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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Mar 06. 2018

비정규 하와이 여행기 02 우먼 월드

인류의 반은 여성이다. 여성을 보는 시각이 곧 세계를 대하는 인식이다

 9일 차, 2018년 2월 25일


 ① 노드스트롬 랙 와이키키 지점   

 ② 코나 커피 퍼베이어스    

 ③ 무수비 카페 이야스메   

 ④ 숙소에서 점심   

 ⑤ 와이키키 비치   

 ⑥ 숙소 수영장   

 ⑦ 로스 와이키키 지점   

 ⑧ 노드스트롬 랙 와이키키 지점   

 ⑨ 호놀룰루 커피 와이키키 지점   

 ⑩ ABC 스토어   




 ① 노드스트롬 랙 와이키키 지점 

   

정식 명칭은 노드스트롬 랙 하얏트 센트릭 와이키키 비치인데 편의상 와이키키 지점이라고 표기했다.   

여행 마지막 날인데 아쉬움은 없었다. 작년 하와이 여행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충분히 잘 놀았다는 느낌.(원래 의도대로 푹 잘 쉬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서 와이키키에 있는 노드를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노드가 아닌 다른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다. 와이키키 지점이라고 해서 워드 빌리지 지점과 특별히 다를 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예쁜 시계가 있었다.    





미국 브랜드인데 미국의 각 대학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대학별 맞춤 디자인한 상품도 판매한다는 모양이다. 디자인에 끌린 건 사실이지만 나는 오토매틱의 세계로 넘어가 별 의미가 없었다.   


스와치 Sistem51 Irony 리뷰는 여기 

 

여기 나온 물건은 아무리 예뻐 봐야 쿼츠(건전지로 시곗바늘을 돌리는)니까.(이와는 별개로 잭 메이슨에선 오토매틱을 비롯한 다양한 라인업의 시계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놈의 욕망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아내는? 2002년 히딩크였다.   


   

아내는 여전히 배가 고파 보여 망망대해를 누비는 상어처럼 풀어줬다. 어디 한 번 원 없이 담아보라고. 아들과 나는 구석에 처박혀 와이파이를 했다.   


 





 ② 코나 커피 퍼베이어스    

   

퍼베이어스는 아내가 검색으로 찾아낸, 와이키키에서 코나 커피를 파는 가게다. 잘생긴 남자가 있다고 해서 보러 갔다.   




 
응?   

얼굴 작은 건 인정한다.(턱 선이 살아있는 것도, 락스타처럼 마른 핏도)   

알바가 아닌 바리스타의 면모를 풍기는 게 마음에 들었다. 커피 맛은 좋았다. 호놀룰루 커피 알라모아나 지점에 이어 2등.


   

가격은 겁난다. 라지 사이즈에 에스프레소 원 샷을 추가한 뜨거운 라떼가 6.75불, 아이스 초콜릿이 4불, 바질 ― 로즈 라임에이드가 4.5불, 텍스가 0.72불.   

이탈리아 수출품처럼 생긴 남자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 고상한 자세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편한 옷차림의 남자가 마찬가지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해 (죽치고) 앉아있었다. 마실 것도 없이. 아내는 시원한 데를 원했으나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밖에 나가 마셨는데 상쾌했다. 더운 데 상쾌하다. 잃어버린 초여름 맛이랄까.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나가 마음 놓고 마실 수도 없지만 그게 아니어도 6월이 되면 장마 전선이 발달해 습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더위를 누릴 수 없다. 밖에 있어도 되는 더위는 하와이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하나.




 ③ 무수비 카페 이야스메(IYASUME)   

   

원래는 미 바비큐에서 ‘갈비 온 파이어’를 그리며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일요일은 쉰다고.

길 건너 무수비 카페란 간판이 보여 바로 건너갔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기를 쓰는 지금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18년 9월에 오픈한 가정식 레스토랑이라는 설명이 보인다.(오아후 섬은 일본계 자본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



10년, 20년 전 동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오던 구멍가게 같은 느낌이랄까. 난닝구(러닝셔츠)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잔돈을 거슬러 줄 것만 같은. 벤또(하나의 용기에 포장된 도시락)와 무수비가 계산대 옆에 진열돼 있었다. 아무런 멋도 내지 않고 강가의 조약돌처럼 무심히. 내키는 대로 집어 들어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④ 숙소에서 점심   

   

맛은 괜찮았다. ABC 스토어에서 파는 무수비보다 나은 맛이었다. ‘가정식’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들도 치킨을 맛있게 잘 먹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내한테 맛의 평가를 부탁하니 평균은 했다고. 여행기를 쭉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먹는 거에 투자하지 않았다. 다른 데 투자할 데가 많아서.   

적당히 배를 채운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와이키키 비치로 갔다.   




 ⑤ 와이키키 비치   


물놀이를 즐기려고 카메라는 놓고 갔다. 아내와 아들도 핸드폰을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이것은 작년 사진.

  

편한 이동 경로를 감안해 자리를 잡았다. 호텔로 돌아갈 때는 물에 젖은 채 가야 하니까. 사람이 많아 적당한 자리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매트를 깐 뒤 최소한의 물건만 챙긴 가방을 두고 셋 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호텔 룸 키는 내 수영복 주머니에 뒀다. 지퍼로 채우는 방식이라 안성맞춤이다.   

한참을 들어가도 깊어지지 않는 포인트로 이동해 파도 맞는 놀이를 했다. 아내와 아들은 아쿠아슈즈를 신어 마음 편히 파도를 맞았다. 이 정도 파도라면 부기 보드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란색이 부기 보드, 혹은 바디 보드.

    

그래도 역시 그냥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멋있었다.   

나도 즐거워하는 아들과 함께 파도를 맞았다. 아들은 와이키키 비치를 최고로 쳤다. 춥지 않았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물속에 있는 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물놀이를 즐기다 나가도 안 춥다. 작년보다 안 추웠다. 아니, ‘추웠다’라는 말 자체를 쓰면 안 될 정도로 괜찮았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다. 작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왔는데. 굳이 따지자면 시차가 사나흘 정도 날뿐인데. 어쨌든 이 또한 우리가 누린 행운 가운데 하나였다.  아내는 다음에 오면 꼭 보드를 타보라는데 그런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수영이 안 되기 때문에……. 숨을 참고 자유형으로 전진하는 건 되지만 자유형을 하면서 숨을 쉬는 건 여전히 안 된다. 발이 닿지 않는 물에서 뜬 채로 숨 쉬는 것도 안 되고. 억지로는 된다. 내가 말하는 건 자연스럽고 편하게 숨쉬기다.   

아직은 물속이 두렵다. 물속에 시커먼 바위 같은 게 나타나면 ‘헉’ 하고 놀란다. 전율이 인다. 전생에 난파선에서 최후를 마친 인간쯤 되는 걸까.




 ⑥ 숙소 수영장   


물놀이를 마친 우리는 미리 예측한 동선대로 움직여 힐튼 와이키키 비치 호텔로 돌아왔다. 10층 수영장에 들러 몸과 마음과 소금을 녹였다.   


    

자쿠지에 몸을 담근 백인이 캔 맥주를 쥔 채 떠들어대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가 분명한 백인한테 말을 걸어 발설의 쾌감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농담을 곁들인 과장된 경험담. 술에 취한 듯 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바에서 음료를 팔던 직원이 와서 자쿠지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건너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던 백인이 네가 ‘저지’(심판자?)라도 되냐고 빈정댔다. 어딜 가나 꼴통은 있기 마련이다.   

넓게 보면 술을 마시는 행위는 자유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 호텔이라는 장소로 좁혀도 객실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자유다. 매일 밤 우리가 마신 것처럼. 수영장으로 좁혀도 선베드에 누워 술을 마시는 행위는 자유다. 직원이 파는 음료 중에 칵테일 같은 술도 포함돼 있으니까. 자쿠지에서 마시는 행위를 금지시킨 건 퍼블릭이라는 요소가 개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 객실과 수영장 선베드는 혼자 이용하는 장소이지만 자쿠지는 불특정 다수가 함께 이용하는 시설이다. 어른들은 크게 상관없겠지만 애들을 데리고 자쿠지를 이용하려는 부모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다. ‘저지’가 아닌 ‘배려’, 옳고 그름이 아닌 예의의 문제.   

작년에 묵었던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알리 타워 전용 수영장 자쿠지에서도 유사한 백인을 봤었다. 캔 맥주 하나 들고 몸을 담근 채 두 시간을 떠들어대던.   

마지막 수영을 즐겼다. 발이 안 닿는 깊은 지점을 이용해 물 위에 뜬 채로 숨 쉬는 동작을 연습했다. 힘들었다. 직립하면 무섭게 가라앉았다. 물밑에서 사악한 뭔가가 잡아당긴다고 느낄 정도로 완강했다. 떠 있으려면 발을 부지런히 차야 하는데 거기에 소진되는 산소량이 목을 쭉 빼서 들이쉬는 산소량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숨 참고 왔다 갔다 하는 자유형이 최고다. 물안경을 써 눈을 뜨고 하다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키 카드 하나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흘린 모양이군’ 하고 무시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수영장에 들어올 때 꺼내 쓴 뒤 지퍼를 채우는 걸 깜박한 것이다. 젠장. 몸을 거꾸로 세워 잠수함처럼 들어가 팔을 뻗는데 녀석이 수중 바닥에 붙어사는 납작 생물인 양 달아났다. 빌어먹을.   

숙소에 올라와 씻고 와이파이를 했다. 발코니에 비둘기가 나타났다.   

 


하와이의 새들은 포토제닉하다.





 ⑦ 로스 와이키키 지점   

   

한 시간 정도 쉰 아내와 나는 아들을 두고 나왔다. 아내가 오전에 노드에서 산 반바지를 반품할 목적도 있었지만 와이키키에서 마지막 산책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할 게 없는 날씨도 우리를 막지는 못했다. 문득 로스 간판이 눈에 띄어 들어가 봤다.   

몇 해 전 괌 여행 때 로스 매장에 들렀다 실망한 기억이 있어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양한 품목의 다양한 상품이 알차게 진열돼 있었다. 고를 거리가 많았다.   


여자의 세계, 맞다.


품질은 모르겠지만 가격은 환상적이다.

    

아들 방에 걸어주고 싶었는데 운송 중 파손이 우려돼 지르지 못했다.

    

2층에 올라가니 철없는 아이들이 놀이터에라도 온 양 뛰어놀고 있었다. 현지인의 자식들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실은 채 무언가를 심각하게 골랐다. 아이들은 어른의 근심 따위 관심 밖이란 듯 신나게 뛰어놀았다. 코트야드 바이 매리엇 수영장에서 마주친 백인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에게 물이 튈 정도로 거칠게 뛰어놀던. 예컨대 자쿠지에 들어올 때도 첨벙 뛰어드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리는 부모가 없었다. 수수방관을 사랑이라고 믿는 부모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양이다. 버릇없는 아이를 환영해줄 어른은 많지 않을 텐데 말이다.




 ⑧ 노드스트롬 랙 와이키키 지점   

   

사람이 많았다. 계산대 앞에 줄이 길었다. 한산했던 오전 방문 때를 생각해 약간 놀랐다. 미국의 반품 규정은 관대해 영수증만 지참하면 거의 처리된다. 하지만 아내는 빨리 하지 못했다. 직원이 ID(신분 확인)를 원했다고 한다. 여권을 보여 달라는 뜻인데 호텔 금고에 안전히 보관 중이었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이 있어 그걸 보여준 뒤에야 겨우 반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오전에 포기한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마음의 진동을 느꼈다. 욕망은 지진처럼 일상을 흔들어 먼지를 일으킨다. 값이 너무 싸! 형편없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물건은 터프하다. 그것처럼 보이는 소재가 아니라 진짜 그 소재를 쓴 제품이 많다.

 



 ⑨ 호놀룰루 커피 와이키키 지점   

   

선물로 줄 커피를 샀다. 신중하게 라인업을 살핀 뒤 ‘코나’ 커피 함유량을 따져 중간 레벨의 비싼 커피를 두 봉 샀다. 작년에 한 행동을 정확히 반복했다.


 
작년 호놀룰루 커피 이야기는 여기

 
다음에 와도 똑같이 반복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바로바로 지워진다. 아무리 해도 안 지워지는 기억은 매우 중요하거나 매우 아픈 어떤 것이다. 미투 운동의 출발점도 그런 점일 것이다. 기억의 족쇄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라도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말이다.




 ⑩ ABC 스토어   

   

보통 ABC마트라고 하는 모양인데 간판에 쓰인 영어는 ‘ABC Store’가 맞고 우리나라에는 신발만 모아서 파는 ABC마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ABC 스토어라고 표기했다.  와이키키 지역에서 ABC 스토어는 모퉁이를 볼 때마다 보이기 때문에 약도도 따로 올리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사진 정리를 위해 맥주는 나중에 먹기로 했다. 작년 여행기를 쓰면서 자료 정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모은다고 될 일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덕분에 올해 여행기는 편하게 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기억 때문에 아내한테 끊임없이 물어본다)  허기를 느낀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ABC 스토어에 갔다. 저녁을 보충할 군것질 거리를 사러.   


여행지에서는 하드 맛 하나조차 특별하다.


아들은 꿀맛이라고.


    

작년 여행 때는 ABC 스토어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올해는 이번 딱 한 번만 들렀다. 10에서 20프로 정도 비싼 ABC 스토어 이용을 피하려고 아내는 여행 초반에 장을 보는 전략을 택했다. 원래는 코스트코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기로 했는데 코트야드 인근 푸드랜드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물도 여행 첫날 한 박스를 사서 열흘에 걸쳐 먹었다. 큰 걸로 안 사고 작은 걸로 산 건 들고 다니면서 먹기 편하라고. 준비가 치밀할수록 여행은 효율적이다.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에 마지막 날, 마지막 밤인데도 어떤 아쉬움이나 미련을 갖지 않은 것 같다.

아내는 며칠 더 쇼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 하와이 여행기 10일 차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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