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성과 프리랜서 사이의 아이러니
첫 달은 무려 다섯 군데에서 돈이 들어와서 각각 분산된 날짜에 들어왔으나, 살면서의 가장 최고치 수입을 찍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어떻게보면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많이 버는 거니까. 비교가 되는건 아니겠지만, 이래서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나오는가 싶다. 회사를 다녔을 때는 주 5일인 대신 야근도 꽤 있었고 정신도 피폐했는데도 급여가 지금보다 적었다면, 지금은 내 시간은 좀 부족하더라도 생산적인 날들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 나로서는 지금이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만족스러우니 안정성있는 회사를 꼭 다녀야되나 또 한번 의구심이 든다.
오늘 '안정성'이라는 것에 대해 또 생각을 해보게 됐다.
예전부터 안정적이라는 의미의 반 정도는 싫어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도 선생님이나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나의 성향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또 그 안정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에 금방 익숙해지고 또 갈구하기 마련이다. 너무 요동치는 삶보다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삶. 그 예측에 맞게 계획이 생기고 지켜 나가는 삶.
회사에 입사할 때 나는 그 안정적인 삶에 들어갔다. 같은 팀에 프리랜서도 있었고 계약직도 있었는데 나는 쌩신입이 정규직으로 된 케이스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나는 모르는 시기와 질투도 있었던 듯하다. '정규직'이라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처럼 새뇌당했고 누구나 정규직이여야 대우받는 다는 식의 분위기는 사실 나는 잘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간절히 원해서 쟁취한 자리가 아니라 기회와 운으로 얻은 자리였기에 더욱 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규직이라는 자리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 일단 나가고 보자 였다.
막상 퇴사를 하니 세상은 매우 차가웠다. 마침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기도 했고, 무언가의 웅장한 조직, 틀에서 벗어나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그게 첫 퇴사였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 규모가 큰 중견기업이었고 글로벌 사업도 활발했다. 신입으로는 어린 나이, 졸업도 안한 내가 사원으로서 매장 사람들에게 어떤 지시도 하거나 그런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니 그런건 이제 아무 것도 아닌게 돼 버렸다. 아무 프레임이 없는 나에게 이제는 누구 '님'으로 호칭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안정성을 떠나 예측불가능한 도전을 시작한 것인데 어느새 나는 또 안정성을 갈구하고 있기도 했다. 다시금 공채 시즌이 되니 이곳 저곳 들여다보며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냥 내 전공이었으니까, 내가 했던 직무랑 관련이 있을 테니까. 어느 것 하나 가슴 떨림에서부터 우러나와 너무 하고 싶은 일이다라며 지원 동기를 쓰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대기업에서의 높은 급여와 매달 수입이 마치 내 일인 것 마냥 상상회로를 돌리기 시작했고, 안정적이고 싶었다.
그러면 뭐하는지. 많이 쓰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쓴 곳도 떨어졌다. 심지어 학원에서 취업 연계를 해준다는 곳도 변변찮아 연계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안정성을 다시 얻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세상은 너무 차가웠다. 시작을 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니 정규직.이라는 것은 탁 놓아버려서 이제는 손쓸 수 없게 날라가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 아무런 시작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며칠 걸려서 준비해도 막상 떨어지면 남는 건 회사에 맞게 다듬어진 내 자기소개서들 뿐이었고 그 결과를 기다리기 까지의 나의 지나간 시간이었다. 나는 고작 몇 개월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그 때부터는 그냥 작은 곳 가리지 않고 지원을 했다. 오히려 작은 곳도 환경만 좋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여러곳 업무를 맡게되어 네 다섯개의 일이 한번에 생겼고, 지금은 안정적이라는 그 회사보다 많이 벌게 됐으니, 참 아이러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쩌면 그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있는건 아닌가 싶다. 진정 원하는 것보다 안정적이라는 것을 택한다면. 물론 그 둘이 같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항상 반대이기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이겠지.
아니 근데, 돈이 들어오니 돈 쓰는 맛이 역시 재밌음을 새삼 느낀다. 그간 몇 개월은 수입도 지출도 없이 잔잔했던 내 통장이 오랜만에 요동치고 있다. 역시 사람은 돈을 벌어야 하는가보다. 소비하고 다시 채우고 그것이 다시 원동력이 되어 인생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법이라고 세뇌시켜 본다.
이 글은 6월 26일에 쓰였습니다. 몇 주 뒤면 주 7일 근무를 마무리 하며, 노마드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새로운 글들이 게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