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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Mar 09. 2022

현실적 판단과 전략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간 평가


전쟁이 발발하고 2주째를 향해간다. 전장의 안개는 여전하지만 전쟁의 초기 윤곽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화력보다 속도에 주력하여 전쟁의 피해와 기간을 최소화한 조기 승리를 의도했다. 이에 실패하자 보급과 전력을 보강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주공 목표인 키이브를 포위해가며 대규모 공세를 준비하는 형세다. 그동안 들었던 몇 생각. 


1. 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에 허용한 러시아의 돌파는 (거리로만 계산하면) 현대 속도전의 대명사인 독일군의 폴란드, 프랑스, 러시아 침공은 물론이고 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공격 템포로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초기 진격 속도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참고로 주공 목표지점인 바르샤바와 바그다드에 본격적인 공격작전을 개시하기까지 1939년 독일은 열흘, 2003년 미 지상군은 2주가량 걸렸다. 러시아가 키예프 외곽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째날 (2월 24일) 이틀째 (2월 25일) 진격 상황. 25일 오후 1시 이미 키예프 외곽에 도착했다. 



2. 이러한 급속한 돌파 허용이 우크라이나 방어 전략의 일부였다면--즉 러시아 군 전방과 후방의 거리를 벌려 병참선 방어의 부담과 보급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후 공세 종말점의 시점부터 방어자의 이점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역습을 노리는 식의 의도였다면—좀 더 희망적인 예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며칠째 60km가 넘게 정체된 러시아 기계화 부대의 행렬을 눈앞에 두고 의미 있는 역습을 가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를 보면 이 허용은 최악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한 정보의 실패를, 최선으로 해석해도 대규모 공세적 역습 역량은 갖추지 못한 전쟁 준비의 부족/실패를 가리키고 있다. 


말 그대로 교통 체증에 멈춰버린 러시아 증원부대. 러시아군이 서방국가에서 이런 실수를 했다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을 거라는 게 군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월 28일



3. 러시아 군에 대한 조롱성 기사와 분석이 주를 이루지만, 우왕좌왕하는 적을 앞에 두고 이를 전략적 반전의 기회로 삼지 못한 우크라이나 군의 미비한 역량도 분석 대상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방어가 준비된 상태였는가? 특히 국경에 10만이 넘는 러시아 군이 집결하고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크라이나 수뇌부는 (영미 정보당국이 수차례 경고했던) 전면전의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그 대비 작업을 준비하였을까. 시간이 흐르고 관련 정보가 나오는 대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고군분투 중인 우크라이나 군과 시민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작업이 아닌, 이 노력의 운용주체인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4. 러시아는 속전속결에, 우크라이나는 결정적 역습에 실패함으로써 전쟁은 이제 중/장기전으로 전환될 조짐이다.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수 있을까? 관련 통계를 보면 지난 2세기간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비대칭 전쟁에서 약소국은 약 30% 승리했고 심지어 20세기 후반의 승률은 50%를 넘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Arreguin-Toft 2005). 군사 하드웨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의미 있는 수치다. 약소국은 왜, 어떻게 승리하나? 기존 비대칭 전쟁 연구에서는 (전술 수행 능력을 일정 이상 갖춘 군대라는 전제 하에) 약자의 비대칭적 전쟁 의지 (Mack 1975), 외부 조력자의 지원 (Record 2007), 비대칭 전략 (Arreguin-Toft 2005) 등을 꼽는다.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의지가 유지되고, 유럽과 미국이 중심이 된 군사 지원이 강화되며, 공격자의 악몽 시나리오인 시가전으로 전환이 될수록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보다 제목이 이 연구물을 살렸다 생각...


반면 러시아는 전쟁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이제 보유한 전략 자산을 적극 활용하여 우크라이나를 ‘응징’하거나 전쟁 수행 능력 ‘거부’를 시도할 타이밍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더 큰 규모의 민간인 희생과 본격적인 우크라이나의 파괴를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와 협상 중에도 협상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폭격과 공세를 일시적으로 강화할 수도 있다. 1차 2차 세계대전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시리아/체첸 전쟁에서도 전세가 기대보다 불리하게 흐른다고 조용히 물러난 국가는 없었다. 지난 열흘간 보여준 러시아군의 움직임과 발표에서 역시 전세가 불리해질수록 판세 역전을 위한 도박의 유혹이 강해지는 역설적 상황의 징조들이 보인다. 


5. 결국 희망적 분석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러시아가 축소 발표했다고 의심하는 만큼 우크라이나 군이 발표한 수치의 신뢰성도 의심해야 한다. 언론과 여론이 주목한 러시아의 미숙한 전술 운용 및 우크라이나의 저항, 러시아 내부의 반전 여론, 국제 사회의 신속하고 포괄적인 대 러시아 압박의 효과를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이를 상쇄하는 요인들, 이를테면 러시아의 전열 재정비 및 추가된 군사력, 남부 공격의 성공, 러시아내 전쟁 찬성 여론 및 정부의 반전 여론 탄압 능력, 시간에 취약한 경제 제재의 지속성 및 우회 가능성 등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 사항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가 실패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기 위해 견뎌야할 고통과 파괴의 시간은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6. 현실적 분석은 종종 희망적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푸틴과 러시아의 악마화는 정치적 결집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전쟁의 원인 분석부터, 전쟁 전개 상황 파악 및 예측에 필요한 분석적 가치는 적다. 오히려 상황 오판과 정책 실기의 리스크를 증폭시킬 뿐이다. 자유, 인권, 주권와 같은 가치의 승리라는 관점이 아닌 냉정한 현실적 판단에 근거한 출구 옵션과 전략의 고민이 점점 필요해질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을 주장해온 학자/정책결정자들이 있다. 전쟁 발발과 함께 뭇매를 맞고 있지만 끝까지 꿋꿋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Ivan M. Arreguín-Toft, How the Weak Win Wars: A Theory of Asymmetric Conflict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Jeffrey Record, Beating Goliath: Why Insurgencies Win, 1st ed (Washington, D.C: Potomac Books, 2007)


Andrew Mack, “Why Big Nations Lose Small Wars: The Politics of Asymmetric Conflict,” World Politics 27, no. 2 (January 1975): 175–200, https://doi.org/10.2307/2009880.



사진 출처

표지: https://www.ft.com/content/4351d5b0-0888-4b47-9368-6bc4dfbccbf5 

전황 지도: https://www.understandingwar.org/backgrounder/ukraine-conflict-updates 

정체 사진: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60596629 

John Mearsheimer & Stephen Walt: https://www.nytimes.com/2007/09/06/books/06gri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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