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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새롬 Oct 21. 2017

#8 무엇이 도시를 도시로 만드는가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8장 도시 서평


  우리나라 도시화율(도시지역 인구비율)은 90 퍼센트가 넘는다. 동서남북으로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도 우리 대부분이 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른 곳에 살면서 공통적으로 “도시에 산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가? 도시를 도시로 만드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힘을 인구 또는 인구밀도 따위로 설명한다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빈약한 설명이 될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은 도시를 구조화하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구조주의 역사학자였다. 그는 웅장하기로 소문난 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상당 부분에서 도시의 구조를 탐색했다. 책 전체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의 구도를 한 큐에 꿰어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 이슬람의 메디나(medina), 11세기 부활한 유럽 도시에서부터 세계 각국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그는 도시를 경제성장의 원인이자 기원이라고 본다. 도시는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즉 문명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브로델은 도시를 이전 사회와의 “단절”, 근대사회로의 “전환점”, “세계의 운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페르낭 브로델(1902~1985, 프랑스)


  이 책에서 도시와 관련한 브로델의 작업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세계 여러 도시들의 다양하고 독특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두 뛰어넘는 구조를 예증하는 것, 둘째는 그 구조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핵심인 분업, 시장, 권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로 묘사된다. 도시가 성장하고 주변 지역과 경쟁하며 진화하는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은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다소 산만하나 20세기 이전의 방대하고 구체적인 예증이 뒷받침되어 상당히 설득력 있고, 특히 흥미로운 것은 브로델의 탁월한 비유이다.


“도시는 변압기와 같다. 그것은 긴장(즉 전압)을 증대시키고 교환을 가속화시켜주며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섞는다.


  브로델에 따르면, 도시를 구조화 하는 핵심은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분업’, 즉 도시와 시골 사이의 분업이다. 도시는 상업을, 시골은 농사를 맡아 분담하면서 도시는 필요한 만큼 시골을 만들고 다시 시골의 존재가 도시를 만들어 낸다. 즉, 서로의 필요에 대한 기대나 전망(prospective)의 상호성에 힘입어 도시와 시골이 동시에 발달하게 된다. 이것이 브로델이 말하는  ‘전망의 상호성’이며, 그의 도시관(都市觀)을 대표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는 도시와 시골은 공존 관계이므로 시골이 도시보다 언제나 앞서 만들어 지지도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신세계’에서 유럽 국가들이 건설한 도시는 원주민으로 구성된 시골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15세기 프랑스 푀흐(Feurs)의 도시


  또 서구의 여러 도시의 예를 통해 브로델은, 도시가 가까운 시골 지역을 눌러 이기게 되는 한편 더 큰 대도시에는 종속당하는, 도시의 계서제(階序制, hierarchy)적 질서를 엿본다. “도시가 도시로서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보다 열등한 생활을 하는 지역을 앞에 놓고서만 가능”하고, 어떤 도시라도 도시의 시장, 상품, 가게, 오락을 이용하는 주변 지역 또는 시골과 분리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가 제시한 제네바, 밀라노, 세비아의 예들은 기능적으로 종속성을 가진 시장, 항구, 소도시, 위성도시, 도시 복합체를 후광처럼 거느린 대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도시의 발달이 ‘태양 도시(sun-city)를 따라 돌아가는 도시체제’에 이르게 되며, 이 도시체제 전체 양을 추산함으로써 도시의 수준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도시의 계서제적 질서나 경쟁구도가 나타나지 않았던 러시아, 인도, 중국과 같은 지역에 대하여 도시의 발달이 미진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유기체적 도시관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유럽중심의 도시발달론의 모습도 보이는 대목이다.



“흔히 소비의 발전과 다양화가 이루어지는 데 도시가 기여한 역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면서도, 시민 중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얻는다는 점이나, 도시가 결국 시장을 일반화시킨다는 점과 같이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14세기 유럽 시장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는 다른 하나는 바로 시장이다. 모든 도시는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움직임을 다시 만들어내며, 사람과 상품을 분산시키고 다시 집중시키는 일을 하는데, 이 운동을 관장하는 것이 시장이다. 사람과 상품이 모이지 않는 도시는 없으며, 도시는 가깝든 멀든 주변 지역으로부터 사람과 상품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브로델이 보기에, 도시나 시장은 결국 같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서유럽을 세계적으로 특출한 곳으로 만든 힘을 (국가나 여타의 것이 아니라) 도시와 시장으로 설명한다. 서유럽은 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도시의 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가 11세기 이후 시장과 화폐경제를 중심으로 도시가 부활,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루아르 강과 라인 강 사이, 중북부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 등 도시와 도시, 시장과 시장을 연결했던 주요 지역들이 예시된다.


  도시는 사람과 상품의 흐름만을 관장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강력한 힘과 세력도 동반된다. 브로델은 도시의 정체성을 권력에서도 찾았다. 정치적, 사회적 권위자들이 모여드는 곳이 도시이며, 특히 수도는 국가 덕분에 사회정치적 집중과 특권을 누린다고 설명한다. 대도시의  비생산적 사람들의 사치, 낭비, 환락이 외부의 노고를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그의 주장은 북경과 런던, 1790년의 상트 페째르부르그 등을 통해 뒷받침 되었다. 그러나 브로델은 현재 도시들도 가지고 있는 도시의 불균형한 구조, 비정상적이고 기생적인 성격이 스스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가 허용하고 강제한 것으로 파악했다. “보호와 강제하는 권력이 없다면 도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처럼, 초기 도시 ‘성벽’은 사회적 경제적 경계선이자 보호막이었으며, 국가, 교회, 귀족 등의 사회문화적 우위와 경제적 수입을 기반으로 한 전체 도시체제가 도시의 구조를 규정해왔던 것이다.


19세기 귀족들의 무도회 (Adolf Menzel, 1815~1905)


  이 책의 「도시」 장은 도시의 역사를 20세기 이전 시골과 도시의 분업, 시장과 화폐경제, 지배 권력과 장치로 소구하여 봄으로써 근대도시의 사회경제적 질서를 탐구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수집한 여러 도시의 자료들을 보면, 당대 도시의 역동적인 모습과 구조를 상상하게 되어 즐겁다. 본래 일상의 물질생활과 문명,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등의 연결을 찾고자 했던 저자가 그 연결의 핵심이자 무대로서 도시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문사회학적 도시읽기의 필요성도 함께 시사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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