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출 처음 봐.
남들이 들으면 정말?이라고 나올 수도 있는 말.
“나 일출 처음 봐”
1월 1일이 되면 결심하는 다짐은 1월 중순이 넘어서는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꼭꼭 씹어 소화하지도 못한 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열심히 자기 계획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그저 "대단하다"라는 말로 부러움을 삼킨 적도 있다. 나도 하루하루는 정말 못 견디게 힘드니까 내 딴에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 이 정도면 나도 열심히 사는 거야. 라며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2023년부터 나도 그저 사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나만의 것을 찾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조금 어린아이 같지만 여기에 '의미부여'할 행동을 하고 싶었다.
일출을 본 적은 없지만, 일출이 주는 의미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마음속에 담아 둔 다짐을 꺼내고 소원을 빌며 새해를 시작하는 것. 그래 그렇다면, 나도 일출을 보자. 23년 처음으로 떠오르는 해를 보자.
2023년 1월 1일이 되기 전까지 일출 명소를 찾기 시작했다. 서울 중심부터 서울 근교까지, 일출 명소라는 곳은 다 찾았지만 대부분 등산이 필요했다. 등산은 좀.. 힘든데..
그래서,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일출 명당,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일출 명당 위주로 찾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나의 출근길.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에서 청담역을 지날 때 눈이 부시게 떠오르던 태양이 생각났다. 출근길에 매일 보는 장면인데 이제야 생각이 나다니..
하여 정했다. 2023년 1월 1일 일출은 뚝섬유원지에서 보겠노라고. 만반의 준비와 함께.
- 서울 일출 시간, 작년에 뚝섬유원지에서 일출을 맞이한 사람들의 블로그 글
- 출근길 데이터를 통해 쌓은 일출 시간, 오전 8시에 문을 여는 식당, 주차 장소 등
걱정을 꼭 껴안은 채 설레는 계획을 세웠다.
오전 7시, 짙은 새벽 속 알람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서두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옷을 몇 겹씩 껴입으며 추위와 싸울 준비도 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집에서 뚝섬유원지까지 차로 족히 30분은 달려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기 시작했다.
뚝섬유원지에서의 일출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늦게, 아침 8시가 넘어서야 볼 수 있다. 서울을 빼곡히 둘러싼 건물들을 비집고 나와야 하느라 늦나보다.
일출 장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밝아있었다. 같이 간 친구는 우리가 집에서 출발하는 동안 일출을 놓친 것이라고 실망한 듯 했지만 옆에 있는 내가 두 손 모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기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꽁꽁 언 한강 사이 둥둥 떠 있는 편의점 쪽으로 오니,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출명소로 소문난 곳은 아니다 보니 시야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모여 있었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꿀차 하나를 마시고 이미 밝아진 하늘을 보며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새해 첫날 치고는 날이 춥지 않아 다들 기다릴만했는지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표정만큼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10여분 쯤 더 기다렸을까, 높이 솟아오른 롯데타워 배경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와-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옆자리를 지키던 친구도 이제야 내가 말했던 일출 시간을 믿기 시작했다.
해가 얼굴을 내민 순간부터는 엄청 빨리 뜬다고 한다. 이 모습을 놓칠세라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다. 매일 출근길에 지친 얼굴로 지나치던 이 광경이 오늘은 이토록 감격스럽다니,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참 간사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오는구나. 새해니까 좋은 기운 받아야지! 하는 말들이 그저 어르신들이 하는 말들인 줄 알았는데 막상 눈앞에 온전히 붉은 빛을 내는 해를 보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이로운 광경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내 마음도 저 해처럼 자꾸만 일렁거릴 뿐이었다.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주변도 고요했다. 다들 마음속으로 새해 다짐을 외치고 있겠지. 나도 몇 번이고 외쳤으니까.
2023년에는 나를 찾게 해달라고. 나를 찾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