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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이 Apr 06. 2018

[#3] 오로라, 너 이렇게 쉬운 친구였어?

캐나다 화이트호스 오로라 탐험기(다운타운 편)

※ 본 여정은 지난 201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4일까지 진행되었던 여행을 리뷰한 내용입니다.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계획이라는 것은 수정되기 마련이고, 예상되었던 일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은 삶의 작은 축소판과도 같아서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더라도 꼭 사소한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사 동기 3인방이 함께 떠났던 이 오로라 탐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나서야 건너는 쫄보 같은 성격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당연한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인데 말이지", "혹시 가서 다투거나 싸우면 어떡하지?", "우리가 계획했던 곳을 못 가면 어떡할까?"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은 "혹시나 오로라를 못 보면 어떡하지?"였다.




1. 기네스 공인, 세계에서 공기오염이 가장 적은 도시 '화이트호스(Whitehorse)'


북극과 가까운 캐나다 북부에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역은 노스웨스트(Northwest) 준주의 주도 옐로나이프(Yellowknife)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매스컴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이 곳은 오로라 관측을 위한 다양한 패키지 상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패키지는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우리는 남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 오로라를 찾아 나서기를 원했기 때문에 다른 목적지로 방향을 돌렸다. 바로 유콘(Yukon) 준주의 주도 화이트호스(Whitehorse)다.


화이트호스 위치 / 출처 : wikipedia


유콘강(Yukon River)이 브리티쉬 콜롬비아(British Colombia)를 시작으로 유콘을 통과해 알래스카(Alaska)를 지나 북태평양과 북극 사이의 베링해(Bering Sea)로 흘러간다. 척박한 산세를 헤쳐나가는 유콘강 상류의 급류 지역에 약 인구 2만 5천 명으로 형성된 작은 광산마을이 있다. 바로 화이트호스다. The Wilderness City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자연의 야생을 느낄 수 있는 이 곳은 지난 2013년에 세계에서 공기오염이 가장 적은 도시로 기네스에 기록되었을 정도로 깨끗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다.


유콘에 도착했다!


우리는 캘거리 공항을 통해 Air North라는 캐나다 북부 로컬 항공사를 타고 화이트호스로 건너갔다. 비행시간은 약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으며, 2017년 3월 당시 기준으로 1인당 왕복 비행기 값은 약 500 캐나다 달러 정도였다. Air North는 로컬 항공사답게 크기도 작고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였다. 우리가 탑승하던 때도 비행기를 이용하던 승객들은 대부분 화이트호스와 캘거리, 에드먼턴(Edmonton)을 이동하는 캐나다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서로 아는 마을 주민들인지, 어찌나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떠들던지, 너무나 정겨워 보였다. 하긴 화이트호스 인구가 겨우 2만 5천 명인데.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해본 우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화이트호스는 우리가 지금까지 여행한 지역 중 가장 오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여기서 조금만(물론 그 조금만이 진짜 조금만은 아니지만) 더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타고 올라가면 알래스카까지, 북극까지도 넘어갈 수 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린 뒤 다시 핸드폰을 켜서 GPS를 통해 확인된 우리의 위치를 보며, 감격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온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헿,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화이트호스, 영하 27도.


 


2. 우리 집에서 오로라 잘 보임ㅇㅇ, 우리 집으로 오셈


어쨌든 우리가 화이트호스에 온 목적은 오로라를 보는 것이었다. 총 4박 5일을 머물기로 한 일정에서 우리는 2박은 다운타운 근처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으며. 나머지 2박은 화이트호스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져 오로라를 잘 관측할 수 있다는 숲 속의 산장에서 머물기로 했다. 한국에서 화이트호스 다운타운의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뒤지던 중, 한 집을 발견했다. 다운타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가정집은 자신의 베이스먼트 전체를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사전에 이런저런 채팅을 나누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한 말 중 가장 끌렸던 말은 무엇보다도 "우리 집에서 오로라 잘 보여! 아마 매일 밤 볼 수 있을걸?" 에이, 다운타운에서 어떻게?


넘나리 편했던 우리들의 에어비앤비 숙소


사실이었다. 화이트호스에 도착한 첫날밤부터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이제 비행기를 타기만 해도 빨리 지쳐버리는 비루한 체력 탓에 첫날은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내려오더니 지금 오로라가 나타났으니 얼른 밖으로 나가보라고 한다. 우리는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이었다. 비록 가정집의 인공 불빛 때문에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지붕과 처마를 넘어 먼 곳에서부터 초록색 빛이 흔들흔들 밤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카메라 초첨 시망... 똥손의 한계입니다


당연히 지금까지 오로라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 푸른빛이 뭔가 싶었다. 점점 빛의 면적이 커지더니 마치 커튼처럼, 실크처럼 밤하늘에 하늘거린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우리 모두는 영하 27도의 추위도 잊은 채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른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좋은 사진 기술도 없고 스펙도 좋지 않은 일반 보급형 카메라지만 정성스레 이 순간을 기록했다.



마을 건물들과 나무들 너머로 하늫하늘 나타난 오로라!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의 주변 모든 것에 신기해하듯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숨을 죽이고 오로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왔으며, 오로라를 만나는 낭만을 어떻게 꾸몄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오로라를 만난 그 순간만큼은 감탄보다는 오직 오로라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생기는 침묵만이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감동적인 오로라와의 첫 만남을 경험했다.




3. 뭐야, 생각보다 너무 쉽잖아?


갑작스럽게 정신이 번쩍 든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만난 오로라. "뭐야, 첫날부터 이렇게 쉽게 나타나기 있어?"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인 '과연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전에 얻은 정보로는 오로라가 가장 활발한 주기가 10월부터 4월까지므로 3월 중순은 조금 약할 것이다라는 것, 그리고 인공적인 불빛이 없는 도시에서 떨어진 깊숙한 포인트에서 오로라를 봐야 한다는 것, 날씨에 따라 오로라 관측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 등등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오로라와의 만남이 오히려 우리를 당혹게 했다. 물론, 아이슬란드나 옐로나이프 오로라 패키지에서 전문가가 찍어준 사진만큼의 광대한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애초에 만남 자체를 지나치게 걱정했던 우리에게 이 정도의 오로라도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추운 날씨 때문에 15분 관측, 45분 휴식을 반복하며 첫날 자정을 넘긴 새벽까지 너무나 쉽게 우리를 반겨준 고마운 오로라와 함께했다.


<여기서 잠깐 오로라 관측에 사용했던 도구를 소개한다. 우리는 auroraforecast.com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오로라의 세기와 관측 가능성을 판단했다. 전문적인 도구는 아니지만, 현재 오로라가 지구 북반구에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강도는 어떠한지를 대강은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현재 2018년 4월 5일 기준으로 오로라 레벨은 4/10이며, 알래스카와 화이트호스를 시작으로 캐나다 북부 일대와 동쪽 대서양과 그린란드까지에 걸쳐 퍼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상 레벨 4 정도면 조금 약한 수준이지만 관측은 가능하다. 우리가 있었던 5일 동안의 화이트호스는 3에서 6을 오갔다.>


http://auroraforecast.com/



이렇게 우리의 오로라 탐험은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럽게 첫날부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음 날에도 오로라를 또 볼 수 있었다. 작은 마을 속 에어비앤비 숙소 앞에서 만난 오로라는 까만 하늘을 초록 빛깔로 물들여 갔다. 어쩌면 이 화이트호스 사람들에게는 오로라는 너무나 익숙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감동은 사실은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나 익숙함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감동을 했던 이 현상도 결국에는 갑작스럽게 우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와 준 이벤트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보다도 먼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첫 날의 감동에 이어 매일매일을 새로운 오로라를 만날 수 있었다.


다음 편, 화이트호스 보레알 산장에서 펼쳐진 더욱 장대한 오로라를 기대하세요!  


(계속)


회사동기 3인방으로 이루어진 오로라탐험대의 캐나다 오로라 여행 시리즈

[Prologue] 결정적 순간

[#1] 웬 오로라 여행?

[#2]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래서 캐나다

[#3] 오로라, 너 이렇게 쉬운 친구였어?

[#4] 캐나다 숲 속의 작은 산장에서

[#5] '그 날' 오로라가 우리에게 건넨 위로

[Epilogue] We are Voyagers!

매거진의 이전글 [#2]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래서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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