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뿐 (2018)
영화 [오직 사랑뿐] (2016)의 배경이 되는 보츠와나(Botswana)는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생소하지만 정치학, 특히 비교정치학 연구에서는 종종 등장하는 케이스다. '아프리카' 국가이자 '자원부국'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조건 속의 국가들에 비해 예외적으로 민주주의, 경제발전, 사회안정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자원의 저주' 이론에 따르면 통치 제도 정비가 미비한 신생 국가에서 발견된 새로운 자원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인 '축복'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퇴보를 야기하는 '저주'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자원으로 창출되는 부의 혜택을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원의 저주를 피한 보츠와나는 학문적으로 흥미롭고, 정책적으로 유용한 케이스다. 보츠와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이후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직 사랑뿐]은 보츠와나 탄생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이 금기시되던 1947년. 베추아나랜드(Bechuanaland, 보츠와나의 옛 지명)의 흑인 왕세자 세레체(Seretse Khama)와 영국 중산층 출신의 백인 처녀 루스(Ruth Williams)는 재즈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며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오직 사랑뿐]은 그러나 젋은 두 남녀의 클리세 같은 철부지적인 사랑의 감정은 길게 담지 않는다. 대신 이들에게 친절치 않던 시대가 던진 곤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주목한다. 인종차별 정책(아파테이트, apartheid)을 시작한 남아공에 우라늄과 금을 의존하던 영국 정부, 이질적인 백인 여성을 사랑과 존경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베추아나랜드의 왕가와 국민들, 같은 이유로 딸과의 의절을 선언한 루스의 아버지, 베추아나랜드의 채굴권을 탐하는 자본가까지.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도 이유도 다양하다.
시대가 허용치 않았던 사랑이지만 세레체와 루스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다. 두 사람이 강제로 분리됐을 때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기도 하지만, 세레체는 변화하는 정세 앞에서는 냉정하고 영리하게 대처한다. 마침내 영국 정부와는 베추아나랜드에서 막 발견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자원의 통제권이 베추아나랜드 주민에 있음을 확인하고, 세레체를 대신해 섭정 중이던 숙부와 함께 왕정을 포기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한 정부 수립에 동의한다. 새로운 출발이 준비된 것이다. 세레체가 가족과 국민 앞에 서서 변화를 통한 새로운 베추아나랜드, 새 아프리카의 시작을 선포하며 영화의 매듭이 지어진다.
1966년 마침내 독립한 보츠와나는 자원 부국이자 신생 국가임에도 어떻게 자원의 저주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주류 이론은 보츠와나 정치/경제 제도로 설명한다. 예컨대 Acemoglu et al(2001)는 보츠와나는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크고틀라(kgotla, 부족협의회)로 대표되는 대체적으로 포용적이었던 정치 제도와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제도가 오래전에 정착한 사회였고, 영국의 통치 하에서도 이 제도가 큰 변화 없이 지속되면서 독립 이후 엘리트들의 큰 반발 없이 이 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류 이론 모두, 그 동의 여부를 떠나 '제도'의 기원, 변화, 성격을 짚으며 자원의 저주 논쟁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오직 사랑뿐]에서 제도는 부차적일 뿐이다. 아니 관심 밖이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점점 빛이 나던 세레체 개인의 성품과 의지를 강조하며 보츠와나가 이뤄낸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 성장의 성과를 세레체와 루스 두 개인에게 귀결시키려한다. 거짓말 같은 사랑을 이루고 1940-50년대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 이긴 이타적인 지도자 세레체라면... 이라는 비현실적이고 동화 같은 설명이다.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무책임하고 정교하지 못한 묘사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도 관객도 보츠와나를 정교한 사회과학 이론으로만 바라봐야 할 의무는 없다. 그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이 동화 같은 의지와 사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순간들을 상상케 한다. 그래서 [오직 사랑뿐]의 정확치 못한 설명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차가운 언어에 함몰되어 있는 이론에 사람과 사랑의 냄새를 풍겨준다. 불쾌한 현실 왜곡이 아니라 한 편의 따스한 동화 같은 영화로 다가오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