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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퀼티 May 19. 2017

있음과 없음

(#23, 어느 술집, W과 M)

W: 저는 취하면 입을 다물게 됩니다.

M: 그럼 좀 더 취하세요. 말이 너무 많아요.

W: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요? 말이 없어도. 저에게는 공포입니다. 침묵이 가혹하고 무섭습니다.

M: 세상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글만 쓰지 말고 사람을 좀 보고 쓰는 것들 다 입으로 한번씩 읽어보세요. 그렇게 말하는거, 이렇게 쓰는거 거짓말이에요.

W: 이렇게 생각해볼 순 없을까요? 모든 말들, 표상들, 기호들 다 거짓말이니까. 거짓말처럼 쓰고 말하는 거에요. 거짓말처럼. 풍자처럼. 어때요?

M: 시끄러워요 좀. 그러면서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그쪽 그런 상처받은 표정 짓는거 맨정신에 보고있자면 못견딜텐데 심심해서 이러고 있는거니까 입 좀 다물어봐요.

W: 아 진짜 우리 이런 대화들 뭐하는 건데요? 입을 다물면 더 심심해질 거에요. 나가서 춤이라도 춰요. 자.

M: 야 시끄러워.

W: (잠시 조용히 하다가 안절부절 못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M, W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고서는 W의 머리를 쥐어잡고 마구 흔든다. W, 사정없이 흔들리다가 크게 웃는다.)

M: 너는 너를 너무 가여워하는구나. 지켜볼 수가 없다.

(W, M이 퇴장하는걸 보다가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냅킨에 무언가를 쓴다. W가 M을 따라 퇴장하자 카메라, 테이블의 냅킨을 클로즈업 한다. 아름다운 것, 영원한 것, 빛, 진리.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인간들에게 도덕적 감각이란 우리가 덧없는 미적 감각에 지불해야 하는 의무다.' 라고 적혀있다. 작은 참새가 창가에서 냅킨을 보고서는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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