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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Apr 30. 2021

할로윈데이의 망령들

CIA 본부 회의실, 마이클 헤이든 CIA 국장이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한국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그 동안에 한국에 파견됐던 사찰팀이 가져 온 물질의 파악이 끝났는지 DDI 팀장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수거된 물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보고 계신 첫 번째 물질은 고 순도의 실리콘 분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마도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기위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만 다른 기기들을 볼 때 실리콘봉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옆에 이 그림은 아직 만들어진 적이 없은 전혀 새로운 물질입니다."


DDI 팀장이 현미경으로 촬영한 결정체의 사진을 레이저 포인터로 지시하며 설명을 한다.


"최소 입자가 옥타헤드런 큐브(Octahedron Cube)처럼 생긴 정 8면체입니다. 이것들이 서로 수도 없이 맞물려 다이아몬드와 같은 치밀한 조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실제 경도도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럼, 혹시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니겠소?"


"그렇지는 않습니다. 투명도가 떨어져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DDI 팀장이 마이클 국장의 질문을 일축하고 설명을 이어 나간다.


"이 입자의 성분을 분석하면 메탄과 실리콘 그리고 산소가 이상적인 형태로 결합되어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메탄이나 산소는 가스 아니오."


"그렇습니다. 메탄이나 산소가 액화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대기중에 노출되면 바로 기화됩니다. 그것이 실리콘과 결합되어 결정이 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돼 몇 가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빔 프로젝트로 비추고 있는 슬라이드 화면이 넘어 간다.


"초기엔 각 각의 물질을 같은 비율로 섞어 합성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분자식으로 구성해 놓고 보니 너무나 간단하게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분자식 CH4SiO2를 보시면 메탄+산화규소임을 아실 수 있을겁니다. 산화규소는 실리콘을 상온에서 산화시켜 추출할 수 있고, 그 다음 메탄은 메탄하이드레이트라는 고체화된 메탄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두 물질을 고온 융합시켰습니다. 자 두장의 현미경 사진을 비교해 보시지요."


DDI 팀장이 레이저 포인터로 두장의 사진에 번갈아 가며 원을 그린다.


"보시는 바와 같이 두 입자의 결정이 일치함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뭐를 할 수 있소?"


"죄송합니다만 여기서부터는 미궁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조사해 본 바로는, 다들 아시는바와 같이 한국은 실리콘 왕국입니다. 도자기와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산화규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요."


"문제는 메탄하이드레이트입니다. 실험실이나 공장에서 제조하기에는 원가가 너무 비싸 실용성이 떨어집니다. 아마도 독도 해저에서 채굴을 한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독도 해저 지층에 6억톤 가량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되어 있어 이것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마이클 국장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일어 선다.


"DDO 팀장! 나 좀 봅시다."


DDI 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클 국장이 해외공작을 수행하는 DDO 팀장을 불러 귀엣말을 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DDO 팀장이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인다.


"결제된 실행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홍콩에 있던 할로윈팀을 출발시켰습니다."


포항공대 가속기 연구소, 연구를 마친 양동근 교수가 서둘러 가방을 챙긴다. 그 동안 같이 놀아주질 못 해 땅에 떨어진 아버지의 위신을 세우고자 아이들과 함께 휴가를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얼마만인지도 모른다. 룰루랄라 휘바람을 불며 자전거를 타고 바로 아래 위치한 교수 사택으로 달린다.


'딩동~'


"아빠왔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과 토끼같은 눈망울을 가진 유치원생 딸이 팔짝 팔짝 뛰며 아빠를 반긴다. 딸은 안아 달라는 시늉으로 손을 활짝 내민다. 가방은 아들한테 넘겨주고 딸을 번쩍 안아 들고 거실로 들어 선다.


"여보 나 왔어."


남편의 전화를 받고 주방에서 아이스박스에 담을 내용물을 챙기던 부인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나온다. 그 동안 과부아닌 과부생활을 하다가 요즘은 신혼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금방 내려 오셨네요."


"준비 됐지?"


"이제 차에 옮겨 실기만 하면 되요."


"잠깐만, 오늘도 아주 후끈한데."


옷을 훌 훌 벗어 던진 양동근 교수가 욕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온다. 빨리 여행을 가고 싶은 아이들의 재촉이 성화다. 안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화장대 위에서 지갑과 자동차 열쇠를 챙겨 나온다.


"자 이제 짐부터 나르자."


어젯밤 이미 여행 장비를 챙겨 놓은 모양이다. 주방 한켠에 모아 놓은 짐을 현관으로 나르느라 분주하다. 예쁜 딸도 짐을 질질 끌며 한 몫 한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현관 앞에 차를 댄다. 얼마 전 새로 장만한 반짝이는 청색 스포티지다. 학교에 돌아와 보니 무급 휴직이 아닌 안식년 처리가 되어 있어 그 동안 밀렸던 연봉이 한꺼번에 나왔다. 그 돈으로 오랬동안 타던 마티즈를 팔고 큰 맘 먹고 장만한 차다. 엘레베이터를 이용해 내려 온 짐을 스포티지로 옮긴다.


"우리 공주님 불편하더라도 안전벨트 꼭 매고 있어야 돼."


먼저 올라 탄 아들 옆에 딸을 앉혀 놓고 안전벨트를 매 준다. 부인은 이미 차에 올라 머리 위에 붙은 햇볕 가리개를 내려 선크림 바른 얼굴을 매만진다.


"자 이제 출발이다. 야호!"


지근거리에서 경호를 하던 청와대 파견 특경팀이 가족 여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 붙는다. 포항 MBC를 지난 차가 어느새 동해안 칠포 해수욕장을 지나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바닷가 길로 드라이브 하듯 달려 나간다. 조금 더 올라가니 강구항이다. 강구에서 대게로 저녁을 맛 있게 먹은 가족이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목표는 무릉계곡이다. 선녀가 노닐던 아름다운 계곡이 바닷가 가까이 있어 계곡 절경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척에서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장한 대이리 환선굴이 있어 아이들과 여행하고 즐기기엔 1석 3조가 되는 셈이다. 


어둑 어둑해진 저녁, 차가 어느새 사동의 망양해수욕장을 지나고 있다. 이렇게만 가면 10시 전에는 미리 예약한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뒷 좌석을 보니 종알거리던 아이들이 어느새 잠이 들었다. 부인과 눈을 맞춘 양동근 교수가 씨익 웃는다. 부인도 마주보고 미소지으며 남편의 오른쪽 손을 잡는다. 양동근 교수가 엑셀레이터에 힘을 주며 속도를 약간 높인다. 


얼마쯤을 갔을 까. 뒷따라가는 특경팀 차량 뒤로 큼지막한 차 한대가 바짝 붙어 쌍라이트를 켜며 경적을 울려 댄다. 비켜줄까 말까 망설이던 경호원이 전방을 확인한 후 오른쪽 라이트를 켜며 살짝 속도를 줄인다. 옆을 스쳐 가는 차 안의 조수석에서 큰 체구의 외국인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시익 웃는다. 뭔가 기묘한 웃음이다. 섬??한 느낌을 받은 경호원이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경호원을 툭툭 치며 방금 추월한 차로 눈짓을 보낸다. 운전을 하던 경호원이 왼쪽 겨드랑이 아래서 K5권총을 꺼내 장전을 한 후 사타구니 위에 올려 놓는다. 조수석의 경호원도 좌석 아래에서 독일제 MP5 기관총을 꺼내 든 후 추월한 차가 허튼짓을 하면 언제든지 쏠 자세로 오른쪽 창문을 내린다.


스포티지에선 부인이 CD 케이스를 꺼내 카 스테레오의 음악을 바꾼다. 춘자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흘러 나온다. 젊은 연인이 드라이브하면서 듣기엔 제격인 신나는 음악이지만 뒷 좌석의 아이들을 생각해 볼륨을 낮춘다. 오른쪽 해안가엔 하얗게 부서진 파도가 달빛을 받아 우유빛으로 흘러 내리고 있다. 양동근 교수가 백미러를 통해 뒤를 흘끔 본다. 바짝 따라 붙은 차가 성가신지 추월을 시키려 오른쪽 깜박이를 켰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며 추월 사인을 보냈다. 뒷 차가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반대 차선으로 들어 서 옆을 지나친다.


'타! 타! 타! 타!'


지나친게 아니었다. 옆 차에서 불꽃놀이를 하듯 섬광이 일었다. 불이 번쩍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가 하더니 앞이 환해진다. 아무 느낌도 없다. 해안도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는데 청색 스포티지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밀어 내고 하늘로 날아 오른다. 날아 오르는 것도 잠시 우유가 흐르는 절벽을 향 해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스피커에서는 춘자의 마지막 가사가 나지막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슬픔에 찬 나의 마음 이젠 이젠 이젠 이젠 잊고 싶어.'



오산 미 공군기지 감청부대 비밀감청실, 한국에 파견된 할로윈팀을 지원하기 위해 급조된 복합 지원팀이 컴퓨터 영상에 나타나는 두개의 점을 쫓고 있다. 일전에 수도방위사령부 앞에서 혼쭐이 난 뒤 복귀한 대원의 모습도 보인다.


"중령님! 타겟 B 위치파악 했습니다. 아! B1은 삼도봉에 있고 B2는 성삼재에 있습니다."


"기회다!"


"아직 동해상에 있을텐데 출동 가능할까요?"


동해 해안도로에서 양동근교수를 저격한 할로윈팀이 차에 탑승한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미리 준비된 수중 추진기를 이용해 탈출한 후 시호크 헬기로 구조돼 얼마 전 부산항에 입항했던 핵 항모인 엔터프라이즈로 복귀해 있었다. 닐이 감청팀장의 조언을 무시하고 엔터프라이즈에 상주하고 있는 동료 CIA 요원에게 미리 예정된 암호 멧세지를 날린다. 


'할로윈데이 밤 길을 밝혀라.'


공작팀 특히 킬러들의 생명은 위치와 타이밍이다. 가능한한 작전이 용이한 지역에서 목표물을 일격에 처리한 후 급속 이탈해야 한다. 엔터프라이즈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대기중이던 특수 임무용 무장 헬기가 로터음을 요란하게 울리며 이탈한다. 보조 연료통을 달고 최대 1천킬로미터까지 운행할 수 있는 블랙호크 다목적 헬기다. 헬기에 탑승한 킬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는다. 아시아로 투입된 후 작전이 없어 좀이 쑤셨는데 연속으로 먹잇감을 물게 된 것이다.


지리산 삼도봉 인근 숲속, 1인용 텐트속에 안재홍팀장이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노스님과 헤어진 후 자전거를 달려 지리산까지 왔다. 성삼재까지는 그 동안 친해진 경호원들의 차량을 이용한 후 성삼재부터 노고단까지 자전거를 끌고 기진 맥진한 상태로 올라 와 쓰러지듯 누워 있다가 등산객들한테 저녁을 얻어 먹고 능선 등산로를 따라 속칭 날라리봉이라고 불리우는 이곳 삼도봉까지 온 것이다. 저녁 삼도봉의 운해는 대단했다. 구름이 몰려오면 하나씩 저 아래 봉우리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구름이 밀려나면서 다시 하나 씩 모습을 드러내길 반복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엄청난 장관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절로 몸이 산이 되는 기분이다. 아니 거인이되어 산 구비들을 내려다 보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성삼재 휴게소 경호원의 차, 안재홍 팀장을 태워 올라온 후 노고단으로 오르는 뒤를 배웅하고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는 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차 안에서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경호실이다. 뭐해 임마! 포항이 당했어. 안재홍 팀장 빨리 철수시켜!"


"옜!"


경호원들이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아니야 빨리 안재홍 팀장 신변 확보하고 있어. 내가 헬기로 내려간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끈 경호팀이 노고단으로 오르는 입구의 철망을 끊고 돌진한다. 그 사이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전용 헬기인 시콜스키 S-92 헬리콥터가 이륙하고 있다. 시콜스키 S-92 헬기는 얼마 전 낡은 VH-60을 대체하기 위해 들여왔지만 지난 대통령들처럼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다. 헬기는 대통령 경호 임무까지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레이더 경보 수신기와 적외선 방해장치 및 미사일 추적을 기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가히 하늘의 요새라 불릴만 했다.


지리산 삼도봉 인근 숲속, 잠결에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반야봉 정상 하늘 위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잠시 후 등에 몽테규 파라트루퍼 산악용 자전거를 접어 둘러 멘 검은 복장의 괴한 두명이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내려 온다. 한 명이 팔뚝에 장착한 녹색빛이 새 나오는 GPS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머리에 달린 야간 투시경을 내려 쓴 괴한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동료에게 착륙지점을 알려 준다. 반야봉 정상에 사뿐히 내려 앉은 괴한들이 접혀있던 자전거를 펴서 타고 산길을 달려 내려간다. 삼도봉으로 내려 온 괴한들이 GPS로 위치를 한번 더 확인한 후 숲속을 헤치며 들어 섰다. 어느 덧 안재홍 팀장의 텐트 앞까지 도달한 괴한이 가슴에 달고 있던 한국군이 사용하는 K-2 소총을 벗어 들고 텐트를 겨냥한 채 발로 툭 툭 친다. 안에서 소식이 없자. 대검을 꺼내 텐트 입구를 부욱 찢어 내고 안재홍 팀장의 안면을 총구로 찌르며 잠을 깨운다. 부시시 눈을 뜬 안재홍 팀장이 머리 위를 응시한다.


"일어나"


"..."


"안재홍?"


발음이 서투른 단 단어 한국말이다.


"그런데요?"


아닌 밤중에 도깨비라도 만난 듯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나와."


안재홍 팀장이 윗 몸을 돌려 일으키며 경호대원이 건네 주었던 휴대용 조명탄을 꺼내 살며시 손에 쥔다. 텐트를 기어 나오며 땅 바닥의 돌에 조명탄의 하단을 힘차게 때린다. 휴대용 조명탄이 로켓 불꽃을 일으키며 솟아 오른다. 잠시 눈이 멀은 괴한들이 뒤로 물러나며 야간 투시경을 벗는 사이 안재홍 팀장이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바로 앞에 세워 두었던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노고단 산장을 향해 산길을 정신없이 내 달리고 그새 정신을 차린 괴한들이 눕혀 놓았던 자전거를 타고 뒤를 쫓는다.


그 사이 노고단 산장까지 당도한 경호대원들이 차를 세우는 사이 멀리서 조명탄이 낙하산을 타고 흘러 내리며 사방을 비추고 있다. 급하게 차에서 내린 경호대원들이 조명탄이 솟아 오른 삼도봉을 향해 내 달린다. 멀리서 기관총 소리가 연사로 들려 온다. 달려가는 경호대원들이 본능적으로 MP5 기관총의 노리쇠 뭉치를 후퇴시키며 총알을 장전한다. 


노고단을 향해 죽어라 페달을 밟는 안재홍 팀장을 향 해 괴한들의 총이 불을 뿜는다.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자전거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며 달리는 안재홍 팀장의 좌우로 총알이 날라 와 퍽 퍽 박힌다. 총알이 바위를 때렸는지 불꽃이 튄다. 세계 최고의 킬러들이 그깟 민간인 하나 잡지 못 하면 개망신이란 생각을 하는지 죽기 살기로 쫓아 가며 총을 난사하지만 아무래도 자전거를 운전하며 한 손으로 사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삼도봉을 향해 치 닫던 경호대원들이 오솔길 양쪽으로 잠복하고 MP5 기관총으로 정면을 겨냥하고 있다. 멀리 앞에서 안재홍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가물 가물 보인다. 안재홍 팀장을 확인 한 경호대원이 그를 덮치며 옆으로 굴려 놓고 다시 사격 자세를 취한다. 그들 바로 앞으로 괴한들이 달려 들어 온다.


'타다당! 타다당!'


피가 튀고 살이 튄다. 양쪽에서 점사로 3발씩 튀어나가는 9밀리 총탄이 괴한들의 몸을 꿰 뚤으며 벌집을 만든다. 피가 솟구치는 검은 구멍에서 살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 오른다. 양동근 교수를 살해한 복수다. 한 명이 사주경계를 하는 사이 또 다른 한 명이 괴한들의 머리에 단발로 확인사살까지 마친 후 총기를 수거해 일어 선다. 주변을 수습한 경호대원들이 안재홍 팀장을 일으켜 앞 뒤로 호위하며 다시 노고단으로 내 달린다. 노고단에서 야영을 하던 등산객들이 총 소리에 놀라 모여 들며 웅성거리고 있는 머리 위로 커다란 동체의 헬리콥터가 바람을 일으키며 내려 오고 있다. 헬기가 착륙하자마자 경호실장이 뛰어 내려 안재홍 팀장을 부축한다.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경호실장이 그를 태우고 다시 이륙한다.


반야봉 정상에서 점멸등을 끈채 유영하던 블랙호크가 작전 실패를 감지하고 반회전을 하며 동해로 기수를 돌린다. 


"본부 작전 실패다. 돌아 간다. 목표물은 헬기로 이동하고 있다."


'...'


"본부! 응답하라."


'격추하시오.'


간단한 무전 응답이다. 아니 명령이다. 기장과 부 기장이 어이가 없는지 서로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일단 뒤 쫓아 갑시다."


서울로 향해 기수를 돌린 시콜스키 헬리콥터가 엔진음을 요란하게 울리며 바람을 가른다.


"실장님! 3킬로미터 후방에 비행체가 따라 오고 있습니다. 레이더 판독을 보면 헬기입니다. 앗! 락온됐습니다."


레이더 경보 장치와 더불어 기장이 비명을 지른다.


"사이드와인더입니다."


"빨리 회피기동해"


사태를 알아 챈 경호실장이 헬멧의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부기장! 플레어."


부기장이 플레어와 채프 버튼을 번갈아 누르는 사이 기장이 전력을 다해 상승하며 오른쪽으로 선회 한 뒤 엔진을 끄고 수직 낙하한다. 엔진을 끈다고 해서 열추적 미사일인 사이드 와인더를 따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기가스를 차단함으로서 최대한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한 기동이다. 시콜스키가 자유 낙하 하는 사이 허공에선 플레어가 마그네슘을 태우며 불꽃을 피어 올리고 채프가 흩어지며 플레어의 불꽃을 받아 반짝인다. 무중력과 같은 기체 안에서 경호실장이 숨겨 두었던 휴대용 대공 미사일인 신궁을 꺼내 든다. 국내 방위산업체에 의해 개발 투입된 신궁은 최대 사거리 7킬로미터로 거의 대부분 기술이 국산화된 자주국방의 역작이다. 2색 탐색 방식의 적외선 호밍 유도 방식인 신궁은 플레어에 대응하는 능력이 우수해 미국 스팅거의 60퍼센트대의 명중률을 훨씬 상회하는 90퍼센트대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그런 연유로 신의 화살이란 의미의 신궁이란 명칭이 붙게 됐다. 하늘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쏟아져 내린다.


"실장님! 회피 성공입니다."


"기체 옆으로 돌려."


기장이 뒷 좌석의 경호실장을 흘끔 쳐다보고는 엔진에 시동을 걸어 로터를 힘차게 돌리며 솟구처 오른 다음 반회전하고 있다. 경호실장이 헬기 좌우문을 열고 신궁을 겨냥하며 한 호흡 들이 마신 다음 힘차게 발사 버튼을 당긴다.


"앗! 미사일입니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하늘에서 여유있게 불꽃놀이를 감상하려 했던 블랙호크에서 비명이 터지고 있다. 채프와 플레어를 연속으로 발사하며 회피기동에 들어갔지만 너무 가깝게 접근한 것이 탈이었다. 미사일을 발사 한 시콜스키가 급 가속 기동에 들어 간 사이 블랙호크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신궁이란 명칭 답게 블랙호크의 엔진을 먹어 들어가며 거대한 화염을 일으킨다. 한 바탕 화염을 일으킨 블랙호크에서 재 차 폭발이 일어나며 기체가 녹아 내린다.


다음날 조간신문에 등산객이 찍었음직한 헬리콥터 동체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한 특보가 실렸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격렬한 전투, 신원불명 2명 피격, 헬리콥터 추정 비행체 한대 추락'



청와대 별관 경호실장 숙소, 얼굴 여기 저기 밴드를 붙인 안재홍 팀장이 침대 위에서 조간신문을 보고 있다. 신문 1면에는 어제의 사건이 사진과 함께 크게 활자화되어 있었다. 굵직한 헤드라인 외에도 제보성 기사와 현장을 보지 못한 기자들의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고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격렬한 전투'

'외국인으로 보이는 신원불상 2인 총격전 중 사망'


'...등산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자정 쯤 삼도봉 방향에서 조명탄과 함께 기관총 소리로 판단되는 총성이 수십발 울렸으며... 노고단 정상에 착륙 해 요인을 후송한 것으로 보이는 헬리콥터는 최근 도입한 대통령 전용기로 판단되며... 후송된 요인은 등산중이던 대통령의 자제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능선의 북쪽 방향에서 헬리콥터간 교전이 벌어졌고 그 중 한대가 추락하면서 폭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제의 끔찍했던 장면들을 상기하며 몸을 부르르 떨며 안재홍 팀장이 신문을 넘기다 작은 사회면 기사에 촛점이 모아지며 시선이 떠날 줄 모른다.


'잇단 휴가철 사건 사고, 경북 망양정 근처 7번 국도 해안 절벽, 휴가를 가던 포항공대 양동근 교수 일가족 추락 전원 사망, 울진경찰서 발표에 의하면 밤길 졸음 운전으로 판단되나 사체가 심하게 불에 타 국과수 이관 조사 후 상세 발표 예정.'


양손으로 신문을 움켜쥐는 안재홍 팀장의 어깨가 들썩인다. 숙인 얼굴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주르르 신문을 적신다. 앙다문 이빨사이로 신음같은 울음소리가 흘러 나온다. 침실 문가에는 언제 왔는지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문을 흘려 내린다. 


"안팀장!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네."


대통령이 안재홍 팀장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같이 울먹인다.


"복수하겠습니다. 우리 교수님! 사모님! 정근아! 정아야!"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더욱 세차게 악을 쓰듯 흐느낀다.



청와대 접견실, 소파 한쪽에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배석해 있고 건너편에 국정원장과 수방사령관이 앉아 있다.


"국정원장님 현장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울진쪽은 차를 인양해 시신은 수습을 했고 국과수에서 정밀 조사중입니다. 차량은 사고 몇 시간전에 도난된 것으로 봐서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부를 샅샅이 조사했지만 별다른 증거나 단서가 없습니다. 단지, 45구경 ACP탄을 사용한 것이나 연사된 화력으로 보면 MAC-11 종류의 SMG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MAC-11은 소형으로 휴대가 간편해 마피아나 홍콩 삼합회와 같은 조직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관총입니다."


"지리산쪽은 어때요?"


"시체는 헬기로 옮겨 국정원 내부에서 직접 조사중입니다. 외모나 체격으로만 보면 중남미쪽 특성을 지녔습니다만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해선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안면 사진과 지문을 떠서 인터폴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그들이 헤이쓰헤이라는 홍콩 흑사회 상징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수사의 촛점을 흐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흑사회는 300년전에 중국 본토에서 정치권 하부 조직으로 만들어졌다가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라진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에 와서 홍콩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다시 세력 형성을 하고 있습니다만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까지 헬기를 가동하며 테러를 자행하기엔 무리라 판단됩니다. 놈들이 사용했던 K-2 소총은 일련번호를 그라인더로 깍아내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울진쪽과 연계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바다로 탈출하고 헬기를 이용해 침투하는 것으로 봐서 배후에 아주 큰 조직이 연관돼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좀 더 면밀히 조사해 주세요. 사령관!"


국정원장의 중간수사 보고를 들은 대통령이 사령관을 부른다.


"지리산쪽 수색은 어떻게 됐습니까?"


"날이 밝는대로 공수부대를 투입 해 수색을 하고 있지만 증거가 될만한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체가 작은 파편으로 산산이 부서져 있는 것으로 봐서 자폭 장치가 작동한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애써 표정들을 감추고 있지만 회의 내내 무거운 기류가 집무실을 짖 누른다.


"비서실장! 양교수 가족 사항은 어떻게 됩니까?"


"고향에 노모가 한 분 있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양교수가 교수 사택이 좁아 노모를 같이 모실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최근에 따로 집을 얻어 모시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근동에서 대단한 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처에 다행히 양교수의 누님이 살고 있어서 상황은 전달했습니다만 노모한테는 아직 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호실장! 안팀장하고 남궁고문 말이예요. 앞으로 경호대책을 어떻게 세울겁니까?"


"대통령님! 면목없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이런 상황에서는, 고문님이라고 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귀국시키신 다음에 표면적으로라도 다시 정부 직책을 맡겨 이 일에서 손을 뗀것으로 보이게 하면 어떨까요? 그 다음이라면 운전수나 비서직으로 대원들을 투입해 지근거리에서 경호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안팀장은 저쪽으로 올려 보내는게 어떨까요?"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의견에 대통령이 동조하며 국정원장에게 의견을 구한다.


"국정원장님! 차라리 그렇게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박위원장하고 접촉해 상황을 전달하겠습니다."


청와대 녹지원, 안재홍 팀장이 가슴이 답답한지 녹지원에 나와 서성이다가 구석쪽 평평한 정원석을 찾아 앉는다. 양동근 교수와 지냈던 하루 하루가 떠 오른다. 아이들한테서 온 메일을 같이 보면서 즐거워 했었는데... 그때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투타타타! 울려댄다. 


"우씨! 하필이며 벨소리를 왜 이걸로 바꿨지."


혼자 중얼거리며 휴대폰 폴더를 열어 LCD 화면을 본다. 못 보던 전화번호다. 한달에 몇 번 울릴까 말까한 휴대폰이지만 그것도 골라서 아는 사람의 전화만 받는다. 그러나 오늘은 웬지 전화를 받고 싶다.


"여보세요!"


'홍이니? 나 형이야.'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나 재훈이, 네 형이야 임마. 너 형 목소리도 잊은거야?'


"형! 정말 형이야?"


'그래 임마, 나 한국에 왔어.'


"어디야! 지금 어디야! 엄마는?"


'야 야 이게 성질은 옛날하고 똑 같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너 지금 어디야? 형이 그쪽으로 갈께.'


"아니 그러지 말고 형 있는 곳을 가르쳐줘 내가 그쪽으로 갈께."


'그래라, 여기가... 스위스 그랜드호텔이야.'


"스위스?"


'스위스가 아니고, 여기가 홍은동이랜다.'


"그래 알았어. 물어 보고 알아서 찾아갈께."


거의 10여년만에 형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아니 오랜만에 형과 어머니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들 떠 있었다. 서해안에서 만났던 노스님의 말씀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근처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다가가 홍은동의 그랜드호텔이 어디냐고 묻고는 별채로 뛰어 들어간다. 경호원도 덩달아 뛴다. 옷을 갈아 입고 나오면서 핸드폰으로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건다.


"실장님? 예 전데요. 저 좀 나가봐야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경호실장이 부리나케 뛰어 온다.


"안 팀장, 어딜 가려고?"


"미국에서 형이 왔어요. 지금 홍은동 호텔에 있답니다."


"잠깐만."


곰곰이 생각을 하던 경호실장이 만류를 한다.


"우리가 좀 알아 본 다음에 천천히 만나면 안될까?"


"형이라니까요? 제 친형이예요."


"그래도 지금 상황이 안 좋잖아."


"에잉 괜찮아요. 빨리 갔다 올께요."


안재홍 팀장의 지금 표정을 봐선 말려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면 말이야. 경호원 붙여줄테니 같이 가 응."


"예 그래요. 저 좀 태워다 주세요. 제가 길을 잘 몰라서요."


"그래, 그래 알았어."


경호원 두 명을 호출해 차를 준비하라 시키며 한편 신신당부를 한다. 청와대에서 홍은동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린다.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 그랜드힐튼호텔에 도착했다. 안재홍 팀장이 차에서 내려 휘 둘러보며 핸드폰에 남아있는 발신자 번호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형 나야 지금 왔어. 어디야?"


'응 그래 지금 내려갈께 로비에 있어.'


로비를 서성이며 한참 있으려니 엘리베이터쪽에서 유럽풍의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신사 두명이 걸어 온다. 그 중에 한명이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린다.


"형아!"


형을 알아 본 안재홍 팀장이 달려가 부둥켜 안고 울음부터 터트린다.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형이 동생의 얼굴을 떼어 내 두 손으로 받쳐들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밝은 미소로 바라 본다.


"우리 막둥이 어디 보자."


동생 얼굴을 흔들며 제법 옛날 엄마 흉내를 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엄마는 같이 안 온거야? 응?"


"난 지금 중국에서 오는 길이라 엄마는 같이 못 오셨어. 다음에 또 오게되면 그때는 꼭 모시고 올께."


"잘 계시지? 어떻게 지내셔?"


"그럼, 잘 지내시지. 그래 어디 우리 조용한데가서 얘기할까?"


호들갑을 떠는 동생을 달래며 주위를 둘러 본다. 그때 옆에 있던 사내가 안내를 하려는 듯 말을 건넨다.


"제이크! 예약해 둔 곳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지."


"형아, 이 분은 누구야? 제이크가 형 이름이야?"


"응 그래 난 제이크고 엄마도 에밀리로 이름을 바꿨어 아니 미국식 이름이야. 그리고... 인사해 이쪽은 케빈 랜들맨이야. 케빈 인사해라."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재홍씨. 전 애플에 근무하는 케빈입니다."


애플에 근무한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지만 엔지니어같지는 않고 어쩐지 서먹하고 어색하다. 안재홍 팀장이 마주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예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갑시다."


케빈이 먼저 성큼 성큼 걸어 가며 '미쯔모모'라 이름 붙여진 일식 레스토랑으로 안내 한다. 종업원이 손님을 알아보는 듯 앞서며 예약된 룸으로 안내를 한다. 호텔 레스토랑이라 인테리어가 화려한 듯 하면서도 평온한 느낌을 준다. 안내된 룸은 방음 설비가 잘 되어 있는지 더욱 아늑한 분위기다. 안재홍 팀장 형제와 케빈이라 소개된 사내가 들어가고 경호원들이 저으기 안심이 되는지 룸 바로 앞의 식탁에 앉는다.


"재홍아! 정식으로 인사하지. 이쪽은 애플사의 의뢰를 받은 스카우터야."


"예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 회장이 당신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이크가 당신 형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스카우터란 말에 안재홍 팀장이 멀뚱멀뚱 둘을 번갈아 본다.


"지금 애플사가 개발하고 있는 'MAC OS X 레오파드'에 대해서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현재 베타 버젼만 발표된 상태로 정식 버젼은 내년 봄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당신께만 말하지만 알 수 없는 버그가 있습니다. 스티브 회장은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얼마 전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두 개의 인텔 듀얼코어 제온칩을 장착한 맥 프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때 맥 프로에 탑재 할 차기 버젼인 MAC OS X 레오파드의 주요 열 가지 새로운 기능을 단지 소개하기만 했다. 웬일인지 항상 있어왔던 현란한 전체 데모를 미루고 일부 기능만 보여주며 정식 버젼은 내년 봄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를 알고 있던 안재홍 팀장이 케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는 애플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됐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아 케빈 말을 더 들어봐 이 친구 제안이 네 맘에 안들 것 같았으면 이 형이 데리고 오지도 않았어."


제이크가 중간에 끼어 들며 동생의 흥미를 유발시키려 애를 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티브 회장은 당신께 8백만달러의 연봉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십 만주 스톡옵션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8백만달러면 한화로 80억정도고 현재 애플사 주식이 60달러선이니 십 만주면 이 또한 6백만달러의 가치다. 한국 아니 미국의 그 어떤 엔지니어도 이만한 대우를 받기는 힘들다.


"저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을텐데요. 애플이 제시한 조건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회장께는 조만간 따로 좋은 선물을 안겨줄 계획입니다. 그러니 실례합니다만 오늘은 저희 형제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입니다. 양해바랍니다."


"홍아 그 정도면 우리 식구가 다시 만나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형! 형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생각해 봐라 우리가 왜 헤어지게 됐니?"


"그건 다른 이야기야."


"뭐가 달라. 아버지가 망했기 때문이야.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버지한테는 연락했어?"


"아니 아직은 만나고 싶지 않다."


"왜?"


"아버지를 만나면 지긋지긋한 옛날 기억이 되살아 날 것 같애."


"그래도 아빠야. 우리를 낳아 길러 준 아빠라고."


"그래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가 해 준 일이 뭐가 있는데. 겨우 학교만 보내주면 다야? 아니 학교는 제대로 다녔니? 우린 다른 애들처럼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없었어. 난 친구들과 약속도 할 수 없었고 같이 놀 수도  없었다구. 그 뿐이야? 어느날 들이닥친 빛쟁이들 때문에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쫓겨났어. 난 아버지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 나라도 싫어."


형제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미닫이가 열린다. 종업원들이 줄을 지어 들어서며 금 가루를 뿌려 모양을 낸 큼지막한 회 접시를 날라 상을 차린다. 이러는 사이 케빈은 팔짱을 끼고 뒷 벽에 비스듬히 기댄다. 두 형제가 한국말로 대화를 하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미 일은 글렀다고 생각된다. 종업원들이 나가자 마자 다시 형제의 날 선 대화가 시작된다.


"나도 사실 그런 상황이 싫었어.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단 말이야. 빨리 어른이 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형은 모르겠지만 내가 왜 중학교를 땡땡이치고 대학교를 기웃거렸는지 알아? 형이 얘기하던 그 빛쟁이들이 내 컴퓨터까지 뺏아 갔어. 학교에 있는 컴퓨터들은 다 고물들이고 그래서 대학교에 가서 그 형들이 사용하는 빵빵한 컴퓨터를 쓰면서 덩달아 강의까지 들었던거야. 난 그 때가 너무 재밌었어. 그리고 아버지가 포기한 벤쳐기업을 내가 다시 일으키고 싶었어. 그래서 남의 나라 땅까지 가서 굶어가면서 그렇게 피 나는 노력을 했던 거야. 형이 그걸 알아? 엄마는 엄마는!"


동생이 울먹울먹하며 말을 잊지 못한다.


"홍아 그래 그래 알았어 진정해 응! 우리가 그 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것은 엄마가 재혼한 것도 있지만, 편지를 해도 연락이 없었어. 전화도 할 수 없었고 말이야. 미안하다."


"엄마가 재혼을 했단 말이야?"


"응 그렇게 됐어. 이혼하고 외갓집에 얹혀 살다가 엄마가 외국인 집에 파출부로 들어갔어. 그 때 거기서 혼자살던 새 아버지를 만난거야."


"이 씨! 그럼 아버지는 뭐야.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날만 기다리는 아버지는 뭐야? 오랬동안 자기 손으로 시골에 예쁜집을 짓고 있다고, 니가 알아? 엄마는 뭐야?"


동생이 눈을 부릅뜨며 형을 노려 본다. 흡싸 미국에 있다는 엄마를 향해 부르짖는 소리로 들린다.


"좋아 그 잘난 집 하나 만든다고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애? 이제와서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냐고? 응! 나도 예전에 우리 온 가족이 함께 살던 때가 좋았어. 아빠가 사업 시작할 때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아이들한테 만큼은 피해 주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했었어. 너는 어려서 아마 모를꺼야. 그런데 결론은 뭐야 우리 모두 알거지가 됐어. 그 뿐이야? 그 이후로 아빠는 매일 술만 마셨어. 그 사람이 우릴 위해서 한 일이 뭐가 있어 임마!"


형이 그 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을 속사포 같이 뱉아내고 씩씩거리고 있다. 외려 이제는 동생이 더 차분해 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난 아버지를 존경해. 그 때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다만 다르게 생각하면 운이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이템 선정이나 개발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어. 그러나 세상이 너무 가혹했던 것 만큼은 사실이야. 실패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혹했단 말이야. 그래도 아버지는 세상을 탓하지 않았어 자신만을 탓하고 원망했기 때문에 혼자 술을 마셨던거야. 나도 아버지의 술에 취해 구부정히 앉아 있는 등을 보면서 원망을 했어. 그런데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기업이 망하면 사장도 같이 망해야 되는 거라고 했어. 그 정도로 원칙주의자였어. 다행이었던것은 원칙주의자이면서 낙관주의자였다는거야. 그것이 세상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아빠의 원동력이야. 지금은 은퇴해서 자기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사진을 찍고 계셔. 지금 아빠의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해. 딱 하나 아빠 얼굴에 그늘이 있다면 그것은 형하고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일꺼야." 


형의 눈에 눈물이 팽 돈다. 부자간의 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형아 가자 아버지한테 가자 응?"


"그래 사실 나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우선 케빈이 제시한 조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그리고 아버지한테 가자."


"미국이란 나라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거꾸로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도 받을 수 없는 나라야. 나도 예전엔 돈을 신봉했어. 그러나 이젠 달라졌어. 이젠 나 개인보다는 이 나라 내 조국을 위한 더 큰 일을 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니 이젠 그런 얘긴 하지 말자."


케빈이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어로 대화하는 사이 그는 주머니에서 노키아 휴대폰을 꺼내 안테나를 돌려 빼고 폴더를 열어 뒤집어 덮는다. 이를 쳐다보는 형의 눈이 황방울만해진다.


"케빈!"


"그래 제이크. 이젠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너와 달리 또 다른 임무가 있다. 아니 이게 내 실제 임무야."


"안돼!"


제이크가 상을 뒤집어 엎으며 달려 드는 사이 단발의 총성이 천장을 뚫는다. 제이크가 뒤로 물러서며 황급히 두 팔을 뒤로 돌려 동생의 몸을 방어한다. 이러는 사이 총성에 놀란 경호원이 K-5 권총을 뽑아 들고 뛰어 든다. 케빈이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앞서 들어오는 경호원을 사살하고 뒤따라 들어오는 경호원의 총과 동시에 두번째 불을 뿜는다. 그 경호원마저 총을 떨어 뜨리며 앞으로 쓰러진다. 총알이 이마를 스쳤는지 케빈의 얼굴에 피가 흘러 내린다. 휴대폰의 총구가 다시 두 형제를 겨냥한다. 흡사 시체를 뜯어 먹던 얼굴의 흡혈귀 모습이다.


"제이크 옛 정을 생각해서 한번 더 기회를 준다. 비켜라."


"네놈들이 정을 아나."


"너도 잘 알겠지만 아직 세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


"죽여라. 내 동생이 죽는다면 어짜피 나도 이 세상을 살 수 없다."


"동생과 함께 죽겠다는건가. 제이크 CIA 특수요원이야. 정확히는 미국인 길렌할이지. 난 임무를 완수해야 돼. 다시 한번 기회를 주마. 비켜라."


"난 한국인이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너의 임무일뿐이야. 넌 한국인들을 몰라. 너희같은 족속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한국인? 여학생이 전차에 깔려 죽어도 잠시 소란스럽다가 끝나 버리는게 한국인들의 특성인가? 후후! 대낮에 너희들을 죽이고 체포된다 해도 난 금방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게 너희 한국인들의 한계야."


"개새끼!"


케빈이 마음을 먹었는지 총을 겨냥하고 있는 눈에 힘을 주며 서서히 방아쇠 버튼을 누른다. 


"잘 가라. 그 동안 즐거웠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웬일인지 케빈이 총을 들었던 팔을 늘어뜨리며 쓰러진다. 누워있던 경호원의 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형의 등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동생이 비스듬히 빠져 나와 형을 돌려 세운다. 형의 가슴에서 피가 쿨럭 쿨럭 쏟아지고 있다.


"형! 형! 안돼."


피가 쏟아지는 구멍을 한 손으로 막으며 의식을 일어가는 형의 머리를 감싸안고 흔든다.


"홍아... 나도... 아버지가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안돼 형! 형! 여기요! 빨리 구급차! 형! 아빠 불러줄께 제발 죽지마."


동생이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단축 버튼을 길게 누른다.


"아빠 형 형이 돌아 왔어. 바꿔줄께."


'누 누구라고?'


형의 귀에 휴대폰을 대 주는 사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요."


'훈아 훈이구나. 훈아 너 왜그래? 무슨 일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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