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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퀼티 Mar 15. 2022

용두사해

1. 꿈을 꾼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않고...' 하고 미야자와 겐지가 기침섞인 목소리로 시를 읊조린다. 나는 아주 낯선 사람과 아무 연고도 없는 바닷가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숨을 곳이라도 있는냥 나는 숨는 시늉을 하고, 낯선 사람은 찾는 시늉을 한다. 아무도 시킨 적이 없건만 보는 사람도 없는 연극을 하는 나는 하늘 아래 이렇게 자유로울수가 없다.


2. 요즘 술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 오래전에는 가면을 벗고 새로운 가면으로 갈아입는 사이 찰나의 틈에 술이라는 변명으로 맨얼굴을 내놓는 순간들이 있었을 터인데. 어느새 진심이라는 이름의 가면이 되어버린듯 아니면 술이라는 이름의 가면인듯. 말을 하는 나의 목소리가 거북해서 그닥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리려고 하지조차 않는다. 실은 그저 나이가 들어 기억이 감퇴해가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3. 나는 완전한 고백의 픽션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살에까지 파고든 가면, 살집이 달린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다.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4. 그이와 이야기할 때 나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일말의 진심이 나의 자랑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꿈을 꾸면서 나의 내일을 위로했다. 나는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거야. 처연한 자기연민의 극의. 그렇게 그이를 지나 또다른 이에게로, 또 또다른 이에게로. 그러다 도저히 속일 곳이 없어질때쯤 나는 또 꿈속으로.


5. 이런 것들을 적어내는게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피어오른 일말의 기대에 보조개를 포갠다. 웃음으로 넘긴  농담이 사실은 먼지 쌓인 나의 진심이었노라고. 나의 속삭임이 잔잔한 미풍이 되어 해변에는 포말이 퍼져나간다. 어서 신발을 벗어야지. 바다가  앞이니까.


7. 그러나 파도에 실린 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애꿎은 강아지만 겸연쩍게 캥캥.  눈치도 빠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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