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오펜하이머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 인도네시아의 대학살 주범들이 자신의 과거 살인 행각을 재현하는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인 안와르 콩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반공을 내세워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데 앞장선 인물 중 하나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살인의 업적을 영화로 남겨보지 않겠냐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제의를 기꺼이 수락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살해 방법을 재연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천진난만함마저 감돈다. 그러나 안와르 콩고의 얼굴에는 언뜻, 어쩌면 죄책감 그 비슷한 감정을 담은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와중 비집고 들어오는 살해당한 이들에 대한 기억은 악몽으로 번져 간다. 그들은 끊임없이 회고하고, 변명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어쩌면 추모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는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의 첫 장면은 황폐해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의 입에서 무희들이 춤을 추며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식된 대형 철제 물고기의 입에서 걸어나오는 무희들, 그들과 더불어 춤추는 가해자 안와르와 헤르만의 모습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증언하는 성서의 요나를 어딘가 떠오르게 한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만행을 증언한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를 통해 암시되듯, 이들이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가지게 되었을지언정, 요나처럼 진정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는 증언을 하는 ‘구원’을 얻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물고기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온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리라.
그들은 ‘행복’과 ‘미소’를 연기하지만 그들이 연기하는 삶 앞에는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있고, 그 행복과 미소 아래에는 바로 그들이 깔아뭉개 목숨을 잃은 자가 있다. 사람 목 위에 탁자를 놓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 앞에서 우리는 언어를 잃는다. 그 무엇도 잃지 않고 죽은 자를 향해 살아서 말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그들을 우리는 가해자라 부른다. 그들이 거듭 재연하는 참상은 곱씹기보다는 차라리 삼킨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들이 연기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죄악과 비겁을 끊임없이 굴리는 모습은 닳아 없어지지 않을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연상시키는 듯도 하다. 그들이 재현하는 살인 행위는 그들의 ‘잔혹한 업적’을 그 자신에게 거듭 상기시킨다. 회상 속에는 감겨 주지 못한 게 못내 기억에 남는 죽은 자의 눈, 자기가 죽여 배수구로 가라앉은 여자친구의 아버지 등 수많은 인물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그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학살했는지 돌이키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무게를 서서히 체감한다. 그러나 잔혹의 강도는 올라가기만 한다. 촬영은 계속된다. 이렇게 그들의 춤은 일종의 제의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을 향한 제의가 된다. 살아서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아무도 딱하다 여겨주지 않을 자신들의 비루한 몸뚱이를 위로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들이 누리는 삶의 사치를 메꾸는 몇 안 되는 푼돈 같은 것이다. 물론 감당은 어림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