이칼은 유럽계 러시아의 품 속에 들어가 있다. 동이족의 원류인 한민족이 한반도 좁은 땅덩이로 내 몰려 그 나마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총칼을 들이대며 으르렁거리던 때가 벌써 반백년이 지났다. 이 작은 땅덩이마저 백제의 속국이었던 왜가 재침을 노리고 북쪽은 지나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쪽은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미합중국이 우리나라 군대의 병권을 틀어 쥐고 있다.


밤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뜰을 팔짱을 끼고 내다보며 대통령은 하염없이 상념에 젖는다. 오늘의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다. 현 시대에 반도체는 쌀과 같다. 미국 발 정보통신산업이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저들은 한 세대를 앞서가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무기를 팔아 부를 축적했고 초강대국이 되었다. 자기들의 이익에 반할 때는 침략도 서슴치 않는다. 눈 하나 깜짝 안고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의 지사가 들어선 자국내의 건물을 폭삭시키는 짓을 서슴치 않는다. 원유를 약탈하기 위해 남의 땅을 전쟁터로 만들어 잉여무기를 쏟아 붓고 첨단 무기의 시험장으로 이용한다. 그들에게 도덕성이란 남의 나라 말이다. 어찌 저들을 우방으로 믿고 계속 같이 갈 수 있단 말인가.


배고픈 자는 당장의 밥이 목적이나 배부른 자의 탐욕은 끝간데를 모른다. 일어서야 한다. 저들의 군화발 아래 억눌려 고깃국에 쌀밥이나 얻어 먹으려 종 노릇을 하느니 떨쳐 일어나 칡 뿌리를 씹더라도 우리의 주권을 되찾고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 강해져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든게 생각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날은 저물어 가고 어느새 빗줄기도 가늘어져 가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실, 상임위 의장인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나 오늘은 의장인 대통령도 참석을 하고 있었다. 


"미국상원이 '북핵확산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대북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출타중인 외교통상부 장관을 대신해 차관이 정보 보고를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후 미 공화당에 의해 발의된 것으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첨단 기술에 대해 북한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법안의 가결로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의심되는 거래에 대해 내외국민을 막론하고 무한정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자국내 법안만으로 국제 통상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더군다나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인 법안 내용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듯, 법 적용에 따라, 또는 해석에 따라, 사람의 주관에 따라 그 잣대가 다를 수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말을 받는다.


"이 법안은 대북금수조치뿐만 아니라 북한과 무역을 하는 각 나라의 사업자들이 차 후의 불이익을 경계해 자발적으로 거래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우려섞인 모습으로 질문을 한다.


"북한은 지금 안밖으로 커다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마카오의 북한 자금이 동결된데 이어 북한이 우방이라 여겼던 중국마저 계좌를 동결시켰습니다. 일본도 한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무역선 입항을 금지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두번에 걸친 수해로 지방 소도시뿐만 아니라 평양까지 물바다가 되어 도시 기반시설이 거의 파괴 되었습니다. 당장 북한의 식량난이 문제입니다. 얼마 전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권호웅 내각참사가 '쌀을 안 주면 군량미를 풀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을 기억하실겁니다. 이미 북한은 알게 모르게 남한 의존적으로 변해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을 남한탓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통일부장관이 속사포처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북한 군부입니다. 군부에게 있어서 비축물자로서의 식량은 곧 전시대비 군수 물자입니다. 그들이 혹시나 다른 마음을 먹을까 우려됩니다."


결국 권호웅 내각참사의 의미심장한 발언은 남한에 대한 경고가 된 셈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대통령이 자신의 속내를 내 보이기 보다는 참석한 NSC 위원들의 발언을 유도하고 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해결책보다는 북한 관련 정보를 이야기 한다.


"최근 중국이 북한 접경 지역에 2천여명의 병력을 증파해 총 4만여명의 인민해방군과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치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중국이 이전에는 무장경찰만으로 국경을 수비하다 인민해방군으로 교체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의 비상시 대 북한 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들어 국경지역에서 3차례나 총격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 주민의 월경 문제로 시비가 일고 있지만 그만큼 북한과 중국의 군부가 옛날처럼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에 북한에 내부 쿠데타나 미국의 침입이 있을시 저들은 반드시 개입을 할 것입니다. 대만과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하편, 대만과 중국이 서로 경원시하고 있다곤 하지만 통상무역만큼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고위직 인사들과의 꽌시(關系)없이는 중국에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그 고위직에는 군부도 포함된다. 꽌시로 대변되는 그들의 관계가 술 자리에서는 따꺼(大哥)가 되고 펑요우(朋友)가 된다. 여기서 고급 정보가 흘러 나오고 그것이 대만의 정보기관으로 흘러 들어갔으리 짐작되는 부분이다. 조용히 듣고 있던 유명환 외통부 차관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대통령님 그리고 여러 의원님, 북한과 우리의 관계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앞으로도 더욱 그 관계를 발전시켜야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외교부도 충분히 공감하고 정책적으로도 그렇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무시하면서까지 우리만의 일방행로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요."


대통령이 말을 재촉한다. 어쩌면 유 차관은 차기 유엔사무총장 후보 선거전을 치루고 있는 이택호 외교통상부 장관의 행보에 혹여나 걸림돌이 되지않을까 하는 우려다.


"직접적인 대북지원보다는 국내외 민간구호단체나 북한에 투자중인 기업들을 통한 우회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외교통상부 차관의 직위로서 미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할 수 있는 최선책을 주문하고 있다.


"유차관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이장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대통령이 이종석 통일부장관에게 시선을 주며 해결책을 주문한다.


"유차관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 보수강경파들이 더 염려됩니다. 하여 제 생각엔, 일단 세계식량계획(WFP)에 지원을 요청하고 국내 민간단체를 동원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적십자사 총재께도 언질을 해 조용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하구요."


"그래요 그러면 통일부장관이 주요 계획을 입안해 보고해 주시도록 하세요. 아 그리고 ‘좋은벗들’이라는 구호단체에서도 캠페인을 시작한다던데 그들에게도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하세요."


즉석에서 대통령이 이종석장관의 계획에 찬성을 표한다.


"대통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국방장관이 나선다.


"생각같아서는 저희 공병대의 중장비라도 보내고 싶지만, 일단 개성공단에 상주해 있는 민간기업용 건설장비를 평양에 투입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아 그거 좋은 의견입니다. 장관님!"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의견에 동조를 보내며 다시 힘주어 장관을 부른다.


"네 대통령님"


"그거 말입니다. 공병대 투입하는거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는게 어떠시겠어요?"


대통령이 은근슬쩍 군의 대북 지원을 희망하는 듯한 주문을 한다. 만약에 실제로 공병대가 북한에 파견된다면 남한의 군대가 민족 동란 이후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처음으로 입성하는 엄청난 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방장관이 자신의 가벼운 발언을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가까이서 보아 온 대통령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삼청동 동사무소 뒷편 주점, 저녁 10시가 넘어선 한 밤에 대통령 경호실장과 서양 신사 하나가 러시아산 보드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24시간 대기해야 할 경호실장 신분이라 가까운 청와대 뒷쪽에 가끔 외부 손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를 하나 마련해 두었다.


"닐! 요즘 한가한 모양이요. 매일같이 전화질이고."


닐이라 불린 사람은 미대사관 무관으로서 미 해병 현역 중령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미국 국방장관 직할의 국방정보국인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 소속의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다. DIA는 미 중앙정보국인 CIA와 첩보활동에 있어서 서로 협력을 전제로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가끔 충돌까지 빚는 경쟁 관계다. 경호실장과 닐은 해군 네이비씰 훈련 때 만나 친해져 전우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만나 옛날 회포를 풀며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 가벼운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요즘 뭐가 그리 바빠요. 술이나 한잔 하자고 전화한게 벌써 몇일짼데."


한국에 근무한지 오래되서 그런지 한국말 솜씨가 유창하긴 하지만 아직도 한국식 경어는 어렵다. 상대방이 대충 말 꼬리를 자르면 그대로 따라 한다.


"나야 우리 대통령 따라 다니느라 바쁘지 내가 따로 뭐 할 일이 있나."


"대통령은 외부 행사에 통 안보이는 것 같던데."


닐이 경호실장을 만나자고 한 꿍꿍이는 본국 국방정보국에서 한국 정부 특히,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라는 특명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 특명은 DIA뿐만 아니라 CIA 한국 지부에도 하달되었다.


"대통령님이라고 불러주면 고맙겠네. 자 따라해 봐 대통령님!"


"그래 그래 알았어 대통령님!"


"짜식 잘 하네"


"짜식! 그래 짜식! 크크크"


술이 몇 순배 도니 옛날의 허물없던 말 폼새가 그대로 나온다.


"저기 말이야. 내가 고급 정보 하나 줄까?"


"나한테 뭐 바라는 거 있어?"


"아니야 어짜피 좀 있으면 밝혀질꺼 내가 인심쓰는거야"


고급정보라니 귀가 솔깃하다. 내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남의 정보를 들어주는거야 대수로울 것이 없다. 이전 정부와는 달라서 경호실장이라 하더라도 국내 일급정보에 귀 기울일 일도 없으니 이렇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말이야 그중에 한발이 실패했다고 한거."


"얼마 날아가지도 못하고 폭발했다면서."


"정말은, 그게 실패한게 아니고 대기권밖으로 날아가서 지금도 돌고 있어."


"그게 뭔 말이야. 아니 그럼 개들이 전에처럼 위성이라도 쏘아 올린거야?"


"아니."


닐이 잠시 뜸을 들이며 경호실장을 바라본다.


"하 그사람 답답하네 지가 먼저 뱉아놓고선."


경호실장이 보드카를 홀짝 들이키곤 입맛을 쩍쩍 다신다.


"FOBS야."


"FOBS가 뭐야?"


"이사람 경호실장 맞나? 해병대 출신 맞냐고?"


"아 내가 제대한지가 언젠데 이 군발이가 예비군형님한테!"


"니네 나라 말로 부분 궤도 폭격 미사일."


"부분궤도?"


파전을 찢고 있던 경호실장의 손이 멈칫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닐을 쳐다본다. 보드카에 파전이라니 동서양의 절묘한 만남이지만 경호실장이 파전을 ??다 말고 빈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 간다. 아무리 군문에서 떠났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잊어버린 기억의 쓰래기통에서 주워 올렸다.


"실은 그거 때문에 본국에서 난리가 났어."


"난리날만 하겠구만."


"재네들이 탄두에 밀가루를 실었는지 핵폭탄이 들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허! 재밌네."


"그러니 정보로 먹고 사는 애들이 죽을 맛이겠구만."


경호실장이 젓가락을 세워 닐의 가슴팍을 콕콕 찌른다.


"그래서 꼬랑지 내렸구나."


"꼬랑지 내린게 아니고 정보 파악을 하면서 양동작전으로 가자는 거지."


"양동이 들고 불 끄게?"


"양동이가 뭐야."


"양동이가 양동이지 한국 생활이 몇년인데 양동이도 모르냐."


주제와는 상관없는 말장난으로 면박을 주지만 경호실장의 머릿속이 팽이처럼 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할꺼라는데?"


"외교적으론 얼르고 경제적으로 쥐어 짜고."


"더 쥐어짜서 나올게 있을까? 그러다가 그거 백악관으로 내려 꽃히면 어쩔래?"


"야 야!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닐이 정색을 하며 과장스레 손사래를 친다.


"백악관하고 청와대하고 너무 달라."


"그야 하얀 시멘트 양옥집하고 으리으리한 청기와집하고 당연히 다르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경호실장이 농담 반 면박을 주며 은근히 다음 말을 재촉한다.


"청와대가 왜 그리 미온적이냐 이거지. 도대체 어떻게 할려고 그래."


"나야 총 차고 집 지키는 사람인데 뭘 아나."


"그러지 말고."


"너네 말이야. 너무 그러면 다 죽어 좀 살살 가자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아니 남한과 북한이 예전 사이가 아니잖나 니네만 옛날식으로 북한을 대하니까 문제가 되는거 아니야."


"그게 어디 하루 아침에 되나. 사실 너희도 문제가 없진 않치?"


"남북한이 관악산에서 읍!"


경호실장이 기절할 듯이 놀라 자기 손으로 입을 막는다. 관악산에서 대충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짐작한 경호실장도 내심 들떠 있다가 '이거 하나면 너희들 시대는 끝났어'라는 생각으로 자기도 모르게 갑작스레 관악산이 튀어 나온 것이다. 순간 닐의 눈빛이 반짝 한다.


"야 야 뭐 관악산에서 남북한 대표가 골프라도 친다는 얘기야 뭐야."


닐도 프로중에 프로다. 관악산에 골프장이 있을리도 없지만 더 이상 캐 봤자 함구할 것이 뻔하니 못 들은 척 자기가 먼저 얼버무리겠다는 수작이다. 술 자리가 잠시 어색해졌다. 이런 저런 옛날 동료들 얘길 하다가 서로 우산을 찾아 들고 일어 선다.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이 두툼하게 쌓인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며 서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전자결재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보고를 받지만 아직도 종이 서류로 올라오는 보고철이 상당 수다. 옛날 같았으면 대통령이 서류 검토를 하는 동안 비서실장이 옆에 서 있다가 보충 설명을 하거나 관계장들에게 전화하는 등의 결재시중을 드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청와대의 달라진 모습이다. 전자결재든 종이 서류든 단순히 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의 시험답안처럼 꼼꼼하게 검토하고 일일이 대통령의 생각을 적어 돌려 보내는 것도 현 대통령의 특징이다.



청와대 접견실, 경호실장이 엉덩이에 똥 묻은 강아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뱅뱅걸음을 치고 있다. 시계를 자주 보더니 드디어 결심을 한 듯 대통령 집무실을 똑똑! 두드린다. 대통령은 대체로 아침 일찍 일어나 2시간여 동안 집무를 보고 외부 손님이나 아니면 비서실 간부들과 조찬을 한다. 집무실을 들어서는 경호실장의 모습이 항상 씩씩하기만 하던 다른날과는 달리 엉거주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닐과 함께한 술자리에서의 말 실수 때문에 밤새 한 잠 못자고 끙끙앓았던 때문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들어서는 경호실장을 윗눈으로 한 번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결재 서류에 코를 박으며 묻는다.


"아침부터 무슨 일 있어요?"


경호실장이 뜨끔 한다. 사실 경호실장이 대통령 호출없이 집무실을 들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눈치 코치 9단인 대통령이 먼저 운을 떼는 것이다.


"아 예... 긴히 보고드릴 문제가 있습니다."


보고 문제라니, 문제 꺼리가 있어서 보고 드리겠다는 말이다. 그제사 대통령이 눈을 들어 경호실장을 직시하며 손등 위에 턱을 괸다. 얘기하라는 행동이다. 태권도를 포함해 무술 단수 전체가 36단인 경호실장의 다리가 가늘게 떨려 보인다.


"저 실은 어제 미국 대사관 무관을 만났습니다."


"그런데요."


"저 얼마전에 북한이 쏜 미사일중에 하나가 부분궤도폭격시스템이랍니다."


"그런데요. 그거야 뭐 인터넷에도 그런 얘기가 돌고 있습디다."


대통령 특징중의 또 하나가 웹서핑을 통해 민심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반 대중들이 글을 올리는 정치 웹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쁜 경우엔 제목이라도 훝어 본다.


"그런데 제가 그만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청와대 경호실장급이 실수를 했다면 큰 건이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대통령과 정부에 악의적인 보수 신문들의 기사를 먼저 떠 올린다.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대통령은 기본이 안된 사람은 중용을 하지도 않지만 열심히 일을 하다 발생한 사소한 실수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괜찮아요 말씀해 보세요."


"미 대사관 닐과 대화를 하다 무심결에 그만..."


"아 참 그양반… 속시원히 말해 보세요."


"아 예 예 그만 관악산에 대해 정보를 준 것 같습니다."


"뭐예요?"


대통령이 기절할 정도로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의자도 빼지 않고 급하게 일어서다 넓적다리가 책상을 치 받았는지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통도 못 느끼는지 책상을 돌아 급히 앞으로 나온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니 일이 다 되기도 전에 그쪽 사람들이 알면 다 망친다는거 알아요 몰라요? 좀 소상히 말씀해 보세요?"


대통령이 경호실장 코 앞에 다가서서 말을 다 더듬으며 다그친다.


"이러저러 얘길 하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남북한이 관악산에서'까지만 말했는데 그 놈이 아마 눈치를 깐 것 같습니다."


청와대라고 해서 특별한 용어를 쓸리는 없다. 알아 듣기 쉬운말로 한다.


"가만 빨리 남궁석 의원 호출하세요. 아니 아니 먼저 수방사령관 연결하세요. 빨리! 그리고 비서실장 어딨어요?"


경호실장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듯, 일을 빨리 처리 해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두 마음으로 쿵쾅거리며 뛰어 나간다.



광화문 한국 주재 미 대사관, 닐 매케이 무관이 자신의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남북한이 관악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단 말인가? 관악산 주위에 청와대와 관련있는 곳이라면 과천 종합청사와 수도방위사령부 아니면 서울대학교 어느 곳도 남북한이 합동으로 그 어떤 일을 벌일만한 곳이 아니다.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요즘 한국 정부 고위직이나 군부 어디서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네들한테 안면을 트기 위해서라도 먼저 와서 알랑거리던 인사들이 비자 신청하는 사람들처럼 줄을 섰었는데 요즘 한국 사람들 태도가 예전 같지가 않다. 


닐은 우선 자기쪽 정보원들을 풀 가동하기로 했다. 그 중 경제전문가로 위장 활동중인 제임스에게도 관악산 주변 기업이나 연구소의 이상 징후에 대한 첩보를 의뢰했다. 그의 암호명은 '회색 여우'다. 제임스는 유명 인사 행세를 하며 TV에도 가끔 모습을 비추며 국내 굴지의 기업인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경제 예측은 항상 정확했다. 그도 그럴것이 실상은 한국에 암약중인 미국의 사립탐정회사 '핑클턴(Pinkleton)'의 지사장격이기 때문이다. 핑클턴은 주로 미국 측 다국적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국내 기업들의 경영정보나 기술정보를 정탐해 팔아 먹는 일을 하기 때문에 미리 취득한 정보를 가공해 경제전문지에 게재하는 그의 칼럼은 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그들이 가끔은 미 정보기관의 끄나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핑클턴의 비밀 조직원들은 미국 정부의 묵인하에 오산 미 공군기지의 파우치(외교행낭)를 이용해 최고급 장비를 들여와 사적인 도감청에 이용하고 본사의 해커팀을 운용해 대기업의 서버에 무단침입해 고급 자료를 빼내기도 한다.


닐의 막연한 의뢰를 수주한 제임스도 딱히 집히는 바는 없었지만 일단은 남북공조 분야에 촛점을 맞춰 보기로 했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제임스가 퍼뜩 생각 나는게 있었던지 본사에 급하게 전자메일을 썼다. 몇년 전 반도체 설비를 공급하는 미래산업이 개성공단으로 장비를 반출하려다 미국측의 제지로 무산된적이 있었다. 일단은 그쪽에 촛점을 맞춰 보기로 했다. 본사에 의뢰해 미래산업의 장비 공급 동향을 파악해 보기로 한 것이다. 제임스의 화급을 다투는 주문을 접수 한 핑클턴 해킹팀이 미래산업의 관리서버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해킹 기법은 참으로 교묘했다. 요즘들어 컴퓨터 유지보수회사들이 AS용으로 사용하는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개작해 미래산업의 관리부 직원 PC에 정식 메일로 위장한 바이러스 형태로 이식한 다음 서버 로그인 계정과 패스워드를 미리 취득하고 컴퓨터의 화면 보호기가 작동 할 때를 기다려 백그라운드 동작 모드로 서버에 접속해 관련 파일을 다운로드한 후 HTML코드로 변조해 재전송하는 방식이다. 차 후 문제가 돼 서버에 남아 있는 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보더라도 인가된 사용자의 공식 작업이기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을 뿐더러 방화벽이나 침입 탐지 시스템이 있더라도 무용지물이다.


본사에서 보낸 자료를 분석하던 제임스가 뭔가 집히는게 있었던지 손가락을 탕! 튕기며 쾌재를 불렀다. 이름모를 회사의 주문에 의해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전체 장비들이 셋트로 주문되고 납품처가 서울대학교의 반도체공동연구소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한다.


"이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 제임스입니다."


"아니 제임스씨께서 어떻게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이거 영광인걸요."


이교수라 호칭된 이문열교수가 반색을 하며 전화를 받는다.


"아 예 전에 제가 주선해 드린 장비는 잘 쓰고 계십니까?"


"아이구 그럼요. 귀한 장비 보내 주셨는데 사례도 못하고 죄송스럽습니다."


몇해 전, 교육부 지원 자금에 반도체 분석 장비가 포함된 것을 알고 미국 회사를 연결해 개인적으로 커미션까지 챙겼는데 되래 이문열교수는 제임스가 보내준 것 인냥 아양을 떨고 있다.


"작년에 미래산업에 반도체 제조 장비가 들어간걸로 알고 있는데 잘 쓰고 계십니까?"


"아 그거요. 웬건가 했더니 들어오자마자 바로 다음 날 군인들이 와서 실어갔어요. 잘 못 송달된거라나..."


"군인들이요?"


"우리 애들 말로는 부대마크를 보니 수방사쪽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희한한 일이다 해서 기억하고 있지요."


이문열 교수가 스스로 알아서 술술 불고 있다.



광화문 한국 주재 미 대사관, 닐 매케이 무관이 쿠바산 씨거를 삐딱하게 꼬나물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DIA 본부에 있는 자신의 직속상관에게 보내는 주간 정보 보고서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주요 국내 정세외에 청와대와 관련한 이상동향도 담고 있다.


'특이정보보고 : 북한-청와대-관악산 커넥션에 의한 모종의 일이 추진되고 있는것으로 파악됨. 반도체 제작 설비 서울대 관악산캠퍼스를 통해 수도방위사령부로 반입. 북한 개입 확실. 첨단장비에 대한 대북 반출 우려. 청와대와 수방사에 대한 감시와 도감청 필요.'


정보보고 문건은 노트북내에 장치된 256비트 특수 암호 알고리즘칩에 의해 암호화된 후 이중키로 밀봉돼 VPN(암호,복호화)장비의 AES 암호 알고리즘으로 한번 더 암호화해 외교망을 통해 DIA 본부 한국담당 과장에게 전달되었다. 미국은 민수용으로 개발된 일정수준의 DES와 같은 자국산 암호알고리즘 및 소프트웨어의 수출을 전면 규제하였으나 클린턴 정부 이후 사업자들의 반발로 일부 적성국을 제외하고는 전면 허용하였다. 그 후 자국용 공공기관의 컴퓨터 설비와 네트워크에 대해서는 별도의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하는 것으로 한층 더 보안성을 강화해 운용하고 있다. 이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국정원 주도하에 계속해서 새로운 암호 알고리즘을 개발해 왔고 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국가 기밀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정례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있고 얼마 전 선임된 제임스 신 아태담당 선임보좌관이 정보부서에 올라 온 보고서를 취합해 한국내 동향 보고를 하고 있다.


"... DIA 한국 담당관의 보고의 의하면, 청와대가 관악산에서 북한 관련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정보는 없나요?"


다른 굵직한 정보들에 비하면 사소한 보고일 수도 있으나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하여 외교 정보전에 난항을 겪고 있던 라이스 국무장관이 귀에 거슬리는지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한다.


"간략한 정보외에는 없습니다만 건의사항으로 청와대와 수도방위사령부의 전략적 도감청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국장님! 청와대를 집중 도감청 대상으로 다시 포함시키지 않았나요?"


라이스 국무장관이 마이클 헤이든 CIA국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질문을 한다.


"예 그렇습니다. 한국에 민주정부가 재집권한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특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특정한 정보가 없었나요?"


70년대 한국의 핵 개발을 포함한 자주국방 사업으로 인해 미국 카터 정부가 당시 청와대를 도청한 사건이 있은 후 다시 청와대를 도감청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미국은 NSA에서 운용하는 에셜론(Echelon Project)를 통해 전 세계의 모든 통신회선을 감청하고 있는 실정으로 대상이 우방국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에셜론은 전화 통화나 인터넷 메일 위주의 통상적인 통신 감청이지만 마이클 국장의 말은 에셜론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청와대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가 배치한 잠자리를 통해 한국 대통령 부인이 사과 깎는 소리까지 녹음하고 있습니다만 분석 요원들에 의하면 아직까지 별 이상 징후는 없다고 합니다."


잠자리란 CIA가 최근에 개발해 운용하는 도청 장비로 잠자리와 크기와 생김이 동일한 투입형 음향 도청 전문 로봇이다. 미국의 이런 최신형 도청 장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한국 국정원이 한미 FTA 협상을 앞둔 우리측 대표단에 특별 보안 경계령을 내리는 동시에 보안교육을 시키며 잠자리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국정원의 보안 교육 담당관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미국이 도청을 결정한다면 어떤 방법이 사용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협상단을 긴장시키기도 했었다.


"다시 한번 면밀히 체크해 주세요."


"그러겠습니다만, 요원이나 자금이 워낙 부족해서요."


국장이 또 예산 타령을 시작한다. 수만명의 국내외 요원에 수백억불의 예산을 감사도 받지 않고 사용하면서도 틈만 나면 예산타령이다.



CIA 본부 정보분석실, 대형 수퍼 컴퓨터를 운용하는 정보분석실에 백여명 이상의 요원들이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며 각 지역에서 들어오는 감청 기초자료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한 요원이 NSA에서 넘어 온 청와대 관련 데이터외에 CIA가 자체적으로 수집한 음문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국장의 특별지시가 있어 일주일전의 데이터부터 다시 스캐닝하고 있는 중이다.


"어 이거 봐라..."


얼마전에 분석한 자료지만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에서 왔다는 생뚱맞은 사람과 대통령의 대화 서두가 고고학으로 시작해 무덤과 부장품 이야기가 길게 이어져 살짝 맛이 간 역사학자 쯤 되는 사람이 국고 지원을 요청하는 이야긴가해서 검토 중간에 덮어 두었던 자료의 후미에서 어마어마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급히 정보를 요약해 출력한 후 국장실로 뛰어 들어 갔다.


"국장님! 지시하신대로 남북한간에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어디 봅시다."


자료를 받아 든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의 눈이 치켜올라가더니 급하게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특별 국가안보회의 소집을 요청한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실, 오늘은 미국 대통령도 참석하고 있다. 보리스 국무장관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대통령이 긴 코를 슥슥 문지르며 헤이든 국장을 노려보고 있다.


"남북한이 숨어서 그 따위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당신들은 뭐 했어요?"


"그게 보시는바와 같이 한국 대통령도 모르게 감쪽같이 추진된 일이라..."


국장이 어물거리는 사이에 보리스 국무장관이 한 마디 거든다.


"그런 장치가 실제 만들어진다면... 만약에 북한 미사일에 탑재된다면 눈을 달아주는 꼴이 됩니다."


ICBM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는 핵탄과 같은 탄두를 실어 나르기 위한 목적이다. 관성유도 방식을 사용하는 ICBM은 상대적으로 정밀도가 떨어져 핵이나 생물학 무기와 같이 넓은 지역을 타격 범위로 설정 한다. 그러나 여기에 탄도궤적을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장착된다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대량살상용 탄두를 사용하지 않고 고폭탄만으로도 중요 군사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군수산업의 해외 수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보통신 산업입니다. 우리쪽 산업이 무너지면 국내정치도 끝장입니다."


네오콘이 포진하고 있는 미국 백악관은 군수.에너지.IT산업등에서 넘어오는 정치자금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악관 안보회의 즉석에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제재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제재라기 보다는 초기에 뿌리를 뽑겠다는 식으로 강경한 대응책들이 마련되고 있었다.



관악산 수도방위사령부 정문, 몇 시간 전부터 정문 건너편 공터에 검은색 밴이 한 대 주차해 있다. 위병소를 맡고 있는 헌병단 김중위가 부하 헌병을 시켜 검문을 하게 한다. 검문이라지만 헌병이 일반 민간 차량을 검문할 자격은 없다. 근무를 서던 헌병이 소총을 위병소내에 거치시키고 권총만 찬 채 차도를 넘어 밴 곁으로 다가섰다. 밴은 안을 볼 수 없도록 검은색으로 짙게 썬팅이 되어 있고 앞 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앞 좌석과 뒷 부분은 철판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 옆 문을 열지 않는 이상 속을 볼 수가 없다. 옆으로 돌아 간 헌병이 똑 똑 몇번을 두드려도 차 안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한바퀴 둘러보다 보니 미군 번호판을 단 미군소속 차량이다.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실, 사령관 부속실 부관이 문을 밀며 들어 선다.


"충성! 사령관님, 정문 위병소에서 김중위 보고입니다."


"뭔가?"


"위병소 건너편에 미군속 차량이 몇 시간째 주차해 있답니다."


"이 새끼들 벌써 시작이구만."


이세창 사령관이 지휘봉을 들고 벌떡 일어 선다. 영문을 모르는 부관이 눈만 껌벅이며 멀뚱하게 서 있다.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며 사무실을 서성거리던 사령관이 부관을 불러 세운다.


"부관!"


"옜! 사령관님."


"기갑 연결해."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정비고에 있던 수방사 예하 기갑대대장이 핸드폰으로 연결됐다.


"정문에 전차 두 대 배치하고 전방에 있는. 어떻게 생겼대."


기갑대대장과 통화하던 사령관이 부관을 돌아 보며 차량의 모양을 묻는다.


"예 검은색 밴이랍니다."


'뭐가 말입니까?'


부관이 전화를 넘겨주자마자 전차를 배치하라는 사령관의 돌발 명령에 멍해 있던 기갑대대장이 '어떻게 생겼대'라는 소리에 반문을 한다.


"위병소 입출구 양쪽길에 전차 한대씩 배치하고 전방 길 건너편에 주차해 있는 검은색 밴 있어. 거기다 주포 겨냥해."


"예 알겠습니다. 충성!"


사령관의 좀 더 상세한 명령을 받고 전화를 끊은 기갑대대장이 옆에 있던 기갑중대장에게 그대로 명령을 하달했다. 전두환 정권 이후 서울 시내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명령은 명령이다.



위병소 앞 검은색 밴, 전자 장치들이 양쪽으로 빼곡한 차 내부의 좁은 중앙 통로에 두 명의 미군이 헤드폰을 끼고 장비를 조작하고 있고 한명은 끝 부분에 다리를 꼬고 비스듬이 누워 플레이지보이 잡지를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넘기고 있다.


"어라! 팀장님."


"왜!"


잡지를 한 쪽으로 내려 놓으며 팀장이란 불린 미군이 상체를 일으킨다.


"뭐 특이사항 있나?"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쟤들이 전차를 끌고 나오는데요."


"화면 좀 더 당기고, 볼륨 올려 봐."


밴 지붕의 원형 돔에는 고화질 초저조도 CCTV카메라와 함께 음향 집진 마이크가 숨겨져 있다. 팬틸트 드라이버에 의해 수방사 정문에 고정된 카메라의 줌인 모터가 돌아간다.


"K1A1입니다."


"주포 움직입니다."


모니터를 주시하며 중얼거리던 미군이 두손을 올려 헤드폰을 밀착시킨다.


"어 어! 전차장이 대 전차 고폭탄 장전하랍니다."


"레이저로 거리 측정합니다."


"뭐야!"


"장전했습니다."


"갓뎀! 저것들이 미쳤나!"


수방사 기갑이 미쳤는지는 몰라도 밴 속의 미군들은 뜻밖의 상황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팀장격인 미군이 옆에 있던 헤드셋을 뒤집어 쓰고 정면 무전기의 버튼을 급하게 누른다.


"대장! 아니 블루마운틴! 여기는 비보이 급보!"


얼마나 급했는지 침묵시키던 무전을 열어 평문을 날린다. 블루마운틴은 오산 미공군기지의 NSA 휘하 비밀감청부대다. 호주에 위치한 에셜론을 중계국으로 이용해서 그런지 오산 감청부대의 호출 부호가 블루마운틴이다.


"비보이, 왜 이래 현장에서 무선을 개방하면 어떡하나."


"한국놈들이 전차로 우릴 조준하고 있습니다. 고폭탄까지 장전했습니다."


"지금 장난하나."


"셧! 실제 상황이야."  


위병소 건너편에 서 있는 밴은 NSA 한국 파견대가 운용하는 전천후 감청차량이다. 일반 사륜구동 SUV 내부를 개조해 반경 20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전파를 감청할 수 있는 설비를 탑재했다. 전자장비들 중에는 2킬로미터 이내의 미세 전자파를 탐지할 수 있는 스펙트럼 분석기도 있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수방사 내부의 컴퓨터 전자파를 감청해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보유한 휴대용 레이저 도청기를 들고 건너편 산에 올라가서 사령관실의 창문을 조준하면 내부의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컴퓨터로 소설을 쓰고 있다면 키보드 소리를 녹음한 후 각 키의 독특한 소리와 사용 빈도수를 분석해 역으로 소설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될 정도로 그들의 도청 기술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수도방위사령부 정문, K1A1 전차의 굵은 포신이 언제라도 불을 뿜을 듯 검은색 밴을 노려보고 있다. 검은색 밴이 살모사 앞의 쥐처럼 얼어 붙어 있지만 쥐 뱃속의 미군들은 오줌을 지릴 정도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은 우방국에서 활동하는 관계로 정식으로 훈련받은 스파이가 아니라 단지 전자장치만 운용하는 엔지니어급의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본부에 행동 지침을 요구했지만 꼼짝 말고 수방사의 모든 전파를 탐지하고 정문을 출입하는 차량과 인력들에 대해 녹화하라는 기존의 지시만 반복했다. 정문을 막아선 K1A1전차의 전차장과 포수가 취사장으로 식사를 하러 간 사이 탄약수인 김일병이 포수석 해치를 열고 올라 와 7.62밀리 공축기관총을 만지작거리다 옆의 전차장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차장석에는 한국형 K-6 12.7밀리 중기관총이 거치되어 있다. 


"씨바 저것들은 밥도 안 쳐먹나."


혼자 중걸거리며 K-6 중기관총으로 검은색 밴을 겨누며 장난을 한다.


"배고프면 이거나 쳐 먹어라."


하면서 방아쇠를 힘껏 당긴다.


'따다당!'


12.7밀리 나토탄 한발이 밴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꿰뚫고 반동으로 총열이 위로 뜨면서 서너발이 타고 올라가 원형돔까지 박살을 냈다. 전차장석에서 장난으로 방아쇠를 당긴 김일병이 토끼눈을 뜨고 얼이 빠져 앉아 있고 K-6 중기관총의 총구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전차장이 노리쇠를 후퇴시켜 장전시켜 놓았다가 해제하지 않고 그냥 놔 둔 것이다.


"아 씨바! 좆됐다."


미군 감청차량 내부에 있던 요원 세 명이 씨레이션을 까 먹고 있다가 밴의 철판을 관통한 총탄에 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렸다. 한참을 그렇게 책상 밑에 머리를 쳐 박고 있던 팀장이 머리를 뺀 다음 옆의 동료들을 발로 툭 툭 치며.


"나가자. 여기 있으면 다 죽어."


차량 외부에는 어느 새 왔는지 위병 근무 헌병들이 둘러 서 있다. 미군들이 밴의 문을 옆으로 밀고 손을 번쩍 치켜들며 한 명씩 기어 나온다. 밴 속에는 전자장비들이 쇼트를 일으키며 매케한 연기가 새어 나온다. 본의 아니게 무장 해제를 시킨 꼴이 됐지만, 수방사령부도 순식간에 싸이렌이 울리며 발칵 뒤집혀 졌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에서는 이미 수도방위사령부를 사찰하기 위한 팀이 구성되어 미공군이 운용하는 한미간 정기 화물기를 타고 한국의 오산비행장을 향하고 있었다.


청와대 대통령 접견실, 본국의 특명을 받은 주한 미국 대사가 자신의 보좌진을 대동하고 한국 대통령을 예방해 면담하고 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 쪽 정보에 의하면 귀국의 수도방위사령부 부대내에서 비밀리에 핵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


대통령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며 팔짱을 낀다. 계속해 보라는 의미다. FTA 협상의 측면 지원으로 지쳐있던 버시바우 대사에게 본국의 특명이 내려 온 것이 바로 몇 시간전이다. 한국의 안보 문제라는 이유를 달며 비서실장과 설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대통령과 면담 일정을 잡았다. 수방사령부를 사찰하기 위한 핵 개발이라는 억지 명분을 만들어 대사를 보낸 것이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론 거짓정보이거나 양국을 이간질하기 위한 제3국의 협잡으로 보입니다만, 저희들은 본국의 특명을 이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인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미국 대사가 혼자 진땀을 빼며 어지러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대통령님!"


"그래서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한국측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셔야 합니다."


"난데없이 핵이라니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증명해 보이란 말입니까? 한국이 핵을 포기한게 벌써 수 십년전의 일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았나요? 그 때 빼돌려 숨겨놓기라도 했단 말이오?"


"대통령님! 단지 수방사 부대 내부를 보여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본국에서 이미 사찰팀이 도착해 있습니다."


"허! 거부하면 어떡할거요."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본국에서 특명과 함께 지침 형식의 훈령까지 하달받은 상태다. 망설일 이유가 없지만 외교전문가답게 매끄럽게 풀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님! 간단한 일입니다."


"당신들은 한국의 아니 우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습니까? 이리 불쑥 찾아와서 난데없이 핵이라니요. 지난 날 노태우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하며 핵 주권을 완전히 포기했어요. 또 하나, 미사일 개발에 있어서도 사거리 제한을 통제하고 있어요. 우리보다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대통령님 일반 부대 주둔지입니다. 핵이 없다면 우방인 저희하고 서로 공개 못할게 뭐 있습니까?"


"당신들은 우리들한테 모든 걸 공개합니까?"


대한민국 영토에 산재해 있는 미군 주둔지는 대사관 영내와 같은 등급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한국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군의 계룡대 통합사령부와 1군, 2군 사령부 내에는 한미공조 명목의 미군 부대가 들어와 있다. 팀스피릿(Team Spirit)이나 림팩(RIMPAC)과 같은 한미간 또는 환태평양 우방국간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주한 미군 지휘부의 주요 시설이나 설비에 대해서는 독자 체제를 견지하고 있어 한국 나름대로 전술지휘통제시스템을 수십억을 들여 개발 보완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님!"


"대통령 맞습니다. 맞고요. 말씀해 보세요."


"비밀 사찰을 허용하지 않으시면 유엔에서 정식으로 문제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필요할때만 유엔이군요."


"유엔사무총장 선거 지원하겠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같잖은 선심으로 당근과 채칙을 병용하려 한다. 유엔사무총장 선거를 주한 대사가 담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좋아요. 그럼 수 일 내로 당신네 대통령과 통화 후 결정하겠습니다. 본국에 보고해서 청와대로 전화하라고 하세요."


대통령은 시간을 최대한 끌어 보기 위해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요구하며 대사 일행을 돌려 보낼 생각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 설 그들이 아니다. 미국 대사가 시계를 힐끔 보더니 배석한 보좌관에게 귀엣말을 한다.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백악관과 통화해 보겠습니다."


여기까지 예상을 하고 백악관이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갔던 보좌관이 들어 서며 대사에게 조용한 소리로 보고를 한다. 대사가 야릇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돌아 본다.


"대통령님! 백악관에서 곧 전화를 하겠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만 기다려 주시지요. 내 집무실에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비서실장만 대동하고 집무실로 들어간다.


"저쪽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대통령님, 3시간입니다."


비서실장이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나즈막하게 대답을 한다. 



관악산 벙커내 연구실, 전 연구원들이 달려들어 초를 다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아랫층에는 경호실장이 전동 객차에 화물 콘테이너를 달고 와 대기하고 있었다. 청와대 경호상 전동열차는 청와대에서만 운행할 수 있도록 했다. 평상시는 지하 통로 양쪽 모두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고 비상시에만 수방사령관과 경호실장의 합의하에 열 수 있도록 했다. 벌써 몇번째 경호실장이 비상 탈출로를 오가며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마지막 덩치 큰 기계들이 문제였다. 전문가가 아닌 연구원들만의 힘으로 기계설비를 해체 해 부품들을 포장해야 하니 시간이 꽤나 걸리는 힘든 일이다.


관악산 수도방위사령부 정문, 땅거미가 떨어져 어둑한 시간이지만 과천과 사당동을 이어주는 대로에는 퇴근을 서두르는 차들로 만원이다. 그 차량들 흐름을 비집고 미군 버스 한대가 정문 앞에 다가 선다. 단지 정차만 했을 뿐 내리는 사람도 없고 미동도 없다.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실, 사령관이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인다.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비화 전화를 통해 청와대에서 들어온 명령은 '철수한다. 문열어라' 이 말 뿐이었다. 문을 열어 준 이후로 정문 통제 때문에 내려가 볼 수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사령관님 드디어 들이닥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꼼짝않고 있답니다."


"타협이 안되고 있겠지. 특경대장 호출 해"


수방사령부 예하에 헌병 특별경호대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을 호위하고 경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만 훈련의 강도는 특수부대와 다름 없다. 때에 따라서는 대테러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다.


"특경대장! 나 사령관이다."


"예 사령관님 대기하고 있습니다."


"애들 즉시 내려보내."


"예 알겠습니다. 충성!"


이미 지침을 하달받고 대기중이던 헌병 특경단이 검은 대 테러 진압복에 중무장을 하고 정문으로 달려 내려간다. 쥐 새끼 한마리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사령관의 의지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백악관과 청와대간에 고화질 비디오 압축기술을 이용한 화상 회담이 시작됐다. 대통령 노트북의 비디오 창으로 미국 대통령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카메라가 어색한지 아니면 한국 대통령과의 화상 회의가 거북한지 옷깃을 여미며 자세를 고쳐 앉고는 고개를 몇번 좌우로 틀어 긴장을 푼다. 한국 대통령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전화 통화와는 달리 동시 통역된 텍스트가 화면 하단에 흐른다.


"대통령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상통화가 전화보다 훨씬 좋습니다. 요즘 대통령께서 한반도 문제로 고심이 많으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항상 그렇지요. 백안관에서 뭔가 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니요. 정확한 정보에 의해 충분한 협의를 거쳐 대사를 보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오랜 우방이고 형제국처럼 지내왔습니다. 우리가 귀 국에 숨길게 없습니다. 더군다나 핵이라니요. 우리는 핵을 개발 할 필요도 보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진지하게 발언하는 미국 대통령은 눈을 살짝 찡그리며 집게 손가락으로 눈가를 살살 긁고 있다. 


"혹시 한국이 북한을 의식해 예전처럼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비밀리에 핵 보유를 계획하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아니신지요. 우리야 귀국에 있는 핵 만으로도 북한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압니다. 우리는 북한이든 남한이든 한반도 비핵 선언을 아직도 유효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입으로는 비핵화를 떠들지만 그의 관료들은 공공연히 핵 무장을 책동하고 있습니다. 남한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핵 무장을 할 수 있는게 사실 아닙니까?"


"남한과 일본을 혼동하시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귀국의 묵인하에 진행되는 일본의 농축 우라늄이나 플로토늄 축적을 더 경계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로는 핵 폭탄 제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보다 더 크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핵 폭탄의 원료입니다."


"북한의 미사일이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말이 막히는지 미사일 문제로 화제를 넘기려 한다.


"일본은 이미 여러번의 위성발사를 통해 핵을 실어 나를 수 있는 ICBM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귀국은 북한과 함께 일본의 군국화에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 간의 한일 양국의 역사로 볼 때 일본을 절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태평양전쟁을 경험하신 귀국도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만."


"어쨌거나 일본은 귀국과 마찬가지로 우리와는 군사 동맹국입니다. 당장은 그들을 믿어야 하고 아시아의 평화에도 필요합니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는 짖뭉게는 일본의 특성답게 그들은 미국의 충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은 개를 길들여 자국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좋습니다. 귀국의 포괄적 아시아 정책에 대해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귀국의 대북정책은 경우에 따라선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관된 정책을 견지해 왔습니다. 대통령님께 한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귀국이나 우리나 답답하기만한 현 북한 정권이 바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붕괴는 한반도를 떠나 아시아 전체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당장 우려되는 문제는 북한의 경제사정입니다. 경제는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 근본입니다. 북한 경제가 파탄 나 곧바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바로 우리나 귀국의 이득으로 연결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동안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그들과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급작스럽게 북한 권력이 공백 상태가 되면 당연히 우리와 귀국 그리고 일본이 개입을 하게 되고 저쪽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을 하게 됩니다. 진공속으로 공들이 빨려 들어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 듯 북한이 각국의 이익을 위한 군사적 각축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아시아는 급격히 혼란에 빠지게 되며 급기야 다시 한번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붕괴는 곧 세계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슴을 경고하고 있다. 아니 미국의 대북 정책이 세계 평화를 해치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군사적인 힘으로 어느 한 축을 무너뜨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까지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닐까요?"


대통령이 미국의 아픈 과거를 찌른다. 미국이 대 테러전쟁이란 구실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한 후 친미 정권을 태동시켰다 할 지라도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미완의 전쟁이 되고 있다. 그들의 국민성은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 종교적 심봉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국의 국민성에 의한 패배를 미국은 이미 베트남전에서 경험한 바 있지만 당장 하늘을 찌를 듯한 패권주의로 인해 망각하고 있다.


"남북은 지난 6.15공동선언 이후 상호 호혜의 원칙하에 통일을 위하여 단계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첫째 인도적 문제에 있어서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를 석방하고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남북간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경제 협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휴전선의 선전물을 제거하고 장관급 회담을 꾸준히 진행하며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단절됐던 경의선과 동해선을 연결해 민족의 핏줄을 복원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내 외부의 어떤 방해를 받더라도 꾸준히 지속시킬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란 대업을 달성할 것 입니다."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이 남한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으로 질문 하나 드리지요. 북한이 미국을 침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미국과 러시아는 지구를 단 한번에 폭사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무기를 확보하고 있고 계속해서 개량 첨단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구 어디서라도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핵 항모와 잠수함 전단을 운용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공격 위주의 군사력을 견지해 왔다면, 그에 비해 북한은 미국의 침공에 대비한 수비 위주의 군사력을 견지해 왔다. 그 단적인 예가 공습에 대비한 전국토의 지하 요새화와 대 방공 화력 배치로 이어졌고 연안 정도를 지키기 위한 프리킷함과 미사일정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해군의 로미오급 잠수함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저는 북한이 장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미국에 핵무기를 팔아 체제를 보장받고 항구적 평화를 사는 장사 말입니다. 북측은 기회만 되면 '조선 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이다.'라고 강변합니다. 일각에선 이미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저들은 그것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어패가 있지요? 어패가 있습니다. 저들의 목적은 첫째 남북한 동시 핵 철수고 두번째는 북한의 핵 포기에 따른 보상입니다. 그 동안 핵 동결과 보상에 있어서 북미간에 다툼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저들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좀 더 확실한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 아니겠습니까? 북한의 최종 목표는 귀국과의 수교입니다."


'돈이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 USA투데이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재정 적자가 수 조 달러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어느 경제 전문가는 미국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전문가는 98년 러시아처럼 디폴트 선언을 권고하고 있을 정도라 한다.


"대통령님! 북한과 대화를 하셔야 합니다. 북한의 산업화가 미국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대화를 위해서는 미국측이 먼저 경제제재를 풀어야 합니다.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듯 미국도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해야 합니다. 북미 양자회담은 대통령께서도 원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자 회담을 통해 북한을 다각적으로 설득하고 핵 포기에 대한 댓가를 5개국이 분담하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뒤에 군림하고 있는 군수 산업체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9.11 이후 대 테러 전쟁 덕분에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왔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엄청난 정치 자금을 헌납해 서로 얽혀들은 관계가 되었다. 군수산업이 호황일지는 몰라도 전쟁터에 퍼 부어대는 엄청난 폭탄과 항공모함등의 운영비는 고스란히 미국민의 부담이 되고 있다. 


"좋아요 좋아! 대통령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잘 알겠습니다."


미국 대통령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던 한국의 대통령들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시 디스 맨(This Man)이라 호칭하는가 하면, 한국 대통령에게는 어깨를 톡톡 치는 등 무례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국가간 정상 외교에 임 할 때는 양국간 의전 절차에 따른 최고의 예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미국 대통령들은 이렇듯 결례와 무례를 서슴치 않았다. 중세처럼 국가의 힘이 정상간 우열을 가름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대통령이 원하시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의 일방적으로 미국 대통령을 훈육하다시피하던 양국간 화상회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저희가 관악산의 지하 벙커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통령께서 우려하시는 핵 개발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의 요구 조건을 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내부를 개방해 모두 다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실, 미국 사찰팀과 대치하고 있는 수방사 사령관실의 청와대 핫라인 비화전화의 LED가 번쩍이며 스피커가 요란하게 울어 댄다.


"수방사령관 이세창중장입니다."


"대통령이오."


대통령의 음성은 무거웠다.


"옛! 대통령님. 충성!"


"현재 상태에서 연구인력만 탈출시키고 30분내 개방시키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생각되지만 군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부관 한 명만을 대동하고 사령관이 부리나케 지하벙커로 내려갔다. 지하 벙커 연구실에서는 아직도 장비들을 해체하느라 분주했다. 


"위원장님!"


사령관이 철수를 지휘하던 박철웅 위원장을 찾아 한 옆으로 이끈다.


"사령관님 내려 오셨군요."


위원장이 덤덤하게 인사를 한다.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 같습니다."


"급히 연구인력만 탈출시키고 연구실을 개방하라는 명령입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돌려 시설들을 스윽 돌아 본다.


"할 수 없지요."


위원장이 각 파트별 연구팀장들만을 따로 부른다.


"중요 자료는 다 파기했나요?"


"연구자료는 모두 광전계 메모리에 저장을 했고 따로 백업본 하나만 복사해 챙겼습니다."


김영철 교수가 손가락을 교대로 주무르며 대답한다. 이어서 탄화수소실리콘을 개발한 양동근 교수가 현재 진행 상태를 보고한다.


"탄화수소실리콘 원료들은 전부 포장해 이미 반출이 됐습니다만 장비 해체작업이 좀 오래 걸립니다."


"양교수님 시간이 없습니다. 장비는 그대로 두고 갑니다."


"예?"


위원장이 양동근 교수의 그럴 수 없다는 의미의 반문을 무시하며 안재홍 팀장에게 시선을 주며 처음의 질문을 힘을 주어 반복한다.


"연구 자료는 다 파기됐지요?"


"예 하드디스크는 모두 뜯어 포장을 했고 남은 자료들은 모두 다 파기했습니다. 네트워크 장비들의 셋팅까지 모두 초기화 된 상태입니다. 문제 없습니다. 휴대품을 제외한 개인 사물까지 다 폐기했으니까요."


안재홍 팀장이 초롱초롱한 눈망을을 굴리며 씩씩하게 대답한다.


"자 그럼 모두 모이게 하세요. 이동합시다."


확인을 끝낸 박철웅 위원장이 이세창 사령관에게 다가 선다.


"사령관님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저야 뭐 한일이 있나요. 여기 계신 분들이 고생이 많으셨지요."


둘 다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표정들이다. 몇 년을 아래 위를 오가며 서로 동거하다시피한 관계다. 연구 결과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야밤도주식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그리고 내 보내야 하는 둘의 마음이 교차한다. 마지막 정리를 끝으로 모두 다 경호실장이 기다리고 있는 플랫폼으로 내려 갔다.


"사령관님 내려 오셨습니까?"


경호실장이 군대 선배격인 사령관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화물은 어떡하고 다들 내려오십니까?"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넨 경호실장이 선두의 박철웅 위원장에게 모두들 간단한 짐만 챙겨 내려 오는 상황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사태가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빨리 건너 갑시다."


경호실장과 사령관이 양쪽에 서서 연구원들을 한 명씩 객차에 승차시킨다.


마지막으로 박철웅 위원장과 이세창 사령관이 포옹을 한 후 객차에 오르고 경호실장이 사령관에게 무언의 경례를 붙인 뒤 전동객차가 청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플랫폼의 출입문을 굳게 잠근 사령관이 윗층으로 올라 와 다시 한번 안타까운 표정으로 연구 현장을 둘러 보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 왔다. 정문까지는 걸어서도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부관을 시켜 짚차를 부른다. 환영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정식으로 에스코트 하겠다는 생각이다.


짚차에서 내린 경호실장이 바리케이트를 통과 해 미군 버스를 향해 다가 섰다. 사찰팀의 안내를 맡은 닐 맥케이 무관이 버스에서 내려 사령관에게 경례를 한 후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한다.


"미 대사관 소속 닐 매케이 무관입니다."


사령관은 경례만 받은 후 뒷짐을 진다. 무안한 닐이 맨 손을 비비며 말을 잇는다.


"보고 받으셨겠지만 본국에서 온 사찰팀입니다. 제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아까 일은 미안하게 됐소이다."


"인명피해도 없으니 단순 오발 사고로 보고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차병의 실수에 의한 오발사고를 자기가 알아서 무마할테니 사찰팀에 대한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검은색 밴은 소식을 받은 미군들이 와서 이미 견인해 가고 없었다.


"따라 오시오."


사령관이 뒤로 돌아 올라 가 각 휘하 부대장들을 불러 정문 개방을 지시한다. 그 동안 경계자세를 유지하던 특경팀이 앞에 총 자세로 줄을 지어 올라가고 이어서 전차가 그르렁거리며 후진을 해 연병장으로 돌아 들어간 후 위병소 헌병들에 의해 바리케이트가 치워 진다. 사령관이 짚차에 선탑해 벙커 입구로 향하고 미군 버스가 매연을 뿜어내며 따라 올라 간다. 매연을 뒤집어 쓴 헌병들이 올라가는 버스 뒤에다 대고 팔뚝질을 먹인다.


사령관의 안내로 지하 벙커에 도착한 사찰팀이 묵직한 알루미늄 가방들을 내려 놓고 그 속의 장비들을 꺼내 조립 한 후 각 분야별로 검색을 시작한다. 방사능 탐지기를 동원해 방사능 유출 정도를 측정하고 옆에 따라 붙은 다른 한 명은 전체 작업들을 캠코더로 촬영한다. 또 한명이 구석 구석의 먼지와 같은 시료들을 비닐백에 담고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는 가방에서 스캐너를 꺼내 휴대용 컴퓨터에 연결한다. 미세하게 남아 있는 지문과 즉석에서 DNA까지 채취할 수 있는 핑거프린트(지문 감식) 스캐너다. 사찰팀의 작업을 지켜보던 사령관이 일순 긴장을 한다. 아차 싶었지만 지금와서 저들의 작업을 중단시키거나 방해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사령관이 분을 삭이며 나즈막히 속으로 한숨을 쉰다. 


청와대 지하 플랫폼, 경호실장이 뛰어 내려 전차의 객실문을 연다. 마지막으로 탔던 박철웅 위원장이 전동차에서 내리고 연구원들이 하나 둘 씩 무거운 발걸음으로 객차를 빠져 나온다. 플랫폼에는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원장과 비서실장이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윗층으로 안내 한다. 대통령 접견실에는 이미 군용 조립식 간이 침대를 배치해 연구원들의 잠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대통령이 아직까지 퇴근을 미루고 집무실에 있다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온다.


"위원장님!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연구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등을 다독인다. 얼마전 방문시의 활달한 분위기와는 달리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다.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일단 하룻밤은 여기서 지내시고 대책을 논의하십시다."


"대통령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요."


오히려 박철웅 위원장이 대통령을 위로한다.


다음 날, 이세창 사령관이 보고차 청와대로 들어오고 대책회의가 열린다. 사령관이 사찰팀과 함께 밤을 새웠는지 수염이 까칠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자 앞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책을 세워 봅시다."


"남궁 고문님께 연락은 했지만 들어오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잘 했어요. 저쪽에서 이미 청와대를 감시하고 있을테니 쓸데없이 노출시킬 필요가 없어요."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대화가 먼저 오고 간 뒤 이세창사령관이 사찰팀의 지난 밤 행적들을 소상히 보고 한다.


"몇가지 염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우선, 사찰팀이 장비에 남아 있던 물질들을 모두 수거해 갔습니다. 그리고 지문까지 채취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모두들 움찔하는 표정들이다. 장비에 남아 있던 물질이라면 탄화수소실리콘을 만들기 위한 원료들이다. 이것을 분석하면 광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신소재의 성분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기자재들에 그대로 남아 있던 연구원들의 지문을 분석하면 신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큰일이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 차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요. 일단 위원장님은 북쪽 연구원들을 데리고 먼저 빠져 나가십시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들이야 무사히 빠져나가 북조선으로 들어가면 무사하겠지만 여기 남아 계신 분들이 걱정이로군요."


박철웅 위원장이 남쪽 연구원들의 안전을 염려한다.


"우선, 양동근 교수는 특경대를 몇 명 착출해 붙여 드리는게 어떨까요?"


"그래요. 그러면 표시 안 나게 교수님 댁 근처하고 학교에도 조교로 위장해 몇 명 근접에서 경호할 수 있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고 안재홍 팀장은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대통령이 미국에서 들어 온 안재홍 팀장의 안위를 걱정한다.


"저희와 함께 북조선으로 들어가는게 어떻겠습니까?"


박철웅 위원장이 자기도 안재홍 팀장 문제가 걸렸는지 함께 동행할 것을 제안한다. 


"그게 좋겠습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찬성 한다.


"그리고 남궁 고문님은 노출됐을 염려가 거의 없으니 차라리 미국으로 건너 가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 일이 진척되었을 때 다시 합류하시게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그들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당당하게 행동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대통령의 의견이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경제분야쪽 일을 맡겨 발령을 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시도록 합시다. 그리고 방북 루트는 국정원장에게 특별 지시해 안전하게 올라가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모든 방법들이 일사분란하게 논의되어 확정되고 연구원들에게 통고 되었다. 그러나 대책회의의 결과를 통고받은 안재홍 팀장이 의외의 반발을 했다. 오랜만에 귀국해 아버지와 잠깐 해후의 정을 나누고 지하 벙커로 들어 왔다가 다시 또 헤어지는 마당에 인사도 없이 출국할 수는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이 문제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잠깐 시간을 내 기다려 합류시킬 수도 있으나 더 큰 문제는 고국산천을 한번 둘러보고 자기도 나중에 양동근 교수와 함께 연구팀에 합류하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아무리 만류를 해도 그의 젊은 혈기와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수방사에서 특별경호팀을 구성해 원거리 경호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이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준비가 되어 남북한 연구원들이 그 동안의 정을 아시워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 부둥켜 앉고 인사를 한다. 북쪽 팀은 국정원 요원들의 안내에 의해 중국을 경유한 후 북한 국적 항공기를 이용해 평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것이 제일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라 판단되었다. 모두 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북쪽 김책 공대 김영신 연구원이 안재홍 팀장을 바라보는 눈길이 애잔하다. 그 동안 기술적으로 많이 배웠지만 오빠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는 안재홍 팀장에게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같이 가면 안전할 것을 왜 그리 고집을 피우는지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걱정어린 눈치다. 그를 바라보는 안재홍 팀장도 눈빛으로나마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아쉬운 듯 손을 놓는다. 


김영신양은 북한의 영재교육제도에 의해 탁아소 시절 수학영재로 발탁되어 중학교때는 인도유학까지 다녀 와 지금은 김책공대의 김영철 교수와 함께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의 수재중의 수재다. 첨단 서방 기술의 입수가 어려운 북한은 대부분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들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하는 등 프로그램 개발 분야 만큼은 남한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김영신양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집중력으로 안재홍 팀장과 한 팀을 이루어 개발하므로 인해 빠른 시간에 완벽에 가까운 운영체제와 유틸리티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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