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새롬 May 20. 2017

#5 편의점으로 본 대한민국

전상인의 <편의점 사회학> 서평

     


언제부턴가 편의점이 우리의 생활 한복판에 불쑥 들어와 있다.
질적인 차원에서 편의점은 더 이상 단순한 소매 유통업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편의점 제국’이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편의점 수는 공식적으로 2만 여개, 편의점 1개당 일일 평균 방문객은 3백여 명에 이른다. “웬만한 길가나 건물에서 편의점을 만나기란 파출소나 우체국 찾기보다 훨씬 쉬워졌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편의점의 정체는 무엇일까? 경영학, 유통학, 소비자학 분야에서 바라보는 편의점은 하나의 소매 유통 채널 또는 창업이나 영업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으로는 편의점의 확산, 나아가 편의점 “중독”에 이르는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에 「편의점 사회학」은 편의점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색다른 시선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저자인 전상인은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사회학자라 할 수 있는데, 「아파트에 미치다」, 「옥상의 공간사회학」과 같은 저서에서 도시의 일상적 삶의 공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보인 바 있다. 저자는 ‘먹잇감’, 그러니까 사회학적으로 분석할만한 도시공간을 찾던 중 우연히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고백하며 「편의점 사회학」을 시작한다. 즉, 이 책은 편의점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책이라 볼 수 있으며, 독자는 특유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사회과학적 통찰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편의점에 미쳐있었다는 저자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학술대회, 심포지움, 세미나에서 ’편의점 평천하’, ‘편의점으로 읽는 사회’, ‘편의점으로 읽는 도시, 도시인, 도시문화’와 같은 제목으로 발표하고 논의의 장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 간 논의의 총체라 볼 수 있는 이 책에는 몇 년간 수집된 신문기사와 통계자료, 관련 웹툰과 소설까지 포함한 370여 개의 주석이 달려있다. 전통적인 연구의 근거자료로 배제되기 쉬운 비학술자료를 현사회의 현상을 바라보는 창구로써 활용한 것은 이 책 특유의 강점이다. 저자는 “논문 공장의 논문 기계들만 평가받고 득세하는 우리나라 학계에서 평가 절하되는 단행본 저서의 가치”를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자료를 가지고 입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편의점 사회학」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미국에서의 편의점의 탄생과 동아시아로의 도입, 편의점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초고속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개괄하는 부분이다. 편의점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유통 부분이 경제 구조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면서, 냉각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식음문화가 광역화 내지 세계화되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븐일레븐로손 등의 편의점은 일본으로 도입되고, 이후 동아시아로 빠르게 이식되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성장속도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유난히, 그리고 가장 빨랐다는 점”을 들어, 자본주의 경제가 잘 뿌리내린 사회야말로 편의점이 득세하기 좋은 배경임을 지적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6개의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 프랜차이즈 체인화 편의점이 업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유해가는 추세를 볼 때, 결국 편의점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의 집적 및 집중의 증가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소수 거대 자본이 독점하는 편의점 업계에는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다.




  「편의점 사회학」의 중간 부분은 편의점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부분으로, 소비주의 사회의 첨병으로서, 근대 합리주의의 화신으로서, 글로컬리제이션의 현장으로서, 신종 도시 인프라로서, 사회 양극화의 평화로운 공존장소로서의 편의점을 각각 조명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비주의와 근대합리주의의 표상으로 본 편의점, 신자유주의 시대를 반영하는 도시인프라로 본 편의점에서는 편의점의 이면 또는 모순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에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편의점의 모순적인 연결고리에 빈틈없이 얽혀있음을 알게 되므로 더욱 고민에 빠지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편의점을 “소비주의 사회의 실핏줄이자 최전방”으로 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부담 없는 이웃”처럼 편의점에 자주 들르고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을 즐기는데, 저자가 보기에 그 힘은 편의점 특유의 분위기 또는 아우라에서 나온다. 편의점 공간은 환한 조명, 투명유리, 냉장시설, 청결, 친절 등이 버무려져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하고 밝은 공간으로 “기호를 소비하도록 유혹하고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에 저자는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려, 편의점을 “기호와 공간의 경제”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우리가 과연 편의점에서 무엇을, 그리고 왜 사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주인공이 ”나는 편의점에 간다...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us)로 길들여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듯 투명 유리 사이로 훤히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그곳.
나는 세븐일레븐을 지나며 ‘설마 저렇게 많은 물건 중 내게 필요한 게 한 가지도 없을까’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 세븐일레븐은... 내 손에 무언가를 들려 보낸다.



  한편, 편의점은 효율성과 계산성, 예측 가능성, 통제성으로 대변되는 합리적 근대사회의 화신이기도 하다. 이 네 가지 원리는 조지 리처가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확산되는 맥도널드의 조직 원리”로서 언급한 것인데, 저자에게 편의점은 이러한 맥도널드의 원리가 집약적으로 표출되어 있으면서 근대 사회의 특징인 형식적 관료주의가 최고조에 도달한 공간이다. “언제 찾아가도 모든 게 늘 제자리에” 있게 하는 “판매 시점 정보 관리 시스템(POS)”, 개별 편의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물류 센터에서 집하와 운송이 시작되는 “디지털 피킹 시스템(DPS)과 전자 발주 시스템(EOS)”, 과학적 진열방법 등은 편의점의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충족시킨다. 또한 편의점은 바코드를 통해 계산성을 확보하고, 고객들이 “셀프”로, “구매하고 싶은 상품을 카운터로 들고 와 결제로 직진하게 만드는” 공간 질서를 확립한다. 이와 같은 ‘쇼핑의 맥도널드화' 경향 속에서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기계를 닮아가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덩달아 로봇이 되어가는 것이다. 편의점에서의 ”쿨“한 인간관계와 ”무관심의 배려“가 현대인에게 매력적인 요소겠으나 이것이 초래할 사회는 베버가 예견한 것처럼 ”분노도, 애정도, 미움도, 열정도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편의점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통지 수단 내지 권력 테크놀로지”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편의점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판매하고, 거의 ‘모든 것’을 서비스하기 때문에 고객의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측면이 있으나, 이를 바꾸어 말하면 편의점이 개인의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례로 편의점 계산기는 상품 바코드를 찍은 뒤 “손님의 계층”이라는 “객층키”를 눌러야 계산이 완료되는데, 이를 통해 손님의 연령, 성별에 따라 어떤 물건을 언제 구입하는지 하는 정보가 끊임없이 입력된다. 다시 말해, 편의점은 현대인의 취향과 행동 패턴 및 경향을 빈틈없이 꿰뚫고 기록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 혹은 파놉티콘(ponopticon)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현실 속 우리들은 편의점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는 생각만 할 뿐, 세상을 은밀히 지배하는 편의점의 숨은 권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저자는 편의점을 한국 사회 또는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창구로 내세우는 데서 시작하여, 편의점이 내세우는 편의성의 의미 혹은 편리성의 본질을 묻기에 이른다. 이는 한국 사회 및 한국 현대사에서 “편리함”을 누리는 주체와 그 본질을 묻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소비주의 사회에 길들여지고, 자본주의 체계에 편입될 때 편리를 누리는 집단은 누구인가? 편의점을 찾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일상의 행복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관리 받고 통제당하는 현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이고,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


  「편의점 사회학」은 편의점 특유의 편리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편의‘라는 미명 아래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소비주의, 근대적 합리주의, 신자유주의의 시대의 정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애써 눈감아 온 질문을 던져주어 “뜨끔”하면서도 감사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편의점 외에도 현대사회의 가치와 모순이 공존하는 여러 도시공간과 사회적 현상을 재검토하고, 또 이러한 공간과 더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