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시내에서 외따로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행복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촌스런 간판이 달린 사진관이 있다. 주인 사진사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은퇴하고 낙향 한 후 근처 시골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 생활을 찍으며 한가한 나날을 보내는 중노인이다.
"이놈아, 아빠한테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나간다고 그러냐."
오십은 훨씬 넘겼음직한 반백의 사내가 꾸부려 앉아 자전거를 매만지고 있는 아들인듯한 청년 옆에 다가가 쭈그려 앉는다. 청년이 돌아 보며 싱긋 웃는다. 얼마 전 청와대를 떠난 안재홍 팀장이다. 사진관 내부 벽은 온통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나 아낙들의 벙긋한 표정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그 한가운데 도회지 여성같은 멋지게 생긴 여인이 두 아이를 양쪽에 하나씩 끼고 찍은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작은 아이를 보니 영락없이 안재홍 팀장의 어릴적 모습이다.
"아빠 혼자 외롭게 사는거 알면서 조금 더 있다 가지."
아빠가 아들에게 응석을 부리듯 곁에 붙어 앉아 몇 일이라도 더 붙잡아 볼 요량으로 보채고 있다.
"아빠 알았어. 하루만 더 있어 줄께."
안재홍 팀장이 선심이나 쓰듯 아빠의 채근에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을 한다. 다시 떠나면 언제 또 올지 기약도 없을 뿐더러 소년 시절 추억이 어려 있는 고국 산천을 좀 더 자세히 돌아 보고 나서 북쪽으로 떠나려는 심산이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해 이혼하기 전 까지는 네 가족이 매주 여행을 떠났었다. 안 팀장에게는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엄마와 형이 떠난 후 몇년 정도는 가끔 만나기도 했는데 소식이 끊긴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야속하기만 한 엄마지만 옛날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는 목적도 있었다.
"아빠, 나 엄마 사진 하나만 줘."
"소식도 없는 엄마 사진은 뭐 하게, 이제는 잊어 버리렴."
아빠는 안재홍 팀장 귀퉁배기에 대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색 바랜 앨범을 꺼내 뒤적거린다. 몇 장을 넘긴 후 사진관에 걸려 있는 것과 똑 같은 가족 사진의 축소판을 꺼내 건네 준다. 사진을 받아 든 안재홍 팀장이 한번 슥 본 다음 자신의 지갑에 끼워 넣고는 다시 자전거 점검에 열중이다. 노란색이 산뜻하게 채색된 넓직한 프레임에 'HUMMER'라는 검은 고딕체의 제품명이 큼지막하게 써 있는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산악용 자전거로 입국할 때 같이 가져와 관악산에 가 있을 동안 아빠의 사진관에 보관해 놓았던 것을 꺼내 점검을 하는 중이다. 허머는 미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투자 해 몽테규(Montague)에서 파라트루퍼(Paratrooper)란 이름으로 개발한 군용 산악자전거의 민수용 제품이다. 낙하산에 매달아 떨어뜨려도 끄떡 없을 정도로 튼튼하며 실제 이라크에서 미 해병대가 실전에 투입해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안재홍 팀장은 군용 산악 자전거를 자신의 성향에 맞게 많은 치장을 했다. ??직한 프레임 하단에 전차에 깔려도 멀쩡한 군용 컴퓨터를 부착하고 이를 중심으로 핸들 중앙에는 네비게이션을 겸할 수 있는 5인치 크기의 LCD를 설치했다. 자전거 뒷쪽의 트렁크 박스 하단에는 연료전지가 수납되어 있고 그 위에 통신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박스의 뚜껑은 위성안테나를 겸하고 있다. 핸들 한쪽에 걸려 있는 헬멧에 달린 XGA급의 머리 장착형 디스플레이와 이어셋이 울트라와이드밴드(UWB) 시험실 버전의 무선 통신 방식에 의해 컴퓨터와 접속된다. 트렁크 박스 뒤에는 1인용 텐트와 둘 둘 말린 깔판이 벨트로 묶여 있다. 컴퓨터 공학도에 어울리는 여행용 자전거다.
아빠와 함께 누워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누던 안재홍 팀장이 이내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다. 이불을 가만히 올려 덮어 주고 아들 얼굴을 내려 보던 아빠가 홀로 나와 사진관 앞의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 앉아 담배를 꺼내 문다. 참으로 대견스런 막내 아들이다. 아빠도 한 때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쳐회사 대표를 지낸 적이 있어 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제대로 뒷 바라지도 못해줬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담배가 다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상념에 젖어 있던 아빠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오늘은 장마끝이라 그런지 하늘에 별들이 유난히 총총하다. 갑자기 10여년 전 헤어진 부인과 큰 아들이 보고 싶어 지는지 주름진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다음날 아침, 아빠가 일찍 일어나 앞 치마를 두르고 아침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이다. 홀로 사느라 찬도 없을 뿐더러 장을 보려면 가끔 다니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한다. 사실은 오늘이 큰 아들 생일이기도 하다. 근사한 아침 상은 아니지만 밥 한그릇을 국에 말아 맛있게 먹어 주는 아들이 고맙다. 밥상을 물린 아들이 옷을 갈아 입고 속옷들을 챙겨 자전거 트렁크에 담고는 헬멧을 쓰고 가게 앞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아빠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중고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는 선반으로 다가 간다. 앙증맞게 생긴 독일제 35밀리 소형 롤라이 카메라를 꺼내 필름을 쟁여 넣는다.
"홍아 이거 가져 가거라."
"우와! 아빠 이거 아직도 갖고 있었어?"
어릴적 아빠가 선물한 필름식 수동 카메라다. 요즘이야 싸고 좋은 디지털 카메라가 얼마든지 많지만 옛날 자신이 가지고 놀던 카메라를 보니 반가운 모양이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요리 조리 돌려 보며 살피던 아들이 트렁크를 열어 카메라를 담는다.
"아빠 이제 간다. 바이 바이."
"그래 몸 조심하고, 아무데서나 자지 말고... 갖다 와서 아빠 한번 더 보고 갈꺼지?"
"응 알았어 걱정 마. 아빠 뽀뽀!"
말투나 행동은 옛날 어리광 부리던 막내둥이 모습 그대로다. 자전거에 엉덩이를 붙인 자세로 가까이 다가 온 아빠를 끌어 앉아 볼에다 입을 쪽 맞추고는 손을 흔들며 폐달을 밟는다. 아들의 모습이 신작로를 내달아 사라졌는데도 아빠는 한참이나 서서 아들이 간 길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하드탑을 올린 레토나 크루저 한대가 사진관 앞을 지나쳐 달려 나간다.
"아 씨. 왜 저런 애숭이를 경호하라는거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검은 색 썬글라스를 쓴 사내가 조수석을 힐끗 바라보며 동조를 구한다.
"낸 들 아나 까라면 까야지."
수방사 소속으로 청와대에 배속된 특경대의 이중사와 하중사다. 둘 다 베테랑중의 베테랑으로 이런 허접한 경호 업무에 투입되었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화려한 경력으로 볼 때는 모욕이다.
"자전거 타고 나서는 놈을 졸 졸 따라가려니 짜증나 죽겠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느릿느릿 가는 자전거를 차량으로 따라가며 그것도 표시 안나게 원거리에서 경호할려니 죽을 맛이다. 본부에서 자전거와 짚차의 GPS 좌표 데이터를 CDMA 모뎀으로 수신 받아 위치추적시스템인 GIS맵으로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거리가 이격되면 문자 멧세지가 날라오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중간에 빵으로 점심을 때운 안재훈 팀장의 자전거가 어느새 이천 용인 평택을 지나 아산만의 삽교 방조제로 접어 들고 있다. 자전거를 끌고 방조제의 뚝으로 올라 선 안재훈 팀장이 바알간 저녁 노을이 멋지게 들기 시작한 서해대교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버지니아주 랭글리 CIA 본부 회의실,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이 앉아있고 응용과학과 기술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DDS&T 팀장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한쪽에는 공작부서인 DDO 팀장과 해외에서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는 DDI 팀장도 배석을 해 자기들이 발표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사찰팀이 한국에서 찍어 온 화면들입니다. 여기 보이는 장비는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한 고온 압축기입니다. 이들이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이 장비를 사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함께 채취한 원료들을 분석하면 어떤 물질을 만들었는지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저희팀과 CSI 과학수사대에서 동시에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자재를 운용하는 CIA의 DDS&T팀이다. 이들만으로도 모자라 CSI 과학수사대까지 동원해 정밀 분석을 하겠다고 한다. 우려했던 일들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었다.
"다음은 광 화학 반응을 이용한 레이저 미세 가공기입니다. 아마도 반도체 기초 패턴을 가공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장비는 3차원의 분해능과 100나노 이하의 정밀 가공이 가능해 평면 뿐만 아니라 소재 내부에 입체 패턴을 형성시킬 수도 있는 장비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자 단위의 가공까지 가능합니다."
"그런 장비가 상용화되었단 말인가?"
팔짱을 끼고 점잖게 듣고 있던 마이클 국장이 놀라운 듯 질문을 던진다.
"상용화된지는 얼마 안됩니다. 이제 갓 일본 오사카 대학의 연구 그룹이 구리, 니켈, 다이아몬드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고체 결정의 원자 배열을 3차원 구조의 포토닉 격자로 모사하는데 성공했을 뿐 입니다. 결론적으로 고온 압축기로 뭔가 신물질을 만들어 레이저 가공기를 통해 3차원적 가공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CIA의 분석력은 대단했다. 이어서 DDI 팀장이 USB 메모리 스틱을 노트북에 끼우고 자기 팀에서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뛰웠다.
"저희팀에서는 핑거 프린트 스캐너로 수집된 지문 데이터들을 분석했습니다. 10여개의 지문중에 5개만이 저희가 보유하고 지문 데이터와 일치했고 나머지 5개는 데이터가 대조할 수 없었습니다."
"절반이라도 성공했다니 다행이군."
"그중 2명은 수방사 사령관과 부관이고 나머지 3명 중 1명은 장비 공급사의 엔지니어로 판독되었습니다."
이미 타국 국민의 지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범죄자들에 한하여 사진과 지문을 채취하다가 9.11 테러 사건 이후 국토안보국이 유에스비짓(US-VISIT) 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과 심지어는 체류중인 재외국인에게까지 지문 날인을 적용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각국에 소재한 미 대사관에서는 비자 신청시 지문을 스캔한 뒤 본국으로 넘겨 범죄 리스트와 대조하고 있어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나 해외 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수방사 부관까지 판독한것을 보면 한국 행자부의 주민등록 DB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나머지 두명은 누구요?"
마이클 국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재촉을 한다.
"하나는 신소재 개발을 연구하는 포항공대의 양동근 교수고 또 다른 하나는 안재홍이라는 인물입니다."
"안재홍? 어떤 사람인지 파악은 됐소?"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친구입니다. 15살에 입국해 MIT 공대에 특례입학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중간 그러니까 17살에 애플사에 입사해 MAC OS 인텔 버젼을 개발하고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출국한 후 바로 한국으로 입국한 것 까지는 조회가 되는데 그 다음 행적이 묘연하다는 뜻 입니다. 아 물론 양동근 교수가 휴직계를 내고 잠시 입국한 후 같이 출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까지 그곳에 같이 있었다는 결론이군."
"그렇습니다. 지난 2년동안 관악산에서 같이 연구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애플사에서 한 일에 대해서는 면밀히 조사를 했소?"
마이클 국장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리며 질문을 한다.
"비밀리에 애플사 스티브 잡스 회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입니다. 거의 천재라 할 수 있답니다. 최고 대우를 하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 삼아 메일 하나 보내 놓고 사라져 자신들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던 참이라 합니다."
CIA 본부에서는 한국 관악산 지하 벙커 사찰결과에 대한 조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보고를 마친 DDI 팀장이 연단을 내려왔다.
"좋아요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DDO에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해 보고하도록 하시오."
마이클 국장이 공작부서인 DDO팀장을 돌아 보며 또 다른 업무를 주문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변산반도 채석강, 약 7천만년전의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층이 수 만권의 책처럼 차곡 차곡 쌓여 있는 채석강 석벽을 파도가 밀려와 때리며 새하얗게 부서진다. 인간이 채 일만년 전 후반의 흔적만을 고증해 역사책에 수록하고 있으나 저 채석강 벽은 수 억년 전 부터 형성되어, 그 기나긴 역사를 한층 한층의 레코딩판으로 기억해 쌓아 올려 지금 우리에게 읽기를 강요하고 있다. 일만년 전, 아닌 천만년전의 인간은 어땠을까? 교과서에서처럼 원숭이 같이 털이 숭숭한 모습으로 고기를 취하려 맘모스와 싸우고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수십배의 문명을 쌓아 올려 비행접시를 타고 별 사이로 유람을 했었을까? 지금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로 분류할 수 밖에 없는 수 천년 전에 우리의 조상이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팔괘를 어떻게 창조할 수 있었을까? 또한 그 시기에 지금의 한글과 같은 원리의 '가림토'라는 문자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불가사의한 유적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교만함과 닫힌 마음으로는 현재의 물질 문명이 최고로 보일 수 밖에 없지만 그 닫힌 마음을 열면 수만년의 역사를, 조상의 슬기와 가르침을, 그 유산들을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해져야 한다.
몇 일째 서해의 해안선을 따라 달려 내려 온 안재홍 팀장이 눈을 감고 마치 장님이 점자를 잃듯이 채석강의 석벽을 어루만지고 있다. 불현 듯 옛날 아버지의 말씀이 떠 올랐다. '얘야, 여행은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가슴으로 느끼고 배우는 즐거움이 더 크단다.' 이제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산 속의 지하 벙커에만 틀어박혀 있다 이렇게 대 자연을 만끽하니 한 없이 속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채석강에서 떠날 줄 모르던 안재홍 팀장이 시장기가 도는지 함지박에 해산물을 담아 파는 좌판으로 다가 선다.
"아줌마 낙지 좀 썰어 주세요."
"총각, 세발낚지는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야."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아줌마가 적적하던 차에 손님이 반가웠던지 낚지를 젓가락에 둘둘 말더니 입에 쑤셔 넣어 준다. 얼결에 받아 먹은 안재홍 팀장이 뒤로 주저 앉아 입 안 가득한 낚지를 우물거린다. 미쳐 다 들어가지 못하고 입가에 걸려 있던 낚지 발 하나가 콧등으로 기어 오르는 것을 떼어 입안에 집어 넣는다. 향긋한 멍게며 해삼을 더 썰어 먹고 이제는 배가 어느 정도 찾는지 손으로 입을 훔치고는 셈을 하고 일어 선다.
"역시 여행길엔 먹는 즐거움도 있어야지."
다시 자전거를 짊어 지고 절벽을 오르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여행할 때를 생각한다. 지방으로 여행을 하면 꼭 그 지역의 특산물을 챙겨 먹었다. 가끔은 삭힌 홍어나 과메기처럼 요상한 맛을 내는 음식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맛이 있었다. 기장에서 먹은 짚불구이 곰장어는 요리하는 방법부터가 징그럽고 물컹해서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짚을 태운 향기가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근처의 내소사를 한 바퀴 둘러 보고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어느새 밤이 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전나무의 진향을 느끼는 기분도 그만이다. 코가 절로 하늘을 향해 벌름거린다. 달려 내려오던 안재홍 팀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전거를 끌고 숲으로 들어 선다. 아마도 전나무 숲에서 야영을 하려는 생각인가 보다. 한적한 숲 속의 평평한 곳을 찾아 자전거를 세운 안재홍 팀장이 서둘러 1인용 텐트를 치고 둘둘 말려 있던 깔판을 펴 텐트속에 풀어 넣는다. 에어 쿠션에 바람을 넣어 베개를 만들고 LED로 된 휴대용 전등을 켜 텐트 입구에 걸어 놓는다. 자전거에서 GPS로 사용하던 LCD 모니터를 떼어내 삼각대를 이용해 텐트속에 고정시키고 트렁크에서 두르마리 키보드를 꺼내 편 다음 LCD 모니터에 접속한다. LCD 모니터는 자체 프로세서와 뱃터리가 내장된 일체형 소형 컴퓨터다. 자전거에 달린 본체와는 평상시 케이블로 연결해 사용하다가 따로 떼어내면 480Mbps의 무선 블루투스로 접속된다. 배를 깔고 누운 안재홍 팀장이 키보드를 두드려 트렁크의 통신장치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후 웹메일을 열어 메일 리스트를 검사한다.
"앗싸! 왔다."
위성통신을 이용해 인터넷 메일 서버에 연결한 것이다. 키보드의 터치 패드에 손가락을 올려 마우스 아이콘을 메일 제목에 위치시키고 왼쪽 버튼을 누른다. 새 창이 열리며 비디오 메일이 실행된다.
"오빠동무~ 내래 보입네까?"
남한을 탈출 해 북한으로 복귀한 김영신 연구원이다. 생기 발랄한 모습으로 함박 웃음을 지며 손을 흔든다. 남한 연구원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 덧 남한 말을 흉내 내던 김영신 연구원이 북한으로 올라가자 마자 다시 북한 처녀로 바뀌어 있었다. 말투만이 아니다. 북한 여대생 특유의 흰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안재홍 팀장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번진다.
"오빠가 보내신 콤퓨타 소식통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네다. 우린 교수동무하고 평양으로 오면서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시요. 이제 메칠 지나니 좀 안심이 되는구만요."
김영신 연구원이 숨을 몰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시늉을 한다.
"여행 떠나셨다구요. 좋갔습네다. 나도 좀 데리고 다니면 신혼부부로 볼라나? 크크크! 오빠동무 북조선에 오면 내가 안내하갔시요. 묘향산도 가고 칠보산도 가고 고 고조 대동강에서 뱃놀이하고 모란봉 공원에서 도시락 만두 먹으면 그만입네다."
속사포 같이 김영신 연구원이 북한 산천 자랑을 한다. 그 보다는 안재홍 오빠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오빠 동무 보고싶습네다. 고저 고만 돌아치고 빨랑 올라오시라요. 박위원장 동무래 개성에 연구실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네다. 빨리 옛날처럼 오빠 동무하고 일하고 싶습네다."
말 폼새가 일 보다는 옆에 같이만 있어도 좋겠다는 눈치다. 저고리 처녀답게 옷 고름으로 눈시울을 훔치면서 떠들다가 제 풀에 지쳤는지 손을 흔들며 비디오 메일을 종료한다. 안재홍 팀장이 비디오창이 까맣게 바뀌었는데도 베개를 베고 누워 행복한 미소로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여기 저기 한참을 더 인터넷 서핑을 하고는 기계들을 정리하고 똑 바로 돌아 눕는다. 자전거 바퀴를 돌리느라 고단했던지 금방 가늘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다. 전나무 숲속에 적막이 찾아들고 산새만 가끔씩 딸꾹질을 해 대며 달이 흐른다.
"어쿠쿠!"
'삐용 삐용 삐용'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안재홍 팀장이 소스라치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 서는지 작은 텐트 지붕이 들썩 한다. 안재홍 팀장이 입구에 걸려 있는 휴대용 전등을 들어 밖을 살핀다. 밀짚모자를 쓴 노 스님이 엉덩방아를 찌었는지 손을 뒤로 돌려 땅을 짚고 입은 반쯤 벌린 자세로 앉아 있다. 안재홍 팀장이 얼른 달려 나와 스님을 부축한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나 마나 내가 물어볼 소릴세."
"아 이거요. 보안 장치입니다."
자전거와 텐트의 프레임에 생물체가 접근하면 근접 센서가 감지해 순간적으로 고출력 전기 쇼크를 일으키게 하는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쇼크뿐만 아니라 사이렌하고도 연동되어 요란한 소리로 괴한이나 동물을 도망치게 만든다. 안재홍 팀장이 스위치를 눌러 끄고는 미안한 마음에 자세히 설명을 한다.
"놀라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안재홍 팀장이 송구스런 마음으로 사죄를 청한다. 이제 좀 안정이 되었는지 노 스님이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일어나 똥 누는 자세로 쪼그려 앉는다.
"그건 그렇고, 이런데서 잠을 자면 쓰나."
"여행중이고 우리땅을 함뿍 느끼고 싶어 이렇게 한대잠을 잡니다."
"그래? 그 참 쓸만한 젊은이구만."
노 스님이 밤 늦은 길을 서둘러 오르다 불빛을 발견하고 왼놈들인가 해서 내 쫓으려 왔던 것이다. 연놈들이 와서 뒹굴고 있으면 혼찌검을 내려 했는데 말 하는 것을 보니 괜찮은 젊은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땅을 느끼고 싶다고?"
"아 예."
"우리나라 땅만큼 정기를 품고 있는 곳도 없지. 자네 우리나라 땅이 어디까진지 아는고?"
"우리 땅이라면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아닌가요?"
스님의 엉뚱한 질문에 되레 반문을 한다. 스님이 바랑을 내려놓고 퍼질러 앉는다. 한밤에 마주한 젊은이와 말동무를 할 심산이다.
"자네 이름이 뭔고?"
"안재홍입니다."
"오 그래? 본은 어떻게 되는고?"
"순흥안씨입니다."
"응 그래 그래. 잘 됐구만 내가 자네 조상 얘기를 해 주지."
땅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웬 조상 이야기인가.
"자네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왔다는건 알고 있겠지?"
"예 전에 아버지한테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럼, 당나라 황족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나?"
"황족이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그렇겠구만,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어보게. 자네 도시조되는 이원이란 분이 원래는 중국 롱서지방의 왕이었어. 그분의 함자 원을 옥편에서 찾아보면 임금왕변을 쓰는 도리옥원(瑗)으로 나와 있을거야. 지금이야 상관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임금왕변을 이름에 쓰면 불충이 되는게야.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써도 안되는 시기였으니 말이야. 이 양반이 어떻게 왕이 되었냐 하면, 그 분의 선대가 당나라를 세운 당 고조 이연의 사촌형제란 말이지. 당 태종 이세민에게는 5촌 당숙인데 수나라를 치고 당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단 말일세. 그래서 논공행상에 따라 롱서지방의 왕으로 봉해진거란 말일세."
"왕이었던 사람이 왜 다른 나라로 망명을 했죠?"
"음, 잘 들어보게. 그 당시가 당 헌종때인데 환관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휘어잡았어. 황제가 거꾸로 환관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가 되었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지. 지방의 왕들을 들어와라 마라 그러는데 이 양반이 그 꼴이 보기 싫어 입조를 안한거야. 그러니 환관놈들이 왕위를 폐하고 목을 베겠다고 을러대니까 거꾸로 황제가 환관에게 통사정을 해서 살아 남았지. 그런 상황이니 거기서 살고 싶었겠나. 에 따 더러운것들 하고는 아우 한분과 함께 가솔들을 데리고 신라로 넘어온거야. 이때가 신라는 애장왕이 다스릴적인데 왜구의 노략질이 극에 달했었지. 그래 이 양반이 아들 삼형제를 선봉으로 세워서 왜구들을 도륙을 냈어, 왕이 가솔들만 데리고 넘어왔겠나? 군사들도 함께 데리고 왔으니 위세가 대단했을거란 말일세. 그리고 신라왕이 환대를 하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의 근심을 없애 준거지. 그래서 신라왕이 백성을 편안케 해준 공을 높이 사 편안할 안자 안씨성을 쓰라고 한거야. 그때부터 이씨가 안씨가 되었는데 당나라에서 함께 넘어온 동생되시는 이황이라는 분의 후손들은 이씨성을 그대로 간직해 고성이씨가 됐다는구만."
"스님은 남의 집안 내력을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나? 역사는 말이야 지금까지 대부분 왕조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왔잖아. 그러나 각 집안의 내력을 조사하면 더 살아있는 역사를 알 수 있어. 새로운 왕조가 세워진다는 것은 이 전 나라를 정복했거나 왕조를 무너뜨렸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새 왕조는 자기들이 세운 나라를 미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대 국가 왕조의 역사를 나쁘게 왜곡시켜 버리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이라네. 그런데 말일세. 각 집안의 족보까지 건드릴 수는 없어. 그 족보에는 자기 집안의 조상들이 무슨일을 했는지 기사가 잘 정리되어 후손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말 그대로 또 다른 분야의 역사가 되는거야."
"그러면 역사학자세요?"
"돌팔이지만, 뭐 그런셈이지. 허허"
이야기를 하느라 목이 컬컬했던지 바랑을 뒤적여 막걸리 한병과 종이컵을 꺼낸다. 아닌게 아니라 행색을 봐도 돌팔이에 유리 걸식하는 땡중으로 보인다.
"스님이 웬 술이세요?"
"아 따 이사람아 그 나이에 곡차도 모르나 자네도 한잔 하게."
"여기 이 시꺼먼 고기는 뭐예요?"
안재홍 팀장이 바랑에서 삐져 나온 육포처럼 생긴 고기를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개고기 말린거야."
"막걸리에 개고기에 염불하는 스님 맞는지 모르겠네요."
"음식을 가지고 타박을 하면 쓰나, 개고기는 비상식량이야.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왜 개를 키우게 됐는지 알아? 쓸데없이 아까운 밥 먹여서 데리고 사는게 아니란 말일세. 지금이야 애완견이니 뭐니 해서 안방에서 데리고 자기도 하지만 먼 옛날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게 없을 때 잡아먹는 비상식량었단 말일세. 알겠나?"
"환장하겠네요."
"환장이고 지랄이고 이제부터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게."
막걸리를 한잔 주욱 들이키고 손등으로 입술을 슥 훔친 다음 개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중요한 얘기를 할 모양이다. 어쨌든 이상한 스님이 생경한 이야기들만 하니 귀가 더욱 솔깃해진다.
"얼마전 대만에서 당 황실 세계보가 발견됐지. 말 그대로 당나라 황실의 족보란 말일세. 거기에 보면 자신들이 노자의 후손이고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술돼 있어. 그게 무슨말이냐 하면 자기들 당 황족이 위대한 동이족의 후손임을 족보에서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었단 말일세. 결국은 말이야. 지금 중국이라 떠벌리는 중국이란 나라는 없었단 말일세. 그 쪽 한나라와 명나라를 제외한 지금의 지나인들이 자랑하는 수천년의 대륙 역사는 대부분이 동이족이 세운 나라들이란 말일세. 알아 듣겠나?"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당나라는 그렇다 쳐도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된거예요?"
"일단, 하은주 또는 하상주라고 하는 하나라부터 주나라는 모두 동이족이 세운 나라야. 주나라부터 중국의 역사라고 억지를 쓰고 있지만 주나라도 마찬가지란 말일세. 진시황의 진나라도 그렇고, 중국인들이 한나라를 받들고 진나라를 멸시해서 궂이 한족이라고 하지 영문 표기로는 차이나 지나라고 하면서 말일세. 대륙을 몽고가 지배했던 원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는 초기 후금이라해서 전대의 금나라를 받들었지. 청나라 황실의 성을 아이신지료(愛新覺羅)라고 했어.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 본적 있나? 그 어린 꼬마황제 이름이 아이신지료 푸이야. 아이신지료가 무슨 뜻인가 하면 신라를 잊지 않고 사랑한다라는 말이야. 신라의 후손임을 각인하기 위해 아예 성으로 만든거지. 어떤가? 그런 옛날 일들을 아는 지금 지나놈들이 우연한 기회에 차지하게 된 만주땅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수 많은 돈을 들여 동북공정인가 뭔가를 하는거란 말일세. 그러니까 대륙에 있던 고구려도 자기네 역사고, 단군이 신화가 아니고 엄연한 실제 역사임이 밝혀지면 단군도 자기네 역사라고 할거란 말일세."
"그렇군요. 말씀 들어보니 정말 그러네요."
"역대 왕조들뿐만이 아니야. 아까 내가 노자가 동이족이라고 했나? 노자는 황노지교(黃老之敎)라고 해서 동이족의 황제 사상을 집대성해 도교가 만들어진거고, 노자 뿐만이 아니고 공자는 은나라 왕족인 송미자(宋微子)의 후손인데 은나라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니 공자도 동이족이지 중요한 것은 논어에서 술이부작(術而不作)이라 하여 '나는 요와 순의 사상을 계승해서 서술했을 뿐이지 내가 만든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어. 상당히 겸손한 양반이지만 그 만큼 조상들의 학식을 존경한다는 뜻이야. 요와 순의 사상이라는 것은 홍익인간의 사상이란 말일세. 지금의 지나인들이 자신의 조상으로 알고 있는 노자나 공자와 같은 성현들도 대부분 동이족이고 동이족의 사상을 집대성한 사람들이란 말일세."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안재홍 팀장이 노 스님의 빈잔에 두손으로 공손히 잔을 채우고 있다.
"석가도 마찬가지야, 석가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 가섭불(迦舌佛)시대가 있었지. 이것은 아도화상의 비문과 삼국유사에도 나와 있는 얘기야. 석가가 뭐라고 했냐면, 대방광 불화엄경 보살 주척품에서 이르기를 '해동 금강산에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있어서 일천이백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고 있는데 그 불법이 거기에 예로부터 있었다'라고 했거든. 기독교도 마찬가지야."
"불교야 그렇다 쳐도 기독교는 서양에서 자생된 종교잖아요."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뿌리를 찾아가 보면 재미있어. 모세 5경의 원류가 함무라비 법전이야. 함무라비 법전을 토대로 모세 5경이 만들어졌단 말일세. 함무라비 법전은 수메르법을 계승한것이고 수메르인이 어디서 간 사람들인가?"
"음 거기 지금 이란이나 이라크 근방에서 원래 살던 사람들 아닌가요?"
"나는 이렇게 보고 있어. 뭔 옛날 지구상에 최초의 문명이 바이칼호 주변에서 만들어졌는데 이 사람들이 세곳으로 나뉘어 이동을 했지. 하나는 남쪽으로 내려와 우리들의 조상이 됐고 또 한 부류는 시베리아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남미에 고도의 문명을 만들었어. 그리고 또 다른 부류가 서쪽으로 이동해 수메르 문명을 만들었지. 이제 이해가 되나? 서양 사상은 크게 헬레니즘이라는 인본주의와 헤브라이즘이라는 신본주의야 이것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수메르인의 사상이란 말일세. 이 지구의 모든 사상의 뿌리가 동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빛은 동방에서'라는 말이 생겨난 거야."
스님의 옛날 이야기에 새와 벌레마져 빠져 들었는지 사위가 쥐 죽은듯이 조용한 가운데 스님의 낭랑한 이야기 소리만 들려 온다.
"내 정신 좀 보게, 아까 땅 얘기를 했었지? 우리 조상이 터를 잡은 후 처음에는 아홉개 부족이 연합한 형태로 구성됐지. 아홉개 이족의 연합이라 해서 구이족이라 했는데 지금 지나족의 조상이라할 수 있는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동쪽으로 밀려났어. 이 때부터 동이족이라 부르게 된 거란 말일세. 정통 동이족의 후예중에 가장 강성했던 두 나라가 있었는데 고구려와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야. 고구려가 세워 지기 전에도 구려라는 말을 썼다는 것을 아나? 그전부터 한자로는 구이라 적는데 우리 조상들은 자기들을 구리 또는 고리라는 말로 불러 왔다는거야. 그 뭔 옛날의 나라 이름을 지금도 그대로 이어받아 쓰고 있으니 대단한 민족이란 말일세. 고구려에서 떨어져 나간 몽고리(몽골)가 대표적인 예고 왕건의 고려도 정통성을 이어 받았지. 지금 남북한은 조선이란 국호와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사용하는데 외국인들은 모두 꼬리 또는 코리아라고 하지. 굳이 붙인다면 터키도 고리라 할 수 있지. 터키는 옛날 돌궐족이야. 돌궐은 돌구리가 되는 거지. 얼마나 척박한 곳에서 살았으면 돌구리라 했겠나. 너무 억지인가? 허허허. 고리의 준말인 궐 골 굴 이런 말은 모두 같은 뜻이야. 대궐은 큰 고을을 말하는 거고 골은 마을이란 뜻으로 쓰이지. 굴은 어떤가? 소굴처럼 그 보다 더 작은 의미의 부락을 지칭하는 것이란 말일세. 지금은 북쪽 고원으로 여기 이 작은 한반도로 쫓겨나와 살고 있지만 조만간 옛날 중원을 경영하던 고구려나 몽고리의 영광이 다시 돌아올거란 말일세. 알아 듣겠나? 우주가 도는 것 처럼 인간의 역사도 돌고 도는거야."
"저도 그런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안재홍 팀장은 '제가 대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에서 강력한 국가를 재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삼국이라 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한반도와 만주 정도에서 서로 부대끼며 산것으로 알고 있어. 큰 잘못이야. 우리의 강역은 중원 대륙이었지.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도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단 말일세. 반도에 평양이 있으면 대륙에도 평양이 있어. 전라도에 전주가 있으면 황하 유역에도 전주가 있어. 이게 왜 그런지 아나? 고려에서 조선으로 점 점 나라가 쪼그라들면서 대륙의 고향 지명을 반도에 그대로 옮겨 온거야. 그런 현재의 지명만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다 보니 엉터리가 되는거야. 동이족이 세운 수나라 당나라도 우리 역사로 본다면 삼국이 아니라 사국 오국시대라 해야 되. 결국은 말이야 대륙에서의 동이족 나라들간의 패권 다툼이었지. 한나라가 망하고 오호십육국이란 혼란기를 거친 다음 수나라가 일어 섰다가 고구려에 패하면서 당나라가 일어 섰지. 다시 당나라가 망한 다음에는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로 이어지고 한편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로 이어지면서 거의 천년을 동이족이 다스리던 시대였어. 그 후 한 삼백년만 한족인 명나라가 잠시 차지하고 있다가 다시 동이족의 청나라로 이어졌지. 그 때 고려는 여진족인 이성계가 반역으로 정권을 잡아 조선을 건국했고 말일세. 조선이 망하면서 왜놈들이 간도땅을 지나인들한테 팔아 넘겼어. 남아 있던 반도도 왜놈이 망한 후 우리땅을 침범한 미제와 로스께 놈들이 남북한으로 갈라놨단 말이지. 광개토 대제가 지금의 우리들을 보면 뭐라 하시겠나."
"창피한 일입니다."
"우선, 자네같은 젊은이들의 최 우선 과제는 통일이야. 그 다음이 간도땅을 되 찾는 일이고 그 다음이 뭔지 아나? 몽고리와 연합해 그 옛날 원나라와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하는 거야."
스님의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듯 싶었다.
"내가 막 옛날 우리 땅을 모두 돌아보고 오는 길이야."
"옛날 우리 땅이라면 중국을 다녀오셨다는 말씀이세요?"
"이 사람아 중국 뿐이야 옛날 혜초 스님이 갔던 길로 인도까지 갔었지. 인도로 해서 몽고리로 해서 북한으로 해서 이제 막 돌아오는 길이란 말이야."
"북한엔 어떻게 들어가셨어요? 통일부 허락 받고 가야 된다던데."
"이 사람아 내땅 내 두 발로 들어가는데 언놈이 길을 막아! 내가 한국 국적인줄 알아? 난 고구려인이야. 대고구려인이란 말일세. 하하하"
스님이 버럭 소리를 지른 후 크게 소리 내어 웃는다. 아닌게 아니라 옛날엔 고구려 사람이라던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의 장수가 되고 신라의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스님의 말씀처럼 당나라 이원이란 조상이 신라에 들어와 살았던 것 처럼 철조망같은 국경이 없이 서로 마음껏 다녔을 것이다.
"아흠! 피곤하다. 나 먼저 자겠네."
스님이 하품을 하더니 텐트로 쏙 들어가 몸을 뉘인다. 졸지에 텐트를 빼앗긴 안재홍 팀장이 밤 이슬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났기에 그저 앉아 꿈인지 생신지 괴스님이 뱉아 낸 말들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스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는 모두 불태워 없애버리고 새로 쓰여 져야 한다. 하긴 그 동안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많이 축소되어 왔다. 모화사상에 물든 김부식에 의해 중국의 사서를 그대로 베끼듯 삼국사기가 쓰여졌고, 소중화라 칭하던 조선의 사대부들에 의해 반도내에서 중국의 지배를 받던 역사로 변질되었고, 왜국의 종노릇을 하던 이병도와 같은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다시 한번 철저히 난도질 당했다. 옛 고서들은 병인양요라 하여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인들에 의해 약탈되고, 궁중과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중이던 각종 서적들은 왜놈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그 뿐이랴, 옛날 진시황이 그랬던 것 처럼 조선총독부는 민간에 보관중이던 51종 2십여만권의 역사서들을 수거해 중요 자료는 일본으로 반출하고 나머지는 경복궁에서 불 태웠다고 하니 그저 땅을 치며 통분할 일이다. 숲속인데도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다. 스님이 부시시 일어나 신발을 찾아 신고 나선다.
"젊은이 잘 잤나? 아침 먹으러 가야지."
남의 텐트에 들어 혼자 잘 자 놓고선 일어나자 마자 아침 먹으러 가잔다.
"스님 잘 주무셨습니까?"
"그래 가세."
안재홍 팀장이 텐트를 정리해 자전거에 달아 매는 사이 스님은 벌써 개울로 내려가 벅 벅 세수를 한다. 뒤따라 내려 와 자전거를 세워놓은 안재홍 팀장이 개울로 내려 온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 안재홍 팀장의 수건을 빼앗아 얼굴을 훔친 스님이 앞장 서고 자전거를 끌며 안재홍 팀장이 뒤 따른다.
"여기 왔으면 풍천장어 맛을 봐야지."
"풍천장어를 먹으려면 고창까지 가야 되잖아요."
"뭘 거기까지 가, 여기 내려가면 내 아는집이 있어."
개고기를 안주로 드시는 분이 장어는 못 드시랴만은 좋은 건 골고로 찾아 드시나 보다. 스님 옆에서 자전거를 끌고 같이 걸어 간다.
"이래갔고 언제 가나 자전거 타고 내 달려 내 뒤 따라갈테니."
"스님 뜀박질도 잘 하시나봐요."
"뜀박질로 하면 내가 자동차보다 빠르지 걱정말고 어서 달려."
스님을 놀려 주려는지 안재홍 팀장이 자전거에 오르자 마자 폐달을 힘차게 밟으며 한참을 마구 내 달리다 뒤를 돌아보며.
"스님~ 어서..."
허걱이다. 한 참을 내 달렸는데 바로 뒤에서 뒷짐을 지고 씨익 웃으면서 따라 오고 있다. 뛰는 것 같지는 않은데 몇 번을 돌아 봐도 똑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오고 있다. 숨도 안 차는 기색이다. 뒤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오는 경호원들이 보기에도 입이 딱 벌어지는 장면이다. 어젯밤에는 싸이렌 소리가 울려 허겁지겁 뛰어 올라가 보니 웬 스님과 정담을 나누고 있어 안심을 했는데 오늘은 일어나자 마자 안재홍 팀장은 자전거를 타고 냅다 달리고 그 스님은 뛰는 듯 나는 듯 바짝 따라가고 있다. 대쉬보드의 속도계와 앞의 둘을 번갈아 바라 보며 자기들 눈을 의심한다. 웃기기도 하지만 믿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아닌게 아니라 바닷가에 풍천장어집이란 간판이 붙은 식당이 나오자 스님이 자전거를 잡아 세운다.
"저 뒤에 따라오는 놈들은 뭔가?"
"경호원이랍니다."
"경호? 누가 누굴 경호해?"
"저를 경호한다고 그러네요. 글쎄."
"자네가 고관대작의 아들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게요."
스님이 먼저 식당 문을 밀친다. 아침 댓바람에 식당이 문을 열었을리가 없다. 스님이 문을 꽝꽝 두드리며 주인을 부른다.
"풍천댁! 아직 자나?"
'쾅 쾅 쾅'
"아따 풍천장어 팔면 다 풍천댁인가?"
중년의 아줌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 준다.
"이 사람아 날이 훤한데 가게 문 열 생각은 안하고 여태 자빠져 자? 밤새 서방질이라도 했나?"
"서방이 있어야 서방질을 하지요. 시님이 아침부터 별 말씀을 다 하셔."
아줌마가 퉁명을 부리면서도 문을 열고 한쪽으로 비켜 선다. 스님이 성큼 성큼 들어 서 바닷가쪽 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여기 장어 2인분하고 막걸리 좀 가져 오게."
"시간이 좀 걸리니 기다리슈."
주인 아줌마가 물컵을 쟁반에 받혀들고 탁하니 놓고 내 뺀다.
"아 참 그거 막걸리 말고 복분자 있나? 장어엔 복분자를 곁들여야지."
"시님이 장어에 복분자를 먹고 거시길 어찌 주체하려고 그러슈."
"이 사람이 말머리마다 시님이야. 내가 그래 팔자에도 없는 시인으로 보여?"
"시인인지 땡중인지 내가 알게 뭐예요."
"내가 시간만 많다면 오늘 밤 자네 거둬들이고 치마폭에 시 한수 써주고 싶네만 워낙 바쁜몸이라서 말이야."
앞에 앉은 안재홍 팀장이 빙그레 웃으며 둘의 수작을 보고 있다.
"시님은 아래 달린 요령으로 굿을 허요? 웬 쌍방울 소리가 이리 요란해요."
아줌마가 딸랑이를 흉내내는지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며 나가고 씨익 웃으며 쳐다보던 스님이 안재홍 팀장을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어 밥상을 툭툭 친다.
"자네 호신술 하는 거 있나?"
"예 미국에 있을 때 태권도 도장엘 좀 다녔습니다."
"그래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거야. 밥 값으로 내가 호신술 가르쳐 주지."
남의 텐트를 차지하고 자더니 아침 밥 값까지 물린 참이다.
"호신술은 말이야. 다른게 없어. 제일 좋은 것은 들고 튀는거야. 냅다 줄행랑 치는데야 당할 놈이 없지."
"크크크! 스님 같으면야 따라올 사람 없겠어요. 그게 다예요?"
"도망칠 곳이 없으면 주변에 아무거나 집어 들고 던지는거야."
"에이, 그런거야 누가 못해요?"
"자네 잘 들어. 무술의 기초는 도망치는거 하고 돌멩이를 던지는거란 말이야. 고기서 쫌 더 발전한게 나무막대기로 들고 치는거고."
"무슨 원시인들 사냥법 같애요."
"누가 더 빨리 공력을 들여서 들고 치느냐 여기서 판가름 나는거지. 그럴려면 요령과 연습이 있어야 돼."
하기야 말은 된다. 둘이 잡담을 하는 사이 어느새 구웠는지 주인이 쟁반에 노릇 노릇 기름기가 흐르는 먹음직한 장어와 복분자 한병을 올려 들어 온다. 스님이 내려 놓은 작은 잔은 제쳐 두고 물컵에 복분자를 벌컥 벌컥 따라 한 잔 주욱 들이킨다.
"어허! 맛 조오타."
안재홍 팀장이 장어를 하나 들어 입에 가져 간다.
"장어는 말이야 생강채하고 부추를 곁들여야 제 맛이야."
스님이 장어에 생강 채 잘게 썰은 것과 부추를 한줌씩 올려 먹으며 시범을 보인다.
"옥황상제가 고창에서 사람이 죽어 올라오면 풍천장어 소식부터 물었대. 그정도로 맛이 기가 막히단 말이야. 이놈들이 다 자라면 태평양 한 가운데로 나가 새끼를 까지. 그 거리가 거의 6천킬로미터나 된다네. 조그마한 새끼들이 꼼지락 거리면서 그 거리를 돌아 온다고 생각해 봐. 대단하거 아니야. 내가 두 다리로 세상을 주유하는 건 상대도 안된단 말이야. 복분자는 어떻고! 옛날에 신선들이 숨겨두고 먹던 술이야. 장어에 복분자면 옥황상제도 안부럽단 말일세."
스님이 연신 술과 안주를 먹어 치우며 찬미를 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 향기와 고소함이 꿈결같은 맛이다. 복분자 한병을 더 시켜 해치우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 선다. 안재홍 팀장이 셈을 하는 사이 스님이 복스런 주인 아줌마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덕담을 건넨다.
"장어만 팔지 말고 정도 좀 팔아 봐. 그래야 장어같이 팔팔한 거시기 달린 사내가 꼬이지."
"이 양반이 주책맞게 별 얘길 다 하셔."
돈을 세던 주인 아줌마가 파리 잡듯 제 엉덩이를 치며 눈을 홀기지만 화난 표정은 아니다. 식당을 나선 둘이 바닷가로 나가 앉는다. 배도 든든하니 퍼질러 앉아 시원한 바닷 바람을 쏘이며 갯 내음을 맡는다.
"저 끝에다 큼지막한 돌멩이 하나 세워 봐."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스님이 한 쪽을 가르키며 돌을 하나 세워 놓으라 한다. 주섬 주섬 일어 선 안재홍 팀장이 주위를 두리번 거려 돌을 하나 세워 놓고 돌아 온다.
"잘 봐."
동글 동글한 돌을 하나 주워 든 스님이 몸을 휙 돌리며 집어 던진다. 돌은 곧장 날라가 팍! 하는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세워놓은 머리통 만한 돌을 박살을 낸다. 박살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폭탄이 터진 듯 연기가 피어 오른다. 멀리서 쌍안경을 들고 지켜 보던 경호원이.
"어쭈구리! 놀고 있네."
스님이 돌을 하나 더 주워 든다.
"요놈들이 어따 대고."
몸을 돌려 경호원들이 서 있는 차로 돌을 휙 날린다.
"어쿠!"
납짝 엎드린 경호원 몸통 위로 돌이 쐐에하는 비행음을 날리며 지나 간다. 거의 2백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거리다. 스님이 돌을 하나 더 주워 들고 돌아 서자 경호원이 손을 번쩍 들고 머리 위에서 싹싹 비는 시늉을 한다. 대단한 돌팔매 실력이다.
"조그만 돌이지만 여기에 사람의 공력을 싫으면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지. 자 한번 해볼텐가?"
"스님! 경호원들이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뭐라고 그랬길래 돌을 던지셨어요?"
"저놈들이 어르신한테 놀고 있다고 그러잖나."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세요?"
안재홍 팀장이 돌을 들 생각은 안하고 스님의 신통력을 더 궁금해 한다. 도대체가 괴짜 스님이다. 축지법을 쓰는지 바람같이 달리는 자전거를 숨 차는 기색도 없이 따라 오질 않나. 돌 던지는 실력은 야구 선수 박찬호가 사부님하면서 달려들 정도고, 이젠 귀에 음향 집진기를 달았는지 멀리서 소근대는 소리까지 잡아 낸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없다네. 뭐든지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야. 옛날 도인들의 얘기가 그저 재담가가 지어낸 허튼소리가 아니란 말일세. 그럴러면 우선 자기 스스로를 먼저 믿어야 하네. 방법이 따로 있는게 아니야. 우선 기가 살아야 해. 왜놈들이 조선을 합병하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나? 우리 역사를 축소하는 일이었지. 국민의 기를 꺽어 놓기 위해서야. 작은 나라. 항상 중국에 복속돼 조공을 바치던 나라로 뒤 바꿔 놓은거야.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의 백성이라 해서 고귀한 품성을 유지해 왔네. 그러면서도 강성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만여년의 역사를 이어 왔었어. 세상 어디에 그런 나라가 또 있나. 그런 민족이 하나 있기야 있지. 유태인들이 그런 민족이지. 그들도 유목생활로 하다 뿔뿔히 흩어져 세계를 떠 돌다 결국 한데 모여 나라를 세우지 않았나. 그런데 그들이 미국을 등에 업고 요즘 너무 교만해졌어. 미국과 함께 망할거야. 국가도 덕목이 있어야 돼.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민족의 기상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야. 후손들의 기를 살려 주는 일이란 말일세. 어디보자 내가 자네 관상을 봐 주지. 이건 저녁값이야."
"점심은 안 드세요?"
"이 사람아 아침 든든하게 먹었음 됐지 일도 안하면서 점심은 왜 먹나? 아침밥은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연료를 채우는 일이고, 저녁밥은 잠을 자면서 원기를 충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충을 하는 일이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루 두끼만 먹었단 말이지. 들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새참이라고 해서 챙겨 먹었지 점심은 맨날 빈둥거리는 서양놈들의 문화란 말일세. 그래 어디보자."
"태어난 일시는 안 물어보세요?"
"그런게 왜 필요해 자네 얼굴에 다 쓰여져 있구만. 난 그저 책 보듯 줄줄 읽기만 할 뿐이야. 허이구 제법일세 그랴. 용과 범이 꿈틀거리니 바람과 구름이 모여든다. 기쁘게도 타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다. 내가 자네 친구네 그려. 금성이 몸을 비추니 재물을 구하면 여의하리라. 꾀하는 일은 반드시 성사되리라. 금년의 운수는 겉은 빈하나 안은 부하다. 떠났던 가족이 돌아오니 가정이 화목하리라."
"떠났던 가족이요?"
안재홍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어 온다.
"그래 자네 지금 집안이 반쪽이구만 조만간 다시 만나 같이 산단 말일세. 응 그리고 어디보자. 동풍이 불어오니 버들가지에 푸릇하게 싹이 돋아나고 길을 가는데 갈수록 아름다운 절경이 더한다. 많은 사람들과 일을 이루니 천만금이 저절로 들어온다. 우물을 파서 물을 얻고 흙을 쌓아 산을 이루니 이는 모두 노력의 공이로다. 좋다 좋아. 자네 앞으로 팔자 폈구만."
스님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