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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온 Dec 28. 2017

심리극을 경험한다는 것

심리극 디렉터의 시선으로

<내 자신이 되어야 할 권리>

나는 당신이 아닙니다.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니며
나는 나입니다.

나는 작지 않습니다.
길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는 선하지 않습니다.
나쁘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으며
슬프지도 않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아, 나를 나 되게 해 주세요.

당신은 정말 모르세요?
정말 깨닫지 못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나입니다.

삶을 위한 사랑의 노래

- Z. Moreno, 1971

<The Right to be Me>

I am not you or he or she.
I'm not short or tall or big or small.
I'm Me.
I am not good or bad or gay or sad.
I'm Me.
Oh, let me be!
Don't you know?
Can't you see?
First of all I'm Me!

Love Song to Life
- Z. Moreno, 1971

- Psychodrama, Surplus Reality and the Art of Healing.




<2017년 9월 11일 (월) 날씨 : 맑음>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심리극'을 경험하길 원한다. 나는 초대받은 장소에 가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또는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몸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 참 알 수 없다. 심리극으로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면서도 변화를 원하는 순간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도망치기 바쁘다. 두렵고 무섭다고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에 압도된 모양이다.

심리극 디렉터는 주인공과 집단원들에게 말한다. "이건 연극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저 그 순간을 다시 연출했을 뿐이에요. 눈을 뜨세요." 클라이언트는 여전히 내 말이 마음 안에 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순간이 마치 그때인 거 마냥 온몸과 마음을 부르르 떨고 있다.

이미 클라이언트는 그때를 지금 다시 경험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지금을 다르게 경험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싶다. 이 또한 선택해야만 경험할 수 있기에 동의가 필요하다.

9월, 상반기가 지나고 이제 어느새 2017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여러 학교들에서 연락이 불이 나게 오고 있다. 학기 내내 참고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마음이 곪을 대로 곪았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심리극에서 감정을 쏟아내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한다.

심리극은 수도꼭지가 아닌데 말이다. 그저 수도 밸브를 돌린다 해서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다. 참고 있던 감정을 드러내는 이도, 이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심리극 디렉터도 줄타기 하는 것처럼 불안하다. 그저 심리극 디렉터는 여러 경험 안에서 예상되는 마음의 흐름을 사례 개념화로 가설을 세우고 바라볼 뿐 마음이 흔들리는 건 같다.


심리극 디렉터는 마음을 만나기 전  
두려움을 그저 직시(直視) 할 뿐.


나는 요즘 참 이상하다. 앞에 앉아 있는 클라이언트가 한 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클라이언트는 집단 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마음에 폭풍을 안고 있는지 몸짓, 표정, 눈빛, 정서가 예사롭지 않다.  여전히 클라이언트는 장(場)에 오기 전에 관계에서 얽힌 사람들과 같이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클라이언트가 호소하는 어려움의 과거를 바라본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금 네 앞에 앉아 있는 클라이언트는 지금 최선의 모습일 것이야. 더 이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없을 테니. 지금 보이고 있는 적응적이지 않는 모습도 그에게는 최선인 거지."

사람을 만나는 심리극 디렉터도 사람이다. 여전히 완전하지 않고, 온전하길 기도하면서 사람을 만난다. 오늘도 마음에 다짐을 해본다. 클라이언트가 쏟아내는 여러 사실과 이해를 넘어 참만남과 진실에 닿기를 바란다. 이는 나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작업적 소진을 사전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증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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