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Unfortunate Events) 위에서 서핑하는 법
나는 촉이 좋은 편이다. 눈치도 빠르고, 상황 파악도 빠르고, 그렇다 보니 미묘한 뉘앙스까지 빨리 캐치하고 예측해 버린다. 내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수억의 정보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니 이 위대한 통계의 결과값은 점점 근사치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촉이 좋다는 건 항상 좋지만은 않다. 보통 촉이란 건 안 좋은 일을 마주하기 전에만 발동하고, 좋은 일을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위험을 미리 예지하고 대비해야 하는 인간의 동물적 생존본능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촉이니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싶지만, 사실 현대사회에서 오는 불행은 미리 알아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에 매번 나는 내 촉을 부정하려 애쓰며 화형대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불길을 느끼는 것 마냥 미리 고통에 몸부림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미리 불 맛을 보아서 막상 불행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는 생각보다 의연하다는 것이다. 온몸이 탈 동안에 아프고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이지만.
그와 달리 좋은 것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걸 운이라고 부른다. 운을 촉으로 점치기는 너무 어렵다. 운이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영역 그 자체이다. 인간은 불행을 예측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운을 갈망하기에 항상 괴롭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통이다, 와 카프카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아픔이 듬뿍 담긴 문장들이 나오는 거겠지.
정형화된 모범적 삶이 비교적 정해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착실하게 그 길을 걸어온 나는, 특히 높은 꿈과 독기와 흔히들 말하는 똑똑하고 착실한 성품으로 무장한 채 지금껏 원하는 스텝들을 빠르게 밟아 나갔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고 나의 선택에 대한 용기가 있었다. 내게 불행은 예측하고 극복하면 될 것이고 행복은 추구해야 할 것이었다. 운명은 내 컨트롤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상반기는 그 알에서 깨어나오는 시기인가 보다. 나의 손을 떠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예측도 못해본 여러 일들이 밀려오고 지나간다. 노력으로 극복하려고만 하기엔 견디기 어렵고, 잘 휘어지고 일어나고 흘러가고의 반복이 있어야 할 때인 것 같다.
파도 위에서 서핑하듯이, 파도를 맞으며 보드를 들고 거슬러 걸어갔다가, 방향을 돌려 기다렸다가, 파도를 타고 일어났다가, 그대로 물에 온몸을 맡기기도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기들을 남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